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Column/Essay'

13 POSTS

  1. 2007/11/10 책(冊 or 責)
  2. 2006/08/20 갤러리와 투어리즘
  3. 2006/03/10 어떤 독서론 (3)
  4. 2005/09/20 마음의 성배 (2)
  5. 2005/07/09 어떤 경매에 관하여
  6. 2005/06/28 Barriers to Entry (2)
  7. 2005/05/20 쉽게 쓰여지는 글
  8. 2004/12/15 toploftiness of 'the humanities' (2)
  9. 2004/11/20 혁명가의 초상 (5)
  10. 2004/10/14 <말하는 고양이>님의 복귀를 바라며 (12)
  11. 2004/09/10 슈테판 츠바이크 (7)
  12. 2004/08/24 펜시브 혹은 블로그
  13. 2004/08/04 대가 vs 스타일리스트 (6)

책(冊 or 責)

Posted 2007/11/10 22:23, Filed under: Column/Essay

18세기 산문집을 읽다 보면 유난히 책에 관한 언급이 많은데 특이한 부분은 그들이 책을 얻게 되는 경위다. 오늘날의 지적권 개념으로는 확실히 불법이지만 그들은 귀중한 책을 필사함으로써 자신의 서가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아마 당시의 글쟁이라면 인세를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현대의 전업 작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설가나 하는 일이라고 고개를 돌렸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신이 지은 책을 필사하느라 바쁜 사람들을 보며 득의만만한 웃음으로 인세를 대신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더욱이 한자 한자 세필을 들고 승두세자로 밤을 새워 필사를 하는 동안 만들어지는 것은 비단 책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용에 대한 이해와 비판 역시 '그 와중에 슬금슬금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고 잠시 상상해 본다.

물론 오늘날 18세기 방법을 답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질 세대에 태어난 우리가 무슨 인내심으로 한자 한자를 정성껏 필사하고 설령 그럴 인내심이 있다 하더라도 복사기보다 우리가 더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서적 우편보다 빠르게 신간을 구할 수 있는 이즈음와서는 책의 소유라는 개념 자체의 재정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과거의 책은 필사본이든 인쇄본이든 간에 꽤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리사 자딘의 『worldly goods』에 의하면 상업 혁명 이전에 백 권 규모의 장서를 구매하려면 중산층의 경우 년 수입의 1/4을 거의 평생에 걸쳐 지출해야만 했다고 한다. -저자에게 인쇄된 자신의 책을 주는 전통은 책이 그토록 비쌌기에 증정된 책 자체가 인세로써 충분히 기능 할 수 있었기 때문 확립되었다- 그렇기에 책은 신분의 상징이 되었고, 문자 해독력이 극도로 열악하던 시기에 치자와 피치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선이 되었다. 그 후 인쇄 프레스의 기술적 발전은 점차 서적 생산 단가를 낮추어 왔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전히 책을 소유하는 일이 -적어도 전 지구적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출판부와 옥스퍼드 출판부의 공인된 초판 인쇄 부수는 1,200부이다.- 책의 카테고리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세계의 영어권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놀랄 만큼 적은 부수이다. 페이퍼백의 범람에도 평범한 노동계층이 텔레비전 구매에 소비하는 생애지출보다 도서구입비가 적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문제다.

해마다 정월이 되면, 그리고 독서의 계절로 명명된 가을이 되면 서점과 책에 대한 특집 기사들이 쏟아지곤 한다. 비싼 책값과 왜 한국에는 페이퍼백이 없느냐는 불평. 대중교통에서 읽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불만과 원하지 않는 하드 커버 덕분에 생긴 거품이 싫다는 이야기까지 그 불만은 참으로 다채롭다. 여기에 책은 내용을 읽는 것이지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까지 겹치면 책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일주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니 먹물과 교양은 별개라는 논쟁은 논외로 두자. 그리고 한 번쯤은 나 역시 책에 대한 내 편견을 한 아름 늘어놓고 싶었다.

내가 과도하게 건장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은 신국판으로 제단된 하드커버쯤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채 돌아다닐 수 있고, 전공 서적 정도는 어디에서든 가벼운 마음으로 팔뚝에 얹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때다. 신국판에 이어 더욱 작고 가벼운 책이 오늘날의 출판 경향이라지만 난 아직도 묵직한 단위 중량을 자랑하는 미색 모조를 사랑하고, 도피지에 화려하게 인쇄된 표지를 즐긴다. 하드커버가 입혀진 사철제본을 좋아하는 것은 보관의 용이함 이전에 손에 잡히는 묵직한 느낌이 좋아서이다. 기실 사철제본이 필요할 정도로 책을 험하게 다루지도 않고, 서표가 필요할 정도로 기억력이 나쁘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스무 살을 넘은 뒤로는 책값에 대한 신경도 끊은 것 같다. 책값의 상승률은 지난 20년 동안 고작 +170% 내외였다. 같은 기간에 버스요금이 +2,000% 이상 인상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경이적이다. 게다가 헌책은 그 상승률이 더욱 미미해서 고작 +150% 내외이다. 경제적 풍요가 십 년을 기점으로 배수로 커지는 세대에 속한 나로서는 책값에 예민해지는 것이 곧 심력의 낭비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십 대의 내 구매력으로는 한 권 한 권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사들여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그 시절의 내 시간 가치는 책값에 한참 못 미쳐서 서점에서 서서 읽는 책들이 사들이는 책들의 몇 배수였다. 하지만, 요즘의 책은 향상된 구매력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예전과 다르게 종이 두름을 사들이는 일에 인색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사기 전에 한참을 망설이는 가격대의 책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 년에 고작 한두 권이니 그리 신경 쓸 일은 못된다.

