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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7 소설가의 죽음 (2)
  2. 2008/06/30 Banality of Evil
  3. 2008/05/22 Crude Oil (4)
  4. 2008/01/15 Turmoil in the uncertain world (2)
  5. 2007/11/10 책(冊 or 責)
  6. 2007/03/06 Guide to Plutarch's Lives(Greek) (5)
  7. 2006/08/20 갤러리와 투어리즘
  8. 2006/03/10 어떤 독서론 (3)
  9. 2005/09/20 마음의 성배 (2)
  10. 2005/07/09 어떤 경매에 관하여
  11. 2005/06/28 Barriers to Entry (2)
  12. 2005/05/20 쉽게 쓰여지는 글
  13. 2005/03/29 바나나 전쟁 (13)
  14. 2005/01/21 Financial... (2)
  15. 2004/12/15 toploftiness of 'the humanities' (2)
  16. 2004/12/08 Our Dignity (2)
  17. 2004/11/20 혁명가의 초상 (5)
  18. 2004/11/04 Gresham's & Goldsmith's (7)
  19. 2004/10/21 Unconstitutionality
  20. 2004/10/14 <말하는 고양이>님의 복귀를 바라며 (12)
  21. 2004/09/13 Nevertheless (2)
  22. 2004/09/10 슈테판 츠바이크 (7)
  23. 2004/09/08 확장 재정정책의 우울한 그림자 (4)
  24. 2004/08/24 펜시브 혹은 블로그
  25. 2004/08/17 투기 & 짜릿함 (7)
  26. 2004/08/10 삼각 무역 (2)
  27. 2004/08/06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 Intro (2)
  28. 2004/08/04 대가 vs 스타일리스트 (6)
  29. 2004/06/19 컨설팅펌에 대한 단상 (7)
  30. 2004/06/06 경제 위기론에 관하여

소설가의 죽음

Posted 2010/09/07 00:24, Filed under: Column/Historical

 숫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요즘의 나에게 문학은 환상과 같다. 어느 사이에 문학은 손을 뻗어 붙잡고 싶지만 좀처럼 붙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름다운 문장에 환호하던 난 사라지고, 이제는 마음껏 써지지 않는 토해내면 보잘 것 없는 문장에 좌절하는 나만 남았다. 어린 시절 문학은 나에게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세상에는 감히 정복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내 지성뿐만 아니라 허영심 또한 자라났다. 하지만, 어두운 도서관의 서가를 정복하는 즐거움이 대제국의 황제가 되는 기쁨과 같다고 믿던 소년의 꿈은 달마다 차고 비기를 반복하는 월급 통장 사이에서 어느새 사치품으로 전락했다.


 달콤하고, 편안하고, 즐겁고, 안락하지만 문학이 없는 오늘의 내 일상에 던져진 낯선 소식이 바로 주제 사마라구의 죽음이었다. 내가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던 그 즈음에도 이미 노령의 그였던 만큼 죽음은 당연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 차가운 물과 벗하는 동안 블리문다의 아름다운 모습이, 하늘을 날기 위한 투쟁이, 모두가 눈이 멀어 버린 세상에서 눈이 멀지 못한 저주를 안은 한 여자의 삶이, 늘 소설 속 어디쯤 자리 잡고 있다가 종국에는 쓸쓸하게 죽어간 한 마리 개가 마음을 스쳐갔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내려진 결정이 우리를 만들어간다는 노작가의 인터뷰가 생각나 마음에 깊은 파문을 남겼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세상에는 쌓여가지만 대가다운 상상력과 필력을 이야기에 담아 삶의 본질을 함께 고뇌하고, 통찰을 제시하던 거장들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끝이 없으리라 믿었던 소설의 전성기도 이렇게 대가들의 소멸과 함께 끝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 삶의 이십대를 풍요롭게 수놓던 그의 작품을 기리며!

 

2010/09/07 00:24 2010/09/07 00:24

Banality of Evil

Posted 2008/06/30 22:14, Filed under: Column/Historical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 누구에게나 요즘은 '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만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란 인용문이 딱 알맞은 상황이다.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이든 간에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안개 속에 놓여 있다. 무엇이 옳고, 잘못되었는지 설명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느 설명을 들어도 속이 개운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난제 앞에서 모두가 어두운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요즘의 상황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실은 한국사회가 정말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사실이다. 그토록 다양한 입장과 생각이 수면 아래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다. 그리고 누구나 정의와 정당함을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것은 적당한 순도의 진실과 자기기만 혹은 자가당착에 불과한 불순물이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요즘의 문제는 19세기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나 다를 바가 없다.

폴 존슨은 모던 타임즈에서 양차 세계 대전 사이의 프랑스 사회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사회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논의가 불가능했던 이유를 각자가 다른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같은 사실을 보고도 서로 다른 사유체계 안에서는 그 의미가 달랐기에 원활히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은 오늘날의 우리나 같았다. 개개인이 지닌 태도는 신념을 결정하고 그 신념은 사유체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유체계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른 척할 수 있었던 이 사실을 더는 모른 척 넘어갈 수 없다. 요즘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지니고 있었으나 의식하지 못했던 정치적 태도를 각성했고 나와 같은 태도를 지닌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다른 편으로  편 가름을 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은 누구든 그가 감내할 수 없다고 믿는 야만적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고, 이웃과 친구의 낯선 표정과 마주하고 있다. 또 애써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전투가 벌어지는 내전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가 입은 상처는 내전이나 다름 없으며 이 상처는 영원히 치유할 수 없다. 우리가 적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과거 한나 아렌트가 표현했던 'banality of evil' 밖에 없다.

결국, 소소한 결론은 이렇다. 일단 다양한 정치적 인종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앞으로 서로 다른 정치적 인종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되는 기준은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에 따른다. political racism에 해당할 수 있는 발언은 삼간다. 설득하거나, 설득당하거나, 설명하거나, 논쟁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멋진 상대주의인가? 또, 이 얼마나 고결한 evil of banality인가? 우리 모두 이제는 '웃는 남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우아한가?

2008/06/30 22:14 2008/06/30 22:14

Crude Oil

Posted 2008/05/22 08:23,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유가는 날마다 신기록을 경신 중이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제3차 오일쇼크의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메릴 린치와 바클레이즈, 골드만 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유가가 $200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이는 시장에서 선물 가격의 상승을 주도했다. 지난달 읽은 한 기사에는 러시아의 석유생산능력이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고, 소비에트 시절 이후 제대로 된 시설 투자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러시아의 석유산업이 필요로 한 투자의 규모의 방대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화요일 FT에는 WTI가 $126에 접근한 기념으로 Peak olilist와 Non-peak olilist들의 의견을 정리한 분석 기사가 게재되었다.

사실 두 진영이 주장하는 바는 mb/d로 측정되는 석유생산능력이다. 과거 논의의 핵심을 이루던 가채년수는 양 진영에서 논의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셸의 지정학자인 휴버트가 1950년대 처음으로 Peak oil이론을 주장한 이래 석유의 생산능력은 꾸준하게 늘어났고, 채굴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유전의 탐사는 늘어나는 석유생산에도 가채년수를 꾸준히 유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논의에서 중요한 사항은 지난 20년 동안 새롭게 탐사 된 대형 유전이 드물다는 사실과 오늘날 석유 생산의 절대량이 오래전에 탐사된 대형유전에 의존하는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유전의 개발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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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의 예측이 틀렸다는 데 있다. 80년대의 그 누구도 중국이 세계경제로 편입되어 세계의 공장이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으며, 인도의 부상 역시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마오의 중국과 인디라의 인도가 소비에트 출신의 경제학자들을 영입해 만들어 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오늘날 워런 버핏을 능가하는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80년대 내내 유가는 이따금 요동을 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비록 절대 가격으로는 상승했지만 오일 쇼크 당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했다.

이는 신규 투자를 망설이게 하었고, 정치적 혼란과 왕정의 독재, 소련과 철의 장막의 붕괴는 과거 정부가 주도하던 개발과 신규 투자를 백지화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는 개발되지 않은 유전을 두고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선물이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몇 년 전까지 그 말이 단지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규 투자나 탐사가 지출은 늘리면서도 공급 과다라는 인상을 시장에 주어 석유 가격 하락시켜 왕실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도의 대규모 설비 투자나 신규 탐사 없이도 생산량은 꾸준하게 늘어났고 이머징 마켓의 수요증가는 생산증가로 이어지면서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에너지 산업을 통해 넉넉한 재정을 유지하게 해주는 요술램프 역할을 톡특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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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기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은 점차 말라가는 지도 모르며(사우디의 석유 생산은 북한의 핵만큼이나 외부에서 진실을 알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둘러 새로운 유전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래의 가장 유망한 석유매장지역인 오리노코 벨트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때문에 개발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Peak oilist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Non-Peak oilist들은 수평채굴기술이나 심해채굴기술의 발전을 고려하면 석유 생산량의 고점은 아직 멀다고 한다. 하지만, 고점이 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점이 먼 만큼 이머징 마켓에서의 수요도 덩달아 늘어난다면 고점이 멀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석유 가격 추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아도 중립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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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쪽이 옳으냐는 석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로서 4번째로 가장 많이 석유를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투자 문제와  탐사의 비효율성에 대하여 유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정부 처지에서는 석유생산이 고점에 이르렀던, 이르지 못했든 간에 2.3Mb/d에 이르는 수요에 걸맞은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절대 명제를 해결해야하고 고유가 시대에 걸맞은 경제구조와 생활습관을 체화시켜야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은 디트로이트 아래 묻혀 있다고 한다. 자동차산업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발전으로도 석유소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힘과 인간의 창의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난 인간을 믿고 싶다.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유전을 갖지 못한 우리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2.3Mb/d에 이르는 대형유전이 한반도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믿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교묘함과 위기를 이겨내는 맹렬함을 믿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테니 말이다.
2008/05/22 08:23 2008/05/22 08:23

Turmoil in the uncertain world

Posted 2008/01/15 15:12,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The matter of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
그린스펀의 FRB 의장직 임기 말에 터져 나왔던 논쟁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논란은 부동산 버블이 2006년 하반기에 붕괴할 것이라는 크루그먼의 독설과 endless booming을 믿는 듯한 그린스펀의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정책이 결국 부동산 버블을 키웠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겼으며, 경기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FRB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묵살된 채 새로운 의장이 취임했다.

사실 논란 이후 1년 동안 벌어진 상황 전개로만 보면 크루그먼의 예언은 틀렸다. 부동산 시장의 버블은 붕괴가 아니라 서서히 침체에 접어 들었으며 FRB의 정책 기조도 인플레이션 억제로 변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이름마저 생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학을 다니면서 2007년 이전에 이 종류의 상품을 교과서에서 본 것은 고작 네 번에 지나지 않았다. 파이 그래프에서 차지하는 위상으로 보자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상품만한 상품. 평생 교과서 밖에서는 실제로 접할 기회조차 없을 것으로 믿어졌던 상품이 2007년 하반기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서브-프라임 시장의 붕괴가 아니라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 그 자체에 있다. 이미 90년대 LTCM이 붕괴할 때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의 취약점은 뚜렷하게 노출되었다. 한 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structured asset이 다른 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다양한 파생상품이 흘러 넘치는 금융 시스템으로써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다시 말해 거래의 안정성은 쌍방 모두 거래를 청산할 의사와 실행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만 보장받을 수 있다. 상품 구조의 복잡성은 하나의 상품이 다수의 다른 상품과 결합됨으로써 보통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반면 포트폴리오 붕괴시 시장 비청산의 위험을 극도로 높인다)

결국, LTCM 사태 때는 뉴욕의 FRB의 주도하에 월스트리트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긴급구제금융을 실시함으로써 포트폴리오의 동반 붕괴를 막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그런 과단성 있는 결정을 할 인물이 없었다. 쉬쉬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붕괴의 여파를 축소하는 동안 이와 연관을 맺은 다양한 structured asset product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이 시점에서 포트폴리오 자체가 붕괴하었는지 이번 주의 구제금융으로 포트폴리오의 붕괴를 막았는지는 실적 발표가 나와봐야 확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이번 구제금융이 포트폴리오 붕괴를 막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계속된 연타로 시작된 대출혈을 막으려고 투입된 자금이라면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의 붕괴로 말미암은 금융 혼란은 비극의 서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SGA와 Northern Rock,  UBS등의 유럽계 은행마저 월가의 4/4분기 실적발표 이후 엄청난 손실이 예측되고 있는 참이다)

역사는 교훈적인 동시에 반복적이다. 스티걸-글래스법이 존재하던 시기. 상업은행은 저축대부조합 파동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상업은행이 붕괴하는 동안 투자은행의 제2의 전성시대가 도래했고 결국 스티걸-글래스법의 사문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부동산 상품에structured된 투자 포트폴리오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투자은행은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은 돌고 돈다.

The fantasy of emerging market
랜덤워크 마피아로서는 참 명목 없는 소견이지만 1700선 후반의 주가는 근시일에 1600선이 무너질 것 같다. 1700선 초반에서 환매 시점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하겠지만 증권사는 저가매수의 호기라든지, 장기투자의 관점을 운운하며 환매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다. 이머징 마켓은 미국이나 유럽 시장과 디커플링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소개와 함께 말이다. 아마도 인도 시장을 가장 좋은 예로 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관 투자가를 중심으로 외국인 매도를 떠받칠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저지선인 1700은 급격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바젤2 협약의 기준을 맞추고자 배당이 높으며 안정성이 높은 알짜배기 자산을 제외한 나머지 투자를 청산하거나, 포트폴리오의 붕괴를 막기 위해, 혹은 1/4분기의 실적 개선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글로벌 IB들은 2007년 동안 이머징 마켓에서 거두어들인 수익을 실현할 필요에 쫓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FTSE의 붕괴(DJI나 S&P500이 아니다)로 시장이 패닉에 빠질 경우 디커플링 경향의 강화라는 사탕발림은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가장 나은 방법은 외국인 매도세를 끝까지 막아낼 지속적인 자금투입이겠지만 이 방법으로는 현상 유지는 가능해도 수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개인의 처지에서 보자면 깨끗이 손을 털고 나오는 것만이 10%의 손실이 반쪽 펀드로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뭐 하지만 내 주변에야 간당간당한 월급 통장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대다수이니 그리 걱정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The serious problem: Raising price of the commodity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금융자산 붕괴로 말미암은 내수 시장의 위축 가능성도 중요하겠지만 소리 없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농작물 가격이야말로 정부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콩과 밀, 옥수수. 커피 모두 25년이래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이젠 감히 '로부스타같은 쓰레기 원두'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수준이다) 이는 밀가루와 사료. 과자류(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두부까지)등의 직접적인 가격 상승을 유발할 것이 분명하고, 이는 다시 육류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부추길 것이 확실하다. 전자 제품의 실질적인 가격하락과 공공 부문의 빗장이 오랫동안 감추어두고 있던 물가 정책의 실패는 이번 상승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는 서민 경제의 직격탄을 날릴 것이 분명하다.

