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Sweet dreams!

Posted 2011/01/14 01:48,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몇 해전 제프리 유제니다스의 『처녀들 자살하다』를 읽는 동안 과거를 추적하는 이제는 중년을 향해가는 미시간의 옛 소년들의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진 때가 있다. 그들의 후회와 안타까움 밑바탕에 깔려 있는 불행한 소녀들에 대한 미안함을 보면서 문학적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지만 동시에 결코 소년들 같은 후회가 내 삶에 찾아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항상 잔인하다.

서른의 끝에서 옛 친구의 죽음과 조우했다. 너무나 안타까웠고 불행하였던 사건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해한 우울함을 선물했고, 결국 한 해를 마지막하는 12월의 마지막 오후 사무실 책상 앞에서 지구 반대편 아마존 강가에서 연말을 맞이한 친구와 학창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는 동안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귀국하면 밥이나 먹자란 그의 인사말이 허망한 마지막 인사가 될 줄 몰랐기에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는 친구를 보면서 삶이 조금은 허망해졌다. 사무실 밖은 연말인파로 들썩거리기 시작했지만 그후로 몇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의 내 웃음은 슬픔을 감추기 위한 가식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항상 선명한 컬러 사진 속의 열여덟 봄소풍 당시의 모습이다. 대학 졸업의 후의 모습을 보지 않은 것도, 제대 후 어설프게 기른 수염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왼쪽 끝에서 홀로 팔십 센티미터쯤 떨어져 누군가의 어깨에 팔을 기댄 그처럼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열 네 살부터 스물 한 살까지 수 많은 장면이 머릿속에 담겨져 있지만 왜 이 사진만이 계시처럼 떠오르는지는 이제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가 되었다.

1994년 처음 내가 본 그는 결코 호감이 가는 존재는 아니었다. 듣기 불편할 정도로 빠른 말과 독특한 억양. 정상과 사시의 경계에 선 눈동자, 먼지 낀 안경.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한다 쳐주기에는 모자란 성적. 무엇보다 열의와 노력은 있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성. 격렬하지만 쉽게 꺼지는 분노. 이 모든 요소는 어리기에 더욱 잔인할 수 밖에 없었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소년들 사이에서 그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돋보이게 만듦과 동시에 그의 한계를 가늠하게 만드는 기준이 되었다.

어느 날 지저분한 그의 안경릅 벗겨 닦아주면서 처음으로 맨 눈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안경을 벗은 맨 눈을 보는 순간 열 여섯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피로한 눈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야 그도 우리가 그를 보고 느끼고 있는 인상을 모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동시에 특이한 생각을 내뱉거나, 돌발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 사실을 부각하는 지금의 그 자신도 진지한 결의를 통하여 형성된 하나의 행동 양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무지한 쪽은 나였으며 그가 그만의 방식으로 삶과 진지하게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 머리속을 꿰뚫었다. 동시에 그 의 노력과 좌절이 온전하게 보답받지 못할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힘겹게 만드는 괴로운 삶이 전개될 것이며, 그가 달관이란 개념을 배울 때까지, 내가 여기 있다고 격렬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행동 양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를 표현할 때까지 그가 평온함을 얻지 못할 거란 확신 마음 속에 새겨졌다.

시간이 흐름 속에 그와 오랜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지만 처음 받은 인상은 계속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그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이 싫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되려 좋아졌다. 그의 논리적 비약이 억지로 들리지 않고, 그의 짧은 분노에도 익숙해졌다. 그가 잠시 고요히 쉴 때는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그의 거친 숨소리가 좋아졌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지나가기 마련이고, 시간은 소년에게나 노년에게나 똑같이 좋은 친구다. 인생은 제법 길기에 시간이 그에게 현명함을 가르쳐 줄 것이고, 결국에는 삶의 평화와 행복이 그에게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운명의 여신이란 참으로 변덕스러워서 내 확신이 거짓이 되고, 혹여 그의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보답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열여덟 이후 우리는 가끔 그의 행동을 장난 삼아 놀려댔지만, 그의 노력과 고단한 삶을 길고 긴 인생의 한 단계 혹은 준비 과정, 가치 있는 삶의 경험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도전과 희망이 스스로를 구속하는 덫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소년에게 꿈은 필요한 법이고, 그 역시 꿈 꿀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란 간단한 진리에 수긍했다. 아직은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무모함이 소년의 특권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틀렸다. 적어도 칠십쯤은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삶이 그에게 허락한 시간은 고작 삽십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삽십년 쯤은 태어나서 자라고 울며 괴로워하며 커다란 목표를 꿈꾸어도 된다는 논리에는 그 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성취 혹은 달관을 통한 행복이 기다리고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아무도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누었을 고민을, 우리는 그가 혼자 해결하도록 놓아 두었다. 가끔 힘들다는 투정을 들어주기는 해도 결코 너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가장 가치있게, 가장 행복하게 쓰라고 조언해주지는 못했다. 그의 노력과 피로함, 고통, 고뇌가 보답받기를 빌어주었지만 늘 가능성에 반신반의했던 우리였지만 그가 종국에는 작은 삶에 만족을 느끼며 행복할 것이란 사실 만큼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서른에 어이 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는 내가 보아온 시간 동안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하며, 자신보다는 덧없는 주변에 기대에 부응하고자, 스스로가 인식하는 냉정한 현실에 수긍하기 보다는 더 나은 미래와 커다란 꿈을 향해 자신을 맡겼다.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은 이제 우리가 꿈꿀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경종임과 동시에 소년들이 단 한 순간도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십대의 어느 봄. 도서관에서 카프가 전집을 읽으며 그는 고통 없는 빠른 죽음, 혹은 자살이 그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때 우리의 반응은 한편은 걱정에 한편은 성마름에 꽤나 거칠했는데 돌이켜 그 순간을 생각하면 울음이 생각을 멈춘다. 완벽하고, 아름다우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했음을 이제는 안다. 그의 고단했던 삶에 때로는 장난으로, 때로는 어리석음으로 무게를 더했기에 미안하고, 그의 노고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던 인정머리 없음에 부끄럽다. 따뜻한 선의로 삶의 피로와 커다란 성공에 대한 갈증을 나누지 못했음을. 아니 말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2011/01/14 01:48 2011/01/14 01:48

안녕, 복남!

Posted 2009/02/27 22:15,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시골집에서 키우던 복남이가 죽었다.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고 빠르게 뛰는 녀석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는데...... 기쁨을 온몸의 근육으로 표현하는 녀석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고, 녀석의 영리함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발치에 누워 배를 벌러덩 내놓은 채 누워있는 녀석의 표정은 몇 시간의 고된 여정이 가져다준 피로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이내 잠이 들곤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선량이 표정이 마음속에서 솟아나 얼굴에 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이제는 녀석과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이 희미하다. 지난 설 연휴에 본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 해도 다른 기억들 속에서 쉽사리 꺼내지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녀석이 우리 가족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에 녀석을 기억하는 일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녀석이라면 내 아이가 녀석을 매만져줄 만큼 오래 살 줄 알았고, 만약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냄새만으로도 새 식구가 된 내 처를 알아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독할 정도로 우리 식구밖에는 몰랐던 녀석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친 몸으로 우리의 손짓을 갈구하며 떠났다. 강아지로서는 짧지 않은 삶이었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리 길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은 준 채로 말이다. 살아가면서 나를 둘러싼 바깥 울타리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끝 없는 헌신을 녀석은 나에게 주었고. 그랬기에 녀석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녀석에게는 영원과도 같을 오랜 삶을 살면서 녀석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희미해지고 말 것이란 사실이 유쾌하지 않다. 왜 녀석을 본 마지막 순간에 조금 더 오래, 따뜻하게 만져주지 못했을까? 녀석의 평생 우리만 생각하며, 우리만이 삶의 전부였던 녀석에게 말이다.

2009/02/27 22:15 2009/02/27 22:15

desktop

Posted 2007/07/07 11:53,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사용자 삽입 이미지

궁금하다는 이를 위하여!

2007/07/07 11:53 2007/07/07 11:53

헛헛한 이별

Posted 2007/06/04 10:07,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난 어떤 사람일까? 사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나 사이의 차이는 뒷머리를 따끔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어쩌면 어이없을 정도로 맹목적인 호의를 베풀었던 내 행동에 대한 후회일지도 모르고, 때로는 깜짝 놀랄만한 상대의 호의에서 비롯되어 피어나는 웃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며칠 전 책장을 배회하다가 짧은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영원히 자기편이 되어 줄 수 있겠냐는 사춘기 소녀에게나 어울릴 법한 친구의 문장이 포스트잇을 채우고 있었다. 메모를 읽다보니 그 부탁에 대한 내 대답 역시 떠올랐다. 지금의 나라면 '영원'을 믿지 않기에 확답을 피했을 그 물음에 난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답을 했을까? 분명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삶에는 수많은 분기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모든 분기점을 지나 평생을 함께 걸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길은 본질적으로 혼자 걸을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한 구간을, 어쩌면 서너 구간을 함께 할 사람은 있겠지만 그 누구와도 삶 전체를 함께할 수는 없다. 아니 사람들 모두가 잠재적인 이별의 가능성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마음은 별개다. 왜 마음은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지, 그 불가능함을 추구하다가 상처 받는 마음이 아파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우아하게 냉혹한 척' 굴어대는 나는 또 무엇인지. 어째서 솔직하게 다음 구간까지, 혹은 다음 구간까지만 함께 걷자고 말하지 못하는지, 영원이란 거짓말로 상대를 현혹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상대를 외면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꾸밈 없이 솔직해지기' 일 것이다. 마음과 표정을 뒤덮고 있는 피갑은 벗으려야 벗을 수 없다. 그렇기에 사실을 말해도, 마음 속 깊이 감추어진 두려움을 말해도 그 누구도 진실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결국 나에게 남겨진 일은 저 멀리 제 갈 길로 바쁘게 걸어가는 뒷모습들을 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작게 행운을 빌어주는 것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부지불식간의 일이기에 '안녕'이란 인사말조차 남기지 못한 헤어짐 속에서 말이다. 아무리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2007/06/04 10:07 2007/06/04 10:07

엽서는 너무 오래 걸리기에

Posted 2006/09/22 01:04,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요즘들어 즐겨 걷는 산책길에는 저울이 그려진 상점이 하나 있어. 유태계 상점이 분명하다고 추정하고 있지만 채색된 간판을 매일 같이 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팔고 있을지는 관심이 가지를 않아. 그냥 저울이 내 마음에 투사하는 이미지 하나만큼만 선명하게 머리에 담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제일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어. 만약에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우리의 운명을 저울에 달고 판단할 수 있다면 삶이 한결 행복해질까? 대답을 알 수 없기에 그저 푸른색의 저울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 같아.