8.5포인트로 시작한 내 독서 인생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크기의 활자는 9포인트이다. 내 서가에는 5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와 고작 500부도 팔리지 않았을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가끔 페이지 불리기에 당하는 책이 있으면, 필름값도 회수하지 못할 만큼 인기가 없지만 나에게는 사랑스럽기만 한 책들을 거저 줍기도 한다. 게다가 난 램지의 법칙이 책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원래 사는 사람이 적은데다가 사지 않고서는 못 배길 그런 책이 더 비싼 법이지만, 때로는 자긍심 하나 때문에 독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기 보다는 베스트셀러의 수익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출판사들도 많다. 그렇기에 첩첩이 서가에 쌓인 다양한 성격의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책과 페이지 늘리기, 비싼 제본마저도 귀여운 투정쯤으로 보일 때가 잦은 것은 아닐까?

난 흡연을 즐기지도 않고, 애주가지만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차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보온병에 그날 마실 '오늘의 차'를 준비해 다닌다. -그럴 여유가 되지 않는 아침이면 티백이라도 챙겨다닌다- 게다가 나에게는 시간과 애정을 요구하는 하는 어떤 이도 없다. 그렇기에 내게는 꼭 해야 할 일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할 충분한 여유가 있다. 기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가는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으로 내려가 책이 내뿜는 그 묘한 향기에 취해 보내는 멍한 시간이다. 또 지금껏 내가 살아온 공기는 책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지는 않아도 정서적으로 책을 아끼는 사람들이 내뿜는 향기로 채워져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세파에 찌든 고단한 삶만큼이나 책은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대화의 소재이다. 책이 없다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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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0 22:23 2007/11/10 22:23

갤러리와 투어리즘

Posted 2006/08/20 20:29, Filed under: Column/Essay

2주 전 처음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관람 매너였다. 이곳의 관람 매너를 자유분방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계모임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요란한 한국의 관람 매너에 비해 절도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주가 지나자 이런 생각이 나의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중요한 것은 관람료의 경중이었다. 관람료가 비싸게 책정될수록, 접근이 어려울수록 관람 매너가 상승한다는 제2급 가격 차별의 예를 미술관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관람료가 비싼 전시회일수록 확실한 기획과 전문가의 엄격한 작품 선정이 뒤따른다. 사실 작품 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와 작품을 이해하는 눈을 얼마나 열어주느냐이다.  

영국의 많은 갤러리는 대체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갤러리들에서 제대로 된 감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새로운 미술의 역사'를 쓴 폴 존슨의 경고가 머릿속을 끊임 없이 떠다닌다.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걸작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다'  거대한 인파가 쉴새 없이 움직이는 갤러리에서, 더욱이 시간이라는 제약 조건 아래에서 그의 말을 실행에 옮기기는 대단히 어렵다. 결국, 갤러리에 갈 때마다 나의 좌절은 더욱 커진다. 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을 생각하며 초조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초조함도 따지고 보면 나의 불민함이다. 갤러리에 걸린 모든 작품을 볼 필요는 없다. 아니 시간을 정해 놓고 갤러리를 모두 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자체가 나의 문제다. 아마도 나에게는 남은 여생 동안 이곳에 올 기회가 꽤 많이 존재할 것이다. 엄청난 규모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은 이상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으며 한 번 들릴 때마다 이해의 폭을 넓히는 또 다른 재미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투어리즘의 대상으로서의 갤러리는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은 유럽 여행을 통해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건축물들을 바라보는 것들을 유럽 여행의 재미로 꼽는다. 솔직히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 역시 그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곳의 갤러리들은 투어리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투어리즘의 일환으로 갤러리를 찾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행동은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무료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가장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무지의 향연이다. 사람들이 갤러리를 찾는 이유는 낯선 땅에 와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보았다는 경험을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지난주에 브리티쉬 뮤지엄에서 난 내 나이보다 세 살 아래 정도의 건장한 청년 셋을 보았는데 이오니아식과 도리아식, 코린트식의 기둥 장식에 관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던 그 전시실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느낀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에 기반을 둔 지루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도리아와 이오니아, 코린트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 전시실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불만이었다.

문화지향은 오늘날 시대의 화두다. 하지만, 과연 양적성장을 위주로 이루어지는 문화지향이 올바른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경제적 풍요는(과거에 비해서) 문화 경험의 빈도와 범위를 넓혔지만 이해의 깊이까지 넓혔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2006/08/20 20:29 2006/08/20 20:29

어떤 독서론

Posted 2006/03/10 12:10, Filed under: Column/Essay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론이 주변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말대로 소설 따위는 읽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어린 벗을 보면서 문학이야말로 논픽션보다 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법이라고 설명하는 내 자신이 귀찮아졌다. 위대한 생각과 영혼을 낳는 것은 항상 허구라는 상상력에서 태어난 진실이다. 사실이 낳을 수 있는 것은 사실에 불과하다. 사실은 진리를 낳지 못한다. 하지만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1미터의 책과 5만엔 돈’이라는 인용구를 듣는 순간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식의 방대함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넓게 열린 접근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 자체가 생명력 없는 객체에 불과했던 때는 단 한순간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서론은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서론이 있는 만큼 경계해야 할 독서론도 있는 법이다. 어린 벗에게 무교양의 지름길을 안내하는 다카시의 독서론이 바로 그렇다.
2006/03/10 12:10 2006/03/10 12:10

마음의 성배

Posted 2005/09/20 15:52, Filed under: Column/Essay
레베르테의 검의 대가를 읽는 동안 조심스럽게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은 내 삶의 성배는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목표와 지향점을 조심스럽게 개진하도록 교육 받은 탓인지 나나 지인들은 하고 싶은 것. 추구하는 목표에 관해 늘 소극적이다. 우리는 야심차지만 야심이 야욕으로 보이지 않도록, 욕망에 담담한 모습을 보이도록 애써 군자연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현실에 잘 휘어져 목표와 지향점에 이르는 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랜 고민 끝에 고립된 한 인간으로서 추구하고 싶은 <마음의 성배>를 찾은 것 같다. 대략 3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파리아의 보물>이라 이름지은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등장하는 파리아 신부에 대한 묘한 동경을 품어 왔다. 감옥 안에서 에드몽을 변화시켰던 파리아가 기억이란 수장고 속에 꼭꼭 숨겨둔 그 책들은 어떤 것일까?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욕망하는 것처럼 덧없는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난 이 목록을 욕망한다.