펀드에 여유 자금을 굴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시장에 맡겨 놓아도 된다. 하지만, 자장면과 칼국수, 학교 식당을 애용하는 나 같은 가난한 학생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끔찍한 고통이 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 나쁜 사실은 이런 경향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라는 데 있다. 식량 자원을 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버린 중국. 미국 농업 시장의 판로가 식량 공급에서 바이오에너지 공급 등으로 다변화된 여파.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기상 이변은 올해에도, 내년에도 계속될 장기적인 추세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거참 걱정이다. 두부와 짜장면을 돌려 달라!

2008/01/15 15:12 2008/01/15 15:12

책(冊 or 責)

Posted 2007/11/10 22:23, Filed under: Column/Essay

18세기 산문집을 읽다 보면 유난히 책에 관한 언급이 많은데 특이한 부분은 그들이 책을 얻게 되는 경위다. 오늘날의 지적권 개념으로는 확실히 불법이지만 그들은 귀중한 책을 필사함으로써 자신의 서가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아마 당시의 글쟁이라면 인세를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현대의 전업 작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설가나 하는 일이라고 고개를 돌렸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신이 지은 책을 필사하느라 바쁜 사람들을 보며 득의만만한 웃음으로 인세를 대신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더욱이 한자 한자 세필을 들고 승두세자로 밤을 새워 필사를 하는 동안 만들어지는 것은 비단 책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용에 대한 이해와 비판 역시 '그 와중에 슬금슬금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고 잠시 상상해 본다.

물론 오늘날 18세기 방법을 답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질 세대에 태어난 우리가 무슨 인내심으로 한자 한자를 정성껏 필사하고 설령 그럴 인내심이 있다 하더라도 복사기보다 우리가 더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서적 우편보다 빠르게 신간을 구할 수 있는 이즈음와서는 책의 소유라는 개념 자체의 재정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과거의 책은 필사본이든 인쇄본이든 간에 꽤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리사 자딘의 『worldly goods』에 의하면 상업 혁명 이전에 백 권 규모의 장서를 구매하려면 중산층의 경우 년 수입의 1/4을 거의 평생에 걸쳐 지출해야만 했다고 한다. -저자에게 인쇄된 자신의 책을 주는 전통은 책이 그토록 비쌌기에 증정된 책 자체가 인세로써 충분히 기능 할 수 있었기 때문 확립되었다- 그렇기에 책은 신분의 상징이 되었고, 문자 해독력이 극도로 열악하던 시기에 치자와 피치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선이 되었다. 그 후 인쇄 프레스의 기술적 발전은 점차 서적 생산 단가를 낮추어 왔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전히 책을 소유하는 일이 -적어도 전 지구적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출판부와 옥스퍼드 출판부의 공인된 초판 인쇄 부수는 1,200부이다.- 책의 카테고리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세계의 영어권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놀랄 만큼 적은 부수이다. 페이퍼백의 범람에도 평범한 노동계층이 텔레비전 구매에 소비하는 생애지출보다 도서구입비가 적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문제다.

해마다 정월이 되면, 그리고 독서의 계절로 명명된 가을이 되면 서점과 책에 대한 특집 기사들이 쏟아지곤 한다. 비싼 책값과 왜 한국에는 페이퍼백이 없느냐는 불평. 대중교통에서 읽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불만과 원하지 않는 하드 커버 덕분에 생긴 거품이 싫다는 이야기까지 그 불만은 참으로 다채롭다. 여기에 책은 내용을 읽는 것이지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까지 겹치면 책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일주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니 먹물과 교양은 별개라는 논쟁은 논외로 두자. 그리고 한 번쯤은 나 역시 책에 대한 내 편견을 한 아름 늘어놓고 싶었다.

내가 과도하게 건장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은 신국판으로 제단된 하드커버쯤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채 돌아다닐 수 있고, 전공 서적 정도는 어디에서든 가벼운 마음으로 팔뚝에 얹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때다. 신국판에 이어 더욱 작고 가벼운 책이 오늘날의 출판 경향이라지만 난 아직도 묵직한 단위 중량을 자랑하는 미색 모조를 사랑하고, 도피지에 화려하게 인쇄된 표지를 즐긴다. 하드커버가 입혀진 사철제본을 좋아하는 것은 보관의 용이함 이전에 손에 잡히는 묵직한 느낌이 좋아서이다. 기실 사철제본이 필요할 정도로 책을 험하게 다루지도 않고, 서표가 필요할 정도로 기억력이 나쁘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스무 살을 넘은 뒤로는 책값에 대한 신경도 끊은 것 같다. 책값의 상승률은 지난 20년 동안 고작 +170% 내외였다. 같은 기간에 버스요금이 +2,000% 이상 인상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경이적이다. 게다가 헌책은 그 상승률이 더욱 미미해서 고작 +150% 내외이다. 경제적 풍요가 십 년을 기점으로 배수로 커지는 세대에 속한 나로서는 책값에 예민해지는 것이 곧 심력의 낭비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십 대의 내 구매력으로는 한 권 한 권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사들여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그 시절의 내 시간 가치는 책값에 한참 못 미쳐서 서점에서 서서 읽는 책들이 사들이는 책들의 몇 배수였다. 하지만, 요즘의 책은 향상된 구매력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예전과 다르게 종이 두름을 사들이는 일에 인색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사기 전에 한참을 망설이는 가격대의 책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 년에 고작 한두 권이니 그리 신경 쓸 일은 못된다.

8.5포인트로 시작한 내 독서 인생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크기의 활자는 9포인트이다. 내 서가에는 5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와 고작 500부도 팔리지 않았을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가끔 페이지 불리기에 당하는 책이 있으면, 필름값도 회수하지 못할 만큼 인기가 없지만 나에게는 사랑스럽기만 한 책들을 거저 줍기도 한다. 게다가 난 램지의 법칙이 책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원래 사는 사람이 적은데다가 사지 않고서는 못 배길 그런 책이 더 비싼 법이지만, 때로는 자긍심 하나 때문에 독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기 보다는 베스트셀러의 수익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출판사들도 많다. 그렇기에 첩첩이 서가에 쌓인 다양한 성격의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책과 페이지 늘리기, 비싼 제본마저도 귀여운 투정쯤으로 보일 때가 잦은 것은 아닐까?

난 흡연을 즐기지도 않고, 애주가지만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차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보온병에 그날 마실 '오늘의 차'를 준비해 다닌다. -그럴 여유가 되지 않는 아침이면 티백이라도 챙겨다닌다- 게다가 나에게는 시간과 애정을 요구하는 하는 어떤 이도 없다. 그렇기에 내게는 꼭 해야 할 일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할 충분한 여유가 있다. 기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가는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으로 내려가 책이 내뿜는 그 묘한 향기에 취해 보내는 멍한 시간이다. 또 지금껏 내가 살아온 공기는 책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지는 않아도 정서적으로 책을 아끼는 사람들이 내뿜는 향기로 채워져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세파에 찌든 고단한 삶만큼이나 책은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대화의 소재이다. 책이 없다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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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0 22:23 2007/11/10 22:23

Guide to Plutarch's Lives(Greek)

Posted 2007/03/06 19:20, Filed under: Column/Historical
신화시대:
  • 테세우스
형성기
  • 리쿠르구스
  • 솔론
페르시아 전쟁
  • 데미스토클레스
  • 아리스티데스
  • 키몬
펠로폰네소스 전쟁
  • 페리클레스
  • 니키아스
  • 알키비아데스
  • 리산데르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알렉산더 등장 이전까지
  • 아타르크세스2세
  • 아이게실라우스
  • 포키온
  • 펠로피다스
  • 티몰레온
  • 디온
헬레니즘 제국
  • 알렉산더
  • 데모스테네스
  • 에우메네스
알렉산더 사후
  • 데메트리우스
  • 피루스
  • 아라투스
  • 필로포에멘
  • 아기스와 클레오메네스
2007/03/06 19:20 2007/03/06 19:20

갤러리와 투어리즘

Posted 2006/08/20 20:29, Filed under: Column/Essay

2주 전 처음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관람 매너였다. 이곳의 관람 매너를 자유분방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계모임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요란한 한국의 관람 매너에 비해 절도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주가 지나자 이런 생각이 나의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중요한 것은 관람료의 경중이었다. 관람료가 비싸게 책정될수록, 접근이 어려울수록 관람 매너가 상승한다는 제2급 가격 차별의 예를 미술관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관람료가 비싼 전시회일수록 확실한 기획과 전문가의 엄격한 작품 선정이 뒤따른다. 사실 작품 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와 작품을 이해하는 눈을 얼마나 열어주느냐이다.  

영국의 많은 갤러리는 대체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갤러리들에서 제대로 된 감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새로운 미술의 역사'를 쓴 폴 존슨의 경고가 머릿속을 끊임 없이 떠다닌다.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걸작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다'  거대한 인파가 쉴새 없이 움직이는 갤러리에서, 더욱이 시간이라는 제약 조건 아래에서 그의 말을 실행에 옮기기는 대단히 어렵다. 결국, 갤러리에 갈 때마다 나의 좌절은 더욱 커진다. 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을 생각하며 초조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초조함도 따지고 보면 나의 불민함이다. 갤러리에 걸린 모든 작품을 볼 필요는 없다. 아니 시간을 정해 놓고 갤러리를 모두 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자체가 나의 문제다. 아마도 나에게는 남은 여생 동안 이곳에 올 기회가 꽤 많이 존재할 것이다. 엄청난 규모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은 이상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으며 한 번 들릴 때마다 이해의 폭을 넓히는 또 다른 재미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투어리즘의 대상으로서의 갤러리는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은 유럽 여행을 통해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건축물들을 바라보는 것들을 유럽 여행의 재미로 꼽는다. 솔직히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 역시 그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곳의 갤러리들은 투어리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투어리즘의 일환으로 갤러리를 찾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행동은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무료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가장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무지의 향연이다. 사람들이 갤러리를 찾는 이유는 낯선 땅에 와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보았다는 경험을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지난주에 브리티쉬 뮤지엄에서 난 내 나이보다 세 살 아래 정도의 건장한 청년 셋을 보았는데 이오니아식과 도리아식, 코린트식의 기둥 장식에 관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던 그 전시실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느낀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에 기반을 둔 지루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도리아와 이오니아, 코린트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 전시실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불만이었다.

문화지향은 오늘날 시대의 화두다. 하지만, 과연 양적성장을 위주로 이루어지는 문화지향이 올바른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경제적 풍요는(과거에 비해서) 문화 경험의 빈도와 범위를 넓혔지만 이해의 깊이까지 넓혔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2006/08/20 20:29 2006/08/20 20:29

어떤 독서론

Posted 2006/03/10 12:10, Filed under: Column/Essay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론이 주변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말대로 소설 따위는 읽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어린 벗을 보면서 문학이야말로 논픽션보다 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법이라고 설명하는 내 자신이 귀찮아졌다. 위대한 생각과 영혼을 낳는 것은 항상 허구라는 상상력에서 태어난 진실이다. 사실이 낳을 수 있는 것은 사실에 불과하다. 사실은 진리를 낳지 못한다. 하지만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1미터의 책과 5만엔 돈’이라는 인용구를 듣는 순간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식의 방대함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넓게 열린 접근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 자체가 생명력 없는 객체에 불과했던 때는 단 한순간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서론은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서론이 있는 만큼 경계해야 할 독서론도 있는 법이다. 어린 벗에게 무교양의 지름길을 안내하는 다카시의 독서론이 바로 그렇다.
2006/03/10 12:10 2006/03/10 12:10

마음의 성배

Posted 2005/09/20 15:52, Filed under: Column/Essay
레베르테의 검의 대가를 읽는 동안 조심스럽게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은 내 삶의 성배는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목표와 지향점을 조심스럽게 개진하도록 교육 받은 탓인지 나나 지인들은 하고 싶은 것. 추구하는 목표에 관해 늘 소극적이다. 우리는 야심차지만 야심이 야욕으로 보이지 않도록, 욕망에 담담한 모습을 보이도록 애써 군자연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현실에 잘 휘어져 목표와 지향점에 이르는 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랜 고민 끝에 고립된 한 인간으로서 추구하고 싶은 <마음의 성배>를 찾은 것 같다. 대략 3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파리아의 보물>이라 이름지은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등장하는 파리아 신부에 대한 묘한 동경을 품어 왔다. 감옥 안에서 에드몽을 변화시켰던 파리아가 기억이란 수장고 속에 꼭꼭 숨겨둔 그 책들은 어떤 것일까?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욕망하는 것처럼 덧없는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난 이 목록을 욕망한다.

사실 교양보다는 전문지식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에 <파리아의 보물>은 더 이상 가치 있는 성배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이 읽어야 할 100권의 책이라든지, 타임 선정 100대 도서등에 실망한 나로서는 지엽적인 지식과 고도로 복층화 된 사고 실험의 구조물이 아닌 사유와 경험이라는 교양의 두 가지 측면에 핵심을 맞춘 제대로 된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런 리스트는 너무 버거운 일이다. 나에게는 아직 파리아 신부의 연륜과 절박함이 없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뿐인데 그마저도 헤세의 <독서가>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달콤한 쾌락의 유용함을 깨닫고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할 따름이다.

또 다른 <마음의 성배>는 45년 이후 70년대까지의 한국의 기업을 다룬 책을 쓰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던 시기에 꽤나 많은 자료를 쌓아 놓았기 때문에 첫번째 성배에 비하면 조금 쉬운 일이다. 초창기 기업들을 주제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기업의 역사에 관해 조망할 어떤 학문적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양극단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기업의 역사에 있어 초창기는 역동적인 모험의 공간에 가깝다. 그들이 창업 공간에서 보여준 기법과 기술의 빼어남은 ‘한국의 재벌’이란 현재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해외의 많은 저술들 역시 한국 기업에서 특수성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일본 기업과의 유사성을 토대로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유사성을 토대로 우리를 파악하려 노력할 소록 왜 우리가 일본과 다른 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따지고 보면 계열사란 단어와 기업 집단인 그룹, 그리고 재벌. 이 모든 것이 오히려 실체를 가리고 있는 언어가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

(위의 단어는 모두 일본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 언론에 의해 수입된 경우다. 단어가 수입되면서 개념도 함께 수입되었다. 따라서 이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의 시공간에 대해 설명할 개념 어휘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 공간에서 일본 기업과의 유사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기업집단이 이머징 마켓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말은 수긍하지만 보편성에 대한 재정의는 필요하다. 기업의 규모는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마지막 <성배>는 동서양의 무역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졌던 동과 서의 무역가운데에서도 대항해 시대와 명은 내가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전문 연구가도 아니고 이 영역에서 갖추어야 할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속된 말로 편집본이 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어쩌면 내게 상아탑의 학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무역에 상업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고. 거래의 이익과 위험에 대한 통찰력이 내재해 있거나, 흘러갈 시간 속에 생겨날지도 모른다.

