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Review/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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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7 Californication
  2. 2006/01/17 iWork '06 (4)
  3. 2005/01/23 Apple iWork Pages (2)
  4. 2005/01/08 Soap Opera (3)
  5. 2004/12/27 Genmaicha Green (7)
  6. 2004/07/14 콘서트에 대한 단상 (2)
  7. 2003/10/03 찻잔에 비치는 마음이란...

Californication

Posted 2007/11/17 10:42, Filed under: Review/etc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에게 정서적 일치감을 느끼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졸업한 줄 알았는데 기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 허무하면서도 상황을 조금씩 씹어 삼키는 듯한 표정 앞에서 남 이야기인 마냥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점잖은 에세이와 소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량한 대화로 점철된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재미있게 다가서는 것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 남자의 삶이 내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때문이리라.

책의 행간을 읽는 순간 독자는 작가와 머릿속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고뇌와 직접적인 '접촉'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첫째로 고뇌의 현실성이 떨어지고, 둘째로 감정의 파동이 극적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속되는 좌절 앞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기는 쉬워도 그 허탈함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고의 흐름과 관조의 결과, 그리고 변화하는 태도까지 보여주는 경우란 꽤 드물다.

십 대 시절 내 문학 선생님은 '왜 사냐면 그냥 웃지요.'에 해당하는 정서가 지니는 강력한 힘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즐겼다. 그렇기에 스물넷 겨울 국가에 적을 둔 세 명의 지기들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대사에 그렇게 울적했으리라. 시간은 흘러도 상황은 변해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람이 단지 시청자뿐이라는 사실이 그지없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2007/11/17 10:42 2007/11/17 10:42

iWork '06

Posted 2006/01/17 19:55, Filed under: Review/etc
Keynote3
군대에서 Powerpoint병으로 2년을 보낸 최모군과 달리 난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Keynote를 애용한다. 사실 내가 powerpoint를 쓰지 않을 특별한 이유같은 것은 없다. 그저 구축된 작업 환경과 덜 어울린다는 정도가 지금의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이유의 전부다. 하지만 때로는 합리성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 개인의 선호 앞에서는 그 대단한 합리성도 기를 펴지 못하는 법이니 말이다.

사실 꽤 무거울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추측과 달리 오래된 골동품 모델인 iBook G3에서도 부드럽게 돌아갔다. 덩치는 커졌을지 몰라도 저사양의 스펙에서는 과거 버전보다 휠씬 매끄러운 편집이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새로운 버전은 과거에 개발된 각종 tip들을 무력화시켰다. 무엇보다 오브젝트를 move out - move in시키는 과정에서 개발된 포개기라는 가장 유용한 tip를 사장시켰다. 결국 나에게 남겨진 중요한 사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전문적인 템플릿 디자이너들이 내놓을 새로운 tip들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버전의 애플리케이션은 양날의 칼이다. 보다 세련된 기능도 좋지만 재학습을 위한 시간 소모라는 경제적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P.S.
3D차트 기능을 사용해 보면서 가볍다는 표현은 시기상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템플릿들에서는 3D차트가 매끄럽게 지원되지 않았다. 결국 제대로 된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Macbook pro와 keynotepro의 새로운 템플릿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나이를 먹은 까닭으로 앞으로 발표 수업은 없을 듯 하다.

more..

2006/01/17 19:55 2006/01/17 19:55

Apple iWork Pages

Posted 2005/01/23 12:15, Filed under: Review/etc
지난주 출시된 애플의 iWork 슈트에 포함된 워드프로세서인 Pages는 Quark나 InDesign같은 전문 출판 코디네이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상당히 화사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스캐너, 디지털 카메라 정도의 장비와 포토샵만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게 개인 용도의 얇은 잡지 한권쯤은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사용법은 쉽고 간결하며, 쿼크의 기본 개념과 키노트에서 애플이 보여주었던 패널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손쉽게 사용이 가능하다.