사실 교양보다는 전문지식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에 <파리아의 보물>은 더 이상 가치 있는 성배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이 읽어야 할 100권의 책이라든지, 타임 선정 100대 도서등에 실망한 나로서는 지엽적인 지식과 고도로 복층화 된 사고 실험의 구조물이 아닌 사유와 경험이라는 교양의 두 가지 측면에 핵심을 맞춘 제대로 된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런 리스트는 너무 버거운 일이다. 나에게는 아직 파리아 신부의 연륜과 절박함이 없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뿐인데 그마저도 헤세의 <독서가>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달콤한 쾌락의 유용함을 깨닫고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할 따름이다.

또 다른 <마음의 성배>는 45년 이후 70년대까지의 한국의 기업을 다룬 책을 쓰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던 시기에 꽤나 많은 자료를 쌓아 놓았기 때문에 첫번째 성배에 비하면 조금 쉬운 일이다. 초창기 기업들을 주제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기업의 역사에 관해 조망할 어떤 학문적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양극단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기업의 역사에 있어 초창기는 역동적인 모험의 공간에 가깝다. 그들이 창업 공간에서 보여준 기법과 기술의 빼어남은 ‘한국의 재벌’이란 현재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해외의 많은 저술들 역시 한국 기업에서 특수성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일본 기업과의 유사성을 토대로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유사성을 토대로 우리를 파악하려 노력할 소록 왜 우리가 일본과 다른 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따지고 보면 계열사란 단어와 기업 집단인 그룹, 그리고 재벌. 이 모든 것이 오히려 실체를 가리고 있는 언어가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

(위의 단어는 모두 일본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 언론에 의해 수입된 경우다. 단어가 수입되면서 개념도 함께 수입되었다. 따라서 이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의 시공간에 대해 설명할 개념 어휘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 공간에서 일본 기업과의 유사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기업집단이 이머징 마켓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말은 수긍하지만 보편성에 대한 재정의는 필요하다. 기업의 규모는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마지막 <성배>는 동서양의 무역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졌던 동과 서의 무역가운데에서도 대항해 시대와 명은 내가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전문 연구가도 아니고 이 영역에서 갖추어야 할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속된 말로 편집본이 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어쩌면 내게 상아탑의 학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무역에 상업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고. 거래의 이익과 위험에 대한 통찰력이 내재해 있거나, 흘러갈 시간 속에 생겨날지도 모른다.

<마음의 성배>는 단기간에 끝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성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평생에 걸쳐 꼭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다. 물론 개인적인 목표는 사회적 목표에 치여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뒷자리로 밀려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마음 한편에 항상 <마음의 성배>를 담아두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 위안이다.
2005/09/20 15:52 2005/09/20 15:52

어떤 경매에 관하여

Posted 2005/07/09 07:35, Filed under: Column/Essay
김홍도의 화첩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 이야기를 학교에서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를 생각해 보았다. 지인의 반은 아예 무관심할 것이 틀림없고(아마 때때로 시작되는 나의 헛소리쯤으로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나머지 반은 매우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예술품이 지닌 아름다움을 경외하지만 그렇다고 예술품이 지닌 상품성을 무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화첩은 그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화첩에 담긴 섬세한 필치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예술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다. 한국이라는 시장 특성상, 더구나 세무조사의 칼날이 서슬 퍼렇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고액의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은 세무조사를 자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미술품 시장의 밀수 시장은 보다 양질의 예술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굳이 세무조사의 표적이 되면서까지 공식 거래를 할 개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밀수가 가격 왜곡을 일부시정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응찰에 개인이 나설 수 없다면 남은 것은 미술관 같은 공적 단체뿐이다. 하지만 10억원이란 가격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미술품 구입 예산의 야박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10억이란 예산으로 효과가 불분명한 작품 하나를 건져오는 것은 담당자로서는 목을 내놓고 하는 가장 위험한 도박이다.

미술 상품은 저량으로서의 가격과 유량으로서의 가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 시장에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을 경우 예술품의 가격은 통상적으로 감정액과 보험에 의한 보상액으로 평가된다. 경매에서 낙찰 받은 가격이 공적인 수단을 통해 확인된 저량이라면 당사자간 직접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은 유량이다. 문제는 미술상품 역시 하나의 가치 축적 수단으로 거래되는 이상 이익실현을 위한 환금성(다시 말해 수요와 기대수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을 숙고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전통 한국 회화의 수요는 전세계적으로는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 청화백자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08만달러에 낙찰되었던 전래(96년에 882만 달러에 낙찰된 철화용문 백자항아리의 전래도 있긴 하지만)로 보아 도자기에 비해 세계적 수요가 그리 높지 않은 전통 한국 회화가 비슷한 가격 수준에서 경쟁을 벌이기를 희망하는 것은 헛물켜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14세기 고려불화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22억원 선에서 낙찰된 케이스가 한국 회화가 세계 시장에서 가장 고가에 팔린 경우다. 박수근의 겨울이 57만달러에 낙찰된 것을 고려하면 김홍도의 명작이 아닌 이상 최소 응찰가 10억원은 웃자는 소리에 불과하다)

김홍도가 우리의 자부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자부심으로 남으려면 그것은 애초에 경매 시장이 아니라 박물관에 있었어야 했다. 경매 시장에 나온 이상 철저하게 시장의 룰에 의해 평가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경매 진행자는 홍보면에서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역으로 수익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깨달아야 한다. 경매에 실패한 미술품이 성공적으로 재기한 경우는 매우 드물며, 세상에 존재가 알려진 미술품의 거래는 당국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그리고 경매에 실패함으로써 그는 되려 우리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다.

