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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14 여행의 끝 (4)

여행의 끝

Posted 2006/12/14 01:07,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비행기의 에어브레이크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파리로부터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의 벽을 한순간 뛰어 넘은 것처럼 어느 사이에 스물일곱 수라는 말 많고 탈 많은 나이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던 여행을 마무리 지으며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니 어딘지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고 고민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긴 여행 끝에 얻은 홀가분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당장은 조금 막막하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잘 해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되뇌는 자신과 조우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자신감의 근원은 긴 여정동안 과거를 잊어버리는 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를 관통하는 강 속에 그림자를 띄우고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드디어 망각이라는 편리한 친구를 얻었으며 흘러가는 물결 속에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던져 버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혼자 걷는 길에도 한 사람의 동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 이상 외롭지가 않았다. 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는 시구가 허망한 고독의 발산이 아닌 또 하나의 엄연한 진실임을 체득한 순간 내 삶은 다시금 맹목적으로 무언가에 몰두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되었다.

이번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 스스로에게 부여되었던 마지막 유예가 끝났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주는 유용함을 누린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겠지만 마지노선에서 인간은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는 마지막 디딤돌에서야 말로 가장 용감해 질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단호함과 용기를 보여줄 수 있는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다른 순간은 그저 허무의 연속일 뿐이다. 그리고 허무만큼 내가 증오하는 것은 없다. 이제는 고민과 상념의 폭풍우가 나를 번뇌하게 만들었던 하루의 그 5분조차도 사라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 자신을 고문했던 스스로의 제약조건 같은 것은 이제는 그 흔적조차 묘연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2006/12/14 01:07 2006/12/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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