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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Posted 2011/04/21 22:19,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숫자의 감옥에 수감된 이후 잃어버린 것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문장이다. 자연스럽게 써내려지던 문장은 이제는 너무 조악해 부끄럽기만 단어의 나열이 되어버렸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확립한 나름의 문체도 사라지고, 이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낯선 문장이 내게 손짓한다.

생각을 담아대는 가장 훌륭한 도구였던 문자가 낯설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어린 시절 단 한번도 꿈꾸지 않았다. 그 시절에 나에게는 그런 날이야 말로 1984년에 등장하는 쥐보다도 더 공포스럽고, 화씨 451의 미래보다 더 암울하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허전하고 답답할 뿐 숫자의 감옥도 나쁘지 않다. 출퇴근 시간에 듣는 음악 뿐이지만 여전히 음악도 존재하고, 깊게 빠져들 만큼 충분한 여유가 없지만 책 역시 내 삶을 아직 떠나지 않았다. 학생 시절보다 더 다양한 커피를 마시고 에스프레소 머신도 집에 들여놓았다. 다만 옛날의 내가 느꼈던 감동과 기쁨이 보다 무미건조한 방법으로 표출될 뿐이다.

사실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은 어어지지 않은 채 몇해 동안 방치된 블로그를 보는 순간이다.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삶의 즐거움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이 곳의 황량함은 나를 어두운 불안의 경계 밖으로 내몬다.

길게 썼지만 결론은 하나다. 다시 이곳에 글을 쓰고 싶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대세인 이 시대에도 난 여전히 이 공간이 제일 아늑하고 편안하다.

2011/04/21 22:19 2011/04/21 22:19

Hey! Sweet dreams!

Posted 2011/01/14 01:48,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몇 해전 제프리 유제니다스의 『처녀들 자살하다』를 읽는 동안 과거를 추적하는 이제는 중년을 향해가는 미시간의 옛 소년들의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진 때가 있다. 그들의 후회와 안타까움 밑바탕에 깔려 있는 불행한 소녀들에 대한 미안함을 보면서 문학적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지만 동시에 결코 소년들 같은 후회가 내 삶에 찾아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항상 잔인하다.

서른의 끝에서 옛 친구의 죽음과 조우했다. 너무나 안타까웠고 불행하였던 사건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해한 우울함을 선물했고, 결국 한 해를 마지막하는 12월의 마지막 오후 사무실 책상 앞에서 지구 반대편 아마존 강가에서 연말을 맞이한 친구와 학창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는 동안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귀국하면 밥이나 먹자란 그의 인사말이 허망한 마지막 인사가 될 줄 몰랐기에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는 친구를 보면서 삶이 조금은 허망해졌다. 사무실 밖은 연말인파로 들썩거리기 시작했지만 그후로 몇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의 내 웃음은 슬픔을 감추기 위한 가식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항상 선명한 컬러 사진 속의 열여덟 봄소풍 당시의 모습이다. 대학 졸업의 후의 모습을 보지 않은 것도, 제대 후 어설프게 기른 수염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왼쪽 끝에서 홀로 팔십 센티미터쯤 떨어져 누군가의 어깨에 팔을 기댄 그처럼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열 네 살부터 스물 한 살까지 수 많은 장면이 머릿속에 담겨져 있지만 왜 이 사진만이 계시처럼 떠오르는지는 이제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가 되었다.

1994년 처음 내가 본 그는 결코 호감이 가는 존재는 아니었다. 듣기 불편할 정도로 빠른 말과 독특한 억양. 정상과 사시의 경계에 선 눈동자, 먼지 낀 안경.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한다 쳐주기에는 모자란 성적. 무엇보다 열의와 노력은 있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성. 격렬하지만 쉽게 꺼지는 분노. 이 모든 요소는 어리기에 더욱 잔인할 수 밖에 없었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소년들 사이에서 그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돋보이게 만듦과 동시에 그의 한계를 가늠하게 만드는 기준이 되었다.

