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Review/Frame'

13 POSTS

  1. 2009/03/16 화가들의 천국 (2)
  2. 2008/04/14 Les chômeurs (unemployed artists)
  3. 2006/12/15 Kandinsky-the Path to Abstraction
  4. 2006/09/20 Modigliani and His Models
  5. 2006/05/13 르네상스 바로크 회화전
  6. 2006/05/06 Londoners
  7. 2006/05/01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 (6)
  8. 2004/07/23 헬뮤트 뉴튼殿 (14)
  9. 2004/07/19 피에르 부르디외 사진전 (8)
  10. 2004/05/09 경기전 (8)
  11. 2003/10/19 달력 사진
  12. 2003/10/08 허수아비- 정말 오랜만에 본다 (6)
  13. 2003/10/07 Devotion- for SJ (4)

화가들의 천국

Posted 2009/03/16 21:20, Filed under: Review/Frame

세상에는 각각의 빛을 품은 수많은 장소가 있다. 런던에는 런던의 빛이 있고, 파리에는 파리의 빛이, 프로방스에는 프로방스의 빛이 있으며 베니스에는 베니스만의 빛이 있다. 언제인가 여행 전문지의 사진기자가 되고 싶다고 되뇌었던 것은 이런 사실을 텍스트가 아닌 몸을 통해 느꼈기 때문이리라. 필름에 담기는 빛은 그동안 내가 여행했던 장소가 지니는 독특한 지문이 된다. 그렇기에 빛과 색을 고르라면 역시 난 색이 아닌 빛을 고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색이 빛보다 아름다울지라도. 빛은 내 삶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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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파리의 빛이 가장 아름답게 담기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연석 위에 깃든 오후의 태양을 즐길 수 있는 퐁피두센터 앞 광장과 시가지 위에 낮게 걸린 구름에 닿은 파리의 빛을 볼 수 있는 퐁피두센터의 레스토랑에서일 것이다. 퐁피두센터에서 바라보는 파리는 매우 아름다워 센터에서 만날 수 있는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초라하게 만든다. 예술이 위대할지 모르나 그것이 자연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예술의 지향점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센터를 채운 수많은 재기 발랄한 작품들과 학생들의 스케치가 바라보는 궁극의 지향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저 빛이 만들어낸 위대한 풍광보다 더 멋진 것을 만들어 내는 것. 그런 꿈을 꿔보는 것이 어쩌면 퐁피두센터의 존재가치인지도 모른다.

사실 <화가들의 천국>이란 주제로 열린 퐁피두센터 특별전을 보고 이런 상상의 나래라던지, 감정을 토설하는 것은  온당한 태도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 인상에 남은 퐁피두센터를 말하지 않고서는 전시회를 보고 내가 느낀 정서적 이질감을 제대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퐁피두에서 감상한 그림들은 보다 해체적이었고, 성기고 낯설었으며, 꾸미지 않는 오브제와 이미 현실에서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오브제를 구상과 비구상 모두에서 볼 수 있는 모순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퐁피두센터 특별전이란 이름과 다르게 전시회를 통해 내가 바라본 것은 오르세 미술관의 따스함과 테이트 모던의 온건함, 그리고 야수파이기를 포기한 화가들의 후기작들이 총망라된 예쁘고 이해하기 쉬운 성찬이었다. 12월의 빛을 즐겼던 그 당시로써는 이해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독특함을 대신한 것은 밝고 희망적인(?) 색채의 미술이었지만 내심 그런 부분이 더 좋았다. 진짜 '화가들의 천국' 보다는 '갤러리의 천국'에 걸린 그림들이 더 아름다우리라 믿는 나로서는 '갤러리의 천국'에 걸릴 법한 작품들을 바라보는 동안 즐거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티즈의 위대한 실험정신과 브라크의 지문을 숨길 수 없는 초기작들, 언제나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샤갈의 무지개, 야수파의 해체를 선언한 이후 매너리즘의 함정에 빠져 다시는 위대함을 회복하지 못한 많은 화가의 그림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익숙하면서도 우아한 소품처럼 매혹적이었다. 게다가 일견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자연스레 화가로서 완숙해지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에는 더는 위대한 도전이 될 수 없겠지만, 당시로써는 위대한 도전이고, 실험이었음이 분명한 작품들과의 만남은 만남 자체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폴 존슨에 의하면 많은 작품을 보는 것보다 거장의 명작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것이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는 더 좋은 방법이라지만, 사람은 굽이굽이 돌아가고  때로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을 더 좋아할 때가 있다. 내게 있어 이 전시회가 그랬다. 거장들의 걸작에 접근하는 수작보다는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모든 고뇌를 쏟아부은 수수한 작품들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2009/03/16 21:20 2009/03/16 21:20