사실 Pages의 진정한 강점은 Quark의 개념은 알고 있으나 세부적인 메뉴의 쓰임새에는 약한 유저들과 일반 워드프로세서보다는 뛰어난 결과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Pages는 Quark에서 잔손이 많이가는 수많은 작업을 능률적이고 직관적으로 처리해 낸다. 페이지 내에서 다단과 일단을 오가는 교차 편집도 가능하고, 오브젝트를 처리하는 인터페이스는 쉽고, 간단하며, 강력하다. 사실 워터마크의 삽입과 드롭 캡을 구현할 수 없다는 점만 빼면 Pages는 현재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Pages를 정식 인쇄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CYMK용 기준선을 지원하지 않으며, 대용량 인쇄물을 편집하기 위한 보조창이나 홀더가 없다. 무엇보다도 인쇄물에 적합한 레이아웃을 형성할 다양한 보조선을 임의로 설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PDF나 사무용 프린터, 개인용 인쇄물 정도에서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지만 전문적인 코디네이터와 비교해 보자면 한참 모자란 미들 포지셔닝의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그렇다고 Pages의 장점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워드프로세서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뛰어난 결과물을 보장하며 포함된 템플릿의 디자인은 정말 빼어나다. 템플릿을 용도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만으로도 우아하고, 비례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애플이 만들어낸 템플릿의 디자인은 정말 다양하게 응용할 쓰임새가 많고, 편집의 원칙에 충실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S Word 2004의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Pages로 이주하기로 결정!

P.S.

2005/01/23 12:15 2005/01/23 12:15

Soap Opera

Posted 2005/01/08 08:56, Filed under: Review/etc
사실 내 주변에는 텔레비젼에 대한 편견이 아니 드라마에 대한 편견이 존재했다. 바보 상자 앞에 앉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주변에 팽배해 있었다. 집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는 행동은 지적이지도, 활동적이지도 않은 무능력의 상징으로 취급 받았던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영화와 다르게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봤다는 사실은 늘 숨겨야 할 무엇이 되곤 했다.

아니 조금 더 냉정하게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던 요인을 분석해 보면 실직으로 베이비 시터가 되어버린 남자들의 드마라 중독을 목격했던 철없는 우리 세대의 성장기가 들어난다. 입으로는 피오리나 같은 여자라면 기쁜 마음으로 살림하는 남자가 되겠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치욕스러운 미래의 자화상은 일터를 잃고 드라마와 타협만 무능한 중년이 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편견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은 21살 여름에 있었던 여행을 통해서였다. 우리 전공에서는 꽤나 유명인인 교수님의 돌발 발언이 있었는데 요지는 [주말 드라마 할 시간이니 난 이만 들어간다] 였다. 사실 굉장한 충격이였다. 그 당시의 난 텔레비젼 따위는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던 철없던 청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보 상자와의 대타협이 성사되었던 듯 싶다. 스물 셋 내게 주어졌던 3개월의 막간극 동안 난 온갖 드마라 시리즈와 시트콤의 중독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Soap Opera Mania가 된 자신에 너그러워진 것도 이때부터다.

어느 일요일 아버지는 아침상에서 요즘 드라마가 참 재미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가 말한 요즘 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하다] 였는데 아버지의 설명은 꽤나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근래의 소설이나 다른 드라마와 달리 여백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독자에게 혹은 시청자에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막아 놓고 제한된 해석을 강요하는 다른 것들과 다르게 [미안하다 사랑하다]는 보는 사람이 차분하게 해석하고 공감하는 재미가 있다고 하셨다.

사실 재미는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은 설령 아름답고, 멋질 수 있어도 재미나진 않다. 게다가 차분하게 해석할 수 없는 이야기는 너무 어렵거나 너무 싱겁다. 글에서 작가의 완급, 노련미 혹은 호흡이라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차분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인데 내 글도 그러하지만 요즘에는 호흡 조절에 능숙한 이야기들을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누가 글을 읽어도 딱 내 호흡이구나 하는 대가다움을 발견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 아침 식사 이후 우리 형제들은 [미안하다 사랑하다]의 팬이 되어 버렸다. 시나리오를 설명해 달라는 머리 큰 자식들의 요구에 [스토리는! 그냥 상황만 있고 다들 불쌍해. 그러면서 어느 놈 하나 이해 안가는 사람이 없지] 라 대답한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결정타였다. 형제는 이곳 저곳에서 [미안하다 사랑하다]를 봤다.

