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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22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대혁명 시기의 프랑스는 공화정 로마와 명말 청초의 중국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대다. 이 시기 대한 책이나 유물들은, 심지어 소설이라도 나를 유쾌하게 만들곤 한다. 그것이 어떤 입장에서 쓰였는지는 나로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 시대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혹은 발견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재작년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빅토리아 앨버트에서 부르봉가의 도핀과 도피네의 그림이 그려진 도기 역시 이런 발견의 연장선상에 있다. 루이 15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왕이 되지 못한 채 죽은 비운의 인물, 그의 세 아들은 왕이 되었지만 그대에서 부르봉가의 지배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혹 그가 루이 15세만큼 오래 살았다면 프랑스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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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누구나 이런 가정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안다. 유능한 역사가라면 실재하지 않는 대안에 목을 매는 우를 범하지 않으며, 통속적인 역사 소설가들마저 로로코의 여왕에 비하자면 담백하기 그지없는 이 인물에 끌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역사란 트리아농의 '오스트리아 여자'로 불리는 앙투아네트가 역사에 남겨놓은 이런저런 흔적들뿐이다. 수두자국 투성이 남자들이 왕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동안 단호하게 깨어나 철의 여인이 되었던 한 여성의 삶이 거칠게 농락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외에 우리에게 남아있는 일이란 없다.

프레이저와 다르게 츠바이크의 문장은 대담하고 보다 직설적이다. 전기 소설이 그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보여주었다는 평답게 츠바이크의 분석은 섬세함과 정연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츠바이크는 앙투아네트를 로로코의 여왕이라는 허영심 많고 세상물정 모르는 프랑스의 왕비로 바라보기보다는 -그에게 목걸이 사건은 중요한 사건이긴 하지만 뒤마의 소설에서 다루어진 정도로 극적인 사건은 아니다- 두 왕가가 7년 전쟁을 통해 확인한 외교적 결론을 확인하기 위한 동맹의 증명으로 낯선 나라에 던져진 철없는 소녀가 여자가 되고, 어머니가 되며,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는 과정을 중심으로 조망하고 있다.

한 소녀의 내면적 성장과 고통. 힘겹게 얻은 평화. 생명을 건 투쟁이라는 소재 측면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여왕』과 비슷하나 묘사와 분석의 강렬함은 이를 웃돈다. 사실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어린 시절 본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영화 속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후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얗게 센 머리에 검은 숄을 두른 채 재판정에 나와 남편과 자신의 아들이 지닌 정당한 권위와 권력을 당당하게 논변하던 급격하게 노인이 되어버린 한 여자의 이미지가 다비드가 그린 너무나도 모욕적인 스케치에 오버랩 되면서 그녀에 대한 동정심이 혁명에 대한 내 관점을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닌 권리를 지키고자, 또 남편을 지키기 위해, 아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벌인 장엄한 사투가 비루하고 졸렬한 스캔들에 모욕당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츠바이크의 『마리 앙뜨와네트:베르사유의 장미』는 이 물음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제시한다. 모욕당한 어미의 편지와 죽음을 앞둔 여인의 마지막 사랑 고백 앞에서 츠바이크는 전례 없는 어조로 그녀를 변호하고, 그녀를 위해 그만의 장엄한 묘석을 새긴다. 그녀의 남편과 죽음조차 확인하지 못한 아들의 왕좌를 대신 차지한 시동생들이 기요틴에 목이 잘리고 스케치와 그림만으로 회자되는 그녀의 차가운 주검을 콘크리트 묘지 아래 버려두는 동안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말이다.

2008/04/22 20:58 2008/04/2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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