Les chômeurs (unemployed artists)

Posted 2008/04/14 22:02, Filed under: Review/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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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FOLMER (French 1895 - 1977)
Painted in 1928-1930 Oil on canvas
55 x 46 cm / 22 x 18 inches

신문을 읽다가 경매 섹션에서 발견한 작품.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아님에도 흑백으로 인쇄된 광고 속에서 유난히 내 눈을 사로잡았다. 걸작이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범작으로 취급하기에는 인상이 꽤 강렬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떠난 현대의 컴포지션 페인터가 그가 본 1920년대의 인상을 캔버스에 옮긴 것 같다고나 할까?
2008/04/14 22:02 2008/04/14 22:02

Kandinsky-the Path to Abstraction

Posted 2006/12/15 15:37, Filed under: Review/Frame
 오랜 시간동안 칸딘스키는 이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혼란스런 이미지와 색채의 향연 앞에서 내 안목으로 이해 가능한 무언가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록이 아닌 작가의 붓질이 살아 숨 쉬는 진짜 작품과 조우하는 순간 칸딘스키의 작품들이 성큼 이해의 영역으로 걸어들어 왔다. 미술관을 찾는 즐거움인 낯선 작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뺨과 입가에 걸리기 시작했다. 칸딘스키의 작품에서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은 혼란스러운 지난 세기의 시작과 세상의 종말이라고 믿기 충분한 전쟁의 여파, 그리고 분열되어 조각난 육체의 이미지였다. 도록으로 읽는 칸딘스키의 작품이 난해한 형태로 구성된 추상이었다면 실제 그의 작품이 말하는 의도는 완전 추상의 한 단계 이전인 구상과 추상의 미묘한 경계선이다. 추상에 가깝지만 현대 작가들이 보여주는 추상에 비해서는 한결 이해하기 쉬운 단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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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가벼운 주제의 작품들을 머릿속에 담은 채로 퍼즐을 맞추다보면 누군가의 나신이 들어난다. 지금껏 이해할 수 없었던 기호였던 것이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로 인식되기 시작되는 것은 왜일까? 퍼즐 맞추기 끝에 머릿속에 결합된 하나의 이미지를 칸딘스키 자신이 보고자 했던 예술적 환영이라고 믿는 것은 오만일까?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혼잡한 덩어리 속에서 보이기 시작한 육체에 놀라기 보다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때로 타로 카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지에 투사하는 자신의 의도가 곧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석에 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구상과 추상이 연결되는 통로에 서있는 그의 작품 속에서 그 자신조차 구상과 추상을 완벽하게 구분해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진한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진지한 표정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낯선 나라의 여성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 때가. 칸딘스키가 그린 육신의 편린들을 피가 도는 진짜배기 사람에게서 찾기 시작한 때야말로 칸딘스키와 벗하기 시작한 순간이 아닐까? 더 이상 칸딘스키는 미지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이제는 옛날보다 애할 것들이, 아름다움에 취해도 될 것들이 늘어났을 뿐이다.

P. S.
애슈몰린 박물관에서 다시 한 번 칸딘스키의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근래의 애슈몰린 박물관은 확장공사관계로 주요 섹션이 폐쇄되었는데 우연찮게 열린 문을 통해 테이트 모던에서 회수된 그림을 어둠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떠있는 칸딘스키의 풍경화는 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언어로 확언하기 힘든…….

