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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2/17 하나의 막을 끝내며
  2. 2005/12/04 첫눈('05 冬)
  3. 2005/11/26 막간극 (6)
  4. 2005/11/22 小雪을 기다리며 (2)
  5. 2005/11/15 murmur (2)
  6. 2005/11/08 Love's Labour's Lost
  7. 2005/10/28 A Surprise Sale (6)
  8. 2005/10/25 Amicus verus est rara avi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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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04/11/15 작은 서점 -예찬, 그리고 배신- (2)
  16. 2004/11/12 울트라마린 그리고 하늘
  17. 2004/11/11 비내리는 밤 (2)
  18. 2004/11/07 Discrimination & Impartiality (6)
  19. 2004/10/31 A Card from UNC (4)
  20. 2004/10/28 책에 대한 소소한 편벽 (3)
  21. 2004/10/24 En Passant
  22. 2004/10/06 I need your disillusion... (4)
  23. 2004/10/04 mensaje de Cádiz (2)
  24. 2004/10/03 10월에는... (6)
  25. 2004/09/17 책장 (9)
  26. 2004/09/16 Bye! Goldendog
  27. 2004/09/07 새벽 기차를 기다리며 투정 부리다. (3)
  28. 2004/09/03 이렇게 여름이 끝나버렸군 (2)
  29. 2004/08/28 Don't know why (4)
  30. 2004/08/19 I'm not thru with lov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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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막을 끝내며

Posted 2005/12/17 21:05,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요즘의 나는 한 막이 내려가는 순간을 새로운 막이 올라가는 순간을 감상적인 어조로 기록해야만 한다는 심리적 당위성에 쫓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당혹스러운 마음이면에는 지금껏 그래왔다는 습관의 관성이 존재한다. 기록하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비참하게 깨달은 이후에 생긴 습관은 좀처럼 기세를 꺾을 줄 모른다. 결국 습관의 노예인 나는 쉴틈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지겨워 하며 이렇게 펜을 들 수 밖에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하지만 막간극을 포함하여 지난 막을 돌이켜보면 꽤 괜찮은 막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공부하는 버릇을 되찾았고, 달콤한 사랑보다는 책읽기를 더욱 즐기게 되었으며, 사람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실들로 인해 더욱 폐쇄적이고 고립화된 인간이 되기는 했지만 세상만사가 trade-off 관계에 있다는 저열한 합리성을 인정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까닭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누리는 편안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오랜 시간 멀리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랜 기다림과 숙성의 시기를 벗어나 성과 획득을 위해 긴장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긴장이 가져다 주는 흥분을 꺼리는 바는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편안함을 좋아하고 지속적인 긴장을 피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가 있으며 이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일이면 법에 의해 강제되었던 휴가 아닌 휴가가 끝난다. 새로운 막을 살아갈 준비는 이미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한번 부딪쳐 보는 것 하나뿐이다.
2005/12/17 21:05 2005/12/17 21:05

첫눈('05 冬)

Posted 2005/12/04 01:22,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나니아 연대기>의 마지막 이야기에 담긴 종교적 상징성에 취해 있던 내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목격한 것은 수북하게 쌓인 눈이었다. 전국적으로는 조금 늦은 첫눈이지만 이 지방에서는 되려 조금은 이른 첫눈이다. 하지만 소복하게 쌓이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첫눈이 내리는 시기같은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눈에는 눈과 관련된 모든 추억을 상기시키는 놀라운 마법이 스며 있다.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한결 같은 영향을 미치는 마법의 성격을 더 자세하게 나열하는 것처럼 시간 낭비는 없으리라.

태어나 처음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던 집앞 뜰과 눈때문에 내린 첫번째 휴교령, 눈 내리는 날 이면 스쿨버스에서 내려 눈길을 뚫고 산 속으로 1.5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했던 학교같은 것이 생각난다. 종이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긴눈썹 사이에 작은 물방울이 되어 녹아버린 눈의 흔적 따위를 바라보던 기쁨도 생생하다. 머리와 어깨에 내려 앉은 눈을 털어주던 손길의 당황스러움과 22살 겨울 충무로의 어느 좁은 골목길에서 당한 봉변의 아찔함 같은 것도 떠오른다. 반쯤 술에 취해 눈무더기를 던졌던 일도, 가지마다 내려 앉은 눈의 무게로 위태로운 나무 밑에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에게 선사했던 아찔한 눈사태도 떠오른다.

늦은밤 핸드폰이 울린다. 10시가 넘어서 통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우리로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몽롱한 목소리는 첫눈이 오는 한밤중에 다정한 연인이 아닌 잔소리쟁이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신세가 궁색하다고 말한다. 그의 궁색이 나의 궁색처럼 여겨졌기에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처럼 잠시 소슬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대화는 추억의 바다를 항행하는 선원들의 목소리처럼 주변머리 없는 문장을 주어담기 시작한다. 그리곤 이내 설령 연인이 있었더 하더라도 이 시간에 전화를 걸지는 못했을 거라고 위로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친구의 말대로 연인이 없는 겨울은 심정적으로 궁핍하다. 눈 내리는 겨울밤의 산책과 키스는 연인들의 독점물이기에 우리는 감히 현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늦은밤 재미난 책을 읽으며 첫눈을 바라보는 일도, 노란 나트륨에 물든 눈의 군무를 감상하는 일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따뜻한 핫초쿄를 마시며 아이도 어른도 아닌 청년들이 나누는 수다의 재미도, 첫눈에 얽힌 에피소드를 나누며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일도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첫눈이 내린다. 나의 첫눈은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반추하는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이 하늘 어딘가에서 어떤 이들은 유쾌한 기분으로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사람 좋게 웃어본다.

P.S.
첫눈이 내릴 때면 읽는 은비령은 며칠 전에 이미 읽어버렸다.
2005/12/04 01:22 2005/12/04 01:22

막간극

Posted 2005/11/26 09:42,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1.
누이가 리코더 합주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때면 난 리코더 연주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누이는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리코더 합주 정도는 해야 한다고 되려 나에게 핀잔을 준다. 사실을 밝히자면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까닭은 더 이상 리코더 합주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피리를 불면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한다는 알키비아데스의 신념이 무의식중에 나에게도 전이되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해보지만 실상은 음치에 박치까지 겸한 음악과 거리가 먼 위인이 나였다는 설명이 옳다.

2.
M님의 글을 읽다가 주말 오전을 흘려 보내곤 했던 산책이 떠올랐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홀로인 상태를 즐겼던 그 순간이 바람 냄새, 불투명한 햇살의 추억과 함께 되살아 났다. 지난 9월에 P양에게 길을 알려준다는 핑계를 대며 슬며시 지나쳤던 드라이브 코스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음악에 취해 길을 걷다 걸음이 머물곤 했던 찻집들은 지금쯤 누구의 추억 속에 스며들어 가고 있을 지 잠시 궁금해 본다. 애플티를 마시며 짧은 에세이와 소설을 읽던 그때의 기분이 어제처럼 마음 속에 흘러 넘치는데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3.
우리집에는 타로는 오컬트가 아니라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굳게 믿는 과년한 처자가 한 명 있다. 그녀의 궤변에 넘어가 사이비 신자가 되어비린 나 역시 daily reading을 즐기며 적당히 복잡한 문제 앞에서는 카드를 뽑아 무의식을 헤아려 본다. 가끔은 남몰래 연애운을 점치기도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불쾌한 결과가 나올까 두려워 카드를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타로의 정확성에는 내심 놀라곤 한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느낌들이 카드 한 장에 응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경험이 만들어 낸 78장의 과학이란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K군을 위한 카드. 난 오른쪽 카드가 나오기를 바랬는데 왼쪽 카드가 나왔다. 지금까지의 우리 관계로 볼 때 왼쪽은 다소 진지하다.

4.
사람은 저마다의 악취미가 한두개쯤 있다고 한다. 난 정도가 심한 편이라서 악취미가 흘러 넘치는 편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과거에 흠모했던 그녀들을 숨기는 나쁜 버릇이다. 가령 <표절>에 등장하는 야스미나나 <숨은 꽃>에 등장하는 요시에, <내 이름은 빨강>에 등장하는 세큐레 같은 이름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악취미에는 비싼 대가가 따른다. 고정된 소설 속의 캐릭터와 다르게 그녀들은 끊임 없이 변모하고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와의 관계 역시 시시각각 틀어지곤 한다. 그리고는 이내 어떤 유사점도 없는 종막을 향해 질주한다. 결국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를 느끼며 안타까워 하는 것은 순전히 나만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
2005/11/26 09:42 2005/11/26 09:42

小雪을 기다리며

Posted 2005/11/22 14:29,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小雪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잡담을 풀어 놓다.

1.
점심 무렵 친구와 이야기 중에 감히 ‘애인보다는 책이 더 좋은 법이지’ 하고 실언을 해버렸다. 문제는 한 문장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실수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목 조목 이유까지 부연해하며 크기를 늘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실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요즘 내가 이덕무의 산문집을 읽고 있다는 미쳐 알리지 못한 상황이 존재한다. 청장관 이덕무의 ‘책사랑’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 뜻에 취해 버렸다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늦은걸까?