의사결정 나무에 제약조건이론을 응용해 문제를 분석해 보면 현재의 내 문제는 세 번의 의사 결정이 필요해.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은 내년에 또 다시 시험을 보느냐이고, 긍정적인 대답을 선택한 경우 다시 휴학을 하느냐, 휴학을 하지 않는다면 학교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파생되더라고. 하지만 어느 것도 지금의 나로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어. 시험의 결과는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이고 난 무조건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거든. 하지만 가능한 그 선택의 시기가 늦게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야. 실제로 두 달 뒤에 선택의 시기가 왔을 때 나에게 주어진 최종 판단의 시간은 고작 두 세시간에 불과할테니까 말이야.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시련을 강요해. 하지만 시련 따위에 멈추어 선다면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평생동안 알 수 없어. 상황에 따라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해야한다는 대원칙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원칙이 시련을 회피하는 변명이 될 수는 없기에 삶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가 우리의 앞 길에 예정해 놓은 파란만장한 시련에도 끝이 존재하지 않을까? 신을 연역해 내는 것처럼 시련 역시 어느 순간에는 끝이 있다고 연역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시련에도 끝이 있다면 언제인가는 우리가 꿈꾸는 그 길의 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최종 목표를 이십대에 이루어야 할 3가지 것들로 한정짓는 것은 삶에 대한 가장 심각한 모독이라고 생각해.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고 우리의 목표 역시 조금은 이상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해.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야. 그러니 절망도, 실망도 아직 우리의 것이 아니야. 죽음이 입맞춤 하기 전까지 인생에 있어 진짜로 끝난 것은 없으며 오직 성취해야 할 미래만 남아 있을 뿐이야. 지금껏 우리가 건너온 수많은 갈림길들을 생각하자. 조금 늦게 갈 때도 있고, 더 힘들게 돌았던 경우도 많지만 그 순간 순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만큼 잘 해낼 수 있었을까?

레미제라블을 보다가 그 유명한 바리케이드신에서 난 너희들을 생각했어. 네가 너희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너희들이 항상 최고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 하느 만큼 슬기롭게 극복할 줄 알기 때문이야. 아니 조금더 마음 속 깊숙한 부분을 들추어 보자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같은 것은 없어. 신뢰라는 것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니까. 내게 있어 너희는 존재 자체가 인생이 홀로 걷는 고단한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며, 신뢰와 우정이란 것이 금석문 속의 문구가 아닌 실제 삶과 함께 한다는 증명이야. 그러니 방황은 나중으로 미루자. 삼십년 후에 스물 여섯 가을을 생각할 때 그저 잔바람이 한 번 불었지 하고 웃으며 말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야.

P.S.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은 나만 빼놓고 정기전에 가려고 티셔츠 구매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그대들이야. 알다시피 번다한 이십대 초반을 보낸터라 2001년이 나의 마지막 응원이었다고. 갑자기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부쩍 우울해져 오늘은 술을 한 잔 마시기로 결정했다네.

2006/09/22 01:04 2006/09/22 01:04

個人 用例

Posted 2006/04/08 01:03,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사말은 ‘잘 지내지’에서 파생된 일련의 문장들이다. 요즘은 그마저도 거의 쓰지 않지만 개인적인 용법 사전에서 이 문장들은 나는 당신에게 진지한 관심과 선량한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며 상대의 기쁨과 슬픔이 나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아래 사용된다. 보통의 흔한 인사말이 내 용례집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간주되는 까닭은 내가 ‘안녕’ 과 ‘다음에 보자’를 정확하게 구별해서 쓰는 괴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잠시라도 누울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밤을 지새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런 밤에는 유난히 ‘잘 지내지’하고 안부를 묻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안부 인사를 건내받는 그들은 실없다 웃어 넘길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함부로 남발하지 않는 꽤나 소중한 문장인 셈이다. 먼 훗날 다시 사랑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면, 그녀가 내가 여행 중에 보낸 ‘잘 지내지?’란 문장의 엽서를 받는다면 그것을 부족한 사랑과 빈궁한 재주에 기인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다스러운 사람이 말을 아낄 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지한 감정이 녹아 있는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잘 지내지?
난 결국 몇 시간이라도 눕기로 했어.
2006/04/08 01:03 2006/04/08 01:03

Sorrow mind

Posted 2006/02/02 18:25,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몇 해만에 녀석과 열람실에 마주쳤다. 졸업은 언제냐는 물음에 이번이 졸업이란다. 그러더니 다문 입술로 3월에 논산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까닭 없이 목이 매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우정이란 굳건한 바탕 위에 서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기만한 사이이건만 딱 한번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2003년 2월의 어느 시험장이 떠올랐다. 점심 무렵 답답한 시험장을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십여 바퀴쯤 돌며 걸었던 운동장과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발견한 산만양이 떠올랐다. 지친 마음으로 먹던 철에 맞지 않던 아이스크림의 맛이 그 날의 걱정과 함께 되살아 났다.

나나 주변의 친구들이나 모두 실패보다는 성공을 전제로 생각하도록 키워진 것 같다. 가능하면 실패의 두려움은 마음 속 깊이 숨기고 되도록 가능성을 바라보며 우직하게 뛰어가도록 키워진 것 같다. 위험과 보상에 관한 계산은 가장 깊숙한 곳에 숨기고 열정과 노력만 들어내도록 그렇게 배우며 자란 것 같다. 하지만 삶은 그 누구에게도 녹록하지 않다. 경쟁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치열해지며 한 번의 실수가 게임의 전체적인 국면을 결정한다. 모범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삶은 더욱 모범적으로 변모해 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슬픈 눈으로 공허한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하루를 넘긴다. 한 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잘 알고 있지만 일단 한번 가는 데까지 ‘개겨’ 보는 거다.

넓은 등판때문인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내게도 두려움은 곧잘 찾아오는 손님이다. 누구의 말대로 세상은 ‘uncertain world’가 아니겠는가? 내일을 장담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경험으로 내일을 추측해 볼 수 있겠지만 내일은 랜덤워크 가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uncertain world’에서 장담은 철모르는 아이나 능숙한 거짓말쟁이들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많은 불운이 나를 비껴가고, 행운만이 나를 맞이할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장담해야한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두려움에 굴복해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속이 뻔히 들어나 보이는 장담이란 거짓말로 스스로를 꼬드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머리수가 아니라 집중력과 그것을 성과로 연결시키는 노련함이라고 밑천이 들어날 때까지 스스로를 속여야 한다.

사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다보면 인생의 ‘좋은 시절’이 정말로 지나갔음을 깨닫게 된다. 남은 삶이 지겨운 허위와 속임수로 스스로를 달래며 견디는 것이라면 삶의 의미는 절반쯤 아니 극도로 퇴색해 버린다. 행복이라고 자위하는 짧은 만족들만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인생의 신기루는 산산히 부셔진다. 결국 이런 상태에서 의존할 것은 사랑 하나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난 ‘좋은 시절’이 모두 지나가 버렸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내 ‘좋은 시절’은 이제 겨우 반쯤 지나갔다. 게다가 난 어디까지 갈 수 있나하고 스스로를 속여보며 의연한 척 걷고 있다. 사랑 하나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현혹되는 순간들도 있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람들에게 눈이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에게는 ‘개겨’ 볼 힘이 남아 있다.

2년 후 녀석이 제대할 무렵. 그때 내가 사는 술이 ‘개길’ 마지막 힘마저 소진해버린 사내들의 처량한 술자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정한 놈이라도 욕을 먹을지언정 꼬리를 말아버린 老狗가 되어 ‘인생 그런거지’라고 말하며 술잔을 털어 넣기보다는 시간이 너무 비싼 몸이라 술 한잔 살 여유가 없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정인군자 흉내는 집어 치우자. 서푼짜리 자존심보다 못한 것이 그 서푼짜리 겸손과 서푼짜리 배려다.
2006/02/02 18:25 2006/02/02 18:25

I apologize

Posted 2006/01/03 05:37,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3비의 내가 되다. 인격을 회의하다.

I apologize to you for a rude act.
2006/01/03 05:37 2006/01/03 05:37

이제 한 주!

Posted 2005/12/09 00:09,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이제 한 주 뒤면 다시 학생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처럼 복잡한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은 없다던데 요즘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이렇다. 주말에는 <퍼플 라인>에서 <마리 앙뜨와네트>,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으로 연결되는 Fr. story에 빠져봐야 겠다.

To.

2005/12/09 00:09 2005/12/09 00:09

수취인미상

Posted 2005/10/31 13:02,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잘 지내고 있나요?
서늘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버스에 올랐다가 어느 사이에 화사한 단풍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번잡한 정도는 아니지만 하루 하루 변해가는 나뭇잎을 지켜보는 것은 사치임이 분명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거든요. 당신도 무척 바쁘겠죠? 나만큼이나 바쁘게 보내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렇지 않다면 궁벽한 이곳에서 이야기 나눌 벗 하나 없이 방치된 내 삶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난생 처음으로 책장에 읽지 않은 책이 쌓이고 있는 중이예요. 책을 모으는 버릇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읽을 시간만 없는 셈이죠. 처음으로 읽을 책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던 사람들의 넋두리가 이해되고 있어요. 일주일이면 모조리 읽어버릴 분량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일주일마저 사치거든요. 사실 이제는 슬슬 체념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가 가고 있어요. 나중에 즐길 디저트를 상상하는 기분으로 책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렵니다.

사실 오늘 아침에 본 것은 지금 남겨놓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햇살에 찬란히 빛나던 단풍만이 아니었어요. 어린 시절 걸어 다녔던 작은 골목길과 지금의 나를 만든 이 곳에서의 시간이 층층이 생각났거든요. 이 막간극이 끝난 뒤에는 아마 난 다시는 이땅을 밟지 않을꺼예요. 산에서 따온 나무 열매들이 가득 담긴 보자기를 이고 버스에 타는 노파들의 뒷모습 역시 다시는 못 보게 될 것이 분명하구요.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 냉정하게 이곳의 끝 모습을 바라보는 난 하인리히 만이 그려낸 앙리가 된 기분 이예요. ‘다시 못 볼 사람이기에 그는 기억해야만 한다’ 요즘처럼 이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렸던 적은 없었는데 말 이예요.