P. S. 2
퐁피두 센터에서 다시 만난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면서 그리고 벽면을 채운 의미를 알 수 없는 현대 작가들의 추상 미술을 바라보면서 과연 칸딘스키가 추상 미술의 영역에 속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들과 비교하자면 칸딘스키의 작품에 쓰인 소재들은 너무나도 확연한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같은 순수 추상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추상이 아닌 것도 아닌 두 세계를 잇는 통로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제일 나을 듯싶다.
2006/12/15 15:37 2006/12/15 15:37

Modigliani and His Models

Posted 2006/09/20 21:14, Filed under: Review/Frame

때때로 갤러리를 방랑하다 보면 남자 큐레이터들의 부재(혹은 빈곤, 드뭄)가 아쉬운 상황과 조우하게 된다. 뭐랄까? 회랑을 걷다보면 거세되어버린 거장들의 초라한 초상을 목도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거장들에게도 벨트 아래의 이런 저런 불장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도덕 교과서만큼이나 재미없는 디스플레이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 나오곤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저 내가 여자들의 시선을 모르듯이 여자 큐레이터 역시 때로는 거장들의 시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선은 공부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얻어진다. 컨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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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면 대부분의 거장들이 남자들인 미술사적 현실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키는 동성의 인물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다. 사랑이 스무살 넘은 사내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가 된다는 문장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그림 역시 그렇다. 그림 속에 담긴 인물에 대한 작가의 미묘한 태도를 잡아내는데에는 '그림을 보는 눈' 대신 스스로의 과거를 잠시 되돌아보는 여유면 충분하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이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미묘하게 잘 포착해내는 그의 디스플레이에 열광하게 된다. 이 묘한 정서적 공감대를 문장으로 옮기기란 어렵다. 이 공감대를 표현하는 일은 보수적인 한국 남자에게는 암묵적인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고 설령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좋게 보일 꺼리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다시 전시회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나는 모디글리아니를 특이한 상상력을 지닌 20세기 작가로 분류했다. 특이한 형태를 지닌 유화를 남기고 간 알콜 중독자에 폐인, 아니 그의 정부를 미술사에 남기고 사라져 버린 불량한 남자가 내가 그에 대해 지닌 인상의 전부였다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견해 뒤에는 그의 정부에 대한 숨기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다.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림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의 시선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접하는 순간 나의 공식적인 견해가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이 분명해 졌다. 그는 어느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거장이 되었을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재능은 세간의 평가가 아닌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행에 앞서가나 뒤쳐지지 않은 채 자신만의 스타일로 인물을 해석하는 단호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숨기고 싶은 호기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Jeanne Hebuterne이란 존재에 매료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디글리아니가 얼마만큼 그녀를 사랑했고, 그가 무엇을 그녀에게 선물했는지가 분명하게 들어난다. 그녀의 비극적인 자살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연적인 운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의 운명 자체가 태초에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면 더 이상 사족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진짜배기 삶과 진짜 사랑이 담겨 있는 작품 앞에서 이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랑 하나뿐이고 아름다움 하나 뿐이다. 갤러리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 사실이 내 삶을 지배하지는 못하더라도 때로는 그 말에 긍정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이 중요하다. 끝으로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감정의 변화를 능수능란하게 포착해낸 큐레이터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고작 다섯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플라토닉 러브와 진짜 사랑의 차이가 색채와 선, 음영의 변화를 통해 가시적으로 들어나는 경험을 해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경험을 선물해 준 큐레이터와 그 경험이 고작 6파운데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울 뿐이다.  

