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폴 오스터'

1 POSTS

  1. 2006/07/08 브루클린 풍자극

브루클린 풍자극

Posted 2006/07/08 23:45, Filed under: Review/Book
폴 오스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 나는 책은 『뉴욕 삼부작』이다. 90년대 후반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검정색이 뒤엉킨데다가 고딕체의 딱딱한 제목이 인상적인 페이퍼백을 보는 순간 난 이 책이 금주령 시대를 다룬 마피아 소설이 분명하다고 단정지었다. 혹자는 이런 나의 성급함을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8~9년 전의 폴 오스터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곰돌이 푸가 즐겨먹는 달콤한 꿀 같은 존재였다. 소리소문 없이 지인들의 입으로만 회자되면서 소설의 의미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소설. 당시의 폴 오스터의 이미지는 대중적이기 보다는 조금은 패셔너블한 스놉들의 아이콘이 아니었나 싶다.

90년대 후반에 폴 오스터를 좋아한다는 말을 흘리면 사람들의 반응은 잘 모르는 작가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응’ 이라는 짧은 종결형 대답이 주류를 이루곤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시점부터 폴 오스터를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울러 폴 오스터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나기 힘들어진 시점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다. 개정판이 나오고 신간들이 속속 번역되어 나오기는 하지만 그 책들에 대한 진지한 리뷰 역시 끊겼다. 과거에는 문장 하나의 의미를 놓고 시끄럽던 지인들이 더 이상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근래에 번역된『브루클린 풍자극』을 통해 만나 본 폴 오스터는 과거에 그가 지니고 있던 번뜩이는 재치를 상실하고 있었다. 아니 과거의 그를 특징지었던 번뜩임은 여전히 묘사 곳곳에 남아 있다. 그의 소설은 여전히 ‘폴 오스터票’로 부를 만 하다. 그의 소설에서 그가 지니는 특유의 지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전보다 전개가 매끄러워졌고 기법이 세련되어졌다. 하지만 까닭 없이 편안한 분위기로 술술 읽을 수 있다. 번뜩이는 재치가 완벽한 일상에 매몰되어 버렸을 때 그를 사랑했던 독자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까? 그의 소설은 분명이 예전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 되었다. 하지만 쉬운 소설이 된 대신에 사람들 미치도록 괴롭히던 수수께끼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 그의 소설에는 성공한 작가의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독선적인 어조로 까지 비칠 수 있는 가장 긴 혼잣말이 되어 버린 듯싶다.

한편으로는 오래 전 열정적인 시기를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폴 오스터는 점차 완성되어 가는 작가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그가 지녔던 광기에 가까운 재치 대신에 점차 능숙해져 가는 세련미가 소설 전반에 풍긴다. 한 십 년쯤 뒤에는 그 역시 대가에 근접했다고 인정받을 만한 소설을 써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진짜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설픈 소재와 훈계조의 우월성을 버려야 한다. 아울러 그가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 몽환적인 세계의 종착역을 선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성공한 중견 작가가 된 그이지만 더 이상 비판적인 지지자들은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남아 있었더라도 『브루클린 풍자극』에 사용된 몇몇 치명적인 실수들은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면『브루클린 풍자극』은 85점짜리 소설이다. (공정한 평가 기준을 적용하자면 90점 대 초반의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그답지 않은 결론과 그답지 않은 비난이 노골적이기에 깍 인 평점과 과거 그를 좋아하던 독자들에 대한 배신이 감점의 주 원인이다. 하지만 폴 오스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가장 좋은 시작이 될 것 같다. 브루클린에서 벌어지는 따스하고 유쾌한 촌극에 가담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책을 펴라. 이 책이야 말로 근래에 출간된 책들 가운데 가장 높은 정서적 만족을 가져다 줄 소설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06/07/08 23:45 2006/07/08 23:45


Recent Posts

  1. 수상한 라트비아인
  2. Be on leave!
  3. 다시!

Recent Comments

  1. 항상 내게 꾸밈없이 솔직한 사람이... julia 2011
  2. 시간을 넘어 타임머신 같은 글이지... KRADLE 2011
  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비밀방문자 2011

Recent Trackbacks

  1. kz의 생각 keizie's me2DAY 2009
  2. 눈뜬 자들의 도시 The note of Legendre 2008

Calendar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Bookmarks

Site Stats

TOTAL 613215 HIT
TODAY 10 HIT
YESTERDAY 106 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