참.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빼먹었네요. 늘 한잔이 남는 커피메이커를 보거나 버스의 배너에 달린 모 언더웨어 회사의 광고를 보면서 잠시 결혼이란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면서 10초쯤 망상에 빠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음이나 정신이나 온전히 ‘내 작은 전투’를 위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난 쿠드라의 군기를 예쁜 가브리엘에게 받친 바보가 아니니까 걱정 같은 것은 할 필요 없다는 것 알고 있겠죠. 하지만 일주일에 5분쯤은 걱정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나 역시 그만큼은 당신을 떠올리며 흐뭇해 하니까요. 그마저도 반칙이라면 반칙. 거기에 더해 비겁하기까지 한 행동일까요?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누가 이 글을 읽고 스스로가 당신이라고 믿어줄까요? 기대감이 이내 배신감이 되고 의혹이 되었다가 희망으로 다시 절망으로 변할 이런 편지를 왜 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는 중이예요. 하지만 이런 편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가을 보낸다면 내 삶은 너무 고루하고 재미없을 테니까요. 할로윈을 준비하며 쓰는 장난쯤으로 이해해 줄래요? 아! 오해는 하지 말아줘요. 악의적인 의도 같은 것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뽑아내려는 의도 따위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나조차 누군지 모르는 당신에게 스물 다섯 시월의 밤은 입맞춤이 생각나는 시절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가 입맞춤을 나누기나 했는지, 나누었다면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이제는 하나도 기억 나지 않지만 아무렴 어떻겠어요.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입맞춤의 상상만으로도 나는 유쾌하고 기분 좋게 나른해지거든요. 벌써 줄일 시간이 되었군요. 가장 허망한 것이 언어와 시간이라던데 아쉽게도 난 한평생 두 가지에 기대어 살 운명을 지닌 것 같아요.

꿈꾸는 모든 것들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그런 내일이 되기를 빌며! 혹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내일이 되기를 기원하며!
2005/10/31 13:02 2005/10/31 13:02

Stalker's last sigh

Posted 2005/08/28 00:01,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친구들에게조차 밝히지 못하는 심각한 괴벽가운데 하나는 대학 동기인 어떤 아가씨의 흔적을 반복적으로 찾아보는 버릇이다. 물론 그녀와 난 공식적으로는 서로의 이름이나 겨우 아는 사이에 지나지 않고 기껏 선심을 써봐야 강의실을 오가며 인사나 나누는 사이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나를 잊었는지도 모르고 애당초 기억할만한 대상으로 인식조차 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찾아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못했다. 이곳 저곳을 탐험하다가 그녀의 어조와 비슷한 글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문체와 단어를 주의 깊게 살핀다. 혹여 녀석의 패턴이라고 부를 만한 리듬이 문장과 사진에 담겨져 있지나 않을지 눈에 불을 밝힌다.

생각해 보면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오래 전 학과의 익명 게시판에 쓰여진 어떤 글의 주인을 찾아보려는 순진한 시도는 오래지 않아 어떤 술자리에서 그 글에 호응 되는 단어와 문법으로 말하는 한 아가씨를 발견하면서 풀렸다. 하지만 호기심에 관한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는 호기심은 낳는 것은 더 큰 호기심이란 사실 뿐이다.

사실 난 그녀와 개인적으로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년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녀에 관해 알고 있다는 환상이 있다. 이십대 초반의 그녀는 에곤 실레를 좋아했을 것이고, 클림트의 유디스와 자신 사이의 어떤 유사점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가 Goldfish를 좋아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연금술사>보다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더 재미있게 읽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녀가 <맹목>을 읽었다면 이 책에 빠져들었을 테고, 하루키를 좋아하던 21살 여름에서 벗어나 지금쯤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가 한번 그녀는 익명의 존재가 나인지 모른 채 바람이 시원해 지면 병맥주나 한번 마시자고 청한 적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당시의 내 문체는 성별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대학이란 공간을 떠나기 전에 그녀와 맥주 한잔을 마시는 일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술잔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비웃음인지, 헛웃음인지, 지루함인지 모를 모호한 웃음을 자주 지었는데 그 웃음이 공격적인 그녀의 태도와 어울리면서도 어떤 때는 숨겨진 관찰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아주 낮은 가능성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이곳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첫번째 블로그에 그녀가 코멘트를 남겼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훈련소에 다녀온 뒤의 바쁜 겨울을 보낸 다음에는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가벼운 전화 한 통화로도 그녀의 근황을 말해줄 친구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나답지 않은 어색한 행동이다.

며칠 전 많은 친구들이 졸업을 했다. 졸업식 같은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졸업장을 찾으려 갈 시간이나 겨우 비우는 졸업이지만 다른 친구들이 그러했듯 아마 그녀도 졸업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아침을 열면서 대학을 떠나기 전에 그녀와 병맥주 한 병을 나누면 재미있을 거라는 과거의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나의 호기심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먼 훗날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명함을 교환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끝내 홍대 앞 커피빈이 그녀에게 갖는 의미라든지, 내가 알고 있다 믿었던 그녀의 像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호기심은 늘 이렇게 끝나곤 한다. 마치 그것이 숙명이라고 되는 것처럼.

P.S.
Happy Birthday to me. 이제야 만24살이 되다.
2005/08/28 00:01 2005/08/28 00:01

잘 다녀오시구려. 나의 친구

Posted 2004/09/24 14:08,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비자발적인 금주 상태에서 나를 구해주던 절친한 친구가 내일이면 떠나게 된다. 본인말에 의하자면 내년 봄에는 귀국해서 졸업하겠노라고 명랑한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의 금주 상태는 해를 또 한번 넘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녀석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기억의 무게에 펜이 똑바로 나아가지 않는다. 너무나 즐거웠던 내 삶의 축제 기간이 떠올라 마냥 흐뭇하다. 21살에서 오늘까지 녀석이 있었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머리 속을 맴돈다. 밤새 이야기 하더라도 밑천이 들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던 우리의 사건들. 그 사건 속에서 울고 웃던 우리…

작년 11월 주영군이 출국했을 때 녀석은 나에게도 이런 글을 써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때가 되면 써주겠다 약속했지만 사실 녀석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너무 어렵다. 녀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난 지난 몇 년간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과 실수 역시 같이 떠올리기 때문이다. 즐거웠던 순간만큼이나 괴로웠던 순간도 있었고, 행복했던 순간만큼이나 불행하던 때도 있었기에…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한편의 희비극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스쳐지나간 수많은 운명의 희롱조차도 우리가 누린 축제를 구성하는 어떤 요소였다는 깨달음만큼이나 명백하게

사실 이 녀석은 우정이 性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녀석이다. 청소년기를 남학교에서 보낸 나에게는 이성이란 애정을 바치거나 헌신할 대상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편견 때문에 평생 친구가 될 수 있을 수많은 사람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녀석을 만난 뒤로 이런 내 편견은 시나브로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녀석과의 우정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은 이런 소소한 깨달음만이 아니다. 녀석을 알게 된 이후로 난 여유를 알게 되었고, 순간이 주는 기쁨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등에 엎혀 잠꼬대를 하는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갈지 자로 휘청거리면서도 한잔 더 마시자 투정 부리던 목소리도 생각나고, 기분에 취해 잡아 보았던 작은 손도 떠오른다. 공포 영화를 볼 때면 잡아당기던 내 셔츠의 소매도 생각나고, 배고파 기절하겠다던 그 표정도 떠오른다. 환하게 웃던 모습도, 피곤에 절어 있던 모습도, 눈동자에 맺힌 눈물도 생각나고, 사랑이 가져다 줬던 햇살처럼 밝은 미소도 떠오른다.

어느 날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녀석을 보면서 녀석의 황금기는 지금이구나 하고 생각하던 때가 기억 난다. 강의실에서 같이 수업을 받았던 일도, 책 한구석을 빡빡하게 채웠던 필담도 떠오른다. 졸려 기절하던 모습도, 나란히 앉아 꾸벅꾸벅 졸던 일도, 한 주의 수업이 끝난 주말에는 술생각에 기묘하게 얽혔던 시선도 생각난다.

졸다 깨어나 엉킨 머리 좀 풀라고 잔소리 하던 내가 보인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 누구 좋아하는 것 같아’ 하고 말하던 내 모습도, 늘 안타까웠던 녀석의 남자 친구들도 보인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그때가 아니겠지만 내 삶의 황금 시대는 그 때였노라고 되뇌이는 내가 보인다.

나의 절친한 지기인 WC군은 본인이 녀석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3년이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제야 얼마나 본인이 절실하게 녀석을 사랑했는지 깨닫고 힘들어 하는 녀석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두 녀석 모두 나의 절친한 친구인 이상 어느 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기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 지겠지]란 말을 가장 깊게 믿는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난 철저하게 묵언계를 수행한다.

WC군의 블로그에 포스팅 되는 글들에서 녀석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녀석과 내가 공유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문자화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읽을 WC군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우리의 훈련은 이럴 때 안타까움을 더한다.

언제인가 난 내 이름을 걸고 녀석에게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유치하지만 [상황에 관계 없이 무조건 네 편이 되어 주겠다]는 약속인데 술에 취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녀석의 기억 속에서 내 약속이 살아 남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녀석이 내게 해준 [시간이 흘러 변해버린 나를 발견해도 여전히 친구로 남아주기]란 약속은 또 어떤 운명을 밟게 될지…

녀석이 돌아올 때쯤이면 각자의 목표를 위해 번잡한 이십대 중반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서른에 임박한 우리를 발견하면 얼마나 허탈해질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 또 나이를 먹고 그러다 보면 우리가 누렸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흐릿해질까? 괜시리 우울해진다. 잘 다녀오시구려 나의 친구.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 할 수 있는 나의 친구 지선양….
2004/09/24 14:08 2004/09/24 14:08

이제 시작이라구

Posted 2004/07/15 14:34,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장마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하루쯤 태양이 그 모습을 찬란하게 들어낼 때에는 길고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진짜 여름이 시작된 것 같은데. 다음날이면 흐릿한 날씨와 높은 습도,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리는 비에 시달리곤 하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기대가 매우 근거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여. 한반도 남부지역을 오르내리는 강대한 두 기단의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한 장마는 지속될 테니까. 다시 말해 태양은 장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이지.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많은 것 같아.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는 상수항임에도 변수로 착각하는 것들이 꽤나 많은 것 같아. 곰곰하게 생각해 보면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들에 너무 열중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어.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마저도 끊임없이 농락당하는 것을…

언제인가 싸이의 다이어리에 쓴 기억이 있는데 내 스스로가 평가하는 나의 실행력은 30점 정도였어. FM은 아니지만 성과면에서는 FM보다 늘 나았다고 자부하곤 했었는데 냉정하게 평가한 나의 실행력을 보니 웃음 밖에 안나오더라. 하지만 낮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낮은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낮은 실행력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문제 해결 방법을 탐구하게 되지만, 이것을 문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기 발전과는 안녕을 고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어제 저녁 자네의 옛집에 보관되어 있던 글들을 워드의 노트패드 기능으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옛 글들을 읽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자네가 입대하던 그 시기만 하더라도 딱 1년만 더 학교를 다닐 요량이었고, 지금 우리 나이 무렵에는 CPA에 행시까지 패스한 인재가 되리라 다짐했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해 놓고는 그마저 힘겨워서 잔머리를 쉴새 없이 굴리고 있지않는 것 같아. 부족한 실행력을 고취시키기 위해 [정신적 마약]을 투약하고, 내 경우에 있어서는 비겁한 짓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사실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어. 다만 내가 진짜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강인한 껍질 속에 숨겨진 나약함에 주목하다 보면 너 스스로를 잃어버릴 거란 사실이야. 아직까지는 무모하게 도전해도 되는 나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나이이기도 하고.