2006/09/20 21:14 2006/09/20 21:14

르네상스 바로크 회화전

Posted 2006/05/13 22:07, Filed under: Review/Frame
<르네상스-바로크 회화걸작전>이란 전시회의 정식 명칭에도 불구하고 난 <르네상스-매너리즘> 전시회라는 명칭으로 이 전시회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엄격하게 말해 바로크의 전성기 시대의 작품보다는 후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의 시대 그리고 초창기 바로크의 작품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립미술관의 야수파 전시회와 비교해 볼 때 value/cost의 만족 수준은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시회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 점의 유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value/cost>1인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벨기에를 지도 위에 만들어 내고 앤트워프가 차지하던 국제교역항으로서의 위상을 암스테르담에게 넘긴 역사를 만들어낸 인물의 초상과 마주하는 경험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스페인 보병군단이라는 그 시대 최고의 전쟁 기계에 관한 전문가가 되기 이전 나이 많은 소년에 불과하던 파르마 공작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담긴 어색한 표정과 길고 희끄무레한 손이 담긴 화폭과 마주하는 색다른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70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퇴색해 버린 템페라화의 색채를 바라보며 700년 전의 원작을 재구성하는 일은 즐겁다. 카라바지오가 미술사에 미친 영향력을 확인하는 일이라든지 원경으로 갈수록 흐릿해져 종국에는 가벼운 붓 터치로 변해버린 인물들을 발견하는 일과 과장된 운동성이 만들어내는 균형 감각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상들은 도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즐거움은 유화를 실제로 볼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틴토레토 스타일의 걸작을 감상하고 조선 회화의 전신성에나 상대를 찾아볼 수 있을 인물의 표정이 지니는 힘을 발견하는 일 역시 실제 작품을 볼 때에만 가능하다. 틴토레토 후기 작품에서 혹평 받은 붓 터치 스타일이 얼마나 조잡한지 깨닫는 일 역시 도록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백 년 된 템페라화의 생생한 색채에 경의를 표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다빈치의 드로잉을 보고 그가 창조해 낸 걸작들의 흔적들을 찾는 일은 어떤 수수께끼보다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전시회에서 가장 즐거운 과정은 그림을 통해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화가와 조우하는 과정이다. 이전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화가를 발견하고 그의 대가다움을 인식하는 과정이야말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전시회의 꽃이다. 사람들이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기둥에 몸을 기대고 하얀 벽 위에 떠있는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며 혼자 망상을 즐기는 일을 다른 어디에서 할 수 있단 말인가?

레판토 해전이 일어나기 전에 그려졌음이 분명한 그림 앞에 서서 틴토레토 앞에 포즈를 잡고 있을 노제독에게 말을 건네보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범주를 넘어간다. 그림 속에는 예술적 아름다움도 있지만 한 인간의 삶에 녹아있고, 문학적 열정과 이야기 그리고 그 시대의 가치관이 담겨 있으며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들이 되기에 충분하다.
2006/05/13 22:07 2006/05/13 22:07

Londoners

Posted 2006/05/06 20:41, Filed under: Review/Frame
작은 갤러리에서는 이제는 과거의 추억 정도가 되어버린 스팅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 나오고 있었고 아름다운 도슨트의 연한 향수가 열두 평 남짓한 전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기와 나는 셋 밖에 없는 공간을 느린 걸음으로 배회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말수가 줄었고 더욱 고른 저음을 니욌디.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작품보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장면은 스토리로 진화되지 못한 채 빈 벽에 걸렸다. 다른 모든 사건들이 소소한 일상이 되어 벽에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화랑의 벽을 채우고 있는 정지된 사진들 속에서는 바람의 움직임이, 사람들의 속삭임이, 아이들의 뜀박질이 느껴졌다. 창 밖 세상에 대한 동경과 규범적인 구도가 파괴되면서 발생하는 아름다움이 공명을 일으켰으며 어떤 연작에서는 평범한 일상이, 계절과 하루의 순환이, 그리고 한 남자의 삶이 느껴졌다. 흑백 사진들은 왜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하는지 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었고 일상의 하찮은 것들에 지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작가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작품들은 황량하지만 슬프지는 않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니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침묵에 담긴 조용한 웃음에 가깝다. 어쩌면 따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촌스러운 소재 속에서 우아한 세련미가 느껴지고 흑백 속에서 무한한 따스함이 포착되며 프레임이 너머에서는 사랑이 숨쉬고 있을 것 같다.
사실 지금의 리뷰는 다분히 도식적이고 전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가끔은 도식적이고 전형적인 표현이 진실인 경우도 있다. 감각적이지만 절제된 감정의 깊이가 느껴지는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아름답지만 감정과 기술 과잉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 세대의 사진들이 떠올랐다. 90년대 유행하던 엽서 속에나 등장할 법한 사진 같다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 그 엽서마저 사라진 요즘에는 결코 깨어나고 싶지 않은 몽환적인 느낌의 전시회였다.

2006/05/06 20:41 2006/05/06 20:41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