경매에서는 두 가지 묵언 협상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경매자와 응찰자 사이의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협상, 응찰자들 사이에서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협상. 하지만 두 단계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전자가 후자에 선행되어야 한다. 응찰자와 실패한 협상에 과도한 홍보를 첨가함으로써 경매인은 향후 한국 회화 미술품의 가능성을 10억원이라는 극점 아래로 고정시켰으며 아울러 시장의 신뢰도 잃었다. 우리가 잃은 것이 비단 자부심만이 아닌 현실이 무척 씁쓸하다.

P.S.

2005/07/09 07:35 2005/07/09 07:35

Barriers to Entry

Posted 2005/06/28 20:48, Filed under: Column/Essay
리더기를 읽다가 mi-ring이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작 스물 다섯 남짓인 내 리더기의 소스를 고려해 볼 때 관련 포스트가 십여 개가 넘었고, 이 정도면 무언가 정말 특별하고 재미난 책이 출현했을 때를 능가하는 반응이었다. 사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결국 난 또 다시 호기심의 노예가 되었고 mi-ring이 무엇인지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가입 조건이 까다로웠다. ‘여성주의, 소수자 운동에 동의하거나 이를 지지하는가’ 라는 물음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남성주의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로 난 여성주의에 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여성주의 경제학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여성주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여성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전적 정의에 가까운 뜻조차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모른다는 말이 정답에 가깝다)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에 관해서, 깊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문제에 관해서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한 넌센스이다. 더욱이 아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아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지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다. 마음은 선뜻 지지를 표명하지만 판단을 마음에 맡기는 것처럼 화를 자초하는 일은 없다. 결국 난 첫번째 난관을 넘지 못하고 페이지를 닫아야만 했다.

초등학교를 제외한다면 난 여태 남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교내의 단 한명의 여성도 있지 않았던 완벽한 금녀의 구역이었고, 사발식과 FM이 존재하는 대학 역시 남녀공학 이라기보다는 남학교에 가까웠다. 아니 복학을 하게 된다면 그때쯤에는 허물없는 친구들은 모두 졸업한 다음이니 사실상 남학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마초이즘의 숭배자냐고 묻는다면 난 아마 고개를 절래 흔들 것이다. 나에게는 승냥이 같은 녀석들에게서 지켜야 할 누이가 셋이나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에 평생 괴로워야 할 지인들의 반이 여성이다. 마초 Y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저질 농담이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가 한동안 피곤한 학교 생활을 감수했으며, FOB같은 접대를 지칭하는 농담에 웃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혐오하는 것이 근거 없는 남성우월주의인지, 아니면 질 나쁜 폭력인지 아니면 마초이즘인지 난 구분할 수 없다. 사실 난 남성우월주의에 관해서, 혹은 마초이즘에 관해서 한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비슷한 이유로 여성주의에 역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며, 이들 사이의 관련성과 방향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난 근본적으로 모든 차별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차별이 남자와 여자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다수와 소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모든 관계 맺음은 차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타심에 대한 동의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기적인 나로서는 이런 이타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실질적인 이타심 차원에서 부조리한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나 역시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추상적 이타심과 실질적인 이타심의 구분은 무척 애매하다. 결국 ‘여성주의, 소수자 운동에 동의하거나 이를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은 나처럼 제대로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현재의 삶에 만족합니까’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부조리한 차별에는 반대하는 여성주의, 소수자 운동에 동의하거나 지지하는가’ 라고 질문마저도 ‘부조리한’ 이란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의미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첫번째 관문에서 내가 좌절했던 이유는 단지 잘 몰랐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닌 것 같다. 난 그것에 대한 동의가 진심이 아닌 진정한 선호를 숨기는 전략적 의사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예의 바르고, 멋진 인간상에 근접하려면 요즘의 남성들에게 약자에 대한 배려는 필수다. 하지만 그 배려가 진심이 아닌 전략적 동기에서 연원하는 것이라면 솔직히 막 나가는 무뢰배보다 더 나쁘다.

오랫동안 형성된 습관과 지속적인 교육은 의지를 숨기는데 최적의 도구다. 때로는 의지가 너무 잘 숨겨져서 그 태도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난 끊임없이 지금 내가 전략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첫째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아느냐의 문제고, 두번째 문제는 그것이 과연 내 진정한 선호인가에 대한 문제다.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아도 난 ‘다수’에 속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쩌면 그 ‘다수’ 안에서도 이너 서클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소수를 이해한다는 말은 고양이가 개에 관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발언이란 생각이 든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결국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관해 동의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행동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조건 반사를 보인다. 어떤 의무감이랄까? 그것이 내 본성에 기인한 것인지 사회적 훈련과 기대에 의해 학습된 것인지 모른 채 무언가 행동으로 옮겨야 할 초초함에 쫓긴다.

more..