주어진 목표와 해야할 일들이 많은데 왜 끊임없이 옆을 돌아보는지 모르겠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옆을 돌아보고 한숨 짓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최소한 중간쯤 갔을 때 옆을 바라봐야 폼이 나는 법이라고.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앞으로 숨가쁘게 달려야 할 날들은 이제 겨우 첫머리를 살짝 드러내었을 뿐이야.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 끝이 얼마나 멀리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 그러니 뭐든지 속단하지 말라고. 섣불리 결과를 오판하고 자학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보다 많은 정보를 모아 게임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2004/07/15 14:34 2004/07/15 14:34

답신

Posted 2004/06/07 15:04,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아침에 눈을 뜨니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지난밤에 누가 메시지를 보냈을까 하는 호기심이 앞선다. 내 소중한 친구들 가운데 늦은 밤 잠에 빠져 있는 대신 문자를 보낼 사람들은 없었으므로. 게다가 매일처럼 메신저에서 보는 사이에. 싸이의 방명록과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소식을 주고 받는 터에 귀찮게 손가락을 놀려 메시지를 보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다. 아니군. 모르는 번호는 아니지만 기억에서 사라진 번호다…

메시지의 주인께


낯설다. 꾸밈이 아니라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 봐야 할 정도로. 이른 아침 신문을 볼 시간을 도큐멘트 폴더의 이 파일 저 파일을 살펴보는 데 할애했다. 한 주의 시작치고는 그 다지 개운한 출발은 아니다. 게다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까? 너무 냉혹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고, 혹자는 나를 삼두육비의 괴물로 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칫 내가 좋아하기 시작한 그녀가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욱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다고...

너무나 외로울 때면 메시지의 주인공에게 연락하고 싶은 유혹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어느덧 지나버렸고 초월의 단계에 접어 들었다. 한때는 메시지의 주인이 위치했던 자리가 마냥 부러웠던 적도 있다. 여전히 메시지의 주인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러움도 적어 진다. 나에게 허락된 행운이 딱 거기였노라고 체념하고 나면 그다지 아파할 것도 없다.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라고 포기하고 나면 여운이 남기는 하지만 수용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단지 그럴 따름이다. 단지 그럴 따름이야...
2004/06/07 15:04 2004/06/07 15:04

나의 오랜 친구에게

Posted 2004/05/19 11:34,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아직도 선셋대로의 Perfect Year를 듣고 있노라면 눈꼬리가 심하게 떨려온다. 이성은 [나트륨마그네슘 부족이야]를 연발하지만 감성은 아직도 내가 살아있기에 그런다고 말한다. 아직 살아 있기에 눈꼬리가 떨려오는 것이라고.. 먼 훗날에는 그것마저 멈추겠지만 지금은 아직 살아 있노라고..

성우의 싸이를 발견했다아니 발견했다기 보다는 지금껏 찾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찾으려는 의지가 나에게 있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키워드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였으므로 이제야 발견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2000년 어두운 극장의 대기석에서 발음해주던 녀석의 아이디를 까먹었다는 것은 나조차 요령부득이다. 8살 때 외운 녀석의 집전화를 오늘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내가 6개 문자로 구성된 아이디 하나를 잊어버렸을 리 없다.

사실 많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에 가서 원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평생 그 부족함을 채우지 못한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난 경찰서 앞 사거리 신호등 옆을 지나칠 때면 그 날의 약속을 기억하곤 한다. 12살 꼬맹이의 약속이지만 난 그 약속의 반을 지켰고 온전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기에..

다른 친구라면 그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만이 중요했지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던 듯 싶다. 다른 길을 걷고 있더라도 그와 나의 우정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친밀함이 우정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예의가 없어지고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그가 나와 같은 길을 걷기를 희망한다. 혼자 길을 걷기 보다는 그에게 의지하며 길을 걷고 싶기 때문이리라. 늘 저 잘난 맛에 취해 사는 것처럼 보여도 힘들고 고된 길을 걷고 있노라면 그 길을 같이 걸어줄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녀석이 아닌 다른 친구였더라면 견실한 카운셀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에게만큼은 할 수가 없었다. 어딘지 삶의 중요한 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같은 길을 걷기로 약속하고 점 찍어 놓은 친구 녀석의 반항에 솔직히 화도 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내 삶에 가장 중요하던 믿었던 또 한 사람을 잃어버렸다.

시간이 흘렀다. 녀석에게도 시간이 흘렀고 나에게도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아파했으며, 무엇보다도 원철군을 만났다.(요즘 마음에 안 들어. 이 폐인!!) 그리고 며칠 전 녀석의 싸이로 가는 키워드를 머리 속에서 꺼내 들었다. 물론 기청군의 한마디가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사진을 보았다. 글씨를 보았다. 문체를 보았다. 너무나 익숙한 존재라 단지 그것만으로도 머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졌다. 아주 작은 버릇마저도 여전히 모두 기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티백에 메모된 숫자 하나를 통해서 내가 살려낸 기억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18살 준호에게 보낸 내 편지를 네가 읽고 찬익스러운 문체라고 평했던 것 까지 기억한다고.. 16살, 연합고사 일주일 전 내가 건네준 초콜릿을 먹던 네 모습도 기억하고, 21살 같이 [미인]을 봤던 비오던 그 날도 기억한다고.. 10살 때 입었던 너의 세로줄 무늬 자켓마저 기억하고 있더군..

어쩌면 시간이 나에게 지혜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나와 같은 길을 걷자고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다만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이 조금 순탄하고 편한 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것이 최선이라고 강요하던 버릇도 이제는 사양하고 싶어. 너에게는 네가 걷고 싶은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내가 걷고 싶은 길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 비록 다른 길을 걷더라도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우정이 희미해지는 것은 아닐 진데 너한테만은 왜 늘 많은 것을 바라고, 많은 것을 요구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미안해. 그리고 언제나 이것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온 것을 축하해..
2004/05/19 11:34 2004/05/19 11:34

기다림은 지루하다

Posted 2004/05/10 13:48,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이유따위는 묻지 말아주세요.
연유를 알았다면 기다리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인내심만큼은 남다르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나의 자부심도 오늘에 와서는 종언을 고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아무말 없이, 아무런 행동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바닦까지 껴져 버리거든요.

불안감과 초조, 그리고 무력감.
이런 느낌이 나에게 얼마나 낯선 것인지
당신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이런 감정이 나를 스쳐지나 갑니다.
그것도 끊임없이.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나조차 놀랄 정도로 냉정했던 내 마음이
당신을 생각하면 선량하게 풀려 버립니다.

당신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당신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익숙한 거리를 걷고 있을 당신을 상상하노라면
삶은 즐거운 것이 됩니다.

그런데 당신은 절대 모르겠지요.
표현하지 않은 마음 따위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법칙일테니까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책임도 무겁지 않을텐데�
무정한 당신은 늘 나를 기다리게 만듭니다.
왠지 훔쳐오고 싶었다. 내가 쓴 것 같단 말이지...
2004/05/10 13:48 2004/05/10 13:48

Human Nature!

Posted 2004/04/24 13:07,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iCal에 메세지 알람이 떠올랐다.

'03 06 Confession을 열어 볼 것. 지금 내 마음은 어떻니? 여전히 그대로야? 어쩌면 쓴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내가 언제 그랬나 발뺌 할지도 모르겠군. 그것이 나니까 말이야...

마음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야.
지난 몇달동안 내 마음 몰라주는 자네가 야속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내 마음 알고도 모른척하는 자네가 야속하다네.

처음에는 그저 좋은 배경만으로도 충분할 듯 싶었다네. 자네 기억 속에 잠시나마 좋은 배경가운데 하나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욕심이 커지더군. 자네를 보면서 하루는 행복하고 하루는 괴로운 상태가 시작된 것이 이즈음이 아닌가 싶다네.

좋은 배경으로 기억되기에 자네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네.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는 배경에서 좋은 배경으로 그 다음에는 무언가 의미를 지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네. 움직일 수 없는 배경 대신에 무언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어.



정말 끝이 없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 이때부터라네. 자네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행복했기에 난 억지로 행복한 웃음을 지워야했고,가끔 자네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웃음을 주워담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네. 그 다음에는 괴롭기 시작했어. 운명이라는 것이 항상 호의적이기보다는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기에 모든 것이 두려워졌네. 내 마음 들킬까 무서웠고, 그 보다 무서운 것은 자네의 기억 속에서 '우스운 녀석'쯤으로 잠시 기록되었다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이었다네.

지난 시간동안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리고 내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갔는지 자네는 모를 것이네. 아마 평생 모를 것이야. 결코 말하지 않을테니. 다시는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네. 다시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도 아니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초탈할 줄 알았어. 하지만 지금의 난 자네의 마음에 매달린 가엾은 영혼에 불과하다네.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리란 믿었던 사랑에 너무나 혼란스럽고 당혹스럽다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자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자네를 볼 수 없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자네의 기억에서 지워질까 두렵고, 자네가 없다면 나 역시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자네를 사랑한다네. 자네의 작은 관심에 행복하고, 자네와 공유하는 시간을 머리속에 꼭꼭 숨겨놓는 그 순간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면 믿을 수가 있을까?

삶은 지독한 아이러니의 연속이네. 자네를 사랑하기에 빈정거리고, 자네와 함께 공유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많은 것들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나를 보면서 들은 생각이라네.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

Modity(2004.4.24) 인생은 아니러니다. 멋적은 표정으로 멋적게 웃을 수 밖에 없는... 나도 이런 문장을 쓸 때가 있었구나. 나답지 않게 너무 솔직한걸.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 진실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특기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말이야.
시간이 지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아니러니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변하긴 변했나 보다. 표정이나 사고 방식이나 모두... 나이를 먹은 게지 뭐...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 않는 삶 저편의 무엇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2004/04/24 13:07 2004/04/24 13:07

원철군...
회계와 재무를 하루 아침에 날로 먹으려 하다니 너무 자신 만만한 것이 아닌가? 재무와 회계는 여지간한 미녀를 얻는데 필요한 노력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하루가 지날 수록 기술은 정교해지고 개념은 복잡해져. 그러는가 하면 이런 일도 있네. 백오십년 전에 쓰여진 책에서 사용된 개념이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주지만 불과 일 전 인터뷰에서 언급된 포트폴리오가 식상해지기도 하지...