Posted 2006/05/01 07:53, Filed under: Review/Frame
언제부터인가 군중으로 붐비지 않는 전시회는 낯선 것이 되어 버렸다. 군중의 멈추지 않는 발걸음 소리에 언제부터 길들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아이들과 녀석들의 모친 사이에서 벌어지는 악다구니도 흔쾌히 보아 넘길 수 있고. 그림을 만져보려는 아이들과 스태프들의 실랑이에도 익숙하며, 단체 관람 나온 여고생들이 누드화 앞에서 포즈를 잡으며 쓰러질 듯 웃는 기세나 계모임에나 어울릴 대화를 주고 받은 아주머니들의 부산스러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앞 뒤에서 들려오는 ‘빨리’라는 의미를 지닌 문장들과 연인 앞에서 가방 끈 좀 살려보려는 사내들이 내뱉는 얄팍한 거짓말들과 작품을 앞에 두고 말하는 얼뜨기 유머만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결국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벼운 신발과 편한 옷차림만큼이나 꼭 필요한 것이 전시회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아 한가지 더 체크할 항목이 있다. 도록을 구입할 생각이 있다면 전시회 마지막 5일을 노려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전시회에서 마지막 5일 동안 도록과 포스터들을 30% 할인해 판매한다.

개강 둘째 날 ITT 클래스의 오리엔테이션을 불참하기로 마음먹고 서울시립미술관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다. 때마침 불거진 철도노조의 파업은 어깨 너비 공간의 감옥을 경험하게 만들었으며 등뒤에 딱 달라붙은 젊은 처자의 찌부러진 육신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려 덕수궁의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마음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지하철에서 고르기로 했던 마음 먹었던 음악 선곡도 실패했고, 가방과 옷차림까지 무거웠지만 야수파와의 만남은 이내 나를 흥분으로 밀어 넣었다.

미술사에서 야수파는 하나의 조류나 아카데믹한 유파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흐름이 아니라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움직임이며 유파의 창시자로 불릴 만한 작가들이 말년에 가서는 그들 자신을 야수파로 구분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기로에 서 있던 화가들이 그려낸 ‘마지막 구상’은 강렬한 색채를 자랑한다. 시선을 가득 채우는 그 강렬한 색채에 관해서, 빛이 투영되는 사물을 점령한 색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 양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특징적이었던 것은 단순히 야수파 시기의 작품들 만이 아니라 야수파에 속한 화가들의 발전 단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폭넓게 전시되었다는 사실이다. 후기 인상파의 영향 아래에서 어느 순간 추상에 근접할 정도로 급변하는, 그럼에도 끝까지 추상을 거부한 화가들의 전통과 남 프랑스의 따스한 색감은 정말이지 강렬했다.

더구나 마티즈의 드로잉과 세잔의 영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유화 작품을 발견하게 된 것은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촉망 받는 인상파의 젊은 화가에서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병마가 강요한 탐구심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소위 문화 생활이라 부르는 일련의 행동 패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에게 호기심은 있을지 모르지만 전문가가 되기 위한 시간과 재원이 우리에게는 없다. 결국 아마추어로써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손짓을 거부하지 않는 모범적인 수용자 정도다.

하지만 콘서트 홀에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화랑의 벽에 걸려진 유화 한 점을 보고 있노라면 글로 쓰여진 백마디 설명보다 더 많은 앎과 감정들이 밀려 온다. 예술은 책을 통해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책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이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없는 시간을 쪼개 인파를 헤치고 작품 앞에 서며 나름의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 누군가로부터 잘난 척한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거나 감상적인 사내라는 꼬리표를 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2006/05/01 07:53 2006/05/01 07:53