2.
3년 만의 수강 신청이다. 과거의 노하우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쓰라린 교훈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8살 꼬맹이의 첫등교처럼 설레인다. 작은 브리프케이스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즐겨 쓰는 브랜드의 가방을 하나 더 들여 놓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처럼 신나하는 나를 보며 친구와 누이들은 그렇게 좋냐고 몇번씩 묻곤 한다. 솔직히 매우 신이 난다. 그토록 지겨웠던 휴가가 끝나간다는 것에 관하여, 그 휴가 동안 넘긴 책장의 두께에 관한 자부심으로, 마지막으로 수많은 사건 속에서도 내 자신을 완벽하게 잃지 않았다는 사실때문에 신이 난다.
3.
인근 도시에 위치한 치과에 다녀오다가 몇년 전에 즐겨 산책했던 길을 다시 걸어 봤다. 소설에 접어 들자마자 거짓말처럼 내리던 눈과 까닭 없는 노곤함으로 마냥 쉬고만 싶어 했던 겨울을 회상해 봤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난 당시 이른 합격으로 벌어놓은 시간을 산책과 모험. 책읽기로 낭비했다. 그 시간에 잃어버린 공부하는 습관을 다시 찾은 것은 이번 휴가 때였고 허무하게 내던진 시간의 가치를 그제야 깨닫고 꽤나 배아파했던 듯 싶다. 결국 마지막 모퉁이에 접어 드는 순간 스스로를 아끼는 사람은 시간에 제대로 가치를 매길 줄 아는 사람이란 말과 자신의 시간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란 말이 떠올랐다. 뜬금 없는 산책의 교훈이긴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어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4.
친구들의 대부분은 내가 꽤 잡다한 기억력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안들었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일일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길을 걷다가 메세지 하나를 받았는데 그 녀석이 학교에 있는지 아니면 휴학을 하고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보수집용 답신을 보낼 수도 없어 고민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마저 까먹고 말았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초여름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꿈결처럼 흘러가는 통에 무언가를 기억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이렇게 슬쩍 변명해 본다.
2005/11/22 14:29 2005/11/22 14:29

murmur

Posted 2005/11/15 16:00,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1.
<나니아 연대기>가 도착했다. 묵직한 두께에 단색의 깔끔한 장정이 입혀진 책이었다. 어떤 이들은 시공사라는 이유만으로 이책을 외면하겠지만 근래에 보기 드물게 정직한 책이었다. 누구나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시공사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면 혹은 ‘증오받아 마땅한 사람’의 아들 역시 증오 받아야 한다면 구족을 멸하던 과거와 오늘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조심스럽게 고민해 본다. 길게 썼지만 사람들이 이 매력적인 판본을 책과는 아무런 연관 없는 이유로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
오후에는 반주 덕분인지 깊은 낮잠을 잤다. 평화로운 오후의 낮잠을 얼마만에 즐겨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르르 잠에 빠져 해가 저문 다음에야 일어났다. 사위는 벌써 어둠에 젖어 있고 바람은 겨울 바람처럼 차다. 어느 사이에 겨울이 훌쩍 다가온 모양이다. 의지를 모으고 가능한 모든 실행 수단을 끌어 모아야 할 겨울이 벌써 다가왔다.

3.
플루타크의 <비교열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라는 문장이다.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아스파라거스가 나왔을 때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인데-물론 그는 그말을 던지고 아무 상관 없이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그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이 문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식탁 밑으로 손을 내려 놓으면 된다. 조리법이 이상하다며, 손님을 맞는 예의가 아니라며, 미각을 거스르는 음식이라며 주인을 비난하는 것은 혹여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더라도 추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이 경우 정당한 이유같은 것은 없으며 수십년 동안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아온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또 모든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면 충분히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이거나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논의의 가치까지 없다면 무엇때문에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more..

2005/11/15 16:00 2005/11/15 16:00

Love's Labour's Lost

Posted 2005/11/08 11:21,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횡단 보도에 서 있는 뒷모습을 본 순간 지독했던 헛사랑이 정말로 끝났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헛사랑의 끝을 인식하는 순간 적당히 냉정하고 이기적이며 좀처럼 동요하지 않던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농담처럼 원래 그런 사내였고 단지 애정이 시야를 가리는 동안만 친절했을 뿐이었다는 누군가의 조롱 섞인 읊조림이 떠올랐다. 다리가 풀리며 까닭 없이 노곤함이 밀려 왔다.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사납게 휘저은 폭풍의 끝치고는 허망한 결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미적거림이 남아 있다고 믿었던 환상의 끝은 이렇게 초라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고혹적인 표정이지만 그 표정 속에서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매혹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오랜 시간 속에 익숙해진 친구의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남긴 추억은 곱게 풍화되어 있었고, 상처의 잔금은 먼지와 이끼 속에 숨어 들었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피곤함이 스며 들었다. 더 이상 꿈이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거란 사실에 안도하며 깊은 잠 속에 빠져들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도 잠으로 도피하려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만큼 사랑 또한 버리기 힘들어 했던 과거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처음 그녀를 발견한 때는 스물 한 살 봄의 일이다. 지겨운 강의 대신 소설을 붙잡고 계단식 강의실의 두 번째 층에 앉아 있던 지기와 나에게 고개를 돌린 소녀는 성숙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쏘아 붙이던 그녀의 당돌함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욱 황망했던 것은 그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녀는 내 시야에 늘 고정되어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낭하를 걸어 다니던 내 눈에 유난히 느린 보폭으로 걷던 그녀를 발견하는 일이 매우 쉬었다는 사실은 차제하고 말이다.

타인으로 인식 밖에 머물러 있던 내가 처음 인식 안으로 걸어 들어간 점심 식사가 기억 난다.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든 스물 둘 9월의 어느 날을, 식당의 조리열이 을씨년스럽기 시작한 대기를 조금은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날의 만남을 내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가벼운 속임수를 통해 알아낸 핸드폰 번호를 외우던 어느 목요일 오후와 짐짓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 답신을 보냈던 일요일 아침이 떠오른다. 지난 5년을 회고해 보면 그때가 내 삶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맡고 있는 일이나, 마음의 평화나, 미래에 대한 준비나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억은 어느 사이에 크리스마스 이브의 약수역과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그 해 겨울이 떠올린다. 친구의 전언을 통해 들은 intimate란 단어가 베푼 기쁨의 농도에 희희 낙낙하던 내 모습도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마냥 귀여운 내 모습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서 내가 맡고 있는 일이나, 마음의 평화나, 미래에 대한 준비나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단지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아릿하게 만들었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멈추어야겠다. 지금은 추억을 어깨 너머로 흘려 보낸 채 새로운 위치와 현실을 받아들일 순간이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사심 없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리라. 4피트 8과 1/2 인치라는 궤간만큼 거리를 두고 반대쪽 차창에 펼쳐질 내 삶을 보리라 다짐해 본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귀향하는 기차 안에서 지난 5년간의 시간을 꼼꼼하게 되돌아 보았다. 황금기에 근접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의 시간과 그것의 단맛을 충분히 향유했던 행복했던 시간, 그리고 긴 몰락이 머리 속을 떠다녔다. 지난 5년을 되돌아 보면 성취감 이상을 보상해 주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어떤 상황에도 반응할 수 있는 준비 정도는 된 것 같다. 새롭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나, 새로운 기분으로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것, 새로운 마음으로 긴 항해를 시작하는 것. 이제는 어느 하나 두렵지 않다.

나흘 뒤면 시간의 유용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시기가 끝난다. 짧은 막간극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장에서는 시간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Anerriphto ho Kybos’ 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P.S.

2005/11/08 11:21 2005/11/08 11:21

A Surprise Sale

Posted 2005/10/28 11:58,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1.
요즘의 난 소위 말년이라고 불리는 시간을 유유자적 즐기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등으로 즐기며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넓은 책상에는 궁벽한 이곳에서의 삶을 함께한 아이팟이 외롭게 굴러 다니고, 카모마일 한 잔과 장정이 닳은 거시경제학이 정물처럼 놓여 있다. 피아노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바흐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듣는다.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폴로 스포츠 점퍼를 입고 유난히 기장이 긴 연한 하늘색 체크 무늬 셔츠의 깃을 빳빳하게 세워 본다. 동공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점심에는 디오니게스처럼 햇살을 벗삼아 짧은 낮잠을 잔다. 지리 했던 은둔의 마지막 초상치고는 꽤 멋지다고 자화자찬 해본다.

2.
경건한 마음으로 신에게 감사하는 그의 글을 읽고는 신은 너를 포용할지 몰라도 운명에 희롱 당하고, 풍문에 휩쓸리는 난 너의 회피를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성격 나쁜 탕아처럼 혼자 읊조렸다. 우리가 배워야만 했던 것은 아니 실제로 배운 것은 최선이 모든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최선이란 가장 유용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최선이란 방패 뒤에 숨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비겁이다. 그는 신의 품 속에서 모든 것을 과거로 묻을 수 있겠지만 신을 믿지 않는 나는 그마저 할 수 없다. 난 다음 금요일이 두렵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혹독한 진실이 한 두개쯤 있는 법이기에.

3.
다시 휴게실이다. 창 밖이 소란스럽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감을 따는 흥겨운 목소리다. 난 이들의 비효율성과 고루함, 편벽한 습성을 미워했지만 그만큼 이들의 쉽게 상처 입는 여린 마음과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면 조악한 자판기 커피를 끊임 없이 권하고 그것을 거절할 때마다 토라지는 그 표정을 남몰래 즐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는 말이 말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이들이 펼쳐나가는 희비극을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일도 어느새 마지막이 가까워 오고 있다.

4.
십년을 훌쩍 넘긴 친구와 더 이상 부연할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구멍 가게에서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친구는 가정법에 대한 열변을 토하고 있고, 난 건성으로 동사 원형을 쓰는 가정법 현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맞장구를 치며 벽에 붙은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진지한 녀석의 표정은 아홉해 전 이즈음 고등학교 입시 문제로 고민하던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본다. 휘적 걷는 걸음걸이조차 그대로인 녀석이지만 이번에 떠날 때에는 꽤 오랫동안 못 보게 될 것 같다.

5.
비가 내릴 것 같은 찌푸린 날씨다. 동전 저금통의 비효율적 공간배치를 성토하던 누이에게 아버지와 난 화폐의 유통 속도와 본원 통화의 감소, 인플레이션 조세, 주조 비용 등을 근거로 동전 저금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사실 선생님인 누이로서는 조금 황당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동전 저축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나?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 반지가 소설에나 존재하듯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저축하는 버릇이 가져다 주는 이익와 동전의 보유 비용이라는 손실을 합리적으로 평가해 보아야 한다.(솔로우에 따르면 저축율이 최적 자본량을 결정한다지만 소득은 단지 소비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삼선의 이론을 도입해 정보 비용을 고려하면 어떤 것이든 뜻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알 수 없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누이를 타박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는 희한한 결론까지 연역해 낼 수 있다.

6.
결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문제집을 풀고 있는 나를 낚아챈 친구 녀석은 매주 만원의 행복을 찍고 있는 헐벗은 지갑을 벗겨간다. 결국 500원짜리 동전 하나와 100원 짜리 동전 두개 몇 개의 캐러멜이 수중에 남은 전부다.