어느 날 지저분한 그의 안경릅 벗겨 닦아주면서 처음으로 맨 눈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안경을 벗은 맨 눈을 보는 순간 열 여섯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피로한 눈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야 그도 우리가 그를 보고 느끼고 있는 인상을 모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동시에 특이한 생각을 내뱉거나, 돌발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 사실을 부각하는 지금의 그 자신도 진지한 결의를 통하여 형성된 하나의 행동 양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무지한 쪽은 나였으며 그가 그만의 방식으로 삶과 진지하게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 머리속을 꿰뚫었다. 동시에 그 의 노력과 좌절이 온전하게 보답받지 못할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힘겹게 만드는 괴로운 삶이 전개될 것이며, 그가 달관이란 개념을 배울 때까지, 내가 여기 있다고 격렬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행동 양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를 표현할 때까지 그가 평온함을 얻지 못할 거란 확신 마음 속에 새겨졌다.

시간이 흐름 속에 그와 오랜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지만 처음 받은 인상은 계속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그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이 싫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되려 좋아졌다. 그의 논리적 비약이 억지로 들리지 않고, 그의 짧은 분노에도 익숙해졌다. 그가 잠시 고요히 쉴 때는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그의 거친 숨소리가 좋아졌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지나가기 마련이고, 시간은 소년에게나 노년에게나 똑같이 좋은 친구다. 인생은 제법 길기에 시간이 그에게 현명함을 가르쳐 줄 것이고, 결국에는 삶의 평화와 행복이 그에게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운명의 여신이란 참으로 변덕스러워서 내 확신이 거짓이 되고, 혹여 그의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보답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열여덟 이후 우리는 가끔 그의 행동을 장난 삼아 놀려댔지만, 그의 노력과 고단한 삶을 길고 긴 인생의 한 단계 혹은 준비 과정, 가치 있는 삶의 경험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도전과 희망이 스스로를 구속하는 덫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소년에게 꿈은 필요한 법이고, 그 역시 꿈 꿀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란 간단한 진리에 수긍했다. 아직은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무모함이 소년의 특권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틀렸다. 적어도 칠십쯤은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삶이 그에게 허락한 시간은 고작 삽십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삽십년 쯤은 태어나서 자라고 울며 괴로워하며 커다란 목표를 꿈꾸어도 된다는 논리에는 그 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성취 혹은 달관을 통한 행복이 기다리고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아무도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누었을 고민을, 우리는 그가 혼자 해결하도록 놓아 두었다. 가끔 힘들다는 투정을 들어주기는 해도 결코 너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가장 가치있게, 가장 행복하게 쓰라고 조언해주지는 못했다. 그의 노력과 피로함, 고통, 고뇌가 보답받기를 빌어주었지만 늘 가능성에 반신반의했던 우리였지만 그가 종국에는 작은 삶에 만족을 느끼며 행복할 것이란 사실 만큼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서른에 어이 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는 내가 보아온 시간 동안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하며, 자신보다는 덧없는 주변에 기대에 부응하고자, 스스로가 인식하는 냉정한 현실에 수긍하기 보다는 더 나은 미래와 커다란 꿈을 향해 자신을 맡겼다.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은 이제 우리가 꿈꿀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경종임과 동시에 소년들이 단 한 순간도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십대의 어느 봄. 도서관에서 카프가 전집을 읽으며 그는 고통 없는 빠른 죽음, 혹은 자살이 그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때 우리의 반응은 한편은 걱정에 한편은 성마름에 꽤나 거칠했는데 돌이켜 그 순간을 생각하면 울음이 생각을 멈춘다. 완벽하고, 아름다우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했음을 이제는 안다. 그의 고단했던 삶에 때로는 장난으로, 때로는 어리석음으로 무게를 더했기에 미안하고, 그의 노고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던 인정머리 없음에 부끄럽다. 따뜻한 선의로 삶의 피로와 커다란 성공에 대한 갈증을 나누지 못했음을. 아니 말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2011/01/14 01:48 2011/01/14 01:48