헬뮤트 뉴튼殿

Posted 2004/07/23 15:57, Filed under: Review/Frame
헬뮤트 뉴튼을 처음 알게 된 때가 언제쯤인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대략 16살에서 17살 무렵으로 기억되는데 그 이상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orthopedics nude와 big nude 시리즈의 존재를 통해 난 그를 알게 되었고, 십대 중반의 나에게 그의 사진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12살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누드화는 앵그르의 샘(泉)이라 공언하던 나였지만 본격적인 전라의 누드 사진을 본 것은 그의 것이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그의 예술성을 인정했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단지 Nude와 Porno는 엄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인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당시의 난 그의 Nude와 Porno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저 Nude는 봐도 Porno는 보지 않는다는 윈칙만을 줄기차게 고수했을 뿐. 그의 탁월함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 그는 올 1월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고, 7월 10일 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그의 사진전을 보러 갔다. 사실 어느 정도 그의 작품 목록을 알고 있던 나에게 전시회는 가슴을 두근 거리게 만드는 특별 이벤트였다. 처음 헬뮤트 뉴튼을 접했던 십대 소년에게 실물 크기의 누드라는 Big Nude는 매우 충격인 영향력을 줄 작품으로 상상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키보다 조금 작은 늘씬한 모델들의 누드 사진을 보면서 내가 느낀 충격은 전무했다. 실물 크기의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스튜디오가 필요했으리라는 생각과 이렇게 커다란 사진을 섬세하게 담아내기 위한 조명량, 그리고 신체의 어느 부분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담아낸 기법에 놀랐을 뿐이다. 초점에서 멀어질수록 미세하게나마 포커싱이 흔들리는 법인데. 진짜 여자가 누드로 서 있는 듯 나신을 훑는 내 눈이 닿은 모든 부위가 실물처럼 명확하게 보였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들지 않았다. 단지 오늘날의 유행으로는 그리 예쁜 나신이 아니라는 사실과 다양한 인종에도 불구하고 몸매만큼은 전형적인 게르만 스타일의 모델로 고른 것이 아닐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사내들은 모두 사춘기 때 본 첫번째 나신에 미의식을 제약 당한다]란 구차한 이론이 하나 생각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나처럼 곡선의 부드러움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라면 진짜 살아 있는 모델을 전시해도 절대 감명을 주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전시회의 모든 작품들이 실망을 안겨 주었던 것은 아니다. 나스탸사 킨스키의 세미 누드 사진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몰래 찍은 한 컷의 사진만큼은 영화 한 편에 육박하는 관람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담배를 손에 낀 baby Doll의 손이 킨스키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고, 3~40년대 스타일룩을 입은 그녀의 오른쪽 젖가슴이 보인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테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너무나도 유명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테스에서의 나스탸사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여러 영화를 통해서 그녀의 나신은 또렷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기에 뉴튼이 의도한 강렬한 쇼크가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순수한 테스의 이미지에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가진 여자로. 이내 팜므 파탈로, 그리고 나신을 통해 다시 순수함으로 복귀하는 이미지의 행렬이 거짓말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보다 더 즐거웠던 사진은 루브르에서 찍은 한 장의 컷이었다. 이 사진의 모델은 헬무트 그 자신인데 쿠르베의 누드화의 체모 부분을 화면 좌상단에 자신의 윗얼굴을 화면 우하단에 배치함으로써 말로는 설명 못할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쿠르베가 누드를 그렸냐 하는 의문에서, 만약 그렸다 치더라도 쿠르베가 저렇게 체모를 노골적으로 그릴 수 있는 시대에 살았냐는 의문까지. 그리고 쿠르베가 주로 사용하는 묘사 방법과는 매우 다른 붓질이라는 느낌까지. 정말 다채로운 의문과 느낌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독특한 소재를 통해 모델의 노출증과 관람자의 관음증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헬뮤트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연결 고리가 산산히 깨지고 만다. 여성의 국부를 애무하다가 인기척에 놀라 그가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난 내가 낸 인기척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틀킨 기분이다. 그리고 이내 그가 지어 보이는 뻔뻔스러운 표정에 마냥 웃을 수 밖에 없다.

사실 80년대 태어난 나의 시각으로는 모델의 나신을 통해 아름다음을 느끼기란 어려웠다. 우리 세대에게 그가 추구했던 스타일은 너무나도 유치한 것이 되버린지 오래이고, 누드에 대한 취향도 많은 면에서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시회 자체가 지루했던 것은 아니다. 기대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한 가득 실망을 안겨다 주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재미를 선사했으므로…
2004/07/23 15:57 2004/07/23 15:57