2005/06/28 20:48 2005/06/28 20:48

쉽게 쓰여지는 글

Posted 2005/05/20 06:54, Filed under: Column/Essay
장정이 닳은 오래된 책들과 만날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모든 것이 참 쉽게 쓰여지는 시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터넷 검색의 강력함은 관련 자료를 찾아내는 번잡한 작업 없이도 손쉽게 한 편의 글을 만들어 내고, 워드프로세서의 편리함은 노력해서 만들어낸 창작물보다 조합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시대 안에 갇힌 존재로서 흐름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나로서는 감내할 수 밖에 없다. 가끔은 이득을 보고 가끔은 손해를 보면서 그렇게 감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은 쉽게 쓰여지는 시대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하곤 한다. 사람마다 그 감내할 수 없는 순간들이 다르겠지만 난 신문 기사에 쉽게 흥분하곤 한다. 읽지도 않은 채 쓰여진 서평과, 보지도 않은 채 쓰여진 평론, 고작 몇 장에 불과한 팜플릿을 토대로 쓰여진 보도 기사들. 이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가벼워진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에 분노가 치민다.

휴학을 하기 전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들은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원고지 한 장에 4시간 이란 수십 학번 차이가 나는 선배의 충고였다. 제대로 된 기자란 하루 종일 일해도 원고지 여섯장을 쓸 수 없다는 그분의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책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비단 기자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쓰는 동안 사람들은 쉽게 쓰여지는 글과 제대로 쓰여지는 글 사이에서 고민한다. 쉽게 쓰여지는 글은 원고지 40매에 해당되는 대판 1면을 반나절에 쓸 수 있다. 제대로 쓰여지는 글의 경우 같은 분량을 쓰기 위해서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반나절과 일주일이란 시간차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완성도보다 효율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가벼워진 기자의 이름에 분노하지만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의 엄격함과 냉철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기사가 소설가의 작품처럼 펜의 탄력을 받아 허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쉽게 쓰여지는 이 시대에 함몰되어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초심을 잃어버린 그네의 자화상이 매우 씁쓸하다.
2005/05/20 06:54 2005/05/20 06:54

toploftiness of 'the humanities'

Posted 2004/12/15 00:05, Filed under: Column/Essay
개인적으로 <인문학의 서재>라 약칭하는 블로그에 가면 꽤나 재미있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서평 주제로 고른 책 가운데 상당수는 익히 읽어온 것이고 그 가운데 어떤 책들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서평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책을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시각차에 놀라게 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문학적 교육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똑같은 텍스트를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구나. 나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이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이래서 인문학이 배고픈 학문으로 오해받는 것이었구나. [입은 거칠지만 행동은 젬병이다]라고 인문학을 혹평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그런 혹평에 반감을 가졌는데 오늘의 나는 그의 의견에 슬금슬금 긍정을 표한다.

담론은 항상 필요하다. 철학의 부재가 안타까운 세상을 살고 있기에 철학적 담론과 사유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항상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담론은, 실행력을 겸비하지 못한 담론은 결론 없는 소설처럼 공허하다. 단지 최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차선을 포기하기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물론 <차선의 역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아는 인문학 교육의 밑바탕에는 <차선>의 인정도 <차선의 역리>도 없다.

사실 오늘의 인문학이 설정하고 있는 최대의 적은 자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이 최선의 아니라는 사실은 잘알고 있다. 어쩌면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에 해당될지 모른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론 없는 담론을 양산 하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최악이라면 차악을 보여달라. 인문학이 차악을 발명해낼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문학이 발명해 낸 것은 형체조차 흐릿한 발명의 그림자뿐이었더라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어쩌면 이런 내 글이 상식 없는, 혹은 생각이 없는 글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화의 여지조차 막아 놓은 답답한 글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인문학이야말로 대화의 작은 여지조차 막아 놓은 오만한 학문이다. 그들은 인문학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인문학의 단어와 용례를 사용하며 타 영역 고유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은 비난의 기미라도 보이면 그들은 교양으로서 지니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진짜 현실과 마주하기보다는 현실로 의제된 현실과만 마주한다. 인문학의 언어로써 다룰만한 가치가 없는 현실은 현실이 아닌 것으로 부당한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인문학이 교양이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더 이상 인문학은 모든 학문을 이해하는 기본 언어가 아니다.

가령 경영학이나 경제학의 영역에서 이런 농담을 던진다고 생각해 보자. [솔로우에게는 저축이 미덕이겠지만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저축은 악덕에 가까운 것이다] 사실 이 명제 하나를 위해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심지어 지금도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저축과 소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정책의 핵심부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사항인데 인문학은 [소비의 시대를 비판한다]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그렇다면 저축은 좋은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대답이 없다. 그저 나쁘지 않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을 뿐이다. 수 백년 간의 논란,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찾기 위해 사유한 공든 노력이 인문학의 언어로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사실 난 인문학을 좋아한다. 하지만 인문학의 언어로 다른 모든 영역을 이해할 수 있다 믿는 오만함만큼은 버려줬으면 좋겠다. 앞에서 설명한 예처럼 인문학과 다른 영역은 같은 단어라도 서로 다른 체계와 관념을 표상 한다.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어머니로 군림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이상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인문학이 진짜 현실에 적응력을 지닌 진짜배기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사실만을 현실로 의제하는 그 못된 버릇 먼저 버러야 한다. 아니 인문학이 보기에는 당연한 어떤 사실이 우리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인문학에서는 당연하지 않는 문제에 귀 기울여 줄 이유가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인문학의 울타리에서 인문학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다른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고유성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인문학의 새로운 발명에 목말라 하는 것처럼 인문학도 타 학문의 발명과 발전에 목말라 해달라. 인문학의 위기, 혹은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의 개방성이다. 우리는 인문학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왜 어째서 그들은 다른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아니 이해하면서도 외면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인문학의 순수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문학은 인문학만의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시대에 맞은 인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은 조금 더 진창을 구르고 조금 더 잘 놀아야 한다. 순결성 따위에 얽매여 고고하게 늙어가는 인문학은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인문학의 빈곤, 발명의 부재 이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비롯된 것임을 직시할 때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2004/12/15 00:05 2004/12/15 00:05