시나리오에서 느낄 수 있는 [미안하다 사랑하다]의 특징은 없다. 사실 이 드라마는 매우 기본에 충실하다. 각각의 인물에게는 역할과 상황이 주어져 있고 이야기 전개는 전제된 상황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어느 한사람 모순된 사람도 너무나 첨예해 해소될 수 없는 대립각도 없다. 구차한 설명은 없지만 간결함이 맛깔스럽고 [존재하다] 대신에 [살아 있다]란 의미를 잘 살리고 있는 각자의 삶들이 오밀조밀하게 엉켜 있을 따름이다.

사실 이런 특징은 정상적인 극본이라면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어야 하는 특징이다. 하지만 아버지 말대로 꽤나 오랫동안 우린 이런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오래된 희극을 꺼내보며 재미를 느끼는 것도 알고보면 요즘 드라마와 소설의 장황하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 전개에 식상해 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난데없이 등장하는 캐릭터, 상황과 아귀가 맞지 않는 추가 설정, 복선이라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한 변화, 이야기는 빈약하지만 디테일만큼은 지루할 정도로 긴 소모극. 드라마는 소설은 설명문이 아니다. 캐릭터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하나하나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보편성에 바탕을 둔 캐릭터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법일테니까.

나와 친구들이 빈곤한 디테일이라 부르는 요소는 보는 사람의 혀끝에 무거운 느낌을 주는 화학 조미료와 같다. 적당히 사용하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 잡는 현혹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되려 입맛을 버린다. 요즘 것들이 그렇다. 화학 조미료 중독의 시대에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날 음식에서 특이한 맛이 난다고 느끼는 그런 시대가 시나브로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005/01/08 08:56 2005/01/08 08:56

Genmaicha Green

Posted 2004/12/27 00:24, Filed under: Review/etc
오랜만에 젠마이카 그린을 마시고 있다. 이 녀석과 친해진지는 꽤나 오래되었는데도 녀석을 마시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커피빈에 들릴 때면 늘 이 녀석보다 화려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 차들에 오감이 마비되곤 하기 때문이다. 지갑 사정이 넉넉할 때면 자스민차에, 날씨가 더울 때면 차이 라떼에,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에프리콧 실론에 빠져든다. 그리고 가끔 사내 녀석들과 원치 않을 걸음을 내딛을 때면 포모사 우롱을 마신다. 이래 저래 젠마이카 그린과 친해지기란 어렵다.

사실 젠마이카 그린의 맛은 [현미 녹차]의 맛과 비슷하다. 하지만 질에 있어서 만큼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목넘김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보통의 현미 녹차가 지니는 껄끄러운, 혹은 석연찮은 마무리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보인다고 해야할까? 화려한 맛은 없지만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본연의 맑은 맛이 있다. 게다가 젠마이카 그린을 마실 때 느껴지는 포만감은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크리스마스 오후. 자스민차를 마시고 있던 둘째 누이, 애프리콧 실론을 마시고 있던 원철군. 블랙퍼스트 블랜딩의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나는 차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차의 경우 향은 뛰어 나지만 맛은 별로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홍차를 더 선호하긴 녹차의 다양함과 깊은 풍미에 비하자면 홍차가 열세가 확연한 것은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진귀한 녹차가 아님에도 솜씨 좋게 우려낸 홍차의 맛을 뛰어넘는 젠마이카 그린만 봐도 그렇다. 녹차의 쉬운 접근성에 비교해보자면 홍차는 까탈스럽고 번잡하다. 어쩌면 홍차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대접할 적당한 홍차는 포션의 애플티나 스톡홀름 블랜딩이 아닐까 싶다. 연하지만 탁하지 않은, 강렬한 향 속에 숨겨진 얇은 맛에 열광하는 내 취향이 특이한 것이라면 말이다.