피에르 부르디외 사진전

Posted 2004/07/19 15:06, Filed under: Review/Frame
한참 학보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몇 년 동안 [사진전]은 내게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특정 작가의 작품전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도사진전만큼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꼭 가보았던 것 같다. 일에 쫓기지 않는 휴일 오전의 볼거리는 삶의 곳간을 채워주는 특별한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1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사진전에 무관심해져 버린 1년의 시간이 말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반세계화와 반식민주의로 유명한 프랑스의 학자다. 전문적인 사진 작가도 아니고 주제 역시 1958년에서 1960년까지의 알제리라는 제한된 영역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사진전은 거부할 수 없는 유횩으로 다가왔다.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보게 된 한 점의 사진 때문이었다. 챠도르를 걸친 채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한 여성의 흑백 사진이 바로 그것인데 난 사진을 보는 순간 부르디외가 단순히 글 잘 쓰고 해박한 사람이 아니라 [눈을 뜨고 태어난]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차도르 차림으로 female magazine를 사는 여인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 어떤 부유한 여인들은 차도르 안에 세련된 야회복을 숨기고 있으며,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comic book 가게 앞의 쇼윈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난민 캠프가 들어서는 저편에는 프랑스와 부유한 알제리인들을 위한 맨션이 들어서고, 도시의 학교는 정상적으로 운영중이다. 교복을 입은 프랑스 소녀와 알제리 소녀들의 웃음은 전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종군 기자들은 전쟁의 가시적인 면을 강조한다. 유혈의 전쟁터와 전쟁으로 황폐화되고 약탈당한 대지를 사진에 담으려 한다. 하지만 부르디외가 보여주는 식민 전쟁은 유혈이 일어나는 와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하다. 피와 살이 튀는 가시적인 전쟁의 영향은 보이지 않지만 조요한 일상 속에 던져진 전쟁의 여파는 늘 극적으로 드러난다. 유목민의 특성을 잃어버린 채 집단 캠프로 이주당한 베르메르 족. 도시의 수많은 실업자들. 벌어지는 빈부차, 급격한 해체를 겪는 사회 구조…

부르디외의 사진은 전문가의 실력으로 찍어진 제대로 된 사진은 아니다. 전문가의 사진이라면 무엇을 찍던 구조적인 비례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법인데 부르디외의 사진 속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찾긴 어려워도 카메라를 든 부르디외의 생각만큼은 명확하게 전달된다. 사진을 통해서 간직 하려는 1958~60년 알제리 전역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명료하다.
2004/07/19 15:06 2004/07/19 15:06

경기전

Posted 2004/05/09 14:50, Filed under: Review/Frame
특정 장소에 가면 즐기지도 않은 담배 한 개피가 피고 싶어진다. 나에게 있어 경기전이 그런 장소이다. 하늘을 가린 커다란 나무와 바람에 속삭이는 대나무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난 어느 사이에 스무살 겨울로 돌아간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어딘지 첫사랑 분위기가 나던 그때로 말이다. 하긴 그 후로는 늘 헛물만 켰으니 현재로서는 마지막 연인인가? 이런 저런 상황이 만들어 낸 소소한 유희를 제외하고는 그렇군.



찍어 놓고 나니 어색한 사진이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각도로 찍었건만 그녀가 빠진 사진은 왠지 어색하다. 너무 어색해. 누이가 한마디 던진다. ‘내가 봐도 영 아니란 것은 잘 알지?’ 영 아닌 사진이란 것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인물 사진에서 인물을 빼버린 채 배경만 남긴 사진이 어색한 것은 당연한 일일테니까… 아! 생각해 보니 그날은 눈도 내렸었다. 눈이 포석 위에 가볍게 쌓이던 시점이었지. 기억을 되돌려 보니 이곳을 지나던 행인이 찍어준 우리의 사진은 정말 이상했다. 그래서 이렇게 어색해 보이는 것이었군. 잘못된 사진을 똑같이 다시 찍은 사진이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옛날이 그립다는 것은 아니다.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져서 이러는 것이리라.. 다소 나이든 내 문체를 있는 그대로 즐겨주었던 친구 하나가 그리워서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다소 연약한 모습이어서 이런 것이리라. 문득 펜을 든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내려놓고 만다. 멋쩍은 걸. 이제와 나의 친구에게로 시작되는 문장을 쓰기에는 어색한 걸.
2004/05/09 14:50 2004/05/09 14:50

달력 사진

Posted 2003/10/19 23:37, Filed under: Review/Frame
막내 누이는 이 사진을 보면 늘상 달력 사진같다고 한다. 물론 나역시 수긍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왼쪽 상단 여백에 숫자를 가지런하게 적어넣으면 완벽한 책상용 달력이 되리란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란 어리석은 짓일테니

달력 사진이란 약칭으로 불리는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지난 시간과는 무언가 다른 것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 막간극이 끝나고 새막이 오르는 듯한 분위기. 그래서 난 이 사진을 좋아한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집에서 대학로,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산책을 즐기곤 했었다. 대학로 스타벅스 2층에서 버드나무 가지를 바라보며 차를 한잔 마시고 느긋한 걸음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을 연결하는 돌담을 걷고 있노라면 한주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들곤했었다.



