처녀들, 자살하다
Posted 2008/01/21 08:09, Filed under: Review/Book소피아 코폴라의 <Lost in translation>이 유명세를 타기 전 그녀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처녀자살소동(the virgin suicides)>를 통해서였다. 유치한 역제가 내 심기를 건들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파격적인 소재에도 꽤 괜찮았다. 되려 한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막막함이 나를 사로잡기도 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스파이더 맨>에서 리버스 키스신으로 나와 친구들을 탄사를 자아내기 이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금발
소녀가 한 사람의 배우로 자라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ER에서도 잠시 등장하지만 TV 시리즈니까 논외로 한다). 개인적으로는 럭스를 연기한 키얼스틴 던스턴보다 메리를 연기한 A.J. 쿡의 외모에 더 끌렸지만 이제와 낡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일은 좀 부질없어 보인다.

사실 처음 책등에 인쇄된
『데미안』과 『호밀밭의 파수꾼』에 비견될 만한 작품이라는 광고 문구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어쩌면 먼 훗날 가장 위대한
성장 소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리 높은 가능성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에 관해 논평하기란 쉽지 않다. 흠잡을 데 없는 이 소설이 널리 알려지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고, 걸작으로 살아남기에는 1%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집어내기는 어렵다. 그저 꽤 많은 책을 읽어오면서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일종의 감이라는
것인데 내 심장과 머리를 뒤집어 놓은 그 '싸함'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기백을 압도하는 박력의 부제는 이 소설의 앞날에 대한
전망을 조금은 어둡게 만든다. 어쩌면 이런 내 감상은 미국 작가들에 대한 그동안의 내 실망과 이 소설을 제외하면 그다지 주목받을
만한 소설을 써내지 못한 작가의 탓도 있다.(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몇 해 전 『미들섹스』라는 작품으로 풀리쳐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주목받을 만한 작품인든 아니든 간에 남녀추니 Hermaphroditus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좀 괴기스럽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첫 번째는 만약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언제쯤 이 소설을 권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내 형제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사연과 강도는 다를지언정 나 역시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년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은 정말이지 『데미안』과 비슷하다. 문장마다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들이 묻어난다.『데미안』처럼 이 소설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상이 감정 상태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까지 닮았다. 짧은 문장으로 이 소설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데 바보처럼 글자를 적어내려 가는 어리석음을 어째서 자초하는지 모르겠다.
P.S.
언제인가 결혼이라는 굴레를 굴레로 여기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을 만난다면 둥그런 허벅지를 베고 누워 이 책을 읽어주고 싶다. 단락마다 내가 가졌던 느낌을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질지도 모르고 그것은 나에게 확신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