7.
드디어 나에게도 마음껏 심술을 부릴 기회가 찾아왔다. 프로포즈를 위해 한 시간만 육교에 현수막을 게시하면 안되냐는 질문에 무슨법 몇조, 시행령 몇조, 시조례 몇조를 들먹이며 과태료 25만원이라고 나직하게 말해주었다. 그치는 나의 감각 없음을 야박하게 생각하겠지만 프로포즈의 기대감으로 들뜬 목소리를 듣는 가련한 총각 마음에는 그치가 더 야박하다.

etc
하루 종일 오타를 그대로 두었는데 아무도 비웃지 않는다. 다들 바쁜 건가?
2005/10/28 11:58 2005/10/28 11:58

Amicus verus est rara avis

Posted 2005/10/25 16:20,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1.
가을에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묻어 난다. 이유 없이 혹은 명확한 대상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고, 낯선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런 기분에 마냥 취해 있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가을 특유의 외로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칫 일상의 안정감을 잃어버릴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현명한 조언보다는 달콤한 유혹에 더 쉽게 이끌린다. 훌쩍 기차에 올라 여행을 떠나고 싶고 몽롱한 음악을 들으며 가슴저린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아니 사랑한다는 말에 배가 고프다. 누군가 사랑한다는 말을 포만감이 들 정도로 남발해 주었으면 좋겠다. 설령 그것이 꿈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의 난 이런 소소한 감상과 전혀 다른 일상을 살아간다. 위클리 스케쥴러에는 해야 할 일들이 빽빽하게 차 있고 잠마저 온전한 휴식이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바쁘게 보내는 일상은 외롭지 않다는 자기 암시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 말대로 사랑을 찾아 길고 지리한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편이 휠씬 나은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가을은 다시 온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해마다 외로움도 나를 다시 찾는다. 언덕 위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성당 옆의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던 스무살 가을의 외로움이나 궁벽한 이곳에서의 가을이나 5년이란 시간의 지혜에도 불구하고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난 애써 겨울을 기다린다. 겨울이 되면 이런 외로움이 또 다시 잊혀질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 없이 바쁜 일상과 친구들 틈에서 짐짓 외로움 따위는 모르는 척 허세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의 냉혹함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예전에는 냉혹함을 하나의 훈장쯤으로 여겼던 철없는 시기도 있었는데 요즘은 스스로의 냉혹함이 버겁다. 왜 예전처럼 다정한 어조로 말할 수 없는 것인지, 노력의 값어치만큼 되돌려 받고 싶은 지금의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주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시를 짓고 화장을 하는 것’은 엄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밉다.

하지만 적당한 냉혹함이 현대인의 미덕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모두가 냉혹한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방법은 나 역시 초지일관 냉혹함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울고 싶은 결론도 안다. 하지만 늦은 가을밤 짧은 메시지에 담긴 말 못할 사연을, 부주의로 잃어버린 상봉점을, 다같이 바쁜 일상에 묻혀 마음으로만 인사를 건네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다 알고 있다고, 그리워 하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힘내라는 말뿐이라고 이렇게 변명을 쓰는 것 빼고는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2005/10/25 16:20 2005/10/25 16:20

어느 가을날('05 Fall)

Posted 2005/10/19 10:53,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1.
가끔 병원에 갈 때면 스무 살에 내렸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확신으로 의기양양해 하곤 한다. 어떤 친구들은 혹 나를 아는 어떤 이들은 당시의 내 선택이 편한 길을 놔두고 불확실성의 세계로 뛰어든 철없는 행동이라 평가했지만 병원에 갈 때마다 이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해준 당시의 선택에 찬사를 보낸다. 사실 난 아픈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다. 병자를 바라보는 것이 내 평생의 업이었다면 난 그런 내 삶의 무게를 한순간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2.
사람마다 원하는 배우자상이 있다고 한다. 자발적 독신증후군에 감염된 주제에 친구들의 배우자상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그런 친구들에게 <정치적 성향이 같을 것, 종교에 무관심할 것, 애완 동물을 키우지 말 것>이라는 내 배우자상을 이야기하니 다들 자지러진다. 그런 것 말고 좀 진지한 배우자상을 가져보라고 점잖게 충고한다. 하지만 서시 같은 미인이라도 날마다 신문을 보며 언쟁을 벌이고, 어떤 분쟁보다 많은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는 종교 전쟁을 벌이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제한된 애정과 관심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도 아닌 동물과 치졸한 경쟁을 벌이는 것만큼은 절대 사절이다.

3.
요즘 들어 마시는 살구향 홍차는 세 해 전 나를 설레이게 만들었던 그 향과 맛이 나지 않는다. 그 향과 맛을 머리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재현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불완전한 기억에 추억을 맡기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또 어느날 우연히 그 향과 맛을 되찾은 순간의 위험한 표정을 타인에게 들키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다. 결국 이렇게 또 하나를 잃어버리는구나!

4,
이제 슬슬 인사말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어떤 인사말이 가장 담담하면서도 절제된 인상을 남길지 지겨운 복도를 걸으며 보이는 하늘 너머로 구상중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사말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치졸한 짓이다. 반기지도 않을 인사말을 만들어 내니라 복도를 오가는 내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아! 예전의 난 친구들이 인사말을 고민하기 전에 기막힌 인사말을 먼저 선물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 빈궁한 재주마저 떨어진 모양이다.

5.
중용은 빛이 나지 않지만 중용을 잃은 태도만큼 꼴사나운 것은 없다. 멋진 몸매와 옷 매무새는 아니더라도 꼴사납지는 말자. 그것은 주장을 위해 논거를 꾸미는 것이나 이상에 취해 현실을 부정하는 사보나롤라나 다를 바 없다.

6.
일어나자 마자 경기둔화가 예상된다는 그린스펀의 발표가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초여름부터 지리하게 이어졌던 논쟁에서 그가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소식으로도 들린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경우 경기 둔화는 급격한 경기 후퇴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제 막 지표상의 반전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다지 유쾌한 소식은 아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중요도가 높지 않은 문제로 내정에 집중할 정치력을 낭비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최악의 예측가운데 하나다. 덴트 따위의 전문가들이 일삼는 혹세무민을 믿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으로는 믿고 싶었는데 역시 망언의 말로는 항상 같다.

7.

2005/10/19 10:53 2005/10/19 10:53

자발적 독신증후군

Posted 2005/09/27 13:08,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내 주변에는 연인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발적 독신증후군에 감염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혹자는 비자발적 독신증후군이 만성화될 겨우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하면 유부남을 제외한다면 mating을 시도하고 있거나,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에 성공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mating이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혹여 누가 mating을 시도하려는 상태 자체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을 정도로 우리한테 mating 낯선 단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다들 이런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는 있다. 누구나 서로에게 대뜸 하는 잔소리가 ‘이러다 꽃다운 젊음에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해보고 어른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잔소리를 듣는 쪽이나 하는 쪽이나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작 하는 말이라는 것이 일단 바쁜 한고비만 넘겨놓고 생각해 보기로 했어 따위의 망발이 아니면 귀찮아라는 일고의 여지도 대답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제대로 된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추억이 하나쯤은 담겨져 있다. 누구는 조금 더 많은 경우도 있고, 누구는 정말 단 하나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추억의 숫자가 아니라 추억이 남겨 놓은 흔적이다.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추억이 남겨 놓은 흔적은 꽤나 무겁다. 결국 ‘제대로 된 사랑 한번’ 이라는 잔소리 속에는 나에게는 숨겨진 추억이 하나쯤은 있다는 미묘한 뉘앙스가 숨겨져 있다. 사실 듣는 쪽도 별다를 바가 없다.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애틋한 추억하나쯤은 있으며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수많은 가능성에 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의논하면서도,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한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추억 속에 담긴 희미한 씁쓸함의 여운이 삶에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Mating은 성공과 일관된 의지의 적이라는 미신에 가까운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이렇게 자발적 독신증후군에 감염된 채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겉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척, 바쁜 일상에 완벽하게 헌신하는 흉내를 내지만 아무도 없는 늦은 밤이면 애틋한 추억의 음악을 들으며 과거를 반추한다. 과거와의 작은 흔적에 설레임을 느끼며 스스로가 결코 벗어나지 못할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

2005/09/27 13:08 2005/09/27 13:08

휴학이후 삶에서 멀어진 것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거리를 보이는 것은 술이다. 물론 그때에도 날마다 이어지는 술판에 몸을 내맡기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술자리를 좋아했던 그때와 달리 요즘의 난 술과 담을 쌓은 듯 녀석을 멀리한다.

물론 술과 멀어진 데에는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첫번째는 이곳에 남은 친구들이 적어졌다는 것이고, 유행처럼 번진 금주 열풍이 모임마다 빠질 줄을 몰랐던 술자리를 식사를 같이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대체했다는 데 있다. 소소하게는 불경기와 물가 상승으로 용돈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도 한몫 했음이 분명하고, 운전이 보편화된 생활의 변화가 눈빛만 번쩍여도 술자리로 이어지던 과거를 청산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이 다가오면서 까닭 없이 술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쏜 살처럼 내 곁을 스쳐간 이성의 숨결에 담긴 주향이 달콤하게 느껴지고, 저녁이 되면 혹 누군가가 술 한잔을 청하지 않을까 핸드폰을 매만진다. 심지어 술에 취해 나른하게 풀린 걸음마저 부럽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에 마주치는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네들의 혈관 속에 담긴 알코올을 동경한다.

결국 어제는 귀밑머리까지 달아오른 어여쁜 아낙이 아닌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려 호프집에 들어서는 아저씨들에게까지 부러움을 느꼈다. 사실 난 더 이상 맥주의 더부룩함과 소주의 화학성분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만이 아닌 내일까지 요구하는 술자리의 희생을 참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난 동네 아저씨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부러워한다. 단지 그들이 술을 마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P.S.
결국 친구 녀석들의 mid-term이 끝날 즈음에 요즘 동아리에서 술 좀 마셨노라며 어느 사이에 술에 대한 겸손함을 잃은 J군의 끝을 보기로 합의했다. 본인은 우리의 음모를 모르겠지만 삼가 조의를 표한다.

P.S 2nd
하악에 좌측에 위치한 치아를 대폭 정리했다. 앞으로 반년은 술은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협박 겸 조언을 들었다.
2005/09/09 00:02 2005/09/09 00:02

First Deck, Blog, and 31 Aug.

Posted 2005/09/01 00:55,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8월의 마지막 날은 나의 여름이 끝나는 날이다. 비록 오늘이 지나도 한낮에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수가 입에 걸리는 처서마저 훌쩍 지난 요즘은 이미 마음으로는 완연한 가을이다. 사실 오늘쯤 되면 가을에는 여름과 다른 계획 아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무에 쫓기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절과 나누는 인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게다가 여름에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끝낸 오늘 하루는 여유롭게 보내도 되는 나만의 자유 시간이다. 밀린 책을 읽고, 미쳐 마무리 짓고 못한 글을 완성하며 하루를 보내는 가을을 준비하는 덤인 날이다.