<마음의 성배>는 단기간에 끝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성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평생에 걸쳐 꼭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다. 물론 개인적인 목표는 사회적 목표에 치여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뒷자리로 밀려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마음 한편에 항상 <마음의 성배>를 담아두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 위안이다.
2005/09/20 15:52 2005/09/20 15:52

어떤 경매에 관하여

Posted 2005/07/09 07:35, Filed under: Column/Essay
김홍도의 화첩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 이야기를 학교에서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를 생각해 보았다. 지인의 반은 아예 무관심할 것이 틀림없고(아마 때때로 시작되는 나의 헛소리쯤으로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나머지 반은 매우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예술품이 지닌 아름다움을 경외하지만 그렇다고 예술품이 지닌 상품성을 무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화첩은 그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화첩에 담긴 섬세한 필치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예술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다. 한국이라는 시장 특성상, 더구나 세무조사의 칼날이 서슬 퍼렇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고액의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은 세무조사를 자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미술품 시장의 밀수 시장은 보다 양질의 예술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굳이 세무조사의 표적이 되면서까지 공식 거래를 할 개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밀수가 가격 왜곡을 일부시정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응찰에 개인이 나설 수 없다면 남은 것은 미술관 같은 공적 단체뿐이다. 하지만 10억원이란 가격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미술품 구입 예산의 야박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10억이란 예산으로 효과가 불분명한 작품 하나를 건져오는 것은 담당자로서는 목을 내놓고 하는 가장 위험한 도박이다.

미술 상품은 저량으로서의 가격과 유량으로서의 가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 시장에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을 경우 예술품의 가격은 통상적으로 감정액과 보험에 의한 보상액으로 평가된다. 경매에서 낙찰 받은 가격이 공적인 수단을 통해 확인된 저량이라면 당사자간 직접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은 유량이다. 문제는 미술상품 역시 하나의 가치 축적 수단으로 거래되는 이상 이익실현을 위한 환금성(다시 말해 수요와 기대수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을 숙고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전통 한국 회화의 수요는 전세계적으로는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 청화백자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08만달러에 낙찰되었던 전래(96년에 882만 달러에 낙찰된 철화용문 백자항아리의 전래도 있긴 하지만)로 보아 도자기에 비해 세계적 수요가 그리 높지 않은 전통 한국 회화가 비슷한 가격 수준에서 경쟁을 벌이기를 희망하는 것은 헛물켜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14세기 고려불화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22억원 선에서 낙찰된 케이스가 한국 회화가 세계 시장에서 가장 고가에 팔린 경우다. 박수근의 겨울이 57만달러에 낙찰된 것을 고려하면 김홍도의 명작이 아닌 이상 최소 응찰가 10억원은 웃자는 소리에 불과하다)

김홍도가 우리의 자부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자부심으로 남으려면 그것은 애초에 경매 시장이 아니라 박물관에 있었어야 했다. 경매 시장에 나온 이상 철저하게 시장의 룰에 의해 평가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경매 진행자는 홍보면에서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역으로 수익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깨달아야 한다. 경매에 실패한 미술품이 성공적으로 재기한 경우는 매우 드물며, 세상에 존재가 알려진 미술품의 거래는 당국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그리고 경매에 실패함으로써 그는 되려 우리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다.

경매에서는 두 가지 묵언 협상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경매자와 응찰자 사이의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협상, 응찰자들 사이에서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협상. 하지만 두 단계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전자가 후자에 선행되어야 한다. 응찰자와 실패한 협상에 과도한 홍보를 첨가함으로써 경매인은 향후 한국 회화 미술품의 가능성을 10억원이라는 극점 아래로 고정시켰으며 아울러 시장의 신뢰도 잃었다. 우리가 잃은 것이 비단 자부심만이 아닌 현실이 무척 씁쓸하다.

P.S.

2005/07/09 07:35 2005/07/09 07:35

Barriers to Entry

Posted 2005/06/28 20:48, Filed under: Column/Essay
리더기를 읽다가 mi-ring이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작 스물 다섯 남짓인 내 리더기의 소스를 고려해 볼 때 관련 포스트가 십여 개가 넘었고, 이 정도면 무언가 정말 특별하고 재미난 책이 출현했을 때를 능가하는 반응이었다. 사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결국 난 또 다시 호기심의 노예가 되었고 mi-ring이 무엇인지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가입 조건이 까다로웠다. ‘여성주의, 소수자 운동에 동의하거나 이를 지지하는가’ 라는 물음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남성주의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로 난 여성주의에 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여성주의 경제학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여성주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여성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전적 정의에 가까운 뜻조차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모른다는 말이 정답에 가깝다)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에 관해서, 깊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문제에 관해서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한 넌센스이다. 더욱이 아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아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지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다. 마음은 선뜻 지지를 표명하지만 판단을 마음에 맡기는 것처럼 화를 자초하는 일은 없다. 결국 난 첫번째 난관을 넘지 못하고 페이지를 닫아야만 했다.

초등학교를 제외한다면 난 여태 남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교내의 단 한명의 여성도 있지 않았던 완벽한 금녀의 구역이었고, 사발식과 FM이 존재하는 대학 역시 남녀공학 이라기보다는 남학교에 가까웠다. 아니 복학을 하게 된다면 그때쯤에는 허물없는 친구들은 모두 졸업한 다음이니 사실상 남학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마초이즘의 숭배자냐고 묻는다면 난 아마 고개를 절래 흔들 것이다. 나에게는 승냥이 같은 녀석들에게서 지켜야 할 누이가 셋이나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에 평생 괴로워야 할 지인들의 반이 여성이다. 마초 Y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저질 농담이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가 한동안 피곤한 학교 생활을 감수했으며, FOB같은 접대를 지칭하는 농담에 웃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혐오하는 것이 근거 없는 남성우월주의인지, 아니면 질 나쁜 폭력인지 아니면 마초이즘인지 난 구분할 수 없다. 사실 난 남성우월주의에 관해서, 혹은 마초이즘에 관해서 한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비슷한 이유로 여성주의에 역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며, 이들 사이의 관련성과 방향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난 근본적으로 모든 차별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차별이 남자와 여자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다수와 소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모든 관계 맺음은 차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타심에 대한 동의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기적인 나로서는 이런 이타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실질적인 이타심 차원에서 부조리한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나 역시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추상적 이타심과 실질적인 이타심의 구분은 무척 애매하다. 결국 ‘여성주의, 소수자 운동에 동의하거나 이를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은 나처럼 제대로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현재의 삶에 만족합니까’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부조리한 차별에는 반대하는 여성주의, 소수자 운동에 동의하거나 지지하는가’ 라고 질문마저도 ‘부조리한’ 이란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의미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첫번째 관문에서 내가 좌절했던 이유는 단지 잘 몰랐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닌 것 같다. 난 그것에 대한 동의가 진심이 아닌 진정한 선호를 숨기는 전략적 의사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예의 바르고, 멋진 인간상에 근접하려면 요즘의 남성들에게 약자에 대한 배려는 필수다. 하지만 그 배려가 진심이 아닌 전략적 동기에서 연원하는 것이라면 솔직히 막 나가는 무뢰배보다 더 나쁘다.

오랫동안 형성된 습관과 지속적인 교육은 의지를 숨기는데 최적의 도구다. 때로는 의지가 너무 잘 숨겨져서 그 태도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난 끊임없이 지금 내가 전략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첫째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아느냐의 문제고, 두번째 문제는 그것이 과연 내 진정한 선호인가에 대한 문제다.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아도 난 ‘다수’에 속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쩌면 그 ‘다수’ 안에서도 이너 서클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소수를 이해한다는 말은 고양이가 개에 관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발언이란 생각이 든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결국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관해 동의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행동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조건 반사를 보인다. 어떤 의무감이랄까? 그것이 내 본성에 기인한 것인지 사회적 훈련과 기대에 의해 학습된 것인지 모른 채 무언가 행동으로 옮겨야 할 초초함에 쫓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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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8 20:48 2005/06/28 20:48

쉽게 쓰여지는 글

Posted 2005/05/20 06:54, Filed under: Column/Essay
장정이 닳은 오래된 책들과 만날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모든 것이 참 쉽게 쓰여지는 시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터넷 검색의 강력함은 관련 자료를 찾아내는 번잡한 작업 없이도 손쉽게 한 편의 글을 만들어 내고, 워드프로세서의 편리함은 노력해서 만들어낸 창작물보다 조합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시대 안에 갇힌 존재로서 흐름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나로서는 감내할 수 밖에 없다. 가끔은 이득을 보고 가끔은 손해를 보면서 그렇게 감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은 쉽게 쓰여지는 시대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하곤 한다. 사람마다 그 감내할 수 없는 순간들이 다르겠지만 난 신문 기사에 쉽게 흥분하곤 한다. 읽지도 않은 채 쓰여진 서평과, 보지도 않은 채 쓰여진 평론, 고작 몇 장에 불과한 팜플릿을 토대로 쓰여진 보도 기사들. 이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가벼워진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에 분노가 치민다.

휴학을 하기 전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들은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원고지 한 장에 4시간 이란 수십 학번 차이가 나는 선배의 충고였다. 제대로 된 기자란 하루 종일 일해도 원고지 여섯장을 쓸 수 없다는 그분의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책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비단 기자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쓰는 동안 사람들은 쉽게 쓰여지는 글과 제대로 쓰여지는 글 사이에서 고민한다. 쉽게 쓰여지는 글은 원고지 40매에 해당되는 대판 1면을 반나절에 쓸 수 있다. 제대로 쓰여지는 글의 경우 같은 분량을 쓰기 위해서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반나절과 일주일이란 시간차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완성도보다 효율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가벼워진 기자의 이름에 분노하지만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의 엄격함과 냉철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기사가 소설가의 작품처럼 펜의 탄력을 받아 허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쉽게 쓰여지는 이 시대에 함몰되어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초심을 잃어버린 그네의 자화상이 매우 씁쓸하다.
2005/05/20 06:54 2005/05/20 06:54

바나나 전쟁

Posted 2005/03/29 07:21,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크루그먼씨의 국제경제학을 읽다가 <바나나 전쟁>과 조우했다. WTO 체제의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무역 분쟁으로 불리는 이 사건과 마주칠 때마다 난 학교에 입학조차 못했던 먼 옛날로 되돌아가곤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와 난 시장을 걷고 있었고, 그날 따라 난 바나나 노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네쪽들이 한 묶음에 3천원이라는 중량당 가격으로는 쇠고기보다 비쌀 그 과일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국 난 아버지를 졸라 획득한 전리품이 담긴 종이봉투를 의기양양하게 집어 들었다.

하지만 수십 미터도 가지 못해 사단이 벌어졌다. 껍질을 벗기던 바나나가 땅에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바나나의 가치를 모르지 않던 난 시장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를 얼른 주어 들려 했다.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을 탐하는 마음에서 가 아니라 비싼 과일이 아까워서 였다. 아버지는 조용히 땅에 떨어져 더럽혀진 과일을 먹어야 할 정도로 우리가 형편없지 않으며 바나나의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한들 자부심보다 높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난 말뜻을 알아 들었고 정말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나쳤다.

사실 바나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도 바나나가 듬뿍 나오는 과일 안주를 만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 가게주인의 손이 크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런 무의식적인 호의는 오래지 않아 바나나는 더 이상 절대 비싼 과일이 아니라는 현실적 판단에 덧칠을 당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레드망고에 갈 때면 바나나 토핑을 얹어야 포만감이 드는 바나나에 대한 심리적 허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바나나에 대한 허기는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철의 장막 안에 속해 있었던 구동독인들에게 바나나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들에게 바나나는 당간부들에게나 허락된 중남미의 사치품이었고 통일 이후 시장에 공급된 바나나는 어느 순간 정치적 재화로 그 위상을 높였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간의 바나나 전쟁이 있기 전에 독일과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는 바나나 전쟁의 전초전이 벌어졌다.

카리브해의 식민지 사회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의 식민지산 바나나를 보호하기 위해 저렴한 중남미산 바나나에 고율의 관세를 물렸고(정확하게는 수입할당제), 독일에서는 정치적 재화로 변한 바나나의 시장 가격을 최대한 저렴하게 유지함으로써 구 동독인들의 마음을 달래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영국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전초전은 관세동맹(유럽의 바나나 의정서)을 앞세운 프랑스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과의 바나나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패배로 결론이 났다. 결국 오늘날의 구 동독인들은 우르과이 라운드의 타결 이후 우리가 저렴한 바나나를 먹게 된 것처럼 가장 싼 값에 마음껏 자유의 선물을 향유하게 되었다.

사실 바나나 전쟁은 무역론이나 국제경제론의 작은 글상자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그리 크게 주목 받은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 쇠고기보다 비쌌던 바나나의 가격과 오렌지와 메론, 파인애플과 키위에 대한 동경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난 생크림 케익 위에 올려져 있던 이국적인 과일이 선사하던 풍요로움을 상상하며 생일을 맞던 세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기억만큼이나 자유주의 무역과 경쟁 체제가 가져다 준 선물을 늘어가는 생일 케이크의 촛대만큼이나 분명하게 느끼며 성장했다.

오늘날은 내가 시장 바닥에 떨어트린 바나나로 고민했던 그 시기에 비하자면 분명 많은 의미에서 자유화되었다. 하지만 자유화의 선물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역의 자유화가 낳은 많은 이점들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사회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무역의 자유와 경쟁 체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던 쾌락을 기억하고 그것을 하나의 신념으로 받아들인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별종이 되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자유화가 가져 다 준 쾌락을 넘어서 또 다른 가치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과 쾌락의 이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여전히 경쟁 시스템과 무역의 자유화이다. 우리가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2005/03/29 07:21 2005/03/29 07:21

Financial...