날씨 좋은 날에는 서브웨이에 들려 샌드위치로 식사를 대신하고 옛 궁궐의 정원에서 재미난 소설을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포션에서 로스팅한 애플티를 즐길 수 있는 찻집에 홀로 걸어들어가기도 했고. 이런 저런 인연으로 알게된 사람들과 안국동에서 인사동. 영풍문고로 이어지는 미로들을 탐험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지난 겨울. 인체의 신비전을 보고 창덕궁에 들렸다가 얻은 것이 바로 이 달력 사진이다. 아주 얇은 안개가 낀 맑은 겨울날. 서울대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그 날 얻게 된 사진이다. 빛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둡지는 않고, 시간의 흐름을 탄 옛 것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유의 톤이 있다.

나를 지나쳐 버린 여러 막들과 몇번의 막간극들. 고유의 색감을 지닌 이런 고즈녁한 분위기의 기억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안개 속 사이에 숨어버린 빛처럼 그렇게 내 안에 숨어 새로운 삶을 지켜봤줬으면 좋겠다.

2003년 10월 19일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더 잘알게 해준 막간극을 끝내며.
2003/10/19 23:37 2003/10/19 23:37

허수아비- 정말 오랜만에 본다

Posted 2003/10/08 23:56, Filed under: Review/Frame
오랜만에 가방을 챙겨 나갔다. 새로 산 Manhattan Portage briefcase를 어깨에 매고 항해지도(의외로 진도가 안나간다. 어쩌면 아껴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와 iPod,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에 지갑까지 챙기고 빡빡하게 줄잡힌 면바지에 허리띠까지 맸다. 여기에 즐겨입는 파란색 폴로 스포츠 점퍼까지 걸치고 났더니 어디 먼곳으로 여행가는 기분이다.

나의 여행은 겨우 서실까지까지 오가는 왕복 4킬로미터의 여정이었지만 산책로를 골라내는 빈약한 재주가 있는 나로서는 결국 한동안 못보던 것을 찾아내고 말았다. 누이가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자주 언급하는 초등학교의 외관을 찍다 우연히 담아낸 허수아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익산과 전주를 오고가는 버스 속에서 보이는 넓은 들판에서 허수아비가 사라진 것은 오래전 일이다. 이런 까닭으로 허수아비에 대한 마지막 목격담은 98년 가을 소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종석군이 나못지 않은 노래 실력을 뽑내고 있을 때, 난 지겨움을 참지 못하고 차장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군. 미안하네). 마침 버스는 신호등에 걸리는 참이었고 지평선과 노랗게 익은 벼사이에서 한 무리의 허수아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 흔한 허수아비를 몇년만에야 다시 보고 이렇게 신기해할 줄은. 인생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내일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또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평생을 다시 보지 못할 사람과 인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일 보자, 또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그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렇게 잊혀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까지 무딘 양심은 아니기에 마음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타인의 마음에 납덩이를 달아놓음으로써 그 마음 향하는 방향을 돌려놓고 싶은 것인지도,,,
2003/10/08 23:56 2003/10/08 23:56

Devotion- for SJ

Posted 2003/10/07 23:39, Filed under: Review/Frame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아니면 농담을 던질 때. 가끔 그런 행동들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기분이 들곤한다. 이 사진 역시 그렇다. 저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조작한 순간. 누이들이라면 소재를 잘못 골랐다고 말할테지만 그 친구라면 왠지 매력있다 말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포커스를 엉겅퀴의 중심에 맞췄으리라. 그리고 아웃포커싱 효과를 나타내려고 무리해가면서까지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으리라.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가지를 위해 넓은 등판으로 바람을 막는 일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 사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친구를 위한 사진이다. 그 친구라면 백이면 백 이상한 사진이라 비난하더라도 난 왠지 마음에 드는걸 하고 말해줄 것 같았기에…

헌정과 헌신, 두 단어는 사람의 마음에 이상한 숭고함을 가져다 준다. 정신이 고양되는 느낌이랄까? 성스러워지는 느낌이랄까? 자기 희생에 따른 비장미도 느껴진다. 냉정하게 분석해보자면 헌정과 헌신이라는 단어가 숭고함보다는 기회주의적 속성과 단순한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그 친구에게만은 두 단어를 내 모든 정신으로 주고 싶어진다.
2003/10/07 23:39 2003/10/0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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