(내년에는 책과 루빈스타인 콜렉션에 사용 가능한 자원을 총 투입할 예정이라 비싸고 구하기 힘든 블랜딩은 내 후년까지 참아야 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 놀러 온 원철군이 선물해준 루빈스타인은 들을 수록 마음에 든다. 가끔 눈에 띄는 혹평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마음에 쏙드는 연주다)

사실 차에 대한 내 기호는 순수한 나만의 것이 아니다. 기분따라 쉽게 물들고 쉽게 질린다는 설명이 차에 대한 내 기호를 가장 간결하게 제시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디오 대여점에 들릴 때면 문득 기억나는 옛 추억에 괴로워 하는 것처럼 차를 고르는 순간의 난 그 기호를 선물해준 그 사람을 떠올리며 심란해 한다.

스물 다섯이 되는 새해에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기호를 하나 찾아야 겠다. 새해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현시점에서 가늠해 보자면 젠마이카 그린이야말로 나만의 기호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어떤 것이 되었건 일주일 뒤에는 차를 고를 때마다 옛 추억에 얽매여 심란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insurance security가 되는 일도 machinery로 취급 받은 일도 스물 다섯에는 없었으면 좋겠다.
2004/12/27 00:24 2004/12/27 00:24

콘서트에 대한 단상

Posted 2004/07/14 12:50, Filed under: Review/etc
2004년 7월 7일 ZERO에 다녀왔다. 난생 처음 가본 스탠딩 콘서트였던 게다가 점잖을 뺄 필요가 없는 첫번째 콘서트 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본 콘서트란 늘 주변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조금은 불리한 조건의 공연이었기에...
2년동안 꼭꼭 잠궈 놓았던 마음의 빗장를 열고 가벼운 기분으로 콘서트를 즐겼던 듯 싶다. 가끔은 껍질을 벗고 마냥 즐길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껍질 속에서 질식사 할 수도 있으니까
Wake me from silence!
허리가 끊어지도록 뛰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목이 쉬도록 소리쳐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일상의 균형추를 단단하게 붙잡는 것이야 말로 [폐인]이 되지 않는 첫걸음이라 세뇌 당해온 나로서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의 일이었다.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 몸을 관찰하는 것도, 터져버릴 듯 격렬하게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을 느껴본 것도 너무 오랜만의 일이었다. [살아있다]란 기분에 잠겨버린 것 역시 너무 오랜만의 일이었다.

내장이 저릿할 정도로 강인한 [소리]의 홍수 속에서 고요함을 경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고막을 가득 채우는 [소리] 속에서 고요함이 느껴진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갖은 소란스러움이 일순간 꺼져 버린다. 무소음의 진공 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처럼 한 순간 외부와 내가 완벽하게 차단된다.

그리고 이내 알 수 없는 희열이 몸을 가득 채운다. 고생스러웠던 지난 몇 달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각으로 늘 복잡했던 머리가 깔끔하게 비워진다. 내일의 걱정도, 오늘 하지 못한 일도, 어제의 과오도 모두 머리 속을 떠난다. 지금 이 순간을 나를 지배하는 것은 드럼과 베이스가 토해내는 진짜 [소리]뿐이다.

In the Zero
영화나 연극, 뮤지컬을 감상하는 것과 콘서트를 즐기는 것은 전혀 다르다. 영화나 연극의 경우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재아무리 가까워도 관객의 이성은 무대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관객은 대사와 장면 하나 하나를 분석하고 연출가의 숨은 의도를 깨내기 위해 항상 고민하는 관객이 된다.

그러나 콘서트에서의 관객은 이성따위는 집에 내버려 두고 온지 오래다. 완고하다 싶을 정도로 딱딱한 나조차 음악에 몸을 내맡기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부딪치는 몸들이 싫지 않다. 옆에 선 아가씨의 팔을 타고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에 현기증을 느낀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는 차갑기 그지 없었는데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초고열의 발열체로 변해 버린다. 내 팔도 만만치 않은 발열량을 자랑할 텐데. 이 아가씨에게는 애당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긴 팔에 와 닿는 허리와 가슴의 굴곡이 더 없이 관능적이다. 몸에서 발산하는 열기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Quel comment deliceux!란 클레망소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이 얼마나 짜릿한가!] 허락 없이 이리 저리 부딪치는 육신들이 전혀 싫지 않다.(사실 신체의 특정 부위가 부딪칠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일순 내가 치한이라도 된 기분에 휩쓸리지만 이내 이런 생각은 씻겨 내려간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다. 생각이란 것이, 훈련 받은 사고력이라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은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2004/07/14 12:50 2004/07/14 12:50

찻잔에 비치는 마음이란...