Posted 2005/01/21 08:06,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오늘날 금융업은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아니 빠른 움직임만큼이나 흥미로운 관찰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금융업은(혹은 징세업자-푸블리카누스-의 입찰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업이 되어버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현대 산업 사회는 자본의 사회이고 자본이 낳은 적자는 금융 산업뿐이라고 해도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본의 적자인 금융 산업은 어떤 자식들을 낳았을까?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산업은 많은 자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보험업, 상업 은행, 투자 은행, 투자 운용, 증권사 등.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인가 금융 산업은 왕좌를 빼앗길 거라는 예언을 받은 크로노스처럼 자식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지난 십년 동안 인수와 합병은 광범한 범위에서 이루어졌고 90년대 초반에 존재했던 기업을 찾기 위해서는 현생 인류의 게통도보다 배는 복잡한 도표가 필요하다. 아니 왠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복잡해진 기업의 이름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여의치 않다.

아니 여의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렵다. 불과 십년 전에 출간 된 목록에 존재했던 financial corp.의 반은 오늘날 흔적조차 없다. 기업 수준이 아니라 영업 부문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복잡함은 배가 된다. 기업은 버젓이 살아 있지만 영업 부문을 팔아 넘기거나 인수함으로써 내용이 달라진 기업들이 도처에서 출몰하기 때문이다.

체급 올리기 혹은 몸집 키우기
하지만 이런 복잡한 움직임에도 일정한 법칙은 있다. 일견 복잡계처럼 보이는 금융 산업에도 고전 물리학의 F=ma나 F=μmg 필적할 만한 법칙이 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복싱에서 체급 불리기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체급이 더 나갈수록 펀치의 세기가 강해지며 맷집도 좋아진다. Financial corp.들이 M&A를 통해 규모를 늘리는 것도 알고 보면 공격력과 맷집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Financial Corp.들에게 이런 고육지책을 강요했을까?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고,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제압한다]란 말이 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칙가운데 하나인데 금융 산업에서만큼은 이 법칙의 절반 밖에 통하지 않는다. 빠른 것은 좋지만 가벼운 것은 적에게 제압당하기 딱 좋다. 설령 제압당하지 않더라도 경기 변동이란 거센 폭풍우 속에서 가벼운 것은 쓸려가기 십상이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다시 말해 스티걸-글래스 법이 미국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반세기동안 금융 산업은 평화를 만끽했다. 다소간의 경기에 따른 변화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당시의 진폭은 웃어 넘길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주택 채권과 관련된 상업 은행의 대몰락 이후 달라졌다.

상업 은행은 그 동안 짭짤한 수입을 올렸던 주택 채권 시장의 위험성을 다시 평가했고, 주택 채권 시장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상업은행의 주력 부문인 소비금융만으로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슬금슬금 무너지던 양자간의 경계는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사라져 갔다. 신경제의 버블과 함께 투자 은행은 두둑한 수익을 거두었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장에 접근한 상업 은행들도 적잖은 수익을 챙겼다.

하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몸집이 아닌 빠르기로 승부를 걸었던 투자 은행들은 손실을 견딜 맷집이 부족했고 투자 은행에 맷집(다시 말해 여신)을 지원했던 상업 은행들도 투자 은행들의 도산과 함께 쓰라린 손실을 보았다. 투자 은행은 기업금융 혹은 투자 금융이 높은 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그만큼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했고, 경기 변동에 따른 진폭을 견디기 위해서는 소비 금융이란 안전판을 보유할 필요성을 느꼈다.

상업 은행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수익성에 대한 주주들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여신 지원 같은 간접 투자 방식이 아니라 위험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직접 투자 방식을 고려하게 되었다. 무차별적인 몸집 불리기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은행의 핵심 전략
우리 나라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 대신에 소비 금융과 기업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형식이 아닌 내용의 차이가 존재하는 은행들이 있었고 이들은 최근 10년 동안의 외환 위기와 경기 후퇴를 경험하면서 현실에 눈을 떴다. 막대한 부실 채권으로 은행들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면서, 또 기업 금융보다는 소비 금융을 전문으로 했던 은행들의 높은 수익성과 건재를 보면서 은행들은 가계 금융이란 맷집을 키우기로 전략을 변경했다.

국민 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M&A이후 은행들은 인수와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렸다. M&A를 통해 고객에게 전방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모토와 다르게 은행권의 속내는 경기 진폭을 막아줄 맷집과 수익성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다시 말해 다각화와 대형화만이 살 길이라는 데 시중 은행들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이런 상황 인식은 충분한데 실행 방법에는 걸림돌이 많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대세인 것은 알지만 M&A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책과 관행, 타성적인 조직이 문제다.

정책과 관행, 타성적 조직의 삼중고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은행간의 M&A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공적 자금이다. 독자 생존이 가능할 만큼 체질이 강한 은행, 다른 은행을 인수할 만한 능력을 갖춘 은행은 지난 몇 년간의 활발한 통합에도 불구하고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인수할 만한 대상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부가 대주주로 남아 있는 부실 은행들을 인수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의 투입은 시장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선택에 가깝고,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보다는 정치 논리나 여론의 향배에 관심을 기울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에서 명백하게 들어 난다. 이른바 부실 은행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일관된 원칙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대처했을 뿐이다.

이런 예측불가능성은 국내 은행에 의한 M&A 가능성을 낮춘다.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은행 문제에서 시장 지향적인 협상력을 가지고 M&A를 성사시킬 수 있는 국내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이상 정부의 협상력도 국내 은행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협상력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은 국외 자본 뿐이다.

두 번째 문제는 관행이다. 모든 산업이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날 일반론에 가깝다. 하지만 금융 산업의 경우 이런 일반론은 다른 산업에 비해 특수화된 일반론에 가깝다. 정책에 영향을 받을 뿐더러 다른 산업에 비해서도 더욱 크게 받는다. 정부는 법령이외에도 각종 금융감독기관을 통해 금융 산업에 폭 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근래 들어 정부는 관치금융이란 오명을 벗으려 노력 중이기는 하지만 관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은행장 인선에서 아직도 정부의 입김은 무시 못할 정도로 강하며, 은행의 주주권은 걸핏하면 무시 받기 일수다.

금융과 일반 산업, 소유와 지배의 분리라는 원칙은 명백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책 안에 내재되어 있다. 해마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는다는 정부 정책의 메인 프레임이 변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반창고 수준 이상으로 올라갔던 적도 없다. 굳어진 메인 프레임은 관행을 고착화 시키고 변화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사실 현재의 메인 프레임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도 없다.(금융지주회사법은 메임 프레임의 구조 변경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재된 원칙은 그대로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은 현재의 메임 프레임을 유지하고, 보완하려는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하는 금융 산업의 흐름에 어울릴 만한 원칙의 변경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 보인다.

마지막 문제는 은행 내부의 타성적인 조직 문화다. 전통적으로 은행 조직은 보수적이고 신중한 문화를 유지했다. 게다가 각 은행에 따라 고유한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외부인에 대한 벽이 두터웠다. 이런 은행 내부에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위계 서열과 지점망을 중심으로 성장한 조직 문화와 영업 전략은 사업 부문 단위로 광역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

사실 오늘의 은행이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이면에는 내부의 조직 문제와 외부의 조직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내부의 지점망과 사업 부문의 조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이 첫번째 이고, 두 번째는 서로 이질적인 조직 문화에서 성장한 구성원들 모두가 수긍할만한 원칙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권의 보수적인 인사시스템은 순혈주의 인사 원칙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은행 시스템은 기업 금융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예치고객을 늘리면 수익이 늘어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인력은 다각화와 대형화를 위한 M&A를 성사시킬 전략과 조직 문화의 전문가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은행 문화는 이런 인력들을 내부 시스템에서 키워낼 역동성이 항상 부족했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협
벽두에 있는 SCB의 제일은행 인수 이후 외국계 Financial Corp.와 시중 은행간의 경쟁은 인구에 명백하고도 실존하는 위협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은 신년사에서 공격 경영과 몸집 불리기를 경쟁적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표어와 다르게 올해 안에 시중 은행간의 인수합병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시중 은행에게는 표어를 현실화 시킬 인력과 자원이 없다. 지금의 시중 은행은 숨 고르기가 아직 덜 끝난 상황이다. 적어도 올 하반기에 이르러야 겨우 숨 고르기를 끝내고 확장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숨 고르기가 끝나도 상황은 국내 시중 은행들에게 유리하게 흐를 것 같지는 않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관행, 조직의 삼중고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들을 극복하고 외국계 은행과 맞붙을 무렵이면 이미 경쟁은 극도로 심화될 것이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외국계 은행의 진출로 고금리와 낮은 수수료라는 호재를 누릴 수 있겠지만 은행의 수익성은 악화될 것이고, 지금껏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기업의 고급 정보도 외국계 Financial Corp.에 손쉽게 유출될 것이다.

게다가 이 싸움의 끝에 공존은 없다. 공존을 위해서는 금융 시장의 과점화가 용인되어야 하고, 이것을 막기 위해서 무한 경쟁을 허용하면 국내 은행은 존폐를 보장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선진 자본 시장과의 밀접한 동조화는 경기 변동성의 낙폭을 증가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이래 저래 상황은 어렵다. 하지만 해법은 찾는 것은 상황보다 더 어렵다.

P.S.

2005/01/21 08:06 2005/01/21 08:06

toploftiness of 'the humanities'

Posted 2004/12/15 00:05, Filed under: Column/Essay
개인적으로 <인문학의 서재>라 약칭하는 블로그에 가면 꽤나 재미있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서평 주제로 고른 책 가운데 상당수는 익히 읽어온 것이고 그 가운데 어떤 책들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서평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책을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시각차에 놀라게 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문학적 교육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똑같은 텍스트를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구나. 나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이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이래서 인문학이 배고픈 학문으로 오해받는 것이었구나. [입은 거칠지만 행동은 젬병이다]라고 인문학을 혹평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그런 혹평에 반감을 가졌는데 오늘의 나는 그의 의견에 슬금슬금 긍정을 표한다.

담론은 항상 필요하다. 철학의 부재가 안타까운 세상을 살고 있기에 철학적 담론과 사유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항상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담론은, 실행력을 겸비하지 못한 담론은 결론 없는 소설처럼 공허하다. 단지 최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차선을 포기하기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물론 <차선의 역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아는 인문학 교육의 밑바탕에는 <차선>의 인정도 <차선의 역리>도 없다.

사실 오늘의 인문학이 설정하고 있는 최대의 적은 자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이 최선의 아니라는 사실은 잘알고 있다. 어쩌면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에 해당될지 모른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론 없는 담론을 양산 하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최악이라면 차악을 보여달라. 인문학이 차악을 발명해낼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문학이 발명해 낸 것은 형체조차 흐릿한 발명의 그림자뿐이었더라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어쩌면 이런 내 글이 상식 없는, 혹은 생각이 없는 글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화의 여지조차 막아 놓은 답답한 글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인문학이야말로 대화의 작은 여지조차 막아 놓은 오만한 학문이다. 그들은 인문학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인문학의 단어와 용례를 사용하며 타 영역 고유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은 비난의 기미라도 보이면 그들은 교양으로서 지니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진짜 현실과 마주하기보다는 현실로 의제된 현실과만 마주한다. 인문학의 언어로써 다룰만한 가치가 없는 현실은 현실이 아닌 것으로 부당한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인문학이 교양이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더 이상 인문학은 모든 학문을 이해하는 기본 언어가 아니다.

가령 경영학이나 경제학의 영역에서 이런 농담을 던진다고 생각해 보자. [솔로우에게는 저축이 미덕이겠지만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저축은 악덕에 가까운 것이다] 사실 이 명제 하나를 위해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심지어 지금도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저축과 소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정책의 핵심부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사항인데 인문학은 [소비의 시대를 비판한다]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그렇다면 저축은 좋은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대답이 없다. 그저 나쁘지 않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을 뿐이다. 수 백년 간의 논란,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찾기 위해 사유한 공든 노력이 인문학의 언어로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사실 난 인문학을 좋아한다. 하지만 인문학의 언어로 다른 모든 영역을 이해할 수 있다 믿는 오만함만큼은 버려줬으면 좋겠다. 앞에서 설명한 예처럼 인문학과 다른 영역은 같은 단어라도 서로 다른 체계와 관념을 표상 한다.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어머니로 군림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이상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인문학이 진짜 현실에 적응력을 지닌 진짜배기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사실만을 현실로 의제하는 그 못된 버릇 먼저 버러야 한다. 아니 인문학이 보기에는 당연한 어떤 사실이 우리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인문학에서는 당연하지 않는 문제에 귀 기울여 줄 이유가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인문학의 울타리에서 인문학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다른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고유성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인문학의 새로운 발명에 목말라 하는 것처럼 인문학도 타 학문의 발명과 발전에 목말라 해달라. 인문학의 위기, 혹은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의 개방성이다. 우리는 인문학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왜 어째서 그들은 다른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아니 이해하면서도 외면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인문학의 순수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문학은 인문학만의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시대에 맞은 인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은 조금 더 진창을 구르고 조금 더 잘 놀아야 한다. 순결성 따위에 얽매여 고고하게 늙어가는 인문학은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인문학의 빈곤, 발명의 부재 이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비롯된 것임을 직시할 때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2004/12/15 00:05 2004/12/15 00:05

Our Dignity

Posted 2004/12/08 22:22, Filed under: Column/Historical
Caesar his de causis quas commemoravi Rhenum transire decreverat; sed navibus suae neque satis tutum esse arbitrabatur, neque suae neque populi Romani dignitatis esse statuebat.
Caesar. Gallic War, L4, 17

For the reasons above mentioned Caesar had decided to cross the Rhine; but he deemed it scarcely safe, and ruled it unworthy of his own and the Roman’s dignity, to cross in boats

But, Our P.....
2004/12/08 22:22 2004/12/08 22:22

혁명가의 초상

Posted 2004/11/20 00:19, Filed under: Column/Essay
사람은 누구나 혁명을 꿈꾼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혁명을 잊는다. 역사는 수많은 인물을 낳았지만 빅토르 위고 같은 예외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혁명을 잊어간다는 법칙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내 의식 속에 혁명이란 불온한 것 혹은 열역학 2법칙에 위배되는 가역 현상으로 이해된다. 혁명이 낳는 것은 더 큰 혼란이며 의도는 저엔트로피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실제 혁명이 낳는 것은 급격한 엔트로피의 증가뿐이다.(혁명의 층위가 쌓일수록 더 큰 물결의 엔트로피 증가가 일어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사실이지만 난 혁명을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혼란과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굳이 열역학 법칙을 변용 했다. 혁명을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흘린 피가 혁명 그 자체에서 흘린 피보다 많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귀찮음도 한 몫을 했다. 사람은 저마다 꿈꾸는 혁명의 정의가 따로 있기에 혁명에 대한 정의는(응용하면 그것은 정당성이 된다) 혁명 그 자체보다 더 큰 혼란의 원인이 될 태생적 숙명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난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새로운 세상이라는 환상보다는 붉은 피 냄새를 더 또렷하게 맡는 그런 전공을 택했고 습관보다 더 무섭다는 전공에 물들어 이제는 혁명을 감히 불온한 것이라 생각하며 피한다. 혁명이라는 단어 대신에 혁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혁명 와중에 나타났던 진짜 반혁명은 파리를 휩쓸었던 배금주의라 생각한다.(쿠바 혁명의 반혁명은 빈곤이겠지…) 최초의 공산당 선언을 쓴 혁명가를 억만 장자로 변심 시킬 정도로 혁명의 끝은 허무한 것이라 생각했다. 바로 사흘 전까지 말이다.