혁명가의 초상

Posted 2004/11/20 00:19, Filed under: Column/Essay
사람은 누구나 혁명을 꿈꾼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혁명을 잊는다. 역사는 수많은 인물을 낳았지만 빅토르 위고 같은 예외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혁명을 잊어간다는 법칙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내 의식 속에 혁명이란 불온한 것 혹은 열역학 2법칙에 위배되는 가역 현상으로 이해된다. 혁명이 낳는 것은 더 큰 혼란이며 의도는 저엔트로피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실제 혁명이 낳는 것은 급격한 엔트로피의 증가뿐이다.(혁명의 층위가 쌓일수록 더 큰 물결의 엔트로피 증가가 일어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사실이지만 난 혁명을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혼란과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굳이 열역학 법칙을 변용 했다. 혁명을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흘린 피가 혁명 그 자체에서 흘린 피보다 많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귀찮음도 한 몫을 했다. 사람은 저마다 꿈꾸는 혁명의 정의가 따로 있기에 혁명에 대한 정의는(응용하면 그것은 정당성이 된다) 혁명 그 자체보다 더 큰 혼란의 원인이 될 태생적 숙명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난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새로운 세상이라는 환상보다는 붉은 피 냄새를 더 또렷하게 맡는 그런 전공을 택했고 습관보다 더 무섭다는 전공에 물들어 이제는 혁명을 감히 불온한 것이라 생각하며 피한다. 혁명이라는 단어 대신에 혁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혁명 와중에 나타났던 진짜 반혁명은 파리를 휩쓸었던 배금주의라 생각한다.(쿠바 혁명의 반혁명은 빈곤이겠지…) 최초의 공산당 선언을 쓴 혁명가를 억만 장자로 변심 시킬 정도로 혁명의 끝은 허무한 것이라 생각했다. 바로 사흘 전까지 말이다.

사흘 전 urbino님의 블로그에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한 포스팅을 읽었다, 그리고 lunamoth님의 스크래치 페이퍼에서 앙드레 말로의 그 유명한 사진과 96년에서 97년으로 넘어가던 삶의 혁명기에 내 일기장에 적혀 있던 문구를 발견했다. 흥미로움이 불러 일으킨 호기심이 가라앉으면서 머리 속에는 혁명가의 초상이란 단어가 맴돌기 시작했다.

머리 속을 맴도는 이미지를 따라 고개가 돌아갔다. 책꽂이를 관찰해 보니 반경 50센티 미터 안에 인간의 조건과 디스커버리 시리즈로 나온 앙드레 말로에 대한 전기, 그리고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이 보인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크세주 시리즈가 보이고 레닌의 평전도 보인다. 혁명에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면서도 표리부동한 내 책꽂이의 묘한 구성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런 놀람은 이내 어린 시절 꿈꾸었던 혁명가의 초상을 일깨웠다.

혁명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초상은 <인간의 조건>에 등장하는 기요와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국제여단에서 활동하던 게르다 타로라는 여성이다. 하지만 난 이들을 인물이라 평하지 않고 초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기요는 앙드레 말로가 상상해 낸 혁명에 대한 문학적 초상이었고 게르다 타로는 사진 한 점. 그녀에 받쳐진 짧은 헌사 외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당대인들의 짧은 단편에서나 겨우 그림자처럼 들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배를 문 체 게바라의 유명한 사진보다도 게르다 타로의 사진은 한층 강렬하다. 청산가리를 놓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요는 이해하기 어려운 혁명가가 아니라 나와 같은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방금 생각난 것인데 밀란 쿤데라의 이별에 나오는 한 알의 독약은 어쩌면 이 청산가리에 대한 오마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연성과 필연성을 겸비한 독약이라는 점에서는 더 뛰어난 장치지만) 검정 베레모를 쓴 채 내전의 한 가운데에서 잠든 게르다의 평온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무엇을 꿈꾸었는지 궁금해진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사이에서 그녀가 꿈꾼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까?

역사적으로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범위에 한정시켜 본다면 스페인 내전의 궁금적인 승리자는 공화파다. 그런데 이런 승리가 바꿔 놓은 현실은 아무것도 없다. 혁명가는 필연적으로 이상주의자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상은 현실과 타협하고 슬굴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이래서 혁명가의 초상은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어쩌면 몇 세기 후의 역사가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은 체의 사진이나 게르다의 사진 속에서 당시의 시대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혁명이 보편 정서가 된 적은 없다. 그래서 혁명가는 뒷그늘에는 좌절이란 그림자가 뒤따라 다닌다. 혁명가는 외로운 직업이고 고독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들은 꿈이 있기에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고독한 혁명가를 발견하기 어렵다. 고독한 혁명가 대신 수많은 지지자들을 거느린 현대판 사보나롤라들이 광신을 퍼트린다. 그리고 어느사이엔가 광신이 혁명을 대체하고 고독한 혁명가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되려 타락한 선동가가 외로운 혁명가로 둔갑한다. 참 슬픈 세상이다. 그래서 혁명과 광신을 구별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혁명의 정의도 혼탁해진다.

난 혁명을 싫어한다. 하지만 혁명가가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동가의 광기는 분명 증오한다. 혁명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광신과 가짜 혁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혁명인지 선동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내가 혁명을 싫어하는 것은 나에게는 선동과 혁명을 구분할 안목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선동가들이 할 줄 아는 것은 광기를 퍼트리는 궤변의 허약한 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행동력과 자기 확신, 그리고 정열이 없다.