1.
덤인 하루를 보내며 누이에게 생일 선물 받은 첫번째 덱을 셔플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시작될 이번 가을에 생각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집어 들었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라이더 덱의 magician에 해당되는 intellect였다. 안도의 한숨을 나왔다. 지금 내 마음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나타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카드는 없다. 2001년 3월 회기역 앞 어떤 까페에서 첫번째 카드를 뽑았을 때 나의 신문사 생활을 지목한 카드가 7 of Wand인 것에 비하면 이 정도면 뽑을 수 있는 최고의 패를 집은 것이나 진배 없다.(그때 내가 뽑은 카드는 7개의 Wands를 힘겹게 지고 가는 농노를 그린 카드였고, 지금 가진 Dante에서는 적 혹은 충돌을 나타나는 카드다)

2.
이틀 사이에 읽은 두 개의 포스팅은 이곳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의사 결정에 관한 복잡한 프레임워크를 실행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이곳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난 활자중독증에 빠진 사람이고 설령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경력에는 하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악취미라는 잔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생활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올 겨울과 내년 봄의 이곳은 조금 황량한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 고집스러운 지속성과 좀처럼 변하지 않는 기질을 고려해 볼 때 이곳이 불의의 사고가 아닌 자의로 사라지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첫번째 홈페이지을 채워 넣은 negative한 글들을 사랑했던 것보다 이곳을 더 많이 사랑한다. 시작은 조각난 마음에 대한 넋두리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더 이상 내 마음은 깨진 거울이 아니고-거울은 나도 모른느 사이에 오래 전에 수선이 끝나 있었다- 되려 이겨내야 할 일상과 위험으로 흥미진진한 모험 그 자체인 삶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내게 있어 한니발을 수행한 실레노스와 같은 존재다. 그가 있기에 우리가 오늘날 한니발에 관해 아는 것처럼 이곳이 있기에 먼 훗날 나를 알았노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사랑이 없는 것처럼, 영원한 어색함도 없다. 그저 시간 속에 녹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영원에 가까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바로 애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백의 우정으로 보기도 힘든 사람에 대한 ‘필리아’다.

또 다시 꿈꾸는 표정으로 우정이 주는 행복한 느낌을 음미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다. 비록 내일 또 다시 천둥이 치고 번개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가끔은 찰나를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느끼는 이 행복한 상상을 그녀도, 그도 느꼈으면 좋겠다. 시간 앞에 고정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나도 모르게 변하는 것이며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삶은 없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잠시 문을 닫아 두어야 할 필요성은 있겠지만...

4.
내일부터 나의 가을이 시작된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는 덜 만족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꽤나 진지한 여름이었다. 게다가 이번 여름의 아쉬움은 가을에 벌충하면 된다. 무엇보다 이번 가을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계절이란 사실이 행복하면서도 서글프다. 가을이 끝날 무렵의 나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다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발전한 나이기를 기원한다. 발전하지 않는 것은, 욕망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삶은 서글픈 정도가 아니라 진정 불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

2005/09/01 00:55 2005/09/01 00:55

여름나기#2('05 Summer)

Posted 2005/08/21 00:15,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1.
스무살 여름의 난 스스로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주절거리곤 했다. 그리고 독한 술잔과 혼탁한 정신 사이에서 이른바 ‘어른의 유희’라 부르던 것들을 즐겼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어른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내가 소년과 청년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내 마음은 절제되고 균형잡힌 일상에 더 쉽게 이끌린다. 게다가 난 아직도 ‘그 남자’가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 남자’ 보다는 편한 어조로 불리는 ‘그 녀석’으로 남아 있는 것이 편하다.
2.
어른이 아닌 난 좋은 인사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에게는 인사라는 일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하는 인사라고는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에게 던지는 매몰찬 인사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인사는 늘 서먹하며 품고 있는 마음의 일할도 담아내지 못한다. 이런 순간과 조우할 때마다 ‘언어는 허망한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되뇌이게 된다. 하지만 언어가 허망하다고 해서 가슴을 열거나 머리 속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이것이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아이도 아닌 현재의 딜레마다. 이도 저도 아닌 연치의 표현은 냉정한 척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아닌 법이다.
3.
하지만 이런 연치가 항상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행복해 할 수 있다. 가령 ‘곧 보자는’ 메세지를 받았을 경우다. 몇년 만에 건내받은 이 문장에서 친절함을 발견하고는 사심없이 기뻐했다. 아울러 ‘그 남자’가 되어 보려고 벌였던 일련의 과오가 이제야 교정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른만큼 현재에서 과거로도 시간이 흐른다. 미래로 나아갈 수록 우리는 과거의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그 남자’가 되어보려는 서툰 마음 따위는 애초에 갖지 않을 것이다.

4.
혹자는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사는 것은 모험을 모르는 불행한 삶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모험없는 삶인 것은 아니다. 삶에 모험이 아닌 순간이 어디 있을 것이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모든 모험의 단초다. 스물 다섯의 여름이 끝나려 하는 이때 지금 내가 서있는 곳 바로 여기다.

P.S.

2005/08/21 00:15 2005/08/21 00:15

小雪이 지나다

Posted 2004/11/25 00:31,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소설이 지났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기예보를 유심히 보게 된다. 혹여 내일 눈이 내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볍게 흥분되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난 쌓인 눈에 불평을 터트리는 투덜이었는데 어느 사이에 이렇게 변한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어쩌면 주변의 영향을 컸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짐작할 따름이다.

이상하게도 내 지인들 대부분은 겨울을 좋아한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살기 좋다는 사실에는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지만 눈오는 겨울을 일년 내내 기다리는 지인들에게 맞장구를 쳐주기는 꽤나 어렵다. 스키와 보딩을 위해서 여름부터 허리띠를 조이는 지인들을 볼 때마다 따끈하게 데워진 아래목에 허리를 지지며 이불 속에서 책이나 읽는 내 겨울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참 손가락에 노란 물이 배이도록 귤도 까 먹는다.

(내 친구 중에 한 녀석은 나만큼이나 귤을 좋아했는데 이 녀석의 로망스는 귤을 까 먹어도 물이 배이지 않는 여자 친구를 갖는 것이었다. 겨울이 되면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은 귤을 건네며 손가락 끝마디를 관찰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친구가 원했던 그런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절친한 여자 친구들에게 했을 때 그녀들은 '그럼 까주지 그래'란 한마디로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다.)

아무튼 친구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시즌권을 구매하는 것처럼, 혹은 외출과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나기 위한 준비(?)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나 역시 나름대로의 겨울을 준비했다. 긴긴 저녁 동안 읽을 책들의 긴 리스트도 만들어 놓고 차도 충분하게 비축해 놓았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 홀짝일 보트카 한 병과 갈루아 한 병이 조심스럽게 선반에 자리 잡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눈의 마력에 빠져버린 염장 밴드들에게 방해 받지 않기 위해서 핸드폰을 가을부터 험하게 다루는 것이다.

겨울잠 하나로 긴긴 겨울을 나는 사람들에 비하면 많은 준비지만 눈을 사랑하는 지인들에 비하면 나의 월동준비는 지극히 검소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랬다. 참. 귤은 절대 미리 사다 놓지 않는다. 박스채 사다 놓은 귤보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조금씩 사가지고 오는 귤이 더 맛있다. 아주머니들에게만 먹히는 외모로 몇 개씩 더 주어담는 것도 이 겨울의 매력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지인들보다 내가 더 눈을 기다리는 듯 하다. 눈이 와봤자 좋을 것도 없는데 마음은 눈을 기다린다. 나에게는 <꽃을 사랑한다> 말 할 용기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으므로 눈을 기다릴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올해의 난 눈을 기다린다. 핸드폰에는 <첫눈이 오면 고백할꺼야> 따위의 유치한 그림배경을 깔아 놓은 채 말이다. 혹 내가 원래 눈을 좋아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올해의 난 눈을 기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답지 않다. 삼두육비의 괴물 정도는 아니지만 첫눈을 기다리는 나보다는 투덜거리며 허리가 부러진 사람마냥 바닥에 누워 눈물이 나도록 책을 읽는 내가 더 나답다. 하지만 올해는 왠지 눈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생각에 이 맘때쯤이면 진작에 갖췄을 월동 준비도 아직 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log

2004/11/25 00:31 2004/11/25 00:31

친구의 과외가 끝날 때까지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서는 안되는 서점에 머물렀다.(에드몽 당테스가 메르세데스에게 했던 말처럼 스무살 지난 남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리모델링을 한 탓인지 서가의 배치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서가를 헤집는다.

시골의 작은 서점이 지닌 장점은 주인의 눈치를 무시할 배짱만 있으면 서울의 큰 서점보다 더욱 손쉽게 책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시골 서점이란 베스트셀러나 잡지가 아닌 이상 재고를 거의 보유하지 않으며 큰 서점에서는 출판사의 경쟁에 밀려 구석으로 밀려나기 일 수인 작고 재미있는 책을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작은 서점에는 몇가지 장점이 더 있다. 공간이 좁은 만큼 대부분의 책은 서가에 얌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화려한 디자인과 찬사로 눈을 유혹하는 현혹 효과가 통하지 않는다. 슬쩍 보는 과정에서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제목과 저자, 그리고 출판사가 전부이다. 시각적 혼란을 통해 소비자의 손에 접근하려는 얕은 마케팅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작은 서점 방대한 규모에 압도당할 염려 없이 서고를 꼼꼼하게 살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서가를 기욱거릴 때마다 무슨 책을 찾고 있느냐는 점원의 친절한 방해 없이도 느긋한 마음으로 책사냥을 즐길 수 있다.(개인적으로 난 한적한 시간대의 서점을 즐겨 찾는다. 186센티미터의 거구가 서가를 느릿하게 걸어다니고 있노라면 친철한 방해는 10분 단위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찾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나 역시 모른다.)