사흘 전 urbino님의 블로그에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한 포스팅을 읽었다, 그리고 lunamoth님의 스크래치 페이퍼에서 앙드레 말로의 그 유명한 사진과 96년에서 97년으로 넘어가던 삶의 혁명기에 내 일기장에 적혀 있던 문구를 발견했다. 흥미로움이 불러 일으킨 호기심이 가라앉으면서 머리 속에는 혁명가의 초상이란 단어가 맴돌기 시작했다.

머리 속을 맴도는 이미지를 따라 고개가 돌아갔다. 책꽂이를 관찰해 보니 반경 50센티 미터 안에 인간의 조건과 디스커버리 시리즈로 나온 앙드레 말로에 대한 전기, 그리고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이 보인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크세주 시리즈가 보이고 레닌의 평전도 보인다. 혁명에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면서도 표리부동한 내 책꽂이의 묘한 구성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런 놀람은 이내 어린 시절 꿈꾸었던 혁명가의 초상을 일깨웠다.

혁명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초상은 <인간의 조건>에 등장하는 기요와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국제여단에서 활동하던 게르다 타로라는 여성이다. 하지만 난 이들을 인물이라 평하지 않고 초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기요는 앙드레 말로가 상상해 낸 혁명에 대한 문학적 초상이었고 게르다 타로는 사진 한 점. 그녀에 받쳐진 짧은 헌사 외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당대인들의 짧은 단편에서나 겨우 그림자처럼 들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배를 문 체 게바라의 유명한 사진보다도 게르다 타로의 사진은 한층 강렬하다. 청산가리를 놓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요는 이해하기 어려운 혁명가가 아니라 나와 같은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방금 생각난 것인데 밀란 쿤데라의 이별에 나오는 한 알의 독약은 어쩌면 이 청산가리에 대한 오마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연성과 필연성을 겸비한 독약이라는 점에서는 더 뛰어난 장치지만) 검정 베레모를 쓴 채 내전의 한 가운데에서 잠든 게르다의 평온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무엇을 꿈꾸었는지 궁금해진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사이에서 그녀가 꿈꾼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까?

역사적으로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범위에 한정시켜 본다면 스페인 내전의 궁금적인 승리자는 공화파다. 그런데 이런 승리가 바꿔 놓은 현실은 아무것도 없다. 혁명가는 필연적으로 이상주의자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상은 현실과 타협하고 슬굴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이래서 혁명가의 초상은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어쩌면 몇 세기 후의 역사가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은 체의 사진이나 게르다의 사진 속에서 당시의 시대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혁명이 보편 정서가 된 적은 없다. 그래서 혁명가는 뒷그늘에는 좌절이란 그림자가 뒤따라 다닌다. 혁명가는 외로운 직업이고 고독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들은 꿈이 있기에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고독한 혁명가를 발견하기 어렵다. 고독한 혁명가 대신 수많은 지지자들을 거느린 현대판 사보나롤라들이 광신을 퍼트린다. 그리고 어느사이엔가 광신이 혁명을 대체하고 고독한 혁명가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되려 타락한 선동가가 외로운 혁명가로 둔갑한다. 참 슬픈 세상이다. 그래서 혁명과 광신을 구별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혁명의 정의도 혼탁해진다.

난 혁명을 싫어한다. 하지만 혁명가가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동가의 광기는 분명 증오한다. 혁명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광신과 가짜 혁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혁명인지 선동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내가 혁명을 싫어하는 것은 나에게는 선동과 혁명을 구분할 안목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선동가들이 할 줄 아는 것은 광기를 퍼트리는 궤변의 허약한 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행동력과 자기 확신, 그리고 정열이 없다.

빛은 존재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둡다. 선동가들의 광기는 대기를 혼탁하게 만든다. 광기가 지배하는 칙칙한 어둠 속에서 가끔은 혁명의 순수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혁명가의 초상을 꿈꾼다. 그런데 이제는 혁명가의 초상이 어떤 것이었나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혁명을 잊은 순간 혁명가의 초상도 흐릿해지는 법이란 사실을 왜 몰랐을까? 내일이면 난 또 다시 혁명의 초상을 잊을 테고 글로벌 스탠다드와 자본의 논리, 그리고 힘을 추종하는 꺼삐딴 리가 되어있겠지?
2004/11/20 00:19 2004/11/20 00:19

Gresham's & Goldsmith's

Posted 2004/11/04 00:49,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국사 문제집을 풀다가 려말 권문세족들이 교초 때문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는 지문을 읽었다. 원조가 주원장에 의해 외몽고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교초에 의존하던 권문세족의 자본 유동성이 악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재작년에 써놓았던 [그레셤의 법칙]이 떠올랐다. 어째서 잇속에 밝은 권문세족들이 그레셤의 법칙을 몰랐을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그레셤의 법칙


동양의 지폐나 서양의 지폐나 기본적으로는 청구권을 보장하는 증서에서 비롯되었다. 금태환이던 은태환이던 지폐는 실물 화폐로의 교환을 인정하는 증서다. 실제로 지폐의 역사는 상당 부분 상업 어음의 역사와 겹친다. 그런데 동양의 지폐와 서양의 지폐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

일직부터 중앙 전제왕권의 통제 아래 있던 전매권이 청구권에 대한 반대 급부로 제공되던 동양에서는(소금과 철이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국가가 필요로 한 병장기와 군량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급부로 염전이나 광석에 대한 권리를 제공했다) 왕조의 부침에 따라 지폐와 귀금속이 그레셤의 법칙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고, 전장을 통한 상업 어름 거래와 중앙 정부에 의한 지폐 발행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근대적 은행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뒤졌다.

(사실 세계 무역에서 중국은 오랫동안 사치품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귀금속 유입은 아편 전쟁 이전까지는 풍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물 대신 은화가 조세 부과의 표준 화폐로 유통되었을 정도로 중국 경제권의 귀금속 유입량은 풍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저장성은 탁월하지만 수익률은 낮은 귀금속보다는 지폐가 모험적인 상인들에게는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반면 서양은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환전 은행이 골드스미스의 노트를 거쳐 대체은행으로 발전했고, 종국에는 근대적은 은행을 낳았다. 개별 국가의 금속 화폐 발행은 전시대를 통틀어 꾸준하게 이루어졌지만 청구권을 지닌 지폐의 발행은 금융 귀족으로 불리는 소수의 가문이나, 상인 길드를 통해 이루어졌다. 상업 어음과 지폐의 발행이 일원화 되었던 셈이다.

은행의 기원. 골드스미스의 노트


하지만 동아시아의 국제 무역과 그레셤의 법칙은, 아니 국제 무역과 은행의 발전 과정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다시 교초로 돌아가자.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이 시작될 무렵 고려에 들어온 교초는 오래지 않아 고려의 고액 지폐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와의 외교 사절의 접대비와 군사비 명목으로 유통되던 교초는 중국에서는 날이갈수록 실질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고려에서는 통화로서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폐의 명목 가치가 실질 가치를 앞선 그레셤의 법칙의 예외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귄문세족에게는 경제적 실질 가치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명목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영미식 커리큘럼으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가 고려 시대의 교초의 가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지폐에는 묘한 성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공무역과 관련된 실제 가치와 명목 가치의 괴리다. 서구인이 무역의 합리성이라 부르는 등가성의 원칙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기 전에 동아시아의 무역 원칙으로 자리잡은 것은 실질 가치보다 명목 가치였다. 조공 무역을 통해 받쳐지는 진상품과 하사되는 하사품들은 실질 가치보다 더 큰 명목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안정되어 있을 경우 하사품으로 받은 지폐는 곧바로 시장에서 지불 화폐로 사용되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불안해 하사받은 지폐의 가치가 시장에서 낮게 평가 받을 경우에는 본국으로 가져와 경제적 가치 대신 정치적 명목 가치를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데 상대 가치를 중심으로는 본 측면에서는 그레셤의 법칙이 충실하게 지켜졌지만 화폐 자체로 본 그레셤의 법칙에는 예외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무역 관행은 어느 나라에도 괴멸적인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오랫동안 동아시아 경제권을 묶는 가교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영미식 스탠다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지만 적어도 몇세기 전의 서구가 주장하던 등가성의 원칙은 등가성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유혈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다. 실질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정 무역에서 이익을 얻는 방법은 어느 한쪽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를 구분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동아시아의 무역 관행과 비교하자면 제로섬 게임이 분명하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무역의 표준 양식이 된 서구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본질이 있고 상황에 따른 예외가 있는 법이다. 또한 예외 속에서도 본질은 살아 숨쉰다. 그레셤의 법칙과 골드스미스의 원리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행동의 동기를 설명해주는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행동이 구체화되는 방식은 문화와 관습,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화된 행동을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던 가치를 모르는 현대인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사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일 경우에는 말이다.

아무튼 권문세족은 교초의 태환 정지로 유동성을 잃고 역사에서 퇴장했고, 현대는 조공무역을 봉건 관습으로 취급해 버리는 서구의 등가성 원리(물론 여기에 비교우워론과 자유무역의 이점이라는 현대적 이론이 첨삭되긴 했다.)에 지배 당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머리 속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낯설어진 옛날을 산책하는 것은 꽤나 운치있는 일이다. 레이 황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역사에는 그것이 등장할 만한 필연적인 흐름이 있으니 말이다.
2004/11/04 00:49 2004/11/04 00:49

Unconstitutionality

Posted 2004/10/21 16:31, Filed under: Column/Historical
사실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 소원에 대해 큰 기대를 건 것은 아니었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헌법 상의 명문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법률 성립시 적법한 법률 절차를 거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행정수도특별법 같은 법안을 쉽게 통과시켜준 야당에 상당한 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문제는 빠르게 합의할 것이 아니라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가능한 늦게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직관은 쉽게 내려지는 재능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심정적으로는 국민 투표에 부쳐야 한다는 생각에 동조했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에서 국민투표에 부의하지 않는 이상 고유 재량권에 속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법관들은 관습법이라는 깜짝 놀랄 이론으로 위헌을 이끌어 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수도 이전의 필요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지만, 이 문제가 내가 가진 지식의 한도 내에서 <헌법개정권력>이 필요할 정도의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경국대전과 임시정부의 법통까지 끌어들이면서 '서울’의 사전적 정의까지 사용하면서까지 서울이 수도라는 불문 헌법 개념을 사용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사실 난 지금까지 지록위마라는 사자성어의 정확한 실례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지록위마라는 말을 볼 때마다 오늘이 생각날 듯 싶다. 사실 이론적으로 따져보자면 탄핵 심리 당시 인용 결정을 내릴 논리적 근거가 휠씬 많았다. 그런데 지난 번에는 기각을, 이번에는 인용을 결정했다. 한 해에 이루어진 결정치고는 솔직히 '중심이 없는 결정’이다.

개인적으로 인용 결정을 환영하긴 하지만 헌재가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는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변하려 하고 있다. 지지율의 향방을 보고 결론을 만들었다는 느낌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근래의 우리 사회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법의 인간이자 완성된 인격체야 할 법관들 마저 기회주의의 거센 파도에 편승하고 있다는 우려에 입맛이 쓰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고 싶으면 헌재를 보라는 농담만큼은 제발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헌재의 결정은 분명 합리성의 승리다.(누가 뭐래도 이론적으로는 헌재가 맞다) 하지만 헌재와 법관들에 의한 승리는, 다시 말해 그들이 지닌 합리성으로 얻어진 승리는 아니다. 올해 있었던 두번의 결정은 법관의 양심이 여론의 향방에 얼마만큼 값싸게 저울질 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나쁜 실례가 될 것이다.

차라리 우리네처럼 profit에 따른 의사 결정을 하는 쪽이 더 양식적으로 보일 정도로 두번의 심리에서 보여준 법관의 자질은 너무나 난감한 것이었다. 결정은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나 법언에 충실하기 보다는 시류에 예민한 법관은 솔직히 싫다. 기술적 해설과 결론을 만들어 내는 능력는 법관에게 필요한 자질이 아니라 우리에게나 중요한 능력일테니까. Justice와 Business man은 분명 다를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 결정으로 인해 불문 헌법의 범위가 새로운 논쟁으로 등장할 것이다. 어디까지가, 어떤 내용을 불문 헌법으로 보아야 하는지, 권리와 권리가 충돌할 때 불문 헌법을 어떻게 심리에 적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법체계에 새로운 숙제로 던져졌다. 모험심이 많은 것인지, 우리 법에는 엉뚱함과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지 도대체 구분이 안간다. 광범위한 불문 헌법의 인정이 법치주의의 근본이 약한 우리 사회의 사법 실효성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예상은 가능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불문 헌법의 예는 너무 찾기 힘들다.