아무튼 회계와 재무는 우리네 전공의 기본기이니 열심히 하시게나. 그런데 교과서만 보는 것보다는 이런 저런 단행본들도 읽는 것이 좋을 거야. 개인적으로 에드워드 챈슬러의 금융 투기의 역사는 꼭 읽기를 바라네. 바지호트의 롬바르트 스트리트는 조금 어렵긴 하지만 금융 투기의 역사를 읽은 다음에는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1. 금융 투기의 역사: 에드워드 챈슬러
2. 월스트리트 제국사: 월터 고든(이름은 헷갈리네)
3. 황금의 지배 : 피터 번스타인
4. 미국경제대공황: 갤브레이스(이 양반이 쓴 경제학의 역사도 있지)
5. 롬바르트 스트리트: 바지호트(이코미스트지의 창간인이지)
6. 콜콘다: 이것도 생각이 안나
7. 천재들의 실패: 작가는 생각이 안나는군.
8. 골드만삭스: (리사 안들리크인가? 아무튼 비슷한 어감의 작가네)
9. 헤지펀드: 아침이슬이란 출판사에서 나왔네.
인터뷰에 담긴 포트폴리오가 흥미로운 책이야.

교과서로 차익 거래 모델을 넘어간 순간부터 아마 교과서로는 빈약하다는 생각이 마구 들거야. 왜냐면 교과서는 실제 시장을 토대로 모델을 설명하기 보다는 다분히 이론 모델로 개념만 설명해 주거든. 회계는 딱히 좋은 책을 모르겠어. 그러니 그냥 교과서 열심히 보고 연습장 새로 사는 재미로 살게나.

그런데 왜 8월 정진초 입성이 목표인가? 가시적이고 숏텀한 목표가 효율적이긴 하지만... 어쩌면 내가 사람들 많은 곳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인지라 이러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사람은 모일 수록 더 놀기 좋다는 고등학교 시절의 유쾌한 경험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나봐.
2004/04/09 14:16 2004/04/09 14:16

가장 차분했던 날

Posted 2004/03/22 22:25,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이 길을 같이 걸었을 때는 스물 둘이었는데 벌써 스물 넷이나 먹어버렸군. 암담하기만 한 시간이지만 때로는 너무 훌쩍 흐른다는 생각도 들어. 요즘의 난 과거 따위는 없는 그런 유령인간처럼 구는데도 이 기억만큼은 아주 또렷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이 길을 산책하면서, 시간이 흘러 다시 이 길을 산책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기도 했고, 때로는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기준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눈으로 본 것은 또렷한데 머리속으로 대충 생각해 놓은 문제들은 항상 잊어버리곤 하는 거잖아.

요즘 난 내가 한 실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 삶이란 것이 항상 그렇지만 아무일도 없었던 하루가 삶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것 같아. 실수인지도 모르고 넘어갔던 과거의 한 순간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몰고 오곤 하지. 그리고 그 날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말했던 내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음을 몇 주전에야 깨닫게 되었어.



뭐랄까? 구차하고 치사스럽기는 하지만 이제야 나에게 있어 정말 네가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 이런 저런 고통으로 난자당한 후에야 찾아오는 이런 깨달음은 항상 때늦은 것이란 생각이 들어.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지? 너에게나 나에게나.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난 포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난 늘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너에게만은 예외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래지 않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아껴주지도, 사랑해주지도 않을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졌던 헌신이 왜 너를 위해서만큼은 한번도 쓰여진 적이 없는지 모르겠어. 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는지 이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 왜 난 생각조차 희미한 과거에 묶여 있는 걸까? 넌 이유를 아니? 난 모르겠어.

요즘의 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작은 호의를 가진 사람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세밀하게 관찰하는 사람도 없어. 내가 열광하는 것은 깔끔한 갬비트와 플롯, 그리고 명석한 사람들의 주장이야.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대화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아. 귀찮게 내 삶을 낭비할 생각도 없고, ‘멍청한’ 이야기에 감미로운 음악을 들어야할 내 귀가 더렵혀지는 것도 싫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들여다 보이는 그 썩어빠진 의도도 싫어. 그보다 더 싫은 것은 명백하게 보이는 의도를 모르는 것처럼 숨기는 것이고. 어쩌면 타인에 대한 애정 결핍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런 나라도 여전히 괜찮냐고 물었겠지? 그런데 더 이상은 그렇게 묻지 않아.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하는 방식이 변하고 또 말하는 방식도 변해가더라고. 그러면서도 난 이렇게 차분하기만 해.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 내가 내 삶에서 진정 원하는 것은 기억도 추억도 없는 빈한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야. 차라리 행복을 몰랐더라면 지금 주어진 것만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저 길을 너와 걷던 날. 비록 제 정신은 아니었더라도 가장 차분한 날이었음을 기억하고 있어. 차라리 차분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정신이었다라면 실수였노라고 스스로를 정당화 시킬 텐데. 그럴 수 없군. 여기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나봐.
2004/03/22 22:25 2004/03/22 22:25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Posted 2004/01/02 23:05,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새해의 첫글이 이런 글이 될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우정이란 친구란 이유를 모르는 것이라 한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그와 내가 왜 친구인지 설명하려는 짓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내가 가진 수많은 친구들이 왜 나의 친구인지 단 한번도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았으며 그저 내 친구라는 사실 하나만을 기억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가 친구란 이름으로 쌓아올린 수많은 것들을 함께 말이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3년동안 다닌 학교의 이상스런 문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뒤돌아서 있는 척하는 경우와 정말 뒤돌아 걸어가는 경우를 다르게 분류한다. 뒤돌아서 있는 척하는 경우는 사과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경우이며 이럴 경우 한번의 매점행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정말 뒤돌아서 있는 경우라면 설령 훗날 아무리 후회할 경우가 생길지라도 절대 뒤돌아 보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누가 잘못을 했는지,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이것이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운명이러니 그렇게 생각한다. 운명을 거슬러라 배운 적은 단한번도 없는 몸이기에 그저 그것을 숙명으로 알고 따른다. 그후로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도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도 없다. 그것이 내가 배운 룰이고 내가 실천하는 룰이다.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가장 진실된 것은 스스로의 양심에 거울에 비추는 마음이다. 조금의 후회가 남아있다면 여자같은 나의 친구들은, 그리고 나는 참지 못하고 먼저 터트려 버린다. 그래서 결국 뒤돌아서 매점으로 끌고가는 것은 항상 나와 나의 친구들이다. 잘못을 했으면 먼저 사과를 하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터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 한톨의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블로그에서 자네에 대한 아쉬움이 한톨이라고 느껴지던가?(마지막으로 쓰는 자네이네. 앞으로는 자네 대신 당신이라던지 아니면 무슨씨로 부르겠지) 이미 너무 많이 걸어와 버렸어. 필요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고, 나를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다시는 친구란 단어를 선물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한참이나 오랜 시간이 지났네.

내게 있어 친구란 나를 헌신할 수 있는 존재인데 다시 한번 자네에게 그럴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아니다였어. 그토록 애착을 가지고 내 자식처럼 사랑하던 것들에 대한 애정마저 버렸어. 내가 그토록 아끼던 많은 것들에게서 버림받고 추한 존재가 되는 것도 군소리없이 받아 들였어. 내 스스로에게 매긴 이름의 값어치가, 자존심의 값어치가 그토록 높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소리없이 받아 들였어.

나름대로의 마지막 배려였는데 왜 또 칭얼거리는건가? 자네는 자네가 지닌 진짜 마음과 역량에 비해서 조금 과하게 많이 받는다는 생각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과하게 주는 사람들 명단에서 나만은 삭제해줬으면 좋겠어. 왜냐면 더 이상 자네때문에 손해보는 것 정말 싫거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네가 남발한 말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만큼 어리석었나? 그렇게 어리석으면서 아직도 나의 친구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가? 내가 잃은 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데 그런 것인줄 그때는 잘 몰랐노라고 쓸 수 있단 말이지.

제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라고. 솔직하지 않은 그 마음으로 여러 사람 헷갈리게 하는 것 멈취달라고. 내가 더 이상 자네를 내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 왜 모르는 것이지? 그 부정직함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눈에 보이는 그것들이 절대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자네의 그 빌어먹을 감상적인 하루때문에 난 또 무엇인가를 잃겠군. 내가 이름으로 한 약속마저 어길만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또 잃겠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시간을 다시 불행하게 보내야 하고. 지겹군. 지겨워

참. 혹시 아주 오래전 자네와 내가 친구 관계였던 그 옛날에 했던 부탁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그런 부탁이라면 지키지 않아도 좋아. 그런 마음이라면 정말 기가 차서 말조차 나오지 않을테고. 난 지금 새로운 막에서 살고 있는 중이야. 그 막에서 넌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야. 지난 막간극에서조차 그랬고. 그러니 더이상 나에게 그 어떤 것도 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혹 내가 잔인하다 냉정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이것이 네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의 진짜 모습이려니 했으면 좋겠어.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너에게, 타인을 위해 단 한번도 진짜 희생을 해보지 않는 너에게 나의 믿음을 다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편익은 희생할 수 있지만 정신으로는 희생할 줄 모르는 너. 실수는 한번만으로 족하다. 두번 실수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야.

네가 보낸 편지에서 발견한 너는 내가 그렇게도 떨쳐버리고 싶었던 그 모습에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너였어. 한학기라는 시간이 그 고민이 너에게 가져다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겠더냐? 여전히 너무나 사랑하는 자신밖에 모르는 그런 존재.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나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무엄한 죄라는 말을 들어보기나 했을까?

원철군이 나를 생각할 때, 내가 원철을 생각할 때, 지선군이나 시정양을 생각할 때, 난 I 가 아니라 You 를 생각해. 내가 받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주기 소망하는 것. 나의 행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난 내 친구들이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빌고 있어.

하지만 네가 말하고 쓰고, 생각하는 방식에서 난 단한번도 그런 면모를 찾아보지 못했다. 입으로는 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말하지만 그 말 속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항상 자신이었잖나? 차라리 내가 ~하더라도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스무살 넘은 남자들에게는 거짓말의 또 다른 동의어라는 생각안해봤나. 정말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내가 ~하더라도 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아.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뭘해주면 좋을까 이렇게 말한다네.

그런 너를 친구로 다시 받아들이라고?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려 서 한계손실율에 접근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냥 비웃어 주겠어. 그런 빌어먹을 소리는 거울이나 보면서 지껄이라고....
2004/01/02 23:05 2004/01/02 23:05

눈이 내렸네. 쌓이지는 않았지만 장갑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은빛 결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네. 너무 아름다웠거든. 나이를 먹어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눈이 아름답다 생각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신기해. 아직도 눈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았구나하고 말이야.

최근의 내 삶을 보면 효율성이라는 기준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네. 소박함과 여유를 즐기던 나는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마음 아팠던 수많은 과거의 미망에서 벗어나고 나니 모든 것이 덧없다네. 그리고 덧없는 것들 대신에 무언가 실제적인 것들을 움켜잡고 싶어.

