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순간
Posted 2009/05/03 14:25, Filed under: Review/Book

낡은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그것이 갓 인쇄된 것일지라도 오래되어 눅은 종이냄새를 맡게 된다. 사실 환각처럼 머리를 맴도는 이 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점이다.

『연기로 만든 초상』은 한 여자의 변신을 그린 연대기이자 한 남자의 추적을 그린 서스펜스 물이다. 사실 병렬 구성을 지닌 이 소설에서는 어느 쪽에 마음을 쏟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시카고의 이민자 가정에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비록 허무한 것일지라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다른 삶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여정과 어리석음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나누어질 수 없는 미묘한 경계의 소설들이 있다. 빼어남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에 대한 절망적인 탐식을 충족시켜주는 소설들이 바로 이런 소설들이다. 빌 벨린저의 소설은 이 영역에 속한다. 고전으로 살아남거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리라 예상하긴 어렵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쫓아 소설을 섭렵하는 바보들에게는 그가 묘사한 삶과 배경만으로도 눈여겨볼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Tooth and nail이란 제목만으로는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확언하기 어렵다. 이안 랜킨의 Rebus 시리즈의 한 권인 『the Tooth and nail』같기도 하고 작년에 개봉한 영화인 <Tooth and nail>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뜻밖에 랜킨을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부커의 단골손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내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빌 벨린저의 『이와 손톱(The tooth and the nail)』이다.

사실 이 소설의 미덕은 결말의 봉인을 열지 않은 상태라면 언제든지 환불을 해주겠다는 겸손함과 마술의 새로운 정의뿐이다. 굳이 결말 따위는 보지 않아도 법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심리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루의 이야기, 이 두 개의 병렬적인 이야기의 접선을 인식하는 순간 수수께끼가 손쉽게 풀린다. 이 정도 트릭을 참신하다고 생각한다면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의 세계는 항상 태양이 솟아 올라 빛나기 시작하는 여명일 것이 분명하다. 결국, 결말을 보지 않는다면 환불을 해주겠다는 제안은 겸손함일 때에만 빛을 발한다. 그것이 충격적인 반전이라든지, 혹은 예상 외의 결말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 자만일 때 이 소설은 저질 마케팅 기법으로 지닌 바 한계를 감춘 하나의 사기극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드러난 객관적 사실 이면에 숨겨진 실체적 진실을 감추는 환상으로서의 마술에 대한 정의는 꽤 훌륭했다. 범작을 살짝 웃돌긴 하지만 결코 걸작이 될 수 없는 다소 평범한 소설임에도 무도한 범죄의 결과 범인에 얻게 된 것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삶의 굴레이자 헛되이 도는 쳇바퀴에 불과했다는 묘사는 다른 단점으로부터 잠시 눈을 돌리게 할 정도로 참신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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