날카롭지만 쓰디쓰고, 격렬하면서 고통스런 인식이 아침 나절의 나를 휘감았다. 운명에 투덜거리는 것이 멍청함의 또 다른 징후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면 크게 소리라도 질렀을 정도의 참담함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밀어 닥쳤다. 'deadlock'이라는 단어 외에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통찰력은 지혜의 정화지만 동시에 슬픔의 원천이며 그렇기에 자신은 운명의 방관자가 되어버렸노라고 아페르티프로 보기에는 지나친 몇 순배의 술잔과 함께 독백을 일삼던 시시한 소설의 쓰러져가는 한 인물이 생각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같은 인물로 늙고 그와 같은 epitaph를 가지게 되겠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국 내가 서있는 지평선이 전술한 이 슬프고 우울한 현실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

2009/10/25 12:51 2009/10/25 12:51

변덕스런 봄

Posted 2009/04/26 22:38,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_가슴을 갈라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문장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결국, 2주가 걸러서야 키케로의 서간문에 실린 유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본래는 대화편에 등장하는 문구를 키케로가 인용한 것인데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불의를 행하기 보다는 불의로 고통받는 것이 낫다' 정도다. 기억나지 않는 원문을 찾아 페르세우스 프로젝트에서 번역문을 찾았고, 친구에게 부탁해 롭 시리즈에서 해당 구절의 원문을 찾았다. 좋아해주면 좋겠지만 기뻐해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자신은 좀 없다.

_ 다시 브로콜리 너마저도의 <보편적인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늦은 밤 텅빈 사무실에 앉아 스탠드를 켜놓고 도시를 삼킨 어둠과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붉은 행렬을 보면서 듣는 <보편적인 노래>는 새로운 맛이다. 사실 하루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혹사한 다음 찬바람을 맞으며 지하철 역까지 걷는 15분이다. 아이팟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 듣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스노우>나 페더의 <사일런트 크라이>는 왜 그리 좋을까? 부드러운 가죽 로퍼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과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그 15분의 존재 때문에 일하는 것이 좋다면 억지일까?

_오래 전에 읽다가 멈춘 『잃어버린 것들의 책』에서 아주 인상 깊은 문장을 발견했다. 누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막내 특유의 붙임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날마다 한심한 유머를 터트리는 나로서는 그 문장을 진작에 외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말이나 문장 따위에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일의 무모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은 항상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 법이고, 조금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열정을 잃지 않는 법이다. 롤랜드라는 기사가 남긴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참조할 것!

_'완전 거짓말쟁이세요 -_-;'란 답신에 친구와 나는 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의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어쩌면 내 나이 또래가 마지막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평소에 내지 못하는 용기를 우연히 길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낼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우리로서는 그네들이 사는 거리를 걸으며 우연이 찾아오기를 꿈꾸고 희망하는 데 말이다. 하지만, 몇 해만에 친구는 카메라를 챙기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시원스런 웃음을 얼굴에 띄워놓고 있었다. 구김 없이 유쾌한 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설레임을 담은 표정으로 답신을 기다리는 지기를 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괜시리 나까지 즐거운 웃음에 전염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웃음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긴 해도 말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그 길에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나 -되도록이면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 시간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은 비단 사라지지 않는 수염자국만은 아닐 테니 걱정은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_2003년 7월에 시작한 블로그가 어느덧 햇수로 일곱 해를 맞았다. '50만 히트' 같은 것을 기다리는 유치함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이 거대한 내 삶의 기록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니 철없는 청년의 코믹 릴리프 혹은 부파 오페라를 묵언으로 감상해준 수많은 손님에게 꿈꾸는 일들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하루가 찾아오기를 빈다는 인사쯤은 남겨도 되지 않을까? 

2009/04/26 22:38 2009/04/26 22:38

회중 시계

Posted 2009/04/24 07:25,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서른에 가까워 질 때까지 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회중 시계 보는 토끼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고, 시계 초침 소리에 쫓기는 느끼는 사람들의 초조함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 어느덧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2009/04/24 07:25 2009/04/24 07:25

나는 어떤 책?

Posted 2009/03/26 19:09,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You're The Guns of August!
by Barbara Tuchman
Though you're interested in war, what you really want to know is what causes war. You're out to expose imperialism, militarism, and nationalism for what they really are. Nevertheless, you're always living in the past and have a hard time dealing with what's going on today. You're also far more focused on Europe than anywhere else in the world. A fitting motto for you might be "Guns do kill, but so can diplomats."
Take the Book Quiz at the Blue Pyramid.