브리프케이스에는 공부할 책 한권과 정신을 풍족하게 해주는 양식이 같이 머물러 있다네. 하지만 내 손이 먼저 가는 것은 공부할 책 한 권이야. 옛날의 나라면 후자를 선택했겠지만 지금의 난 전자에게서 더욱 큰 만족을 느낀다네. 설명하기 힘든 문제지만 수식과 이론 속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낀다네. “교양이란 때때로 Bullshit!”을 연발하던 옛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는군.

오늘은 재정학의 마지막 장을 넘겼네. 정확하게 23일이 걸렸어. 실제 공부한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 날짜에서 5일을 빼줬으면 좋겠구. 18일에 643페이지라 괜찮은 속도가 아닌가? 그것도 독학으로 말이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그 어디에도 할 수가 없네. 그래서 혼자 예의 그 해괴한 웃음으로 자축을 했다네. 날아갈듯 가벼운 기분 위에 조금은 우울한 기분이 뒤섞여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집에 돌아오니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아. 정신 활동은 완전히 정지해 있고 몸 역시 반쯤 잠든 상태라네. 낮동안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정신력을 소모하고 났더니 밤이 되면 몽롱한 의식으로 그저 숨만 쉴 따름이군. 하지만 이런 하루의 삶이 좋다네. 아무런 보답없는 그 어떤 것에 헌신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헌신이니까…

잠이 밀려오는군. 내일 또 하루 최고의 지적 유희를 즐기려면 소모된 정신력을 충전해줘야 한다네. 사실 이런 몽롱한 의식으로 무언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도 모르겠어. 또 어리석은이라는 단어와 비야냥이라는 단어가 머리속을 돌아다니네. 왜 이런 단어가 생각났는지 설명을 해줘야 겠지만 말이야. 이제는 쓰러지게 졸립네. 내 머리속 같은 것 알아도 알지 못해도 어차피 무차별한 것이니 나에게 있어 최적 선택인 잠을 벗하는 나를 미워하진 말아주게나.
2003/12/17 22:42 2003/12/17 22:42

춥지만 하늘은 맑구나

Posted 2003/12/09 23:50,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어. 머리속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어떤 마음에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거든. 스스로에게 조금쯤은 화가 나기도 하고, 가끔은 외롭기도 하지만 결코 이런 감정들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야. 아무런 감정의 유동이 없는 가운데 생기는 작은 흐름 정도에 불과하거든,

전체 정신으로 보면 아주 작은 부분인데 목에 걸린 가시처럼 조금 신경은 쓰이네. 전혀 신경 안쓰이는 감정의 유동이라 말해봤자 믿어주지 않을테니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라네. 하지만 뭐랄까? 어느날 자네를 만나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한없이 웃음만 나올 것 같네.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쏟아지는 웃음에 생각도, 의지도 전부 흐물흐물해질 것 같아.

지난 목요일날 내 목소리에 아주 조금이지만 아쉬움이 배어있다고 했었지? 자네 말이 맞아. 조금은 아쉽네. 전혀 아쉽지 않다면, 또 아무런 감정의 찌꺼기도 묻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사람이겠나. 하지만 늘 그렇듯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네. 당황스럽지도 않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니까 그리 힘들 것도 없네. 그러니 내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았던가? 긴 시간동안 내가 갖춘 준비 누구보다도 자네가 잘 알고 있잖나?

한주동안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네. 뭐 쓸 의지가 없어라기 보다는 다른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지. 재정학의 공공선택과 정부지출 챕터와 씨름하며 최고의 유희를 즐겼다네. 레베르떼의 소설도 한장 한장 음미하여 읽어주었고 자네의 승주씨가 달아준 답글도 매우 즐겁게 읽었다네. 어째 자유의 몸이 된 자네의 삶이 너무 행복할 것 같은 불길함 예감이 들더군. 좋은 친구를 둔다는 것. 아껴달라 말하지 않아도 사람을 아낄줄 아는 친구를 갖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최고의 복이 아닐까 싶어.

아낌받지 않는 것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 자네와 승주씨의 우정을 보고 있자니 반드시 고쳐야할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군. 아낌받지 않는 친구사이의 우정이라는 것은 사상누각일 따름인데 왜 난 이렇게도 오만할까? 타인의 행동이나 생각같은 것은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제로 행동하잖나. 이것은 배려가 아닌 지독한 오만일지도 모르는 것인데… 아무튼 조금은 부러웠네. 아니 심술날 정도로 부러웠어.

근래들어 다시 펜으로 무언가를 쓰는 버릇이 생겼네. 스타벅스에서 얻은 작은 재생 노트에 볼펜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낮잠이 온다거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할 때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네. 지난 주 서울에 올라갔을 때에도 이 녀석들이 좋은 벗이 되어주었지. 만약 이 녀석들이 없었더라면 지난 일요일 내가 느꼈던 그리고 종래에 깨닫게 되었던 그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을 어떻게 끼어 맞춰야할지 고민했을 거야.

날씨가 추워지네. 해야할 일들이 점점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있네. 스스로 쌓아올리는 짐이기에 어디에도 군소리를 늘어놀 수 없어 자네에게만 풀어놓네. 아! 내가 봐도 어이가 없네. 어째 사내라는 짐승은 이런 것인지. 잠시 고개를 돌려 텔레비젼을 봤는데 로빠 겐조의 향수 선전이 나오고 있었네. 뒤돌아서 있던 여자 모델이 되돌아서자 순간 딱 침이 넘어갔네. 잘빠진 팔과 언뜻 드러난 쇄골, 그리고 부드럽게 자리잡은 가슴선을 보자마자 마구 가슴이 뛰는군. 감성에 쳐놓은 이성이란 덧창을 완전 열어놓은 편안한 상황에서 당한 기습인지라 당황스럽군.

갑자기 막내 누이가 좋아하는 드가의 밀랍 조상이 떠오르네. 저 모델의 조상을 떠서 하얀 유약을 덧입히고 그 위에 저 의상을 걸쳐 놓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잠시 생각해 보았네. 또 다른 생각도 드느군. 아름다움에, 매력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 우리네 사내들의 진짜 본성이라면 여인네들의 비난은 아주 합당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야.

메디아가 생각나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비록 우리 나라에서는 힘들겠지만 말이야. 꼭 메디아를 극본이 아닌 진짜 연극으로 보고싶어. 창작된지 2천4백년이 지났음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그 신비함에 그 정도 값어치는 있다고 판단되니 말이야.
2003/12/09 23:50 2003/12/09 23:50

이래도 귀엽군

Posted 2003/11/28 22:58,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훈련소에서 알게 된 귀여운 고등학교 후배다. 본인은 귀엽다는 말 자체를 조금 싫어하는 듯이 보이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귀여운데 어떻게 귀엽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그 무서운 이들이라면 사진 자체를 찍는 것을 불허했을 테지만 이 귀여운 동생 녀석은 이렇게 말한다. “형 모자 쓰고 찍으면 안될까?”

디오게네스처럼 거리를 벗하는 철학자의 포즈로 벤치에 누워보라고 했다. 내가 “필요한 게 뭐요? 경필 도령.” 이러면 “햇빛이 필요하오. 그 큰 몸 좀 치워주면 안되겠소” 하고 말하는 것이 아주 적당할 그런 포즈로… 녀석의 대답이 가관이다. “벤치가 너무 더럽지만 않다면 누울 수 있는데…” 이래 저래 정말 귀여운 녀석이다.

아마도 남은 106주 동안 나의 재미없는 말을 가장 많이 들어줄 녀석이 이 녀석일 것 같다. 나때문에 커피나 홍차에 중독될 것은 자명한 일이고 어쩌면 알코올 중독에 걸릴 수도 있다. 요즘에는 내가 열심히 핫초쿄를 먹어주고 있으니 어쩌면 초코릿 중독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2003/11/28 22:58 2003/11/28 22:58

김주발 잘 다녀오시오!

Posted 2003/11/28 00:00,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마음이 무거운 납덩이에 눌린듯한 기분이 들 때, 넋두리할 사람이 필요할 때, 부담없이 망가질 수 있었던 친구 하나가 제법 먼 여행을 떠난다. 본인의 말로는 불과 몇달 뒤에는 볼 수 있다고 옆집 마실가듯 말하고는 있지만 걱정쟁이인 나로서는 옆집 마실가는 사람마저 붙잡고 싶어지니 정말 문제다.

항상 남다른 재미로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던 친구. 그가 있었기에 내 삶이 한결 윤택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실의 인간이었던 나에게 빈 공간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준 사람이 주영이였는데…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기에 알려지지 않았던 완고함의 벽을 처음으로 부셔준 사람이 주영이었는데… 결벽증에 가까웠던 이상스런 혐오감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친구가 주영이었는데 한번도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를 당황하게 만든 최초의 female은 당신이라는 사실 아시는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전혀 당황해하지 않으면서도 당황해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어색할거란 한가지 이유때문에 당황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던 내가 자네때문에 식은 땀이 날정도로 당황했던 것 아시는가? 아무 생각없이 던지는 자네의 한마디가 깊게 숨겨놓은 진실을 건들고 날때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굴을 돌려야만 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짜놓고 예측 범위내에서 움직이는 상황에 안도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예측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자네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듯 싶네. 늘상 절제되고 돌처럼 단단한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내 삶에 나타난 난해함이 자네였는데… 눈물 자체를 모르는 강인한 사람들틈에서 자라난 까닭으로 실제 눈물을 본 기억조차 희미했던 나에게 진짜 눈물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자네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렇게 써놓고 보니 확실한 오버센스로군. 자네나 나의 친밀하면서도 으르렁대는 이상한 사이를 모른다면 애인을 해외로 보내는 처량맞은 사내의 글로 보일테니 말이야. 하지만 이 정도 오해쯤이야 웃어넘기다 못해 마음껏 비웃어줄 자네이니 걱정하지는 않겠네. 참. 그리고 자네 홈페이지에 올려진 내 사진 보았네. 막내 누이가 옆에 있었는데 사진 설명에 박양과 그 친구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한마디 하더군. ‘내가 상상한 주영이는 박양과 그 애인이라고 쓸 것만 같았는데 아쉬운 걸.’

자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완벽한 마인드 컨트롤과 시간 관리로 조금은 폼나는 사람이 되어있겠네. 뭐 원판불변의 법칙이라고 오리지널에서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몇달만에 만나서는 자네 입에서 ‘박양 하나도 안변했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빡 돌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럼 잘 다녀오사게나. 참. 오래 전에 꼬불쳐 놓은 자네 사진 한장 올리겠네. 나한테 있는 자네의 실사 사진은 하나같이 21살 무렵의 앳된 모습이라서 차마 돌맞을까봐 못올리겠군. 내가 가진 사진가운데 가장 흉악한 걸로 골라보려 노력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 그럼 몸 건강하기를 빌며!