아니 작은 서점의 서가에서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서가를 맴도는 눈동자는 오래지 않아 내 책장에도 꼽혀 있는 익숙한 제목들을 찾아 낸다. 큰 서점의 서가는 내 소유물이 아닌 것 같지만 군데 군데 친숙한 제목들이 보이는 협소한 서가는 내 소유물마냥 편안하다. 아니 실제 소유하고 있지는 않아도 읽은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낯선 것들을 찾아내기가 더 쉽다. 어쩌면 정신의 협소함이 통제할 수 있는 서가의 범위는 작은 서점조차 버겁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울의 큰 서점에 들릴 기회가 적어지면서 놓치고 있던 많은 책들을 오늘 찾아낼 수 있었다. 큰 서점의 신간 안내 시스템은 거의 열흘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한달 단위로 서점에 들리게 된 난 어쩔 수 없이 놓치게 된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친구를 기다리면서 작은 서점을 배회한 내가 얻은 수확은 꽤나 짭짤했다.

레베르테의 검술가(변역된 제목은 검의 대가였다)와 로맹가리의 유럽의 교육을 발견했고 슬론 대학원에서 나온 기념 도서도 한 권 발견했다(후반부의 필진이 정말 화려했다. 경영의 21세기에 대한 화두랄까? 아주 간만에 이필상 교수님 서평도 인상 깊었다.) 유명한 도상학자인 파노프스키와 판화의 대가인 뒤러를 다룬 책도 한권 발견했고, 사자와 권력이라는 구매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도 한권 발견했다. 팍스 이블의 도입부도 살며시 읽어주었고, 4의 규칙의 시작도 읽었다.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가 전개판으로 나왔는데 초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순간 마음이 아려왔다. 내가 가진 두권짜리 초판보다 30%는 더 두꺼워진 전개판에 추가된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비닐 포장에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동안 팔아준 책이 얼마인데 하고 <책세상>의 좀스러움에 잠시 화를 냈지만 카운터에서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의 시선이 걸려 조용히 내려 놓았다.

사실 지금껏 난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을 조금은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책은 상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그러면서도 리사 자딘의 그녀의 책 <상품의 역사>에서 언급한 책의 상품성에 대한 챕터를 좋아한다) 제 가격이 아닌 할인 가격에 구매하는 찝찝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난한 휴학생이 되면서(정확하게는 복무중이다) 할인 가격이면 책 한권을 더 구매할 수 있다는 깨닫게 되면서 인터넷 주문을 더 이상 수치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쌓인 정이 만만치 않지만, 늘 귀찮은 주문만 한다며 나를 구박해 책갈피 하나도 아까워 했던 아주머니에게 미안했지만 목록만 살짝 메모해서 서점을 나왔다. 그리고 이내 적립금으로 로열티를 확보한다는 마케팅 전략의 헌신적인 노예가 된 내가 한심해 졌다. 2004년 11월 14일 그 서점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잊어버린 것처럼 작은 서점과 내가 맺은 묵시적 계약도 오늘로서 파기 되었다. 그리고 파기된 계약서를 하늘에 던지려는 것처럼 멀리 보이는 친구에게 힘껏 팔을 흔들었다.

참...

2004/11/15 00:35 2004/11/15 00:35

울트라마린 그리고 하늘

Posted 2004/11/12 13:51,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정오가 되어 햇볕을 쐬러 나갔다. 음침한 복도를 지나 현관에 다다랐을 무렵 햇살이 아스팔트에 부셔져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계단을 내려올 때부터 햇살과 하늘에 대한 기대감으로 달아올랐던 마음은 이내 환희로 채워진다. 가끔은 작은 것에 기뻐하는 내 자신이 낯설다. 어딘지 신중하고 손익에 민감한 나답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현관 모퉁이를 돌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을 때, 난 태어나 처음으로 울트라마린 빛 하늘을 목격했다. 도록에서나 보았던 값비싼 울트라마린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광경은 정말이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멋스러움을 품고 있었다. 하늘에 신성성을 부여했던 고대인들의 동경이 잠시 내 마음에도 깃들었다. 신성과 장엄함, 그리고 화려함까지 단지 색채만으로도 이런 느낌이 나는구나.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캔버스 담는다면 얼마나 많은 울트라마린이 필요할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의 울트라마린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오래 전 책에서 읽었던 화폐 단위를 금으로 변환하고 거기에 며칠 전 보았던 1온즈당 금의 가격을 곱한다(이 순간 난 금의 가격 폭락이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는 가장 그럴 듯한 지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다시 원화로 바꾸고 나니 대충 즉석 복권 당첨금이라는 판단이 선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자연의 가치에, 하늘이 잠시 동안 허락한 비밀의 가치에 놀란다.

아이팟의 휠을 돌려 적당한 음악을 고르는 그 짧은 와중에 울트라마린은 사라져 버렸다. 하늘은 그 광휘를 읽고 어제 본 하늘처럼 그냥 맑고 푸르렀다. 98년에 발표된 제니퍼 페이지의 sober를 듣고 있던 난 허탈해진다. 엄청난 가치를 지닌. 어쩌면 두 번 다시 허락되지도 않을 황홀경을 고작 때 지난 노래 한 곡에 놓쳐버리다니… 인생의 얄궂음에 웃음이 나왔다. 지나가던 재수생 두 명이 벤치에 앉아 헛웃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고 놀라 흠짓한다. 스물 넷 가을에 너무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또 웃음이 나왔다.

Modified

2004/11/12 13:51 2004/11/12 13:51

비내리는 밤

Posted 2004/11/11 00:19,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바람이 스산하다. 소슬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어느새 사위가 어둑하다. 길을 걷다 떨어지는 낙엽과 마주친다. 어린 시절에는 그 가을의 첫번째 낙엽을 얻기 위해 고심했었는데 오늘의 낙엽은 떨어지는 잎사귀에 지나지 않는다. 가을이 되어 가장 아름답게 물들을 것 같은 잎사귀를 눈짐작으로 찍어 놓고 여름부터 가을을 기다리던 소년은 이제 없다.

5시 30분 빛이 사라진 거리를 걷기 전까지 내 마음 속에는 소년이 살아 있었다. 냉정하지 못한, 어쩌면 순수할 지도 모를 소년은 소녀를 찾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내 난 몇달 전 처음으로 액자를 샀다는 말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16살 되던 해 그 소년은 바람이 그의 손에 쥐어준 낙엽 하나를 액자에 담아 소녀에게 보냈다. 소녀는 아주 가끔 이상한 통로를 통해 그녀의 존재를 소년에게 주지시킨다. 기묘한 통로에서 소녀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소년의 가슴은 무거워 진다. 소년에게 소녀는 영원히 깨어나질 못할 꿈이다.

소녀는 모르겠지만 소년은 몇년 동안 자신을 속인 채 살았다. 세상 모든 여자들의 얼굴에서 소녀의 흔적을 찾아내는 그 자신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소녀는 모른다. 소년은 의식을 잃은 사람처럼 몽롱하게 말하고 몽롱하게 행동했다. 명료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소년은 소녀를 잊을 수 없지만 몽롱한 소년이라면 몽롬함을 핑계삼아 소녀를 잊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소년은 나에게 물어왔다. 난 소년에게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청년이 된 소년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 의뭉스럽게 말하고 웃었다. 하지만 운명은 아직도 소녀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청년은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진지한 눈초리로 문제를 푼다. 하지만 이내 청년은 자기 안의 소년이 다시 살아 났음을 깨닫는다. 청년의 삶에서 의욕이 사라져 버린다. 청년은 외로워 한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오늘 난 소녀의 흔적을 찾고 싶어하는 한때는 소년이었을 청년을 만났다. 그가 살고 있는 삶의 외형은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생기가 사라진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진지한 눈초리로 문제를 푸는 동안 청년은 소년이 되었고, 소년은 소녀를 생각했다. 소년은 닿을 듯 닿지 않는 소녀의 존재에 또 다시 괴로워 하고 있었다.

결국 난 청년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에 끝맺음을 지을 때가 왔다고. 운명이 정한 끝이 여기가 아니라면 언젠가 청년과 소녀가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년의 꿈이 아닌 청년의 꿈이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소년의 꿈을 이어 꾸는 청년은 결코 그 스스로의 꿈을 꿀 수 없는 법이라고 말해주었다.

청년은 슬픈 마음으로 소년을 가슴에 묻었다. 소년이 묻히며 소녀도 같이 묻혔다. 어느날 청년이 소녀를 만난다면 소녀는 더 이상 소년의 소녀가 아니라 청년의 그녀일 것이다. 그렇게 11월의 어느날 오후는 저물었다.

이제 청년은 편한 마음으로 잠들려 한다. 내일은 다시 활력 넘치고 의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청년은 자리에 누워 있다. 그 곁에서 난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본다. 소년과 청년을 모두 아는 나는 이들의 운명에 술 한잔이 마시고 싶어진다. 땅과 강렬한 입맞춤을 나누는 빗소리는 더할나위 없이 청량하지만 나의 마음 속은 착찹하고 쓸쓸해져 술 한잔의 목넘김을 상상한다. 사랑을 모르는 나는 이래서<<<사랑해서 괴롭고 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구나>> 하고 읊조린다.
2004/11/11 00:19 2004/11/11 00:19

Discrimination & Impartiality

Posted 2004/11/07 01:16,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난데 없이 걸려온 전화. 친구이면서 친구가 아닌 그녀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
[읽은 책이 아니라 네가 가진 책 가운데 여성이 쓴 책은 몇 권이나 되니?]
이럴 때 난 돌려 말할 줄 모른다. 아니 돌려 말할 줄 알아도 그 녀석에게 돌려 말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에서부터, 아니 몸이 거부해 버린다.