빛은 존재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둡다. 선동가들의 광기는 대기를 혼탁하게 만든다. 광기가 지배하는 칙칙한 어둠 속에서 가끔은 혁명의 순수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혁명가의 초상을 꿈꾼다. 그런데 이제는 혁명가의 초상이 어떤 것이었나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혁명을 잊은 순간 혁명가의 초상도 흐릿해지는 법이란 사실을 왜 몰랐을까? 내일이면 난 또 다시 혁명의 초상을 잊을 테고 글로벌 스탠다드와 자본의 논리, 그리고 힘을 추종하는 꺼삐딴 리가 되어있겠지?
2004/11/20 00:19 2004/11/20 00:19

<말하는 고양이>님의 복귀를 바라며

Posted 2004/10/14 00:42, Filed under: Column/Essay
즐겨찾던 블로그가 잠정적 폐쇄 상태에 들어갔다. 지난 반년 동안 매일처럼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준 유쾌한 장소였는데 부지불식간에 문을 닫았다. 평소 코멘트보다는 포스팅 위주의 글읽기를 해오던 터라 무엇이 이 곳을 잠정적 폐쇄 상태로 몰아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고, 이제는 흔한 일이 되어버린 네트워크 상에서의 공격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련된 포스트와 코멘트가 모두 사라진 지금 나에게는 확인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읽으려고 마음 먹은 포스트도 꽤나 많았는데…)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인터넷상의 공격은 꽤나 무섭다. 질문의 예리함과 명쾌함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꺽이지 않는 독선이 무섭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냉철한 이지보다 독선이 더욱 쉽고 빠르게 전파된다는 사실이다. 독선은 쉽게 이슈화되고 다양한 경로로 재포장된다. 돌을 던지기도 쉽고(그것도 잘 버려진 돌로만), 보다 비겁하며 은밀한 방법으로 상대의 가슴에 멍울을 만들 묘수들이 더욱 활기차게 생산되는 곳이 네트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끔 주변에서는 <인터넷상에 글을 쓰는 내 행위>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곤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네 글을 읽지 않을 것이고, 네 글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중 상당수는 끝까지 읽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읽는다 하더라도 삶의 배경이 다른 불친절한 네 글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겠냐가 무용론의 요지다.

사실 난 이 말에 100%동감한다. 난 독자를 고려하는 친절한 성격도 아닐뿐더러,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모두 안다는 가정 아래 하루를 산다.(행간에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수많은 사실들을 common sence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블로그 세계에서 나같은 성격의 블로거는 어디까지나 마이너리티에 불과하다. 되려 잠정적 폐쇄에 들어간 이 블로그의 주인장처럼 친절하고 자상한 글쓰기가 몸에 밴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이지를 상실한 독선이 대화란 형태로 이 세계를 구축한다면 블로깅은 점차 재미없는 일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블로깅을 하면서 매일처럼 드나들던 블로그가 악의적인 노림수에 의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것을 목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한적하고 적극적인 방문객이 거의 없다 시피한 현재의 내 상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표리부동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하게 귀찮은 훼방꾼에 의해 고요한 내 놀이터가 어지러지는 것은 딱 질색이다.

개인적으로...

2004/10/14 00:42 2004/10/14 00:42

슈테판 츠바이크

Posted 2004/09/10 11:45, Filed under: Column/Essay
백문 백답이나 자기 소개서, 면접이나 조금 분위기 잡는 소개팅에서 자주 회자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란 구태 의연한 질문인데 생각보다 이 질문은 고난이도를 자랑한다. 책을 너무 안 읽는 사람에게는 꽤나 당황스러운 질문이고,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평생을 살아도 해답을 찾지 못할 영원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너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딱 나 정도의 사람에게는 명쾌한 대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무한의 애정과 존경을 받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츠바이크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 소설의 대가
사실 츠바이크는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 같은 독일어권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노벨문학상으로 필력을 가늠하는 문학관 덕분인지 아니면 전기 소설보다는 순수 문학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는 학풍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츠바이크에게는 그 흔한 한국어 번역 전집 하나가 없다.

하지만 국외에서의 츠바이크의 명성은 20세기 3대 전기 작가로 추앙 될 만큼 높다. 그의 심리 분석은 매우 예리하고 날카롭다. 하지만 인간 심리의 이면을 투영하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되려 모든 열정의 근원이 되는 욕망을 해체하는 그의 펜에 느긋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면 그의 날카로운 심리 분석의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소설의 재미는 작가와 독자 그리고 전기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 사이의 거리에 의해 결정된다. 인물의 행동이나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는 작가는 독자에게 지루함을 더해 주고, 인물의 업적에 금칠을 하는 작가의 전기는 역겨움을 일으킨다. 좋은 전기는 작가가 인물의 내면에 접근하면서도 객관적이야 하고 독자가 인물의 갈등과 선택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해 보면 결코 쉬운 조건이 아니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작가가 인물에 새로운 성격이나 부여하거나 사건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전기 작가는 진실이라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제약에 종속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츠바이크에게 만큼은 이런 여려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인물의 영혼을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너무나 숭고해 전기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인물뿐만 아니라 츠바이크 그 자신마저도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과 전기를 읽다 보면 유독 영혼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맴돈다. 인생은 1%의 노력과 99%의 타이밍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기회주의자인 나에게 영혼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지만 츠바이크의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유독 영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영혼과 영혼을 이끄는 열정에 대한 츠바이크의 탐구는 매우 진지하고 그 진지함을 통해서 난 내 삶을 새로운시각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은 논평하기 매우 어렵다. 인간의 영혼과 열정에 관해서만큼은 지금까지의 짧은 내 삶으로는 제단할 수 없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을 다시 음미할 때쯤이면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지만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이 많다. [주옥 같은]이라는 단어가 진짜로 어울리는 단편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츠바이크의 글이 될 거라고, 체호프나 모파상의 단편 소설보다 더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츠바이크의 소설일 거라고, 진짜 제대로 된 사랑을 해봤고 로맨스와 사랑, 인간의 가치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작가는 츠바이크였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츠바이크의 사진을 보면, 그의 편지를,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난 무의식적으로 움츠린다. 벌써부터 세파에 찌들어 냉혹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허탈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숭고한 것은 없는데. 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을 사랑한다. 그의 조금은 우울하지만 격조 있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과 열정, 행복과 고난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의 노력을 행간으로 느낄 때마다 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명이란 거친 힘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애쓰는 츠바이크의 뒷모습을 발견 할 때 [진짜 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좌절하게 된다.
2004/09/10 11:45 2004/09/10 11:45