Modify(2004.4.2) 그런데 지난달 말에 쓴 그 반복되는 우리가 모르는 친구가 누구냐? 궁금하고 또 궁금하네. 지금의 나로서는 그렇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은 부러워. 그렇게 사랑받았던 과거를 지닌 너도 부럽고. 조금 질투나기도 하는군. 아마 이 부분은 평생 못 읽고 넘어가겠지?
2003/11/28 00:00 2003/11/28 00:00

캠프를 마치고

Posted 2003/11/17 18:46,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원철군에게
편지는 잘 받았네. 훈련소에서 받은 편지인지라 정말 감회가 새롭더군. 감회가 새로운 만큼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정도도 남달랐어. 하지만 우리가 여태 주고받은 편지가 그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라네. 이 편지를 받은 상황과 여러가지 감정적 요인들이 수용하는 자의 마음가짐을 조금 더 올바르게 만들었나봐.

잠자리에 예민한 나로서는 옆자리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움직임이 있다는 것 자체를 참아낼 수 없기에 기나긴 불면의 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자네 편지가 그 긴긴 불면의 밤동안에 할 일을 만들어 주었네. 더할나위 없이 잔인한 일이지만 꼭 처리하지 않으면 안될 일을 처리할 시간적 배경이 된 셈이지.

마침내 때가 왔음을 깨닫고 한달이란 휴가를 이용해서 조금은 선량해 보이는 품을 지워버리기로 마음먹었네. 과거의 기억들과 추리에 의해 얻어진 여러 진실들을 눈앞에 펼쳐놓고 그것을 메스삼아 이전의 인격을 찔러댔네. 처음에는 목구멍에서 비릿한 피가 올라올 정도로(농담 아니네) 마음 아팠는데 차차 고통에 둔감해지더군. 그러더니 언제쯤부터인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사람이 내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네.

음.. 놀라기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고통쯤은 감수해야하는 것이 인생의 순리라네. 비록 아무리 쓸모없는 품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잃어야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얻으려 하는 품은 상당히 유용한 품이 아니겠나? 그러니 이 정도 고통은 웃는 얼굴로 감수해야지. 그렇지 않은가?



어제 잠깐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더 이상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쉽게 감동하고, 쉽게 아름다움에 취해버리던 난 어디론가 사라진 듯 하다네. 혈관 속에 도는 피가 몇도쯤 차가워진 것 같아.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소유해야 할 것들이고, 무너트릴 것들 뿐이라네. 조금은 매몰차다 해도 너무 힐난하지는 말아주게나.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토록 긴 시간을 보내면서 범인은 아니라 믿었던 내 자신이 얻어낸 결과물의 빈약함에 놀라서 그러는 것이니까.

처음에는 작은 고민으로 시작되었는데 종래에 이르러서는 정신적 고문이 되어버렸네. 나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을 사실들을 흉기삼아 가해지는 고문이었던지라 솔직하게 견디기 힘들었네. 그냥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 과거의 나와 내 모습이 이런 폭언을 견뎌야 할 정도로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고 반항도 했네.

하지만 반항하면 할수록 우습고 구차해졌어. 세상 전부를 속여도 스스로만큼은 속일 수 없는 법인데. 손으로 태양을 가려보려는 어리석은 아이처럼,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다시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았네.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라. 이런 인간에게 사려깊다라는 표현이 가당키나 할까?

우울한 이야기라고,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속단하진 말아주게나. 아무튼 이런 과정이 4주동안 내 정신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이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다시 나에게 두꺼운 껍질을 입혀놨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제된 감정의 가면이 얼굴 위에 덧입혀졌네. 자네가 처음 본 내 모습에 조금 근접한 모습이라고 상상하면 될꺼야.

부러진 갈대처럼 처량하고 약한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네. 들은 바 그대로, 들은 그 목소리대로, 지금의 나에게 후회나 번민따위는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다네. 그런 무거운 것들까지 짊어지고 다니기에는 이미 너무 무겁지 아니한가?

더 이상 꿈을 꾸지도 않아. 꿈이란 사치는 포기했다네. 인생이란 꿈꾸면 꿈꿀수록 현실에서 멀어지고 종래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했어. 꿈꾸고 몽상에 젖어있을 시간에 현실을 조금씩 움직여볼 생각이야. 꿈꾸지 않은 영혼이야말로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말들 하지만 현실을 망각한채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바보보다는 조금 더 나른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갈수록 많은 책들을 읽어갈수록 어떤 운명같은 메세지를 지닌 책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네. 머리가 커졌는지 저자들의 비판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조금은 까탈쓰러워진 것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열살 무렵의 내가 읽은 책가운데 가장 감명깊었던 책은 러시아 동화집이었네. 책 제목은 러시아 동화집인데 그 안에 실린 이야기들은 러시아가 자랑하는 대문호들의 단편들이었지.

그 책에 실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바보 이반을 읽고 고민하던 내가 생각나네. 지금도, 어쩌면 임종이 목전에 다가올 때까지도 모를 그 단편들을 이해하려고 고민하던 열살의 소년이 지금은 이렇게 변해버렸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정답을 안다면, 세이경청할테니 누가 나한테 귀뜸이라고 해줬으면 좋겠군.

얼마남지 않은 군생활 무사히 마무리 짓기를 바라며. 자네의 익군이…
2003/11/17 18:46 2003/11/17 18:46

마블링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Posted 2003/10/07 23:32,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며칠째 청명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구름낀 하늘을 렌즈에 담아보려고 시도는 번번히 무산되곤 한다.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러 구름 한점 없기 때문이다. 구름없는 하늘은 포토샵에서 푸른색 배경에 liquid effect를 사용한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늘의 지닌 오묘한 색을 담아내고 이해하기에는 인간의 눈과 기술력 모두 모자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에도 황금분할 비율이 존재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수많은 과목을 통해 기계적으로 습득했던 황금 분할이 사진의 프레임 분할과 포커스에 이르면 그제야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뭐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내가 황금 분할에 충실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황금분할도 그 주제가 하늘로 옮겨지면 막막한 이야기가 되고만다.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또렷하게 보이는 저 하늘의 층이 렌즈에 담아놓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으로 화해 버리니 말이다.

하늘을 찍기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왜 하늘에 집착하냐고 물어보면 사악한 미소를 띄고 하는 말이 걸작이다. ‘난 마블링을 좋아하거든. 집에서 마블링을 제작했다가는 욕얻어 먹기 쉽상이니까. 빛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하늘의 마블링이라도 가지고 싶은 거야’ 하지만 난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녀석이 하늘을 찍는 이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트레스로부터 탈출구를 얻고 싶어서다. 방량벽을 지닌 녀석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하는 의무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을 때, 녀석은 수첩에 담긴 하늘을 바라본다. (이제는 PDA로 바꼈다)

해가 갈수록 하늘을 담기란 어려워진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마저 각박해진다. 녀석이 더이상 하늘을 주머니에 담지 못할 그때를 위해서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다. 디지털 폐인답게 내개 생각해 낸 히든 카드는 Stary Night Pro. 하늘에서 별로 관심 대상을 이주하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닐테지.
2003/10/07 23:32 2003/10/07 23:32

결국은 넋두리가 되었군

Posted 2003/09/24 02:28,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나의 원철군에게
외출을 했다네. 늘상 입는 츄리닝이 아니라 구두에 허리띠까지 갖춘 제대로 된 차림새였지. 하지만 친구를 만나는 것도, 사람을 소개받는 것도, 서점에 가는 것도 아닌 평범한 심부름을 하기 위한 외출이었는데 면도까지 하고 집을 나선 내가 이상스럽게 생각되었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난 까닭을 알 수 있었네. 너무나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눈부신 햇살에 대충 입은 동네 건달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야. 이렇게 좋은 날씨에 띠없는 츄리닝에 폴로 셔츠,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뻔하지 않겠냐.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숨기기 위한 분장이 필요했던 셈이지. 하여튼 간만에 차려입고 집을 나서니 한가롭게 학교까지 걸어다녔던 일이 생각났네. 까닭없이 기분이 좋아져 말까지 친절해지더군.

은행에 들렸네. 통장을 정리하기 위해 들린 것이었는데, 그곳에 앉아 있던 텔러를 보고 낯이 있다는 생각을 했네. 눈이 마주쳤고 한참이나 마주 쳐다봤지. 하지만 자네다 알다시피 내가 시선 처리에 곤란함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잖나. 결국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더군. 그제서야 난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났다네. 까맣게 잊어버린 줄 알았던 옛 친구의 친구였지. 이 시간에 여기는 왠일이냐는 질문에 휴학을 했다고 짧게 대답을 한 후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네.

은행을 나와 서실까지 걸어가는데 그 옛 친구가 다니던 학교가 나왔네. 쉬는 시간인지 여고생들이 한무리가 돌아다니더군. 불현듯 야자를 튀고 그 친구의 페이저에 매세지를 남기던 일이 생각났네. 한가롭게 산책을 했던 일도, 우동을 먹던 일도, 서점에 간다는 핑계로 학교를 빠져나와 그 친구와 손을 잡고 다녔던 기억이 생각났네. 조금은 소식이 궁금했다네. 대학에 오고나서 스쳐본 일도 없거든. 혹시 스쳤다 하더라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흐릿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가지 깨달은 바가 있네. 내 기억이 흐릿한 것은 내가 그 친구보다 산책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산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생생한데 그 친구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그런 사실의 반증이라는 것을 깨달았네. 장갑 낀 손바닥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지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늘상 앞만 보고 걸었기에 그 친구를 바라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네. 서실에 가기 전에 부딪친 우연한 만남이 트리거 이펙트를 일으켰다는 것은 분명한데 스스로를 자책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나봐. 스스로는 저렇게 무정하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녀석이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많이 받고 싶어하니까.

자네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지선군의 전화를 받았네. 그녀가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가슴이 떨렸네. 왜 아니 보고 싶겠나.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 싶은 걸. 평온한 표정 뒤에 숨겨진 다른 얼굴은 항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데. 왜 아니보고 싶겠나. 나라고 왜 이번 주말에 달려가고 싶지 않겠나. 자네와 그녀 그리고 지선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찬스인데.

하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네. 우선은 내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흔들렸기 때문이지. 아주 오래전 나부터 오늘의 나까지 한번쯤은 천천히 살펴보고 싶어. 매번 우울하고 힘든 작업이지만 나를 알아야, 내가 생각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야 자신있게 자네들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려워. 나에 대한 자신감없이 정신에 데미지를 입게 된다면 나란 그릇 자체가 깨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내가 옛 친구에게 저질렀던 것 같은 냉정함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일어날 수가 없거든.

다음 문제는 비겁함과 우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혐오감이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가 가진 인간적인 약점을 파고드는 것 같아. 존재를 증명할 기회는 충분히 주었다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용납하지 못할 수준의 실망감이었어.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과 경우뿐이라네.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사람에게 내가 언제까지 모든 것을 참아주고 받아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난 그것을 알려 줄 능력도, 여유도 없다네. 자네가 아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쓸모 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은 아니잖은가?