Posted 2003/10/03 22:15, Filed under: Review/etc
아름다운 찻잔이 가지고 싶다. 이름난 유명 메이커는 아니더라도 나만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나만의 찻잔을 가지고 싶다. 보통의 사내들이 자동차에 열정을 가지는 것처럼 나역시 고가구와 예쁜 찻잔에 대한 기이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내 취미지만 예쁜 도자기와 오래된 가구들을 구경하면서 손이 떨려오는 것은 분명 일종의 열병이다.

웨스트우드에도 한정 생산품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예술품에 근접할 정도로 아름다운 찻잔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몸이 달아오른다. 미녀를 발견한 것처럼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눈가는 소유욕으로 번들거린다. 멋진 세공과 상각된 무늬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보석보다 영롱해 보이기에…

‘조선에서는 막사발이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 조선 백자는 이상적인 절대미였습니다’란 말이 떠오른다. 예술적인 감상안을 소유하지 못한 나처럼 비천한 사람에게도 이른 새벽, 늦은 저녁 프러시안 블루의 하늘을 머금은 찻잔은 어떤 예술품보다 숭고해 보인다. 브러쉬드 메탈 바디나 오파크 화이트의 깔끔함에 익숙해진 현재의 내 눈에 비치는 찻잔의 색이란 사람의 손을 거부하지 않는 가장 인간적인 색이다.

하지만 예술품인 도자기와 일상용품인 찻잔에는 분명한 괴리가 존재한다. 예쁜 찻잔이란 비실용적인 경우가 많다. 너무 무겁고, 화려한 문양은 손 때에 희미해지고 만다. 게다가 내가 즐겨마시는 홍차는 찻잔의 최대 난적이다. 커피의 경우에는 에스프레소를 직접 찻잔에 옮겨 따라도 도자기에 찻물이 베는 경우가 드문데, 진짜 홍차는 몇달을 쓰지 않아도 찻물이 잔에 베어있기 일수다.

실제로 유리잔은 한달, 싸구려 일반 자기컵은 1달 반 정도가 한계다. 인퓨저에서 직접나오는 진한 찻물이 잔의 코팅을 뚫고 흡수되기 때문인데 인퓨저의 위치를 잘 설정하면 찻잔이 상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좋은 인퓨저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처럼 가난한 휴학생에게는….

현재 내가 애용하고 있는 찻잔은 사실 꽤나 고급 제품에 속한 제품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홍차의 마수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듯 보인다. 아무리 세심하게 씻어줘도 조금씩 홍차 특유의 색이 느릿하게 베어간다. 하지만 내 손때가 진하게 묻은 찻잔이기에 무척이나 애착이 간다. 사실 손때대한 애착보다도 적당한 무게와 그립, 홍차잔이라기에는 깊지만 지금의 싸구려 인퓨저로도 어느 정도 맛을 보장해주는 디자인에 반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현재의 내 운명이 향하는 이끌림과 전혀 다른 이끌림을 다시 내 삶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그 사람 역시 찻잔 한 세트가 두 개의 찻잔으로 이루어진 것을 축복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차를 나눌 수 있는 친구란, 애인이란, 생각만큼 쉽게 찾아오는 인연이 아니다. 술친구를 갖는 것보다 배는 어려운 것이 같이 차를 마셔줄 사람이기에.

사람의 입술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때는, 사람의 손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는, 찻잔을 입술에 대는 순간이고, 찻잔의 온기를 손바닥으로 느낄 때다. 게다가 찻물이 혀를 적시고 목으로 넘아갈 때 드러나는 표정의 만족감이란 보는 사람마저 여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적어도 지금의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 몇십년을 더 산다고해도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취해있던 미망이 바로 이것인데 난 차를 마시는 모습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3/10/03 22:15 2003/10/0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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