펜시브 혹은 블로그

Posted 2004/08/24 15:41, Filed under: Column/Essay
커피 잔을 쥐는 모습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빼어남을 자랑하는 친구 하나는 해리 포터를 읽고 가장 갖고 싶었던 것으로 펜시브를 꼽는다. 필요에 따라 기억을 저장해 놓을 수 있는 이 매력적인 마법 도구에 대한 내 생각 역시 친구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펜시브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현실에서 펜시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펜시브와 비슷한 기능적 용도를 지닌 대용품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소소하게는 짧은 메모에서 일기장까지 펜시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대용품의 범위는 우리의 상상력 이상으로 넓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펜시브에 가장 근접한 대용품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블로그가 아닐까 한다.

근래 들어 블로그의 성격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듣게 되는 것 같다. 광범위한 포용주의에서부터 엄격함을 갖춘 순혈주의까지 꽤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었다. 블로그에 대한 내 의견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내 블로그는 이런 성격을 토대로 구축되었다는 암시 정도는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기백을 자랑하는 방문객을 가진 영향력 있는 블로거도 아닌 주제에 할 짓은 다한다고 비난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나만의 해석에 따른 내 블로그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나름대로의 해석에 달려있다. 똑같은 도구라도 나에게는 생활 용기로, 뒤샹에게는 예술로 해석되는 것처럼 블로그 역시 해석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도구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블로그는 신념이자 철학이 아니다. 블로그에 태도를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블로그가 태도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블로그가 아니다. 도구 자체에 어떤 정의와 설명을 부여해도 사용자의 상상력과 해석에 따라 도구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망치가 생활의 연장으로 사용되지만 때로는 흉기로 돌변하는 것처럼, 도구는 도구에 붙은 꼬릿말보다 사용자의 의지에 더 손을 탄다. 사실 블로그에 붙은 꼬릿말이 무엇이냐는 그다지 중요한 소재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꼬릿말이 붙어 있어도 사람에 따라 그것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벌어지는 블로그에 대한 논쟁은 시간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과 똑같아 보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균등하게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노하우와 태도는 모두 다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자세다.

블로그에 붙은 꼬릿말이 중요하지 않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좋은 꼬릿말만으로 제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내가 시대착오적인 걸까?
2004/08/24 15:41 2004/08/24 15:41

대가 vs 스타일리스트

Posted 2004/08/04 23:33, Filed under: Column/Essay
철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나 역시 국적불명의 문체를 사랑했던 것 같다. 고전과 현대 소설의 경계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던 나로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스타일이 살아있는 문체가 꽤나 현대적이라 느꼈던 모양이다. 전위적 프랑스 작가들도 좋았고, 하루키 역시 그 시절에는 정말 좋았다. 도서관의 해외 소설 코너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던 수많은 쓰레기들을 읽으며 어딘지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인과 관계가 명확한 문장보다, 감각적인 문장을 즐기면서 내가 젊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환상은 상당히 일찍 깨졌던 듯 싶다. 산 송장과도 같았던 96년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봄이 왔을 때 난 더이상 감각적인 문장에 속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후로도 몇년동안이나 감각적인 문장을 흉내내는 버릇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지금도 버릇만큼은 여전하다) 감각적인 문장을 뛰어넘는 진짜 대가들의 세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던 듯 싶다. 물론 그 과정이 가슴의 멍이 지워지지 않는 고난의 시간을 전제로 하긴 했지만…

대가들이 세계는 복잡하지 않다.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작가들의 문체가 공통된 기호와 잡학이라는 두 가지 배경을 이해의 필수 요소로 삼고 있는데 비해, 대가들은 상식과 인간성이라는 쉬운 것들을 이해의 필수 요소로 삼는다. 대가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명 브랜드도, 특이한 음식 이름도, 특별한 밴드나 영화의 특정 시퀸스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 그저 주어진 상황의 주인공이 되어 내 상식과 본성으로 웃고, 슬퍼하면 그만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한가지 의문만 품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훌륭한 독자가 될 수 있다.

대가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특정 단어에 숨겨진 의도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길고 지루한 시소게임을 벌일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에 감동하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대가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려는 열정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대가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조급한 마음으로 결말에 접근하곤 했던 성마른 내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스타일리스트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30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결말을 읽고 싶어하는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힘겨워 했던 내가 말이다.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장 속의 주인공이 되어 넓은 이야기 속을 거닐 여유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대가와 스타일리스트를 구분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나에게 대가로 다가왔던 작가들이 타인에게는 스타일리스트인 경우도 있었고, 지독하게 유치한 문장으로 느껴졌던 스타일리스트의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상황에 딱 맞는 감동의 물결이었던 적도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 책 읽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책을 권하는 일이다.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늘 조심해야 해] 언제 부터인가 우리 세대의 책 읽기는 이렇게 변해 버렸다. 자신만의 대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유행이란 뜻 모를 기준이 세운 작가 리스트에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인다. 책을 권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만의 대가를 타인에게 소개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책을 소개하는 일은 우주 여행처럼 보기 드문 소망이 되어 버렸다. 대신 우리는 유행에 뒤쳐지기 않았음을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 감동을 공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수준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권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것이 아직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어느 사이엔가 나 자신도 우리 세대식의 책읽기에 포획당한 성난 짐승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2004/08/04 23:33 2004/08/0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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