Modified 11.1
근래들어 관습 헌법이란 패러디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패러디 작가들이 사용하는 관습 헌법은 오류가 있는 단어이다. 관습법 중 일부를 불문 헌법으로 인정한다는 결정과 모든 관습법이 불문 헌법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다. 법은 논리학이다. 최소한 같은 것과 다른 것은 구분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헌법 재판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재판관들에 대한 비난은 가능할지 몰라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그 사법적 판단력에 대해서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헌법제정권력을 지닌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민주주의에서 그 누구도 헌재의 사법적 판단력보다 더 높은 권위를 부여받은 기관이나 개인은 없다.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을 존중하고 있다면 헌재의 결정이 뒤집어 져야 한다는 주장은 지양되어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개인의 보편적 정서에 반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체계의 지속성 측면에서는 헌재의 결정은 결코 번복되어서는 안될 숙명을 지니고 있다.
2004/10/21 16:31 2004/10/21 16:31

<말하는 고양이>님의 복귀를 바라며

Posted 2004/10/14 00:42, Filed under: Column/Essay
즐겨찾던 블로그가 잠정적 폐쇄 상태에 들어갔다. 지난 반년 동안 매일처럼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준 유쾌한 장소였는데 부지불식간에 문을 닫았다. 평소 코멘트보다는 포스팅 위주의 글읽기를 해오던 터라 무엇이 이 곳을 잠정적 폐쇄 상태로 몰아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고, 이제는 흔한 일이 되어버린 네트워크 상에서의 공격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련된 포스트와 코멘트가 모두 사라진 지금 나에게는 확인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읽으려고 마음 먹은 포스트도 꽤나 많았는데…)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인터넷상의 공격은 꽤나 무섭다. 질문의 예리함과 명쾌함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꺽이지 않는 독선이 무섭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냉철한 이지보다 독선이 더욱 쉽고 빠르게 전파된다는 사실이다. 독선은 쉽게 이슈화되고 다양한 경로로 재포장된다. 돌을 던지기도 쉽고(그것도 잘 버려진 돌로만), 보다 비겁하며 은밀한 방법으로 상대의 가슴에 멍울을 만들 묘수들이 더욱 활기차게 생산되는 곳이 네트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끔 주변에서는 <인터넷상에 글을 쓰는 내 행위>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곤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네 글을 읽지 않을 것이고, 네 글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중 상당수는 끝까지 읽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읽는다 하더라도 삶의 배경이 다른 불친절한 네 글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겠냐가 무용론의 요지다.

사실 난 이 말에 100%동감한다. 난 독자를 고려하는 친절한 성격도 아닐뿐더러, 내가 아는 것은 남들도 모두 안다는 가정 아래 하루를 산다.(행간에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수많은 사실들을 common sence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블로그 세계에서 나같은 성격의 블로거는 어디까지나 마이너리티에 불과하다. 되려 잠정적 폐쇄에 들어간 이 블로그의 주인장처럼 친절하고 자상한 글쓰기가 몸에 밴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이지를 상실한 독선이 대화란 형태로 이 세계를 구축한다면 블로깅은 점차 재미없는 일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블로깅을 하면서 매일처럼 드나들던 블로그가 악의적인 노림수에 의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것을 목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한적하고 적극적인 방문객이 거의 없다 시피한 현재의 내 상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표리부동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하게 귀찮은 훼방꾼에 의해 고요한 내 놀이터가 어지러지는 것은 딱 질색이다.

개인적으로...

2004/10/14 00:42 2004/10/14 00:42

Nevertheless

Posted 2004/09/13 15:14, Filed under: Column/Historical
2001년 9월 11일
[9/11]로 부터 3년이 지났다. 지금에야 2001년 9월 11일 오전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털어 풋옵션을 사들이겠다고 다짐하고 있긴 하지만 그 날 저녁 내가 받은 충격은 꽤나 대단했던 모양이다. WTC에서 뛰어내리던 오피스 슈트 차림의 사내와 그가 쥔 주먹에 모골이 송연해 지던 기억도 생생하다. 제2의 통킹만 사건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또 한번 전쟁이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쟁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자라온 세대의 어린 시절은 세계사적 사건의 홍수에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정보를 얻을 혜택을 누려온 것 같다. 어린 시절 첫번째 전쟁으로 기억되는 이란-이라크 전쟁은 독가스로 사라진 마을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의 이미지로 남겨져 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몰락과 그의 아들이 처형되는 장면도 생중계로 봤고,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 붉은 곰이 주저 않는 모습도, 동독의 엑소더스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천안문 사태와 러시아 쿠데타도 보았으며 쿠웨이트가 이라크 군에 무너지는 장면도, 바그다드 폭격과 전차전으로 요약되는 걸프전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러시아와 체첸의 전쟁도, 유고 내전과 르완다 사태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지켜본 것 같다.

냉전의 소멸과 동구권의 몰락도, 인종 청소와 제 3세계의 군벌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전쟁도, 미국 상업은행에 찾아온 저당권의 위기와 신경제가 일으킨 거대한 버블도, 러시아의 디폴트 선언과 자칫 무너질뻔한 금융 시장도 보았다. 어린 시절 최루가스의 독한 향도 맡아 보았고 12.12에 대한 법원의 심판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에게 이런 사건들은 어디까지나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거나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 였던 것 같다. 90년대 중반이 되기 전까지 세계는 오늘날처럼 밀접한 연관을 맺는 세계가 아니었으며 십대 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의 범위도 제한적이었다.(그런데 지금이나 그때나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비슷한 것을 보면 뉴스와 신문이 정말 파워풀 하긴 한가 보다.)

그 후 3년
[9/11]은 어른이 된 내가 겪은 최초의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단순한 뉴스나 신문의 일방적인 보도이외에도 주변의 내노라 하는 석학들의 말을 경청할 기회도 많았고 걸러지지 않는 리포트들을 읽을 기회도 많았다. 누구의 잘못이던 간에 전쟁을 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했고 필연적으로 우리 나라도 전쟁의 수렁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반인륜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단지 어린 시절 수없이 봤던 새로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9.11] 이전의 수많은 사건들에 관하여 우리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천안문 사태를 진압한 덩사오핑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고(어린 나에게는 탱크로 시위대를 으깨는 장면이 이라크 전쟁보다 백배는 더 잔혹했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잔악한 민족 분규에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사실 정의로 따지면 이쪽이 더 시급하다) 하지만 이라크 문제에 관해서 라면 다들 정의에 몰두한다.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에서 신랄하게 부시 행정부를 공격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을 역설하지만 선뜻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귀에 들어 오는 것은 어느 쪽이 정의인가 하는 지리멸렬한 논쟁이 아니라 전쟁의 실질적인 영향력이다. 적군파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네오 나치즘이 부활하면서 테러리즘이 사회와 경제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리라는 의견이 개진되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국제 테러리즘의 광기를 가볍게 판단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국제 테러리즘은 확실히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는 불안 요소다.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요 하나가 국제 유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리고 유가라는 하나의 변수에 한국 경제가 받은 압력은 상상이다. 유가가 어느 가격대에 머무르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 전략과 각종 예상치는 매우 달라진다. 단지 유가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치뤄야 하는 대가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하고 커다란 피해다. 피해갈 수 있다면 피해가야 하고, 피할 수 없다면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하는…

변화한 세계
90년대의 세계는 빠른 속도로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원칙이 자리 잡았다. 화폐와 기술, 상품의 교류는 장려하지만 인적 교류에는 소극적인 새로운 윈칙이 북미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상품이나 기술은 위험하지 않지만 사람은 위험하다는 생각은 테러리즘이 가져온 가장 큰 손실이다. 자국민 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되면서 외국인들을 보는 시선은 싸늘해 졌고, 인적 교류를 위한 장벽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테러리즘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깨긴 했지만 우리 나라 같은 약소국들은 냉전 시대보다 더 초강대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에는 많은 배려와 반대급부가 제공되어야 하지만, 전쟁과 제압을 목적으로 하는 외교에는 압박 하나면 충분한 법이다. 그리고 미국의 맹방이라는 이유로, 분단 국가라는 이유로 이런 외교 정책에서 가장 큰 희생양이 된 나라 중 하나가 우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9/11]이 종결된 사건이 아닌 현재 진형형이라는 데 있다. 아직도 세계 경제와 외교는 [9/11]의 후유증과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해결 된 것이 없다. 전쟁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고 전쟁이 가져다 준 불안정한 환경은 이제 만성이 되고 있다.

미국 대선이 중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을 잊고 [9/11] 이전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촘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적이나 제왕이나 발을 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면서 불확실성만 증대된 세계.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 흘리며, 고통 받은 지난 3년 동안의 성과다.

etc

2004/09/13 15:14 2004/09/13 15:14

슈테판 츠바이크

Posted 2004/09/10 11:45, Filed under: Column/Essay
백문 백답이나 자기 소개서, 면접이나 조금 분위기 잡는 소개팅에서 자주 회자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란 구태 의연한 질문인데 생각보다 이 질문은 고난이도를 자랑한다. 책을 너무 안 읽는 사람에게는 꽤나 당황스러운 질문이고,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평생을 살아도 해답을 찾지 못할 영원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너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딱 나 정도의 사람에게는 명쾌한 대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무한의 애정과 존경을 받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츠바이크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 소설의 대가
사실 츠바이크는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 같은 독일어권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노벨문학상으로 필력을 가늠하는 문학관 덕분인지 아니면 전기 소설보다는 순수 문학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는 학풍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츠바이크에게는 그 흔한 한국어 번역 전집 하나가 없다.

하지만 국외에서의 츠바이크의 명성은 20세기 3대 전기 작가로 추앙 될 만큼 높다. 그의 심리 분석은 매우 예리하고 날카롭다. 하지만 인간 심리의 이면을 투영하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되려 모든 열정의 근원이 되는 욕망을 해체하는 그의 펜에 느긋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면 그의 날카로운 심리 분석의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소설의 재미는 작가와 독자 그리고 전기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 사이의 거리에 의해 결정된다. 인물의 행동이나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는 작가는 독자에게 지루함을 더해 주고, 인물의 업적에 금칠을 하는 작가의 전기는 역겨움을 일으킨다. 좋은 전기는 작가가 인물의 내면에 접근하면서도 객관적이야 하고 독자가 인물의 갈등과 선택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해 보면 결코 쉬운 조건이 아니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작가가 인물에 새로운 성격이나 부여하거나 사건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전기 작가는 진실이라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제약에 종속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츠바이크에게 만큼은 이런 여려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인물의 영혼을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너무나 숭고해 전기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인물뿐만 아니라 츠바이크 그 자신마저도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과 전기를 읽다 보면 유독 영혼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맴돈다. 인생은 1%의 노력과 99%의 타이밍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기회주의자인 나에게 영혼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지만 츠바이크의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유독 영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영혼과 영혼을 이끄는 열정에 대한 츠바이크의 탐구는 매우 진지하고 그 진지함을 통해서 난 내 삶을 새로운시각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은 논평하기 매우 어렵다. 인간의 영혼과 열정에 관해서만큼은 지금까지의 짧은 내 삶으로는 제단할 수 없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을 다시 음미할 때쯤이면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지만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이 많다. [주옥 같은]이라는 단어가 진짜로 어울리는 단편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츠바이크의 글이 될 거라고, 체호프나 모파상의 단편 소설보다 더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츠바이크의 소설일 거라고, 진짜 제대로 된 사랑을 해봤고 로맨스와 사랑, 인간의 가치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작가는 츠바이크였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츠바이크의 사진을 보면, 그의 편지를,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난 무의식적으로 움츠린다. 벌써부터 세파에 찌들어 냉혹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허탈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숭고한 것은 없는데. 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을 사랑한다. 그의 조금은 우울하지만 격조 있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과 열정, 행복과 고난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의 노력을 행간으로 느낄 때마다 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명이란 거친 힘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애쓰는 츠바이크의 뒷모습을 발견 할 때 [진짜 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좌절하게 된다.
2004/09/10 11:45 2004/09/10 11:45

확장 재정정책의 우울한 그림자

Posted 2004/09/08 13:52,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정부는 다음 회계연도에서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기조로 하는 일련의 예산을 발표했다. 아직까지는 국가 채무 상태가 양호하고 연관 효과가 높은 건설업을 위주로 재정 확장 정책이 수행되기 때문에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의견과 원유 및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한 상황에서의 확장 정책은 물가에 압박을 가할 뿐, 소비 심리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사실 이런 의견 대립에서 각자가 논거로 삼는 이유들은 모두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확장 재정 정책의 찬반자들 모두 이론적 모델로서는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하고 타당한 설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를 중요하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반대자들의 의견이 더욱 솔깃하다. 이대로 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때 늦은 확장 정책
만약 작년에 정부가 확장 정책을 사용하기로 발표했더라면 아마 난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정책을 최선의 정책으로 삼는 정부보다는 어느쪽으로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라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 1/4분기까지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확장 정책은 너무 위험하다.

사실 작년 말과 올해 초 한국 경제가 가진 문제점은 구심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부와 기업, 민간의 신뢰 관계는 위험수준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고, 정책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인 정책이던, 진보적인 정책이던 일관된 정책을 발표한다는 사실은 신뢰성과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마 작년에 재정 확장 정책이 예고 되었더라면 사람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지만 경기 낙관론에 동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작년과 조금 다르다. 현재의 신뢰 관계는 위험 수준보다 한참 아래다. 올 초 발표된 정부의 경기 낙관론이 근거 없는 낙천주의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고 현재의 재정 확장 정책은 DJ시대의 확장책과 다르게 경기 전망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가에 대한 자기 실현적 예언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정부가 확장 정책을 펴도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기가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업자가 줄어든다거나 소비의 활성화는 어렵지만 과도한 통화 공급의 증가로 물가는 상승하리라고 내다본다,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 최종산출물의 가격 상승을 주도하리라는 두려움. 이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장 확실하게 가져오는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되고 만다.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속임수란 말이 있다. 실제 정책을 집행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심리적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 정책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아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심리적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성이 중요하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정부의 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면, 더욱이 못 믿는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상황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 믿는다면 심리적 환상을 의도와는 정반대 반향으로 향하고 만다. 현재 우리의 상태가 이렇고 어떤 정책을 내놓던 간에 정책의 외부 효과가 클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 하는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소득세 1%인하 이면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세부담률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가계의 조세저항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자체의 세외 수입의 연체률은 연체률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고, 지방세나 국세의 체납률로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조세라는 지출 재원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재정 확장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채의 발행으로 매울 수 밖에 없다. 소국개방형 경제 체계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과도한 국채 발행은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중에서 현재 우리 경제에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부는 확장정책에 이어 조세 감면 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다. 소득세의 1%인하 방안. 사실상 고소득층의 소비 증진을 겨냥한 정책이다.(고소득층에는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정률의 감세안이 선택될 경우 절세폭이 더욱 크다) 특소세의 인하 또는 면세 정책도 동일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가처분소득을 늘린다고 해도 소비의 활성화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일수록 경제 정책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감한 만큼 자주 번복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감세 정책에 덜컥 소비를 늘리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아도 물가 상승에 의해 소비지출액이 늘어난다면 감세 정책은 내수 진작 정책으로는 낙제감이다. 게다가 이 경우 절세폭이 작은 중산층 가계는 상대적으로 더 불평등하게 된다.

디노미네이션
개인적으로 난 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 자체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시기 상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디노미네이션은 심리적인 영역에서만큼은 물가가 하락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다. 종래의 화폐 단위보다 작은 단위의 화폐로도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노미네이션은 실제 물가를 올린다. 고액의 화폐 단위에서 세분화 되어있던 제품 가격이 디노미네이션 과정에서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액권 발행은 어떨까? 고액권 발행은 일반적으로 화폐의 유통 속도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소비의 편의성을 높이고 이것은 상품 소비를 늘린다.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디노미네이션만큼 높은 메뉴 비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액권 발행은 충분한 논의를 거쳤기에 도입의 거부감이 크지 않지만 디노미네이션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다.

