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공놀이 노래, 이누가미 일족
Posted 2008/10/25 21:06, Filed under: Review/Book누이들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책을 줄기차게 사들이는 내게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냉혹하게 평가하자면 오래되어 낡은 추리소설인데다가 내가 일본소설을 읽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난 추리소설이 아니라 전후소설을 읽는 기분이란 변명을 늘어놓곤 한다. 세이시의 플롯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전후 일본인에 대한 묘사와 이제는 사라진 일본추리소설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음산함이 매력이라는 첨언과 함께 말이다.

반면 『이누가미 일족』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의 종합판에 가깝다. 지금까지 다른 소설에서 사용되었던 다양한 기법들이 망라되어 있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다소 미군정시대의 일본에는 어울리지 않는 현대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소설이 나온 시기가 70년대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런 현대성으로 말미암아 『옥문도』에서 보여주었던 것 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사실성은 다소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뭐 60년대와 군정시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혼란이 되려 소설에 특이성을 부여해주긴 했지만 말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이 지닌 매력은 정서적으로 고립된 닫힌 공간이 지니는 폐쇄성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 않는 원한관계의 특수성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전후 일본이란 공간과 정신적 코마 상태에 빠진 일본인과 결합되면서 독자를 어둠의 심연으로 이끈다.
해소되지 않은 원한은 한 가족과 한 마을을 파괴하고 기괴한 죽음을 여기저기 흩뿌려놓는다. 하지만, 세이시는 숨겨진 정체를 지닌 가면의 인물들과 목적을 위해 손쉽게 살인이라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을 선택한 군상들 사이에 여러 빛깔의 사랑을 숨겨 놓는다. 게다가 복수의 집념이 남긴 것은 덧없는 죽음의 향연이라는 교훈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두텁게 낀 안개가 사라지고 고립된 공간이 온전하게 외부와 연결되었을 때 독자는 다시 한번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넘치는 평범한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