나를 굽힐 수 없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친구가 아니라네. 요컨데, 내가 굽힐 만한 가치를 지녔다면 이미 내쪽에서 먼저 손을 들었을거란 셈이지.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거든.

가장 정직한 것은 마음이라네. 난 자네들의 하루하루가 궁금하고, 자네들이 매일같이 보고싶다네. 먼저 말을 걸지는 않지만, 먼저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항상 자네들을 보고싶어 하고, 내 삶을 알리고 싶어해. 자네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면 마음이 따스해지거나, 안타깝고, 때로는 슬퍼지기도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나에게 잠시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어. 머리속이 너무 헝클어진 지금으로서는 깨지기 쉬운 자기로 된 내 정신이 보호받지 못하는 지금으로서는 나를 다스릴 시간이 필요하거든.
2003/09/24 02:28 2003/09/24 02:28

보내주신 편지는 잘받아 보았습니다. 우선 타인의 삶에 넘치는 관심을 보여주신 당신의 인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익숙한 얼굴에게조차 깊은 관심을 두지않는 요즘의 세태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태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처신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대의 아이들로서 세태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지금 이 사람이 나를 동정하고 있구나'란 생각이었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눈부처에 비치는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동정이란 감정이 당신이 나에게 보낼 수 있는 적합한 감정인지를 따지기 전에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문구가 더욱 신경에 거슬리더군요.

인사 한번 나누지 않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말인지 아십니까? 물론 당신의 말대로 한번쯤은 잠시나마 스쳤을지도 모르고 같은 공기로 호흡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 당신이란 존재는 스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더 오만하고 거만한 사람이라면 기억하지 못할리가 없기 때문이죠.

당신이 무엇을 보고 나를 이해한다 말하는지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다정한 친구와의 대화와 먼훗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공간을 읽고 그렇게 말했으리라 추측됩니다. 어차피 공개된 공간이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읽고 멋대로의 주관으로 이해해서는 허락받지 못한 타인의 간격안으로 파고드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판단됩니다.

처음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난 수신인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같기는 한데 편지의 전반적인 느낌이 동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정이라는 단어와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이질적인 묶음이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행간을 자세히 읽고 수신인이 내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나를 지배한 것은 당혹스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이 체념하는 많은 것들에 대하여 실제로는 단한번도 직면해보지 않았을 당신의 동정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나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 자신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가족도, 친구도, 적도 아닌 완전 낯선 타인인 당신이 말입니다.

당신의 이름조차, 당신을 증명할 가장 작은 것조차 밝히지 않고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당신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관찰이 하고 싶거든 조용히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하십시오. 관찰자에게 행동은 허락되지 않는 특권입니다. 더욱이 내 친구가 아니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그 어떤 것도 공유할 명분도 끼닭도 없지 않습니까?
2003/09/17 15:45 2003/09/17 15:45

짧지만 먼 외출 뒤에...

Posted 2003/09/05 01:17,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학교에 다녀왔네. 대략 한달 반만에 다녀온 학교인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어. 외양은 물론이고 잠시동안 적응이 안될 정도로 사람이 많더구먼.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도시에서는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번잡하게 다니는 모습을 찾기란 무척 어렵거든. 아무튼 신문사 형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

그런데 이곳의 맑은 공기에 적응되어 있다보니 서울의 공기가 참기 힘들 정도였어. 갑작스럽게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다리가 풀리는 현상을 경험했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집에서 너무 편하게 살다보니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이 들었네.

서두는 늘 그렇듯이 이런 말로 시작했지만 정작하고 싶은 말은 다른 말이라네. 표현을 하자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재즈와 헤네시 한 잔 그리고 자네가 무척이나 필요한 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야. 지난 20개월 동안 나의 절친한 벗인 자네의 빈자리가 항상 느껴졌지만 오늘만큼 컸던 적은 없었다네.

자네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자네가 있었더라면 발걸음이 마냥 가볍고 행복했을텐데. 자네의 옆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지겨우면 서점으로, 극장으로, 재밌는 전시회를 찾아갈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네. 익숙하긴 하지만 발걸음을 쉴 때가 없다보니 배는 힘들었던 것 같아.

그리고 조금은 내가 한심했어. 나답지 않게 학교에다가는 나만의 쉼터를 만들어 놓지 않았더라고. 일을 피해 자네와 곧잘 숨어들었던 벤치에도 가보았지만 자네가 없으니 더욱 쓸쓸해 보였네. 요컨데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이네.

여름이 끝나자 나의 절친한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네. 강한 척하지 않아도, 아니 이성과 감성 모두가 무너졌을 때조차 편한 쉼터가 될 수 있는 자네들 모두를 지난 학기, 이번 여름 너무 등한시 했던 것 같아. 물론 나에게도 변명은 있다네. 하지만 내가 변명을 하지 않아도, 그런 사소한 말 따위는 없어도 나를 위해 하룻밤쯤은 잠을 내던질 수 있는 자네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실 난 잘 몰랐던 싶네. 자네들이 나를 찾는 느낌을, 그리고 내가 제자리에 있음으로서 자네들이 느끼는 안도감을 난 몰랐던 듯 싶네.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을 건넬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낯선 타인들에게 둘러쌓여 혼자라고 느낄 때 무언가 하소연할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난 왜 이제야 알았을까?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이런 모습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을 텐데. 은둔을 자처하면서 스스로의 내부에 숨어버린 이런 비겁함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을텐데.

집에 내려오는 버스 속에서 생각했네. 이제는 정말 행운의 여신에게서 버림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행운의 여신은 절대 두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속설이 너무나 평범한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됐어.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니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말이라 머리속에서 흘러버린 내가 원망스럽네.

행운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끼고, 깊게 생각해서 써야만 하는 빈약한 저수지라는 사실을 왜 난 몰랐을까? 어린 시절, 계속되는 행운을 단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다음에는 더 큰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건방을 떨었는지. 나이가 들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오직 한심함뿐이군.

나의 원철군. 이제야말로 녹초가 되어버린 듯 싶다네. 솜뭉치마냥 무거운 몸과 엉클어진 정신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것들이네. 휴식이 필요해. 하지만 은둔이 필요한 것은 아니야. 깊은 잠이 필요하다네. 며칠쯤 꿈과 생각, 기억의 방해없이 잠들었으면 좋겠네. 그런 잠을 자고나면 다시 일어나 움직일 수 있는 활력이 생길테니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휴식이라네. 무언가 다시 시작하려면, 아무런 아쉬움없이 새로운 나로 일어서려면 조금쯤은 행운을 모아놓아야겠지. 행운을 모으는 가장 큰 방법이 무엇인줄은 모르네. 불행은 실컷 경험했으니 행운을 낭비하지만 않는다면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깊은 잠에 빠져있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놓쳐버리는 행운을 잡아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토록 강인하던 무기를 든 그의 팔도 거대한 불행 앞에서는 어린 아이의 여린 주먹만큼이나 쓸모가 없었다라는 말이 있다네. 나 역시 그 남자의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있어. 이제는 나도 넉다운이야. 운명에, 인생에, 삶에 져버린 것 같다네. 이로써 내 삶에는 2번째 패배가 기록되는군. 한번만 더 져버린다면 난 아웃이고 영원한 패배자가 되어버리고 말테지.
2003/09/05 01:17 2003/09/05 01:17

가을의 초입에서

Posted 2003/09/02 12:02,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간만에 향이나 맛 모두 일품인 홍차가 만들어졌다네. 입안 가득히 퍼지는 살구향이 비강으로 올라온다네. 향이 좋은 술을 즐기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아주 가끔이지만 인퓨저에 물을 내리는 속도에 따라 아주 다양한 맛이 나타난다네. 수온과 찻잎의 양, 그리고 인퓨저를 통과하는 속도가 변수인데 오늘은 우연에 좌우되는 변수가 너무나 훌륭하게 맞춰진 듯 싶다네. 지난 여름 내내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군.

참한 처자하나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던가? 우리 나이가 나이인 까닭으로 조금 어렵구먼. 작년 3/4분기에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많은 것들은 버린 것 자네도 알고 있잖나. 게다가 이번에 전화 번호를 바꿀 때 알리지도 않았고, 심지어 메일과 메일 계정까지 전부 잃어버린 까닭으로 어떤 접촉점도 없다네. 그렇다고 이 좁은 동네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추근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의 점잔을 위해서라면 자네가 참아줘야 할 듯 싶다네.

며칠 전 사진 하나를 보았다네. 자네도 알고 있을 이의 뒷모습이었는데 그 뒷모습을 보고있자니 까닭모를 착찹함에 사로잡혔네. 이유도 까닭도 모르지만 아무튼 가슴이 무거워졌다네. 가벼움에 들떠보려던 마음이 다시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네. 모든 것이 흐릿하지만 단 하나 흐릿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내 마음같다네. 서푼짜리도 되지 않을 이 마음때문에 난 여전히 은자의 삶을 고집하고 있어. 모든 이를 속일지라도 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는 인간성의 실제가 더없이 미워지는 참이야.

비가 오고 있네. 홍차는 두 잔째이고 이번 것은 아까만큼이나 제대로 된 작품은 아니군. 오늘부터는 예고했던 대로 서예 교습을 받기로 했네. 나에게 허락된 2년이라는 자유 시간동안 내 삶을 조금 풍족하게 만들어 볼 참이거든. 2년쯤이면 간단하게나마 내 이름 석자는 정도는 제대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이름 석자를 제대로 쓰지는 못하더라도 집에 있는 서예첩을 감상할 수 있을 수준은 되지 않을까?

내일은 서울에 다녀올까 한다네. 휴학도 해야하고 신문사에 있는 짐도 정리하고 덕수궁 현대미술관에도 들리고 무엇보다도 신간을 사냥하기 위해 서점에도 다녀와야겠네. 저녁까지 돌아오려면 힘들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학교에 잠시만 머문다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니겠지? 간만에 복잡한 대도시에서의 하루를 경험하겠군.

하늘은 벌써 가을이네. 다음주면 벌써 추석이니 올해에는 유난히 겨울이 겨울이 길 것만 같아. 이제 슬슬 긴팔을 입어야 할 듯 싶다네.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와 파란색 스포츠 코트를 어서 입고 싶어. 그 옷을 입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늑해지거든.
2003/09/02 12:02 2003/09/02 12:02


Recent Posts

  1. 수상한 라트비아인
  2. Be on leave!
  3. 다시!

Recent Comments

  1. 항상 내게 꾸밈없이 솔직한 사람이... julia 2011
  2. 시간을 넘어 타임머신 같은 글이지... KRADLE 2011
  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비밀방문자 2011

Recent Trackbacks

  1. kz의 생각 keizie's me2DAY 2009
  2. 눈뜬 자들의 도시 The note of Legendre 2008

Calendar

«   2012/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Bookmarks

Site Stats

TOTAL 613215 HIT
TODAY 10 HIT
YESTERDAY 106 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