사실 디노미네이션의 또 다른 표현은 화폐 개혁이다. 화폐 개혁은 장롱 예금을 활성화 시키는 수단으로 혹은 재정 적자나 부채를 평가 절하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다. 하지만 효과가 확실한 만큼 부작용과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좀처럼 시행되지 않았던 제도다.

그런데 문제의 현재 우리의 상황이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화폐 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 없이 단지 달러나, 유로에 비해 화폐 단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경제의 불안정성이 너무 크다. 평화로운 시기, 안정된 경제 상황에서 채택해도 많은 비용과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 정책을 요즘처럼 경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성급하게 도입하려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정책의 성공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좀처럼 지켜지지 않은 원칙인데 현재의 정부는 신뢰성에서 만큼은 낙제다. 일관성 없는 정책. 상황에 따라 바뀌는 정도를 넘어 오늘의 정책이 다음 분기에 유지될지조차 불분명하다.

해외의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의 경기 침제가 일본의 90년대처럼 극심한 불황으로 점철되지 않겠지만 현재의 침체 상태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 예측한다. 무언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이 나타나 경제를 견인하지 않는 한 장기 침체를 피하기란 어렵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기도 어렵지만 설령 적절한 패러다임이 나타나도 요즘 같은 엇박자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시스템 재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경제나 정치나 인간 관계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이해가 얼마나 맞아 떨어지느냐가 아니라 상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신뢰성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 채 무리한 정책 남발로 자충수를 두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혹은 내일까지…
2004/09/08 13:52 2004/09/08 13:52

펜시브 혹은 블로그

Posted 2004/08/24 15:41, Filed under: Column/Essay
커피 잔을 쥐는 모습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빼어남을 자랑하는 친구 하나는 해리 포터를 읽고 가장 갖고 싶었던 것으로 펜시브를 꼽는다. 필요에 따라 기억을 저장해 놓을 수 있는 이 매력적인 마법 도구에 대한 내 생각 역시 친구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펜시브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현실에서 펜시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펜시브와 비슷한 기능적 용도를 지닌 대용품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소소하게는 짧은 메모에서 일기장까지 펜시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대용품의 범위는 우리의 상상력 이상으로 넓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펜시브에 가장 근접한 대용품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블로그가 아닐까 한다.

근래 들어 블로그의 성격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듣게 되는 것 같다. 광범위한 포용주의에서부터 엄격함을 갖춘 순혈주의까지 꽤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었다. 블로그에 대한 내 의견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내 블로그는 이런 성격을 토대로 구축되었다는 암시 정도는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기백을 자랑하는 방문객을 가진 영향력 있는 블로거도 아닌 주제에 할 짓은 다한다고 비난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나만의 해석에 따른 내 블로그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나름대로의 해석에 달려있다. 똑같은 도구라도 나에게는 생활 용기로, 뒤샹에게는 예술로 해석되는 것처럼 블로그 역시 해석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도구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블로그는 신념이자 철학이 아니다. 블로그에 태도를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블로그가 태도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블로그가 아니다. 도구 자체에 어떤 정의와 설명을 부여해도 사용자의 상상력과 해석에 따라 도구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망치가 생활의 연장으로 사용되지만 때로는 흉기로 돌변하는 것처럼, 도구는 도구에 붙은 꼬릿말보다 사용자의 의지에 더 손을 탄다. 사실 블로그에 붙은 꼬릿말이 무엇이냐는 그다지 중요한 소재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꼬릿말이 붙어 있어도 사람에 따라 그것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벌어지는 블로그에 대한 논쟁은 시간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과 똑같아 보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균등하게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노하우와 태도는 모두 다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자세다.

블로그에 붙은 꼬릿말이 중요하지 않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좋은 꼬릿말만으로 제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내가 시대착오적인 걸까?
2004/08/24 15:41 2004/08/24 15:41

투기 & 짜릿함

Posted 2004/08/17 23:24,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 총리였던 클레망소는 노쇠한 몸에도 불구하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최전방 전선을 시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혹자는 이를 보고 현장 감각을 중요시하는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방을 시찰하는 클레망소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웠다는 사실과 군사협력 문제로 프랑스를 찾은 젊은 처칠에게 그가 속삭였다는 「이 얼마나 짜릿한가!(Quel comment deliceux!」를 위의 일화에 끼워 넣고 보면 의외의 모습이 드러난다. 정치인으로써 많은 격랑 겪은 그조차도 남몰래 전쟁이 주는 짜릿함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짜릿함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증시가 예상외로 많이 오른 날 증권 객장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짜릿함의 정체에 관하여 어느 정도 감을 잡을 것이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이 상한가를 쳤을 때 혈관 속을 타고 도는 기묘한 흥분을 느껴본 적이 있어본 사람이라면 아예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의외의 결과를 얻어낼 때 느끼는 감정, 이것이 바로 짜릿함의 정체다. 그렇다면 투기와 짜릿함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사람들 대부분은 왜 투기를 하느냐는 질문에 이른바 대박이 가져다 줄 경제적 여유를 답으로 내곤 한다. 물론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도박사들처럼 대다수 투기꾼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주 소수만이 투기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행운이 자신에게 찾아올 가능성보다는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투기꾼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투기를 한다. 대박을 쫓는다는 애매한 대답으로 짜릿함을 쫓는 자신의 감정을 속인 채 말이다.

튤립 버블과 사우스 시 버블, 미시시피 버블은 투기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버블은 끊임없이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몇 백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버블과 투기 짜릿함은 어떤 함수로 묶여 있을까?

먼저 네덜란드 튤립투기를 살펴보자.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이 누리던 독점적 향료무역권을 빼앗은 네덜란드인들은 최고의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먼바다에서 돌아오는 배들에는 짜릿한 전투와 모험의 흥분 대신 상인들의 냉정한 손익계산이 실려 있었다. 항구에 입항하는 선원들의 이야기에 흥분하던 군중은 새로운 무언가를 원했다. 경제적 안정과 짜릿함에 대한 갈망이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면서 튤립에 대한 투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18세기 초 영국에서 등장한 사우스시 버블 또한 짜릿함과 무관하지 않다. 네덜란드와의 해상패권 다툼에서 승리한 영국은 대서양을 자기들의 바다로 만들었고 의회정치의 발달로 국민 개개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기존의 계급사회가 빠르게 무너지고 그 빈틈을 메운 시민계층들은 새로운 흥분을 원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흥분에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 사우스시 사가 발행한 주식이었다. 당시 한 수필가가 남긴 「우리는 미친 시대에 살았다. 나 역시 이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이었던가를 알고 있지만 짜릿함의 유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라는 회고는 이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투기 붐이 조성되었던 당시의 유럽사회와 우리 사이에는 몇 백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투기 한가지를 놓고 보면 이런 시간차가 무색해진다. 여전히 사람들은 짜릿함을 갈망하고 있다. 개발 시대에는 부동산 투기를 했고 성장시대에는 온 국민이 주식에 투자를 했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로또를 산다. 대다수 사람들은 투기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짜릿함이 주는 행복감을 위해서라면 이런 위험성을 손쉽게 받아들인다. 어쩌면 짜릿함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투기에 대한 우려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말쑥한 옷차림과 온갖 편리한 도구들로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인들에게조차 분명 부족한 것은 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몇 천년 전 조상들이 자연이라는 거친 위험과 싸우면서 터득했던 이 기묘한 흥분감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출처

2004/08/17 23:24 2004/08/17 23:24

삼각 무역

Posted 2004/08/10 16:30,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대항해 시대와 삼각 무역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코에이사의 [대항해시대]가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유행에서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꽤 오랫동안 [대항해시대]의 팬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십대 소년이던 당시의 나를 가장 매혹시키던 단어는 삼각 무역이란 단어였다.

보다 수익성이 높은 무역 루트를 만들기 위해 백과사전을 뒤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같다. 역사에 기록된 무역로를 재현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무역로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 였을까?

우선 학교에서 배우는 무역의 기본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무역의 기본 가정은 두개의 국가와 두 가지 상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두 가지 상품은 양국 모두에서 필요하나 상품이 산출되는 나라는 한 나라뿐이다. 따라서 양국은 교역을 통해 두 가지 상품을 모두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교역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이 가지고 싶어하는 상품 A가 있어야 하며, 상대국 역시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상품 B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이런 조건이 간단하게 만족되는 경우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상품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한 국가가 특화를 가지고 산출해 낼 수 있는 상품이 적을수록 무역의 연결 고리는 매우 복잡해 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교훈은 따로 있다. 교역을 하자면 상대에게 대가로 건낼 상품이 필요하다. 자기 것이라면 좋겠지만 가진 것이 없다면 빼앗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대가로 건낼 무언가가 있었야 한다. 간단하지만 위의 조건은 오늘날의 세계를 설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건을 충분히 숙지했으면 [대항해시대]로 혹은 역사 속으로 돌아가자.

역사에 기록된 삼각 무역들


삼각 무역의 현대적 함의
교역 자체만 놓고 보면 교역은 영합 게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대편에게서 상품을 사오기 위해서는 무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품과 그에 대한 대가의 합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교역이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영합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교역이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할까?

사실 교역 그 자체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아니다. 교역을 통해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자원 절약과 후생 증진이 바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진짜 원동력이다. 교역은 사회가 최적 비용으로 생산해 낼 수 없는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단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우리 사회가 생산해 내는 비용보다는 저렴하지만 교역 상대국이 생산하는 비용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제법 비싼 상품이다. 하지만 과거의 삼각 무역은 위에서 언급한 영합 게임에서 벗어난 가속 페달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폭력과 약탈을 통한 공짜 교역과 이를 유지 시킨 인간의 욕망이다.

십대 소년에게 삼각 무역이란 단어는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활약하던 무역상들을 연상시키는 멋진 단어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십대 중반의 청년에게 삼각 무역은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닌 기이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역사에 기록된 삼각 무역이 폭력과 희생을 동반했다는 사실은 너무 명확해 보인다. 베니스는 슬라브인들을 노예로 팔아 해상 제국을 건설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씨를 말림으로써 범지구적인 삼각 무역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영국은 중국의 아편 중독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산업 혁명의 전주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폭력과 희생이 동반된 당시의 무역 구조에 선뜻 동의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더해보면 삼각 무역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게 된다. 노예도 아편 중독도, 폭력도 희생도 없는 인도주의적 무역 관행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비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일상 속에서 누리는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날의 세계는 정적인 고요를 유지하는 재미없는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삼각 무역 자체가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았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희생을 토대로 혜택을 누리는 것은 국경을 초월한 미래의 우리들이다. 사실 현대의 삼각 무역은 과거의 삼각 무역처럼 암울한 분위기를 풍겨내지 않는다. 폭력도 없고, 희생도 없다.(물론 가시적으로만 없다는 뜻이다. 내부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현대의 교역 구조로 볼 때 삼각 무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어의 범주에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삼각 무역을 태동 시켰던 기본 조건만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서는 팔 무엇이 필요하며, 그마저 없으면 교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각 국이 경쟁적으로 전략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따지면 팔 무엇인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없으면 빼앗으라는 법칙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과거 같은 일방적인 약탈과 폭력을 보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다른 형태로 변신한 약탈과 폭력은 여전히 교역을 유지하는 일부분이다.
2004/08/10 16:30 2004/08/10 16:30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 Intro

Posted 2004/08/06 16:26,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마이너리티가 되어버린 무역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긴 하지만 [무역]이란 단어와 조우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꽤나 만나기 힘든 단어지만 여차해서 만나기라도 하면 실질적인 의미의 무역를 다루기 보다는 개념적 차원의 무역을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일부 학교에는 여전히 무역학과가 남아 있긴 하지만 무역이라는 화두는 경영쪽에서만큼은 마이너리티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꽤나 좋은 커리큘럼으로 구성된 학교의 수강 편람을 뒤져봐도 무역이나 교역에 관련된 과목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 무역이 커리큘럼에서 사라진 이유는 다른데 있다. 상품 거래로 한정되었던 국가간의 교역이 이제는 생산 요소 거래로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무역론에 국제 생산론과 국제 금융론, 국제 전략론과 국제 재무론이 가미되었고, 그것이 이제는 국제 경영론이란 하나의 학문으로 분화되었다.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되려 무역이란 단어가 낯설어진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실제로 내 친구들 가운데 신용장과 무역원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소수이다. 상품 수송 방법에 따른 회계 처리 기준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국제 거래를 위한 스왑과 선물 전략에 달통한 그네 들이지만 신용장하면 크레딧 카드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스터나 비자 카드로 구매를 하고 DHL이나 UPS로 배달 받는 오늘의 세계에서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것
휴학을 하기 전까지 난 학교 신문사에서 한국의 1세대 기업인들로 불리는 창업자 그룹에 대한 기사를 전담하고 있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30년대부터 65년까지의 기업들의 행적을 탐구했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에 한가지는 전쟁과 자유당 정권, 보릿고개로 정의되었던 50년대가 60년대보다 되려 더 자유로운 무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쪼개지기 전까지 한국 기업들은(물론 아주 소수였다) 중국과 티베트, 만주와 연해주, 일본까지 이어지는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었고, 당시의 거래는 일반 시장 거래와 무역의 기묘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었다. 일부 기업들은 곡물의 선물거래시장(미두)을 이용해 오늘날의 신용장과 유사한 기능을 이용하기도 했던 것 같다.