2009/03/26 19:09 2009/03/26 19:09

안녕, 복남!

Posted 2009/02/27 22:15,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시골집에서 키우던 복남이가 죽었다.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고 빠르게 뛰는 녀석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는데...... 기쁨을 온몸의 근육으로 표현하는 녀석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고, 녀석의 영리함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발치에 누워 배를 벌러덩 내놓은 채 누워있는 녀석의 표정은 몇 시간의 고된 여정이 가져다준 피로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이내 잠이 들곤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선량이 표정이 마음속에서 솟아나 얼굴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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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제는 녀석과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이 희미하다. 지난 설 연휴에 본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 해도 다른 기억들 속에서 쉽사리 꺼내지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녀석이 우리 가족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에 녀석을 기억하는 일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녀석이라면 내 아이가 녀석을 매만져줄 만큼 오래 살 줄 알았고, 만약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냄새만으로도 새 식구가 된 내 처를 알아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독할 정도로 우리 식구밖에는 몰랐던 녀석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친 몸으로 우리의 손짓을 갈구하며 떠났다. 강아지로서는 짧지 않은 삶이었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리 길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은 준 채로 말이다. 살아가면서 나를 둘러싼 바깥 울타리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끝 없는 헌신을 녀석은 나에게 주었고. 그랬기에 녀석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녀석에게는 영원과도 같을 오랜 삶을 살면서 녀석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희미해지고 말 것이란 사실이 유쾌하지 않다. 왜 녀석을 본 마지막 순간에 조금 더 오래, 따뜻하게 만져주지 못했을까? 녀석의 평생 우리만 생각하며, 우리만이 삶의 전부였던 녀석에게 말이다.

2009/02/27 22:15 2009/02/27 22:15

새벽처럼 찾아오는......

Posted 2009/02/21 22:16,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한 교정에 앉아 서로 고민과 꿈을 두서없이 늘어놓을 수 있었던 시기 친구 하나는 내게 사랑은 새벽처럼 찾아온다고 말하곤 했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고 한 숨을 내쉬는 그의 표정에는 무언가 간절한 것이 있었다. 어둠 속에 찾아오는 빛처럼 그 사랑은 녀석에게 소중한 것이었겠지. 하지만, 그 후로 난 다신 그에게 무엇이 새벽 같은 사랑인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물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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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 대신 그를 감싼 것은 높이를 알 수 없는 격랑이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는 격랑에 완벽하게 침몰해 버렸다. 메마른 표정을 지닌 그에게 새벽 같은 사랑을 묻기에는 난 덜 무뎠고, 그 역시 그 순간을 잊은 듯 입을 닫아버렸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남긴 채로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조금씩 그의 메마른 표정을 베껴가기 시작했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다시 생각난 것은 좀 의외의 순간이었다.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느낀 알콜의 향에서 철없던 어린 시절에 소독약 냄새가 나는 손을 잡고 평생을 살 수 없다고 말하던 나를 연상했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난 내 인생이 더욱 커다란 것일 줄 알았고, 내 야망의 크기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단단할 줄 알았다. 그랬기에 소소한 행복보다는 거센 물결에 내 자신을 맡기고 싶었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난 변하지 않았다. 예의 바르고 이해심 많지만 사랑에 있어서 결정적인 한 걸음만큼은 주저하며 머뭇거리기를 반복하는 그런 헛된 인물이 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지난 지금 난 그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고 부질없는 꿈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이제는 작고 소소한 것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일에 몸을 맡기는 일상 속에서 절로 깨닫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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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힘을 빌려 오랜 지기에게 그 말을 전하는 순간 난 그제야 이십 대의 한밤중을 넘겼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오래전 그가 말하던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무엇인지, 한밤을 넘겨야만 진실을 볼 수 있다던 어느 소설 속 문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애써 부정해왔던 것이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옛 지기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던 것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매일 찾아오는 새벽처럼 사랑은 항상 다시 찾아오는 법이고, 사랑 자체를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 앞에서 'to be or not to be'를 읊는  나를 모른 채, 그는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리라.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고 믿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버거운 이야기로 그는 나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우습지만 스무 살의 난 복잡하고, 난해한 것에 끌리면서도 늘 바람꽃 같은 사람을 꿈꾸었다. 그리고 서른을 눈앞에 둔 이제 바람꽃 같은 여자가 영화속 한 장면처럼 내 눈앞에 서 있다. 사랑은 늘 새벽처럼 찾아온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이것이 마지막 새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내 마음을 풀어놓겠다고 굳게 다짐해보건만 제자리를 맴도는 이 버릇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을 내가 더는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홀로 마음속에 담아두지 못하겠음에도 말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인데 무슨 서설이 이리 긴 것인지 모르겠다.