[브랜드마스터-낸시 코엔, 골드만 삭스-리사 엔들리크. 상품의 역사-리사 자딘, 코르티잔 매혹의 여인들, 며칠 전에 산 샨사의 소설. 펄 벅. 허난설헌. 제인 구달, 시오노 나나미의 책 몇 권,대충 20권 내외인 것 같은데]

[뭔가 느껴지는 건 없니?]
[책장의 성비를 50대 50으로 맞춰야 남녀 평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가중치가 다른 셈이지.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섬세함보다 직관과 분석력이 우선이거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성을 떠나 가중치를 부여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게다가 원작자가 아닌 번역자를 기준으로 바꿔보면 성비는 대충 65대 35에 근접할걸. 하지만 본연의 문제는 도대체 작가의 성이 왜 중요한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사실이야]
[물론 책장에 성비를 맞추라는 의미는 아냐. 하지만 못내 지겨워 졌어. 수컷들의 세계와 수컷들의 글쓰기. 수컷들의 대화가 모두 지겨워]

가끔 사람들은 나의 성을 잊어버린다. 나역시 남자임을. 수컷임을 잊어 버린다. 그녀가 지적하는 수컷의 몰이해함을 태생적으로 물려 받은 사내임을 잊어버린다.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은 늘 준비중이지만 태생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수컷임을 감지하지 못한다. 마음 가짐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본질적인 벽 앞에 서서 흐리멍텅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면서 얼마나 답답해 할까? 태어나서 단 하루도 여자로 살아보지 못한 내가 어떻게 여자를 이해한다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장의 가중치에 약간 수정을 가하는 것과 나 하나 바른 몸가짐을 가지는 것. 겨우 두가지뿐이다. 여자로 태어나 겪는 패널티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안다. 남자로 태어나 얻는 어드밴티지가 무엇인지 매우 잘 알고 이해한다. 다시 태어나 성을 택할 수 있다면 또 다시 남자를 택하리라 생각하는 나의 비겁함을 안다.

하지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내가 이 문제 관하여 바꿀 수 있는 것들의 범위는 나 한사람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하지만 수컷들의 대화가 아닌 수컷들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량을 배불어 주었으면 좋겠다. 수컷들의 글쓰기를 삶에서 추방한다면 그녀가 좋아하는 로맹가리, 가브리엘 마르케스, 생텍쥐페리 모두 잊어야 할 것이기에…
2004/11/07 01:16 2004/11/07 01:16

A Card from UNC

Posted 2004/10/31 00:02,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카드가 도착해 있었다. 평소라면 옷과 소지품,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일테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이프로 겉봉을 잘라냈다. 아니 익숙한 필체를 보는 그 순간부터 기억은 꽤나 먼 시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어느 이면지를 채우고 있는 빡빡한 메모가 연상의 시발점이었지만 2살이란 나이 차에도 불과하고 이제는 친구처럼 익숙한 '어린 친구’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은 꽤나 흥미 진진했다. 녀석의 스무살 2월도 기억났고, 심지어 머리 스타일의 변천사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마저 기억났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기억났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이럴 때 유쾌한 일이야 하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내 우리가 공유했던 '그곳'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가능하면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내 이십대 초반의 8할을 차지했던 '그곳'이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난 아직도 내 자식처럼 사랑했던 '그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누구나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해주는 부분이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는 부족했다는 인식이 앞선다. 내가 조금 더 집중력과 능력을 발휘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곳'에 붙잡혀 놓쳐 버린 기회를 아쉬워 한다.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던 '그곳'이기에 마음은 아직도 복잡하다.


사실 난 그곳에서 좋은 형들과 좋은 친구, 이제는 친구처럼 편안한 동생들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를 얻었고, 나이보다 넓고 조숙한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나를 믿고 신뢰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어엿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배웠다. 하지만 덕분에 사랑을 잃었고, 몇가지 소소한 기회를 잃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언제든지 회복 가능한 것들이지만 회복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쁜 카드다. 정갈하면서도 읽기 좋은 필체만큼이나 관심이 듬뿍 담긴 행간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카드의 채식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참이나 웹을 뒤졌다. 하지만 채식의 의미보다도 '친구'의 관심에 더 행복하다. '그곳'에서 잃은 것들보다 얻은 것들의 가치가 더 크고 소중함을 지난주에 이어 오늘에도 깨닫는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며, 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만난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립다.
2004/10/31 00:02 2004/10/31 00:02

책에 대한 소소한 편벽

Posted 2004/10/28 11:17,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혹자에 의하면 사람마다 기억을 담아두는 장소가 다르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작은 소품에 기억을 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달력에 기억을 담는다. 하지만 내 경우 기억을 담아두는 장소는 늘 한결같이 책장에 고정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책장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시간 내가 살아온 시간이 아스란히 보인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부터, 오늘날 몰두하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책들이 나를 반긴다.

하지만 단순하게 내용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책갈피를 넘기던 당시의 상황과 감동까지 책이란 물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책을 빼서 보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이지만 단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지의 감촉과 활자 모양, 그 내용을 읽었던 당시의 감상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어쩌면 나에게 읽는다는 [생각하다, 보다, 느끼다, 웃다, 슬퍼하다]를 모두 내포하는 나만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어디에 가던 가방에 읽을 책 한권을 빼놓지 않는 버릇도 어쩌면 이런 기억의 연장 선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특정한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행동만으로도 이런 저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비록 하루종일 낱장 하나 넘기지 않은채 그저 가지고 다니기만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책이 없는 내 모습에 당황스러워 한다. 성능 좋은 이어피스와 포터블 플레이어, 그리고 책을 소지 하지 않는 나를 목격하는 일이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고정관념이 어느 사이엔가 친구들 사이에서 중론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근래의 난 간서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 하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찾아 읽기보다는 한번쯤 지금까지 읽어온 것들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한정 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꺼내 볼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친 것 같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나에게는 책에 관한 소소한 버릇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한번 잡은 책은 무조건 인지가 나올 때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문이 마음에 든 책은 반드시 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읽어 싶어지는 책들이 갑자기 늘어날 때에는 믿음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마음이 아프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저 녀석들을 외면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난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불쌍한 남자의 표정을 짖는다. 추억을 잃어버린 기억 상실증의 남자처럼,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처럼, 거울에 비치는 내 표정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내 인격을 장악하고 있는 이기적이고 잘난 척에 중독된 영혼은 결코 이런 표정에 속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반인의 순수한 시선으로 즐기는 문학조차 이 인격에게서는 엄격한 검열 대상이다.

뭐야 이런 이야기를 읽을 것이면 차라리 못 다 읽은 실용 서적을 읽으라고. 저번에 롬바르트 스트리트의 뒷부분 2챕터 이해못하고 넘어갔잖아. 콜로서스는 3장 남았고, 자기조직의 경제는 사놓고 손도 못대고 있잖아.

선물 받은 문화상품권과 지갑에 남은 잔돈으로 샨샤의 소설을 사려던 난 이 인정머리 없는 영혼에게 오늘 또 지고 말았다. 아무리 예술과 거리가 먼 전공이라지만, 평생 동안 문학과 예술의 창조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것이 존재하는 법이고, 써먹을 수 있는 간결한 형태의 지식이 아닌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을 때가 종종 찾아온다는 사실을 이 영혼에게 인식시키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도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영화 한 편을 나눌 이유와 아름다움을 탐닉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는데 이 영혼은 쉽고 간결하게 No라 말한다. 주어진 일들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하기 싫은 일들로만 가득 채워진 일상을 살게 되리라는 신곡의 지옥편에나 나올 법한 협박에 난 오늘도 무릎을 꿇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딱 하나만큼은 너그러운 영혼이니까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고 애써 자위하면서…
2004/10/28 11:17 2004/10/28 11:17

En Passant

Posted 2004/10/24 20:15,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이른 아침, 리퍼러를 보다가 심장이 멎었다. 테터 센터를 통해 들어온 하나의 흔적 때문이었는데 그 흔적은 '초희에게'였다. 만약 '초희’라는 검색어였다면 이렇게까지 당혹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기 힘든 이름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희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런 글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고 있어야만 검색할 수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그녀 밖에 없다.

만약 일반 검색 엔진이었더라면 흔적을 쫓아 꼬리를 잡아 보려는 시도조차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터 센터는 블로그 사용자를 전제로 한 메타 사이트다. 어림 잡아 500여 개의 블로그만 돌아다니면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동명인의 존재 가능성 때문에 확신이 아닌 확률 게임 될 공산이 크겠지만 단 1%의 확률도 내가 이런 우행을 저지를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된다.

갑자기 그녀의 삶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오늘날 내가 지닌 취미와 기호의 원주인이었던 그녀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한 일이었다. 마음이 정해졌다면 하룻밤이면 충분히 그녀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 사람은 변해도 문체와 그 속에 담긴 호흡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 짧은 문장으로도 그녀를 찾아낼 수 있다 믿었다. 눈이 멀어도 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닉네임으로 대표되는 온라인의 자유로움도 본질을 감출 수는 없는 법이기에.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 온 글 중에 가장 우아한 문체를 구사하던 내 옛사랑의 삶을 보는 것은 되려 나에게 크나큰 고통이 되리라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보지 못했음에도 오랜 시간을 방황했는데, 그녀의 삶을 지켜보면서 내가 [온전한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 겨우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만들었는데 또 다시 서푼 짜리 자존심이 되지 않을까? 그녀의 삶에 내가 끼어 들 자리가 없을 때. 사랑이 아닌 친절한 성격에서 우러 나오는 답례를 받았을 때 난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

그대가 초희라면

2004/10/24 20:15 2004/10/24 20:15

I need your disillusion...

Posted 2004/10/06 20:31,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awakening대신 disillusion이란 단어가 쓰고 싶어졌다. 실제로 저렇게 말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내 기분의 문제니 말이다. 나에게는 수많은 망상이 있다. 근거없는 낙관주의자인 속마음도 있다.하지만 이율배반적이게도 외면의 난 <이기는 쪽이 내편이다>란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지만...

깊은 숙면에 빠지기 몇분 전이면 난 온갖 망상과 의혹에 나를 맡긴다. 머리속에 들어있는 온갖 잡스런 지식을 총동원해 그날 하루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어떤 전조를 찾아낸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 본다. 근래의 단골 소재는 <21살 봄으로 돌아가기> 혹은 <23살 여름으로 돌아가기>이다.

사실 친구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의 기억력은 이런 망상에 기원한다. 잠들때까지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시간대로 재구성, play 해보는 와중에 <단기 기억>은 <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 과거를 되집어 <새로운 삶>을 살아보면서 일상은 기억하기 좋은 단위로 편집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삶이 몇년동안 누적되다보니 정작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기억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억력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기로 했다. 망상과 의혹에 낭비하기 위해 남겨놓은 일말의 정신력을 깨어 있는 동안 모두 써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은 스스로와의 약속이며, 기만이 통하지 않는 이름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몇년 뒤 잠들기 전 <24살 가을로 돌아가기>를 실행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함에도 불운에 농락당하는 것이 일상인 것을 생각하면 불운에 현재를 농락당하는 것도 부족해 미래까지 헌납하는 것은 도대체 수지가 맞지 않다. 손해보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어리숙하게도 불행에 지속적으로 농락당하는 사이클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난 헛똑똑이가 분명하다.

최소한 BEP는 맞추자고!