심지어 전쟁이 한참이던 50년대 초반.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거래되었던 목록의 화려함은 오늘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과 홍콩, 그리고 부산을 연결하는 무역 루트는 당시 최고의 융성을 자랑하고 있었고, 사업한다는 사람치고 일본과의 밀무역이나, 각종 선물 거래에 손을 대지 않았던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단지 흥미로운 사실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무역만큼이나 과거의 무역도 화려하고 재미난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단초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잘 교육 받은 점잖은 학자들이 모르는(다시 말해 수리적으로 분석이 불가능한) 또 다른 매커니즘이 만들어 낸 숨겨진 세계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포스팅 공고
2002년 가을부터 시작된 나의 믿음은 작년 봄을 거치면서 점점 구체성을 띠어갔다. 현대적 경영 매카니즘을 토대로 교육 받은 우리가 그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던 세계를 설명할 단초가 되는 도서 목록을 작성했고, 어쩌면 새로운 칼럼으로 독립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도 했다. 상당히 많은 재량권이 주어졌던 신문사의 편집 방향을 토대로 볼 때 상황은 낙관적이었다. 인생 최대의 태클이라는 병역 문제로 휴학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휴학과 귀향, 훈련소와 시험, 혼미해진 정신 상태와 게으름은 당초 계획을 일년이나 뒤로 미루어 버렸다. 7월에 들어서야 노트북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던 기획서를 찾아내었고 대강의 색인도 머리 속에서 완성되었다. 할 일이 넘쳐나는 올 한해지만 애인도, 궁벽한 시골이라 나를 유혹할 것도 없는 현재야 말로 [유희]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지금하지 못하면 후회하게 될 거란 예측이 결심에 방아쇠를 당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음 포스팅은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삼각 무역]이란 제목으로 포스팅 될 예정입니다.
2004/08/06 16:26 2004/08/06 16:26

대가 vs 스타일리스트

Posted 2004/08/04 23:33, Filed under: Column/Essay
철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나 역시 국적불명의 문체를 사랑했던 것 같다. 고전과 현대 소설의 경계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던 나로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스타일이 살아있는 문체가 꽤나 현대적이라 느꼈던 모양이다. 전위적 프랑스 작가들도 좋았고, 하루키 역시 그 시절에는 정말 좋았다. 도서관의 해외 소설 코너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던 수많은 쓰레기들을 읽으며 어딘지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인과 관계가 명확한 문장보다, 감각적인 문장을 즐기면서 내가 젊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환상은 상당히 일찍 깨졌던 듯 싶다. 산 송장과도 같았던 96년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봄이 왔을 때 난 더이상 감각적인 문장에 속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후로도 몇년동안이나 감각적인 문장을 흉내내는 버릇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지금도 버릇만큼은 여전하다) 감각적인 문장을 뛰어넘는 진짜 대가들의 세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던 듯 싶다. 물론 그 과정이 가슴의 멍이 지워지지 않는 고난의 시간을 전제로 하긴 했지만…

대가들이 세계는 복잡하지 않다.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 작가들의 문체가 공통된 기호와 잡학이라는 두 가지 배경을 이해의 필수 요소로 삼고 있는데 비해, 대가들은 상식과 인간성이라는 쉬운 것들을 이해의 필수 요소로 삼는다. 대가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명 브랜드도, 특이한 음식 이름도, 특별한 밴드나 영화의 특정 시퀸스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 그저 주어진 상황의 주인공이 되어 내 상식과 본성으로 웃고, 슬퍼하면 그만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한가지 의문만 품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훌륭한 독자가 될 수 있다.

대가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특정 단어에 숨겨진 의도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길고 지루한 시소게임을 벌일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에 감동하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대가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려는 열정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대가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조급한 마음으로 결말에 접근하곤 했던 성마른 내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스타일리스트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30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결말을 읽고 싶어하는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힘겨워 했던 내가 말이다.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장 속의 주인공이 되어 넓은 이야기 속을 거닐 여유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대가와 스타일리스트를 구분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나에게 대가로 다가왔던 작가들이 타인에게는 스타일리스트인 경우도 있었고, 지독하게 유치한 문장으로 느껴졌던 스타일리스트의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상황에 딱 맞는 감동의 물결이었던 적도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 책 읽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책을 권하는 일이다.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늘 조심해야 해] 언제 부터인가 우리 세대의 책 읽기는 이렇게 변해 버렸다. 자신만의 대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유행이란 뜻 모를 기준이 세운 작가 리스트에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인다. 책을 권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만의 대가를 타인에게 소개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책을 소개하는 일은 우주 여행처럼 보기 드문 소망이 되어 버렸다. 대신 우리는 유행에 뒤쳐지기 않았음을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 감동을 공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수준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권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것이 아직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어느 사이엔가 나 자신도 우리 세대식의 책읽기에 포획당한 성난 짐승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2004/08/04 23:33 2004/08/04 23:33

컨설팅펌에 대한 단상

Posted 2004/06/19 10:48,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대학에 처음 입학할 당시에 가고 싶던 직장은 컨설턴트였던 것 같다. 학교신문사에서 수습 기자로 일하면서 대부분의 컨설팅 펌들의 설명회는 다 들어간 듯 싶었는데 그 당시 나의 솔직한 감상은 정말 멋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검정 색 오피스 슈트도 멋있었고, 업무 분야의 다양함과 컨설턴트들이 지닌 당당함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였던 듯도 싶다. 단지 컨설턴트가 되는 것을 대학 시절의 목표로 삶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기자 신분증을 이용해 리셉션 테이블에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컨설턴트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깨진 것 같다. 당시 설명회에 나온 컨설턴트들은 주로 BA였는데 대화를 통해서 파악한 그들의 일은 소위 [딱 갈이]로 불리는 제록스 머신의 휴머노이드 형태였다. 번역과 자료 준비. 복사(카피& 페이스트 포함)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입사도 어렵다는 그런 직장에서 하는 일이 보통 직장의 1.5.배의 연봉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 겨우 그런 일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어느날 Bain&Co.의 AC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잡았던 듯 싶다. 어느 정도 컨설팅 펌 특유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난 단도직입적으로 3년 후의 전망에 대해서 물어봤다. [베인에서 3년 뒤에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달변인 컨설턴트들이 할말을 찾아 머뭇거린 사실 자체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가 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다녀와서 정식 컨설턴트가 된다면 좋겠지만 가능성이 없다면 일단 이직을 고려하겠죠. 따로 MBA를 다녀와서 AC가 아닌 정식 컨설턴트로 다시 지원하는 방법도 있구요. 제가 알기로는 AC 경력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거든요.

사실 결정적으로 컨설턴트라는 직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은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였다. 취재차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가 대기업의 임원인 어느 선배 분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그 분의 말을 듣는 순간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함에 치를 떨었던 듯도 싶다.
컨설턴트? 나도 MBA를 다녀왔지만 MBA에서 배우는 태반은 어떻게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가에 대한 요령이라고. 알량한 MBA하나 믿고 현장 비즈니스가 뭔지도 모르는 새파란 애송이들이 프로세스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보면 웃음 밖에 안 나와. 전략 팀에서 몰라서 손을 안 댔겠어. 실행 여건이 안되니까 주저하고 있던 것이지.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어떻게 실행 여건을 만들어 내느냐는 문제 아니겠나? 요즘 생각하면 컨설팅펌에 오더를 주는 것 자체가 일종의 tax같아. Financing과정에서 어느 컨설팅 펌에서 다녀갔다고 하면 대체로 후한 평가를 주니까 말이야. 일종의 name value를 구입하는 것인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째 충격은 M사 서울사무소에서 실시한 한국의 여성 인력에 대한 리서치 결과였던 것 같다. 파이낸셜 플래너 혹은 보험 설계사를 한국 내 여성 고급 인력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분야로 진단을 했는데 한국계 미국인인 그 컨설턴트의 발표를 듣는 순간. 비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여자 친구들에게 보험설계사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지. 어쩌면 그날부로 인간 관계가 종언을 고할지도 모른다고…]

저 사람은 여성 고급 인력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묻고 싶어졌다. 영어 발음이 매끄러웠다면, 아니 주변에 퍼스트 랭귀지가 영어인 친구 하나만 있었더라도 틀림없이 질문 했을 것이다. 뒤에서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는 교수님을 무시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사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블랙 슈트로 몸을 감싼 그 여성 컨설턴트들의 능력에 심각한 회의가 든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최고 학부를 나왔을 텐데 말이야. 어째 저렇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것일까? 아마 저 보고서를 손에 든 여성부 이사관은 M사도 별 것 없다고 중얼거리겠지. 잘못된 자료 해석으로 내린 엉망 진창인 결론이니까 말이야]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Click!!

2004/06/19 10:48 2004/06/19 10:48

경제 위기론에 관하여

Posted 2004/06/06 16:25, Filed under: Column/Economic&Biz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인터뷰를 읽었다. 중앙은행의 수장으로써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감을 내보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는 생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방어책으로 금리를 인상시키거나 통화공급을 수축시키는 정책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이지만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답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위기론이 과대 평가 됐다는 답변은 중앙 은행의 수장으로서 보이는 ‘깡’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사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이 몇 번째 경기 국면인지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가장 긴 경기 국면 주기일지도 모르고, 일부 연구처럼 사이클의 매우 짧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활황의 예비 단계라는 루머를 액면가 그대로 믿어주기에는 이 동네에서 먹은 밥이 너무 많다. 진짜 저점을 통과했는지도 확언할 수 없는 시점에서 경기 순환론을 근거로 경기가 회복하고 있다는 주장은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는다.(경기 선행지수도 활황을 알려주기에 부족하고, 재고지수도 마찬가지다)

경제 위기론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는 주어진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가의 문제다.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표상 경제 위기로 보기 어려운 점이 분명 존재한다. 경제 성장률은 지난 분기 5.3%을 기록했고 환율은 안정되었으며, 금리도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업률도 지표상으로는 분명하게 조금이나마 줄어 들었다. 기업의 매출순이익률은 늘어 났고, 부채비율도 역대 최저 수준이다. 차이나 쇼크와 유가 상승이라는 악재가 겹쳤지만 그래도 수출에 매우 큰 타격을 입힌 것 같지는 않다(참아낼 만한 수준의 타격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 같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지표 속에는 숨겨진 이면이 있다. 지난 분기 경제 성장률은 5.3%이지만 동일 기간 내 수출 성장률은 15%대 였다. 수입 성장률을 고려해도 NX(Net Export)의 대부분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런 성장이 일반 국민 계정의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신규 투자 선행지수는 여전히 100이하이며 기업들은 저렴한 금리와 높은 수출 성장률 덕분에 거두어 들인 순익을 부채를 줄이는 데 쓰고 있다. 이 두 가지 상황을 해석해 보면 상황은 위기에 가까운 쪽으로 저울추가 기운다.

콜금리와 시장 금리가 매우 근접한 현상황에서(심지어 콜금리의 추가적인 인하까지 논의 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신규 투자 대신에 부채를 줄이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뜻은 신규 투자할 프로젝트가 없다는 설명이나 장기적으로 금리가 요동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시그널이다. 하지만 금리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다만 현재로서는 신용 경색의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금리가 상승하기 보다는 하락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다만 연방단기금리의 인상폭이 매우 커진다면 이 것은 우리 금융 시장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부채를 줄이고 현금 보유액을 늘리는 기업 파이낸싱 전략의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까?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필립 부틀러의 주장대로 장기적인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다. 장기적인 디플레이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경우 현재의 기업 파이낸싱 전략은 가장 효율적이다. 낮은 금리 수준과 가용 자본량이 낮은 상황에서 통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현금을 보유함으로써 (다시 말해 현금에 투자한다는 의미다)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부틀러의 주장에 관해서는 그의 저서 [부의 대전환]을 참고하세요)

물론 저금리 상황에서 디플레이선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인 자본 공급에 어려움은 없으며 기업이 현금에 투자하는 유인을 과대 평가 했다는 비난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비난의 토대는 솔로우 모형이나, 개방 경제 모델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며, 거래 비용이 0이며 금리차와 리스크가 없는 경제 모델은 실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또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에 대하여 완벽한 대응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이 불거질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장기 침체를 보라. 일본 중앙은행의 엘리트들이 돈을 찍어 낼 줄 몰라서 안 찍었겠는가?

두 번째 가능성은 금리와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최선의 의사 결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공산품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부동산은 약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의 가치가 폭락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고정 자산에 투자하기 보다는 현금 같은 유동 자산에 투자하는 편이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최대한 온건한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다. 조금 쉬운 표현을 쓰자면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나 정치권에 아쉬운 소리해가며 사업하기 싫은 것이고(다시 말해 은행 대출과 로비에 학을 떼었다는 표현도 가능하겠지), 이 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주시하고 있으며(그러니까 신규 투자를 안 하지), 여차해서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확 해외로 튈 준비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그래서 고정 자산에 투자를 안 하는 거다. 유동 자산으로 들고 있어야 튀기가 쉽지.)

사실 경제 위기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신뢰 관계의 붕괴와 펀덤멘탈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경제는 앞날을 생각하는 장기적인 비전에 투자하기 보다는 눈 앞에 닥친 위기를 벗어나기 급급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계와 기업 정부간의 신뢰 관계는 최악의 국면에 접어 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자기 실현적 예언]을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계 부분에서 보기에 현재의 경제 상황은 [예언]을 걱정할 판이 아니라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실제 상황]이다.

정부에 대한 기업의 신뢰감 역시 가계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무리 정부가 투자를 독려하고 경제 단체장과 간담회를 가져도 기업 입장에서는 공수표 한 장을 떼어줄 따름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기에도 심심하면 오라 가라 부르며, 중요 정략에 대해서는 방관을 최적의 정책을 삼는 정부가 더 이상 사고 좀 안쳐줬으면 하는 바람인 모양이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정부는 결국 경제의 선순환 시스템을 붕괴 시킨다. 처음에는 소소한 불신이지만 소소한 불신이 만들어낸 부정적 영향력은 순환 과정을 통해 몇 배로 중첩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경제 성장률이 올라가도 실물 경제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며, 높은 매출이익률을 내는 기업들은 투자 보다는 관망에 주력한다. 정부는 무능함으로 성토를 당하며 다시 신뢰를 상실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자기 실현적 예언]을 경계해도 이미 서푼짜리 보다 못한 정부의 말에 기업과 가계가 납득될 리 만무하다.

수출과 금리, 환률의 삼박자가 맞아도 경제 주체간의 신뢰가 붕괴되고 성장 엔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않으면 종국에는 단지 엇박자가 될 공산이 크다. 해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기업을 붙잡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경 분리의 원칙을 세우면서도 경제에 대한 정치의 지배 논리는 여전하다. 분리는 하되 누가 힘이 센지는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겠다는 그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가계는 어떤가? 지난 6년 동안 경제의 분배 시스템은 더욱 왜곡되었고, 기존의 사회관이 붕괴 일로를 걷고 있으며, 사람들 대다수가 피부로 느끼는 경기가 최악인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옳다면 옳은 것이라는 권위주의적 정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어렵지 않다. 다만 몇몇 핵심 전문가들의 머리에서 짜낸 정책 수단으로 뒤집기에는 너무 멀리 왔을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역량을 집중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매력과 현혹으로 긍정적 자기 실현적 예언을 온 국민에게 주입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 행정부는 첫번째 방법을 사용할 정도로 책임감 있지도,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할 정도로 멋지지도 않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길은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빌며 몇 년을 더 기다리는 것 뿐이다.

...

2004/06/06 16:25 2004/06/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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