2009/02/21 22:16 2009/02/21 22:16

_길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뜬금없이 그녀가 전하기를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맑고 뽀얀 얼굴의 옛 연인이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그녀의 어설픈 친절이 밉살스러웠다. 그녀의 상냥한 마음이 내게는 풍문의 여신인 파마의 주름진 얼굴을, 유배지에서 고통받은 시인의 삶을 떠올리게 하였다는 것을 빼곤 사실 그녀의 잘못은 없다.

세상에는 좋은 소식이 분명한데도 모르고 넘어가는 편이 나은 소식도 있다. '잘 됐네' 하고 대답하고 바보처럼 웃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을 줄이야. 차라리 주정뱅이처럼 소리치고, 착한 것을 빼고는 가진 것이 없는 자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먼 훗날 길에서 이 아이를 안은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난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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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에 '서른 즈음'에란 노래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를 콧노래 하며 걸었던 그 길은 도시개발에 지워졌고, 처음 아라비카 커피를 맛보았던 찻집은 볼썽사나운 음식점이 되었다. 단 하나 변하지 않고 남아있으리라 믿었던 나무 등걸도 지난여름 태풍에 몸쓸 정도로 상해버렸다. 어느새 소년이 청년으로, 소녀가 처녀가 될 만한 시간이 지났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_ 인파에 시달리는 퇴근시간이 한가로운 퇴근길보다 좋은 유일한 이유는 핸드폰을 만지막거릴 공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라졌다 믿었던 옛 버릇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되돌아왔다. 빡빡한 장문의 문자메세지를 작성했다가 이유 없이 지우기를 반복한다.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이내 연결종료버튼을 눌러버린다. 사람의 마음을 정직하게 전달할 방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은 항상 조심스럽다.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언제까지 마음을 여밀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행은 나를 지나치지 않기에 풀린 여밈 사이로 보인 언저리만으로도 난 반 보 전진 일 보 후퇴의 행로를 반복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 삶은 또다시 책읽기를 좋아하고, 쉬이 술 한 잔을 비우자 청할 수 있으며, 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될 것이 명백하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밀린 책이 책장 가득 이고, 공부할 것이 쌓여 있으며, 배울 것이 많으니 이런 것들에 시간을 보내며 서른을 맞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시 쌓인 십 년을 비웃으며 서른을 맞이하는 끝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_ 나에게는 아주 가끔 '힘내'란 말을 건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친구 하나가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삶의 고비마다 이 녀석에게 대가 없이 얻은 '힘내'란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오늘도 이 녀석에게 힘내란 말을 또 한 번 염치없이 요구해버렸다. 걱정스레 시작한 녀석과의 통화는 유쾌한 농담으로 끝났다. 이 녀석이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으면, 평생 좋은 친구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또 혼자 되뇌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란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참으로 무치한 사람이다.