그나저나 WC군

2004/10/06 20:31 2004/10/06 20:31

mensaje de C&aacute;diz

Posted 2004/10/04 14:20,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가끔 MSN 메신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버디들이 등록되곤 한다. 상대방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말을 걸면 낯선 언어가 나를 반긴다. 한참 후에야 난 그것이 스페인어인 줄 깨달았다. 불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정말 낯선 언어였다. 차라리 불어였다면 사전을 펴고 해석을 시도해 봤을 텐데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스페인어 사전이 없다.(물론 시스트랜은 있지만 셜록을 구동시키기가 너무 귀찮다)

그네들의 스펠링으로 표현된 영어를 해석해보자면 그들이 말을 건 까닭은 다른 아닌 메신저 아이디(medina_sidonia@h)에 있다. 스페인의 작은 도시이자 1588년 잉글랜드 함대와 싸운 아르마다를 이끈 공작의 이름에 그들은 어떤 친밀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때로는 사진을 요구하는 젊은 처자도 있었고, 자신의 도시에 아이디를 반환할 것을 정중하게 요구하는 나이든 사람 있다. 엘 그레코란 아이디의 젊은 남자에게 엘 그레코는 스페인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말을 건넸다가 분명 4LL이 분명한 스페인어의 홍수를 경험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카디스에 살고 있다던 동갑내기 아가씨였던 듯 싶다. 본인이 카디스 뜨내기가 아닌 원거주자임을 자랑스러워 하곤 했는데 그녀가 보내주는 지브롤터 해협의 사진들은 바다에 대한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곤 했다.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을 실루엣으로 담은 지브롤터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스피키오가 승리했던 일리파(그런데 의외로 좁았다)를 본 것도 그녀를 통해서 였고,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제대로 설명해 준 것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나 노트북을 열면 나를 반겨줬는데 요즘에는 좀처럼 볼 수가 없다.

근래 들어 자주 들리게 된 블로그에서 si란 단어를 보니 갑자기 그녀가 생각났다. 문장에서는 If와 비슷한 뜻인데 보통 그녀는 [그래] 정도의 의미로 si를 사용 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정확한 용법을 알 수 없으나 그냥 그래 보였다. 잘 살고 있으려나? 이른 새벽까지 잠들지 못할 일도, 그 시간에 깰 일도 없으니 정말 보기 힘들구나.
2004/10/04 14:20 2004/10/04 14:20

10월에는...

Posted 2004/10/03 00:42,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19살 10월에는…
얼마남지 않은 수능 준비 대신 달구경에 빠져 있었다. 바흐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들으며 어두운 복도 조명 아래 문제집을 푸는 척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루에도 몇시간씩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느긋하게 달구경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시험을 앞둔 묘한 긴장감이 싫어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오래전 외워두었던 시들을 음미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을밤이 주는 정취라는 것. 소슬한 바람이라는 표현이 지닌 풍부함을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고 치기 어린 낱말을 가지고 꽤나 그럴 듯한 표현을 곧잘 만들어 내곤 했는데 지금 내 손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20살 10월에는…
가난한 도서관. 낙엽을 쓸 사람이 없어서 낙엽 더미에 발이 한움큼 빠지는 그런 정원을 가진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도서관 옆에는 고적하다 못해 쓸쓸함이 감도는 성당이 있었던 것 같다. 서고의 창을 통해 보이는 성당의 투박한 조각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아마 그때 사진에 맛을 들였더라면 가을 햇살이 지닌 차분하면서도 말할 것은 다하는 그 빛에 매료되어 인생을 방치했을 지도 모르겠다.(지금도 난 사진을 찍을 때면 그 빛을 생각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사진에 취미를 붙이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한 도서관의 발코니에서는 넓은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하루에 드나드는 사람이라고는 채 열명이 넘지 않는 그런 도서관에서 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2>을 읽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에 격자살에 쪼개지는 그런 위치에서. 오늘에서야 생각난 것인데 내가 <오래된 정원1>이 아닌 <2>를 들고 있었던 이유는 <1>을 빌려간 아가씨에게 말을 붙여보기 위함이었다. 잘록한 허리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는데 예쁜 몸매와는 달리 목소리가 무척이나 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름과 목소리에 끌리는 나로서는 감기에 침범당한 아픈 목소리이길 바랬지만 내가 확인한 것은 신의 공평무사함이었을 뿐이다.

가을이 끝난 후 그 아가씨를 세번 더 보았다. 한번은 서점에서, 한번은 까페에서, 또 한번은 올 봄에. 책 대신 나를 관찰하던 시선과, 까페에 혼자 앉아 우리쪽 바라보던 시선이 기억난다. 그리고 올 봄에 보았을 때 흐트러진 차림새와 그곁에 서있던 거친 남자의 말투도. <오래된 정원>이 생각났다. 과연 그녀는 그 <2>권을 읽었을까?

more..

2004/10/03 00:42 2004/10/03 00:42

책장

Posted 2004/09/17 11:46,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책장이 꽉 찼다. 추석 명절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소설 2권, 폴 크루그먼의 국제경제학3e, 장하준 교수의 에세이 한 권과 번역본이 나오기만 기다렸던 GM&TOYOTA.&… 그리고 가을 시즌용 문제집 2권을 주문했더니 책장 걱정이 앞선다. 지금도 포화 상태인 책장인데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면 어디에 이 녀석들을 보관할까 하고 말이다.

사실 대학에 처음 입학하던 무렵의 책장은 꽤나 한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해마다 꼭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책 몇 권을 제외하고는 신입생 시절의 내 책장은 휑할 정도로 비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슬금슬금 조금씩 빈자리를 채워가더니 이제는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나의 커피 메이트인 친구 녀석은 본인이 커피에 쏟아 부은 돈을 모았으면 진작 자동차를 살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책장을 보니 나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책을 소장하느라 쏟아 부은 재원을 고스란히 굴렸으면 자동차 한대쯤은 되겠구나 하고. 커피와 홍차에 중독만 되지 않았더라도 조금 더 많은 옵션을 달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포션티와 리미티드 에디션 블랜딩 같은 레어 아이템을 맛보기 위해 투자했던 재원이라면, 가끔 마신 미주들에 쏟아 부은 재원이라면 정말 상당히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었겠구나…

하지만 후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책의 가치는 소장이 아닌 읽는데 효용이 있는 것이라 말하지만 난 좋은 책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게다가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느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매우 자주 다시 읽는다고 말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컬렉션은 이런 작은 시골 도서관 정도는 가볍게 압도하는 수준이다.

머리 속에 저장된 기억이란 기실 방대한 자료의 인덱스에 지나지 않는다. 인덱스를 가지고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수많은 지식과 경험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곁에 두어야만 불안하지 않다. 인터넷 덕분에 백과사전의 장정이 닳을 일은 줄어들었지만 작은 메모 하나를 하는 순간에도 책장은 한가롭게 쉴 수 없다.

그나저나 새로운 책들이 도착하면 이 녀석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하다. 기억에 형성된 인덱스와 유사한 구조로 재편해야 하는 데 8칸 짜리 책장으로는 조금 버겁다. 아무래도 책장 하나를 늘려야 할 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책장이 늘어날수록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랬는지는 의심스럽긴 하지만….
2004/09/17 11:46 2004/09/17 11:46

Bye! Goldendog

Posted 2004/09/16 09:54,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휴학을 하기 전 나에게는 자주 가던 찻집이 있었다. 정문을 따라 지하보도를 건너 20미터쯤을 걸어가면 나오는 테이블 3개짜리 찻집인데 아메리카노가 일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름에는 레모네이드의 시큰한 맛을 즐겼고, 가끔 아이스티가 너무 달기는 했지만 커피를 마시기에는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이었던 듯 싶다.

아메리카노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원철군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고, 이런 저런 기사를 썼던 것 같다. 가끔은 급박한 레포트와 발표를 준비하기도 했고, 아주 드물지만 데코레이션 잡지를 보며 시간을 때웠던 적도 있는 것 같다. 소나기가 내리는 오후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그 녀석을 기다린 적도 있었는데…

사실 골든독이라는 이름의 그 찻집에 못 가본지 일년쯤 흘렀다. 과거를 떠올릴 때면 끝을 모르고 이어졌던 산책이 기억 나려고 할 때면 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다신 가지 않아야 겠다고 마음 먹는 중이다. 이제는 누구 말대로 정말 잊어야 할 때가 오긴 왔나 보다.

나에게 추억이란 끊임없는 애증의 대상이다. 사랑하면서 증오하는, 잊기를 원하면서 잊을 수 없는 그런 모순의 대상이다. 하지만 추억보다 중요한 것은 추억의 무결성이다. 추억이란 꿈은 영원히 아름답고, 현실의 오욕에 때묻지 않아야 한다. 추억이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함을 잃고 인과율의 지배를 당할 때 추억은 더 이상 아름다운 애증의 대상이 아니라 정말 잊어야 할 무엇이 된다.

골든독이라는 이름의 작은 커피점. 그곳에 얽힌 조금 많은 시간, 그 길을 걸으며 말하고 생각했던 것. 그곳에서 썼던 글들과 그곳에서 읽었던 것들, 내 젊음의 황금 시대. 이제는 모두 잊을까 한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완전 무결한 나의 것이 아닐 바에는 잊는 것이 상책이다. 타인의 손에 훼손된 추억 같은 것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나란 녀석은 정말 구제 불능의 정신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지우려고 마음 먹으면 지우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가도 나에게는 아직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내 삶은 어둠이 스미는 황혼기가 아니라 아직까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여명기다. 한 때는 가장 행복하고 나른한 추억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닌 그곳을 추억하며! Goodbye!
2004/09/16 09:54 2004/09/16 09:54

메시지
하루에도 난 수많은 [말]들과 마주치게 된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대화와 글들, 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한 마디]를, 삶에 지속적이고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한 마디]를 만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그런 말과 조우하게 되더라도 찰나의 순간에 삶의 계시가 될 [한 마디]를 제대로 평가하고 수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04년 2얼 27일 10시 40분 경, 내 삶을 스쳤던 짧은 대화는 지난 반년 간의 내 삶을 결정지은 [한 마디]였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어쩌면 수 십년 동안 난 이 [한 마디]를 기억하고 추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리 어려운 문장은 아니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삶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 하나의 문장을...

어쩌면 이 문장은 하나의 코드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입버릇처럼 말하던 [난 표절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할 꺼야]와 같은 잠재 의식 속에 숨겨진 코드일지도 모른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날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것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다.

묘사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난 소위 연예 편지의 달인이었다. 화려한 어휘와 수사법으로 무장된 내 편지는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상당한 가치를 지녔다. 알 듯, 모를 듯한 문장으로 십대 후반의 감수성을 아리는 그런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시의 난 지금처럼 산문적인 사람이 아니라 멋과 맛을 아는 운문적인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삶이란 지독하게 빠르게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라서 부지불식간에 난 profit과 performance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못된 놈이 되어버렸다. 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로 사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묘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못된 놈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녀석 앞에서면 머리 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 늘 활발하게 작용하는 두뇌의 화학 작용이 멈춘 듯. 기억은 희미하고 사고력도 느리게 운용된다. 한참 뒤에야 실수를 깨닫고 황망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좌불안석이다. 녀석에 관해 무언가 기록을 남겨 보려고 펜을 들면 황홀함에 취해 버린다.

한 두번 스친 친구의 친구마저도 기억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나 될까? 매일 봐도 난 평생 그 얼굴을 모조리 기억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매번 들을 때마다 목소리가 새롭다. 믿기 지는 않지만 정말 그렇다.

어쩌면
어쩌면 미래의 난 녀석의 선택이 내가 아니라는 시그널을 민첩하게 포착해낼지도 모른다. 커피를 같이 마시다가 우연히. 혹은 밥을 먹다가, 혹은 지하철에서. 아마 그때의 난 태연 그 자체를 가장한 채 시그널의 행방에 대해 지나가는 투로 물을 것이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울고 있겠지만, 한숨 쉬고 있겠지만 꿋꿋함을 가장한 채 말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혼자 체념하고 이제는 다른 것을 추구하겠노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할 지 모른다.

나 역시 성과급으로 하프 밀리언을 운운하는 직장을 가지고 싶다고, 결혼이나 안정된 가정보다도 박진감 넘치는 게임을 추구하고 싶다고, 레지던트 빌에 거주하는 잘 나가는 삼십대가 되고 싶노라고, 쉰이 되기 전에 은퇴해 항해왕 엔리케의 등대가 보이는 리스본의 작은 맨션에서 대가들의 책과 회화를 즐기며 그렇게 죽고 싶노라고 다짐할 지도 모른다.

막내 누이와 나는 요정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해 요긴한 소원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의 내 소원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Nr 20이 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그널의 주인이 되는 것. 꿈이 현실이 되는, 바라는 것이 모두 현실이 그런 마법 같은 삶은 아니어도 좋으니 이 두 가지 소원만큼은 진짜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4/09/07 16:07 2004/09/07 16:07

이번 여름이 시작되면서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들이 몇가지 있다. 두번의 콘서트를 신나게 즐기는 것, 두 번의 사진전과 두 번의 미술전을 보는 것, 그리고 economy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모든 재고 도서들을 머리 속에 집어 넣는 것. 마지막으로 봄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자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일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타인과의 약속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스스로와의 약속은 절대 어길 수 없는 무엇이 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혹은 변명하는 상황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로서는 약속을 어길 방법이 없다.

사실 지금껏 여름에 공부를 해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평균보다 아주 약간 나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고, 기억력은 그보다 조금 좋은 나로서는 어린 시절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쉽게 [공부 잘하는 학생]이란 평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꿈과 야망이 커질수록 경쟁의 질과 치열함은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지적 능력의 감퇴를 가져오는 군생활이 4주 훈련으로 대체되었고, 남은 2년 동안 휴학생 같은 기분으로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물론 해외 여행도 안되고, 이런 저런 제약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기회비용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들이다) 불안감 초조함에 시달리며 졸업이냐, 시험에 붙느냐, 혹은 군대에 다녀오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동갑내기 친구들과 달리 나에게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뭐 고등학교 친구들은 거의 제대한 분위기인데 대학 친구들은 반반이다)

졸업까지는 38학점이 남았고, 자유로운 신분으로 복귀하기까지는 15개월 반이면 충분하다. 대략 세 학기 정도의 시간인데 이 시간동안 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쓰고 싶은 것들도 충분히 쓸 수 있다.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을 애인도, 돌봐 주어야 할 피보호자도 없다. 모든 시간과 자원을 나 하나만 계발하는 데 투자해도 날 비난할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은 시간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내 삶이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고 하소연하는 못난이 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행운이 부족해서 잠시 멈출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나 노력처럼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들 때문에 주저 앉는 의지력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불가항력이 아닌 이유로 실패를 자인하는 것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24살 여름은 바다도 산도, 시원한 계곡도 보지 못한 채 이렇게 끝나버렸다. 얻은 것은 몇천 페이지에 걸친 지식과 경험. 잃어버린 것들은 나빠진 시력과 몽당 연필이 되어버린 스태틀러 한 자루다. 아니 잃어버린 것이 또 있군. 다시 돌아오지 못할 내 젊음, 화려하고 방탕하게 놀아도 아까울 젊음인데 이렇게 의자에 매인 몸으로 보내버린 것 같다. 아까워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아쉽기는 하다. 사실 [조금] 보다는 [조금 더] 아쉽다.
2004/09/03 17:16 2004/09/03 17:16

Don't know why

Posted 2004/08/28 01:35,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One year ago
꽤나 오랫동안 책에만 거리에만 기억을 되살려 내는 마법이 걸려 있다고 믿어왔다. 내 빈약한 사고력으로는 기억을 음악에 대응시킬 능력따위는 없다고, 까페에 앉아 흘러간 옛 노래를 듣고 환상에 젖어들어가는 중년 남자의 초상은 어디까지나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흘러간 옛 노래에 첫사랑을 추억하는 중년 남자 대신 주변을 흘낏 거리며 상대를 탐색하는 남자가 오히려 더 현실성 있는 캐릭터라 생각했던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싫어하는 음악이 생겨 버렸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싫어하는 음악이 아니라 듣기 괴로운 음악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Norah Jones의 Don’t know why가 바로 그것인데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감정이 홍수처럼 밀려온다. 그런데 밀려오는 것은 비단 감정만이 아닌 모양이다.

창문 밖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와 그날 밤 늦은 새벽까지 come away with me를 들으며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평소의 조금은 퉁명스러운 톤이 사라진 그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는 것과 나의 출현이 노래를 끊을까 두려워 도둑고양이처럼 몸을 사렸다는 기억이 어제 일인듯 생상하게 되살아난다. 아무래도 Norah Jones과 멀어져야 겠군!

Present

오랜만에 아이팟의 램덤 기능을 켜두었다. 가끔은 내 기분이 어떤 것일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어떤 음악이 가장 어울릴지 고민하는 것도 꽤나 귀찮은 일이다. 나에게 있어 아이팟의 램덤 기능이란 [아무 생각하기 싫어요]하고 노트 위에 휘갈기는 것과 같은 기능적 편익을 제공한다.

아무튼 몇달 만에 아이팟을 램덤으로 플레이 시키기 시작했는데 A8를 타고 귀에 전달된 음악이 바로 Don’t know why였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반감이 들었다. 1년하고도 몇달 전의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거칠게 쏟아지는 빗줄기와 어느 여염집의 처마, 그리고 Don’t know why. 그리 나쁘지 않은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듣고 있자니 지난 일년동안 내가 왜 이 곡을 피해다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좋은데. 문득 과거란 시간이 지날수록 두꺼운 무게를 털고 밝고 가벼운 기분만 남는 것이란 말이 떠올랐다. 아련함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에게도 저런 시간이 존재했구나하는 기록물처럼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구나.

그저 내가 한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에 설레이고, 그때 무엇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 만으로 이렇게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니. 음악을 들으며 쉽게 사라지는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맞추는 작업이 이렇게 재밌는 작업이었다니 전에는 미쳐 몰랐던 사실이다. 물론 극복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긴 했지만. 덕분에 오늘의 난 모범생 컴플렉스라도 걸린 것처럼 매사에 열심이다. 전화가 걸고 싶었다. 어제 본 친구를 오늘 다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이제와 [오랜만이네]로 시작되는 말을 건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시도는 해봐야 겠다.

WC군에게

2004/08/28 01:35 2004/08/28 01:35

I'm not thru with love

Posted 2004/08/19 22:55,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03~'05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만큼 뛰어난 적응성을 보이는 동물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생태적 환경이 아닌 감정이란 한정된 영역에서의 경험에 불과하지만 [오늘]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제가 다르고 일년 정도의 시간은 헤아릴 수 없는 먼 과거가 되어 버린다.

하오 5시, 오후와 초저녁이 경계에 있는 미묘한 시간대에 원철군의 포스팅을 보았다. [A형 여자를 사랑하지 마세요]란 정체 불명의 메모에 대한 짧은 글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언가 변명이라도, 혹은 현재의 나에 관한 설명이라고 해야겠다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정확하게는 23개월 전, A형 여자를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 수많은 글들을 통해 암시를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는데 아무튼 꽤나 진지하게 좋아했던 것 같다. 이기적이고, 무엇보다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처리하는 냉정한(냉철하다고 해주면 좋겠는데 단순히 쌀쌀 맞다는 평가가 더 많다) 내가 짧은 한 마디, 짧은 숨결에 그토록 방황할 줄은 나도 몰랐다. 커피 한 잔이 좋았고, 같이 있을 핑계를 만들기 위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아무튼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에는 정체 불명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 기쁜지, 슬픈지, 혹은 안타까운지 전혀 알 수 없는 경계가 모호한 기억의 덩어리가 하나 존재할 따름이다. 만약 녀석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1년이란 시간을 조금 더 이기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과, 녀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내가 포기한 [녀석과 좋은 친구] 될 기회가 안타깝다.

사실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끝까지 내 마음을 들키지 않았더라면, 쌀쌀 맞고 건방진 내가 아닌 착한 나로 살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갈굼을 일삼아야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늦은 밤 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 친구 한 사람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기묘한 취향과 기호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그렇다고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 이상 녀석의 눈부처에 비친 내가 어떤 모습일까 전전긍긍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잃어버린 기회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볼 따름이다. 그냥 웃으면서 인생이 그런거지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 아쉬운 것들이 많다.

wc! 그나저나 어쩌나? 평생 처음으로 사들인 액자에, 사무실처럼 정결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내 책상에 올려진 액자의 주인은 O형 아가씨인걸?
2004/08/19 22:55 2004/08/1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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