2009/01/16 23:50 2009/01/16 23:50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Posted 2008/12/15 22:37,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누이들이 이 시집에 열광했을 때 솔직히 난 저 시집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문구가 궁상스럽고 못나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의 난 아주 가끔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되뇌게 된다. 지금 알고 있는 냉혹한 진실을 알았더라면 내 삶을 더욱 사랑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며 보냈던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요즘의 난 과거의 태만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천금과도 바꾸지 않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치르는 대가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쓰고 불쾌하며, 음습한 뒷골목의 좌판에 놓여 주인을 기다리는 방물처럼 처량하다. 참을 수 없는 비겁함에 나를 내던지는 거리낌도 사라졌고, 모욕에도 익숙해졌다. 자부심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제 더 빼앗길 것이 남지 않은 셈이다. 메마른 기계처럼 대답을 뱉어내는 내 입술은 어느 때보다 능변이지만 그 결론은 왜 이리 허무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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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지난 화요일에는 모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과 부딪쳤다. 그날 아침, 삐뚜름하게 안경을 쓰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 남자는 '줄만 서면 붙는 시험'에 떨어진 나를 비웃었다. 꽤 알려진 경제신문사의 보스가 던진 한 마디는 몇 년 전 그 남자가 내게 보여준 겸손하고 사려 깊은 행동과 맞물려 나를 혼돈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박봉을 감내하더라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에 대한 내 순진함을 저주하며 조용히 마주 웃어주었다.

어린 시절 이나 예전이나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왜 난 잠시 잊었던가? 삶에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패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는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모습일 때뿐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잊었던 것일까? 평범함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굴레가 내 삶을 조이기 시작하는 이 즈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탈출을 꿈꾼다. 삶이 이 창과 같다면 새로 고침이란 단추를 누름으로써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지 상상하는 내가 혐오스럽긴 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은 나의 얼굴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었던 최고의 찬사였다. 하지만, 요즘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난 스물여덟의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리라 단 한 순간도 상상하지 않았건만 지금 내가 쓰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백서다.

여기저기서 받은 면접비로 제법 비싼 만년필 한 자루를 샀다. 책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는 라틴어 문구를 각인시키며 한순간 의기양양해졌지만 이내 몸과 마음 모두 가라앉아 버렸다. 이 펜으로 무언가를 쓰기 위한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P.S.

결국, 고용통계에서 포지티브항이 되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학창시절 한 번도 내 첫 직장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주변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지만 요약하자면 의외의 선택 혹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세다. 하지만, 수상한 시절에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내 결론이 틀릴 것 같지는 않다.

2008/12/15 22:37 2008/12/15 22:37

A bunch of unanswered questions

Posted 2008/10/24 23:47,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가끔은 서늘한 그늘이 진 평상에 누워 트렁크만 입은 채로 모시 침구 속에 몸을 숨긴 채 언덕 마루에 넘어가는 구름을 세는 휴일을 꿈꾼다. 높은 베개를 베고 서재에서 꺼내온 소설을 한 아름 쌓아놓고, 귀에는 시원하지만 리듬이 번잡하지 않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꽃내음 향긋한 프랑스 홍차를 홀짝이는 주말은 얼마나 여유로운가?

/내가 소설에서 헤어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낯선 시대, 낯선 거리를 걷는 여행자로서의 만족감이다. 때로 펜 끝에서 흘러나온 문장은 어느 화가의 붓터치보다 더 강렬하게 한 시대를 함축한다. 결코 실제로는 경험할 수 없는 과거의 어느 순간을, 현대라는 볼썽사나운 폐허에 가려진 옛 거리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 또한 소설만의 특권이다. 그리하여 난 결코 소설이 그려내는 몽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심코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가을 냄새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홉 해 전 마르케즈의 납치일기를 품 안에 넣고 길을 걷던 순간에 느꼈던 냄새와 놀랄 만큼 똑같은 것이었다.

/내 나이 스물의 유행은 말 그대로 'stylish'한 일본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전공서적 사이로 보이는 가벼운 소설 한 두 권이 그 사람의 취향을 설명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큰누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를 기준으로 단체로 스무 살에 접어든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이 무렵에는 이미 불씨조차 남지 않은 철 지난 유행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소설 특유의 재미에 싫증이 난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2008/10/24 23:47 2008/10/24 23:47

여름나기(2008)

Posted 2008/08/19 00:31,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사나흘에 걸쳐 여남은 개씩 쌓이는 국적불명의 <걸린글>들을 지우는 일은 귀찮기보다 되려 반갑다. 몇 년 동안 한켠에 놓아만 두었던 글과 덧글을 살피며 이제는 아릿해진 추억의 한 조각을 잠시 음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수수께끼 같고, 때로는 술주정 같은 언행들을 읽으며 몇 분쯤 행복에 취해보는 건 나쁘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암호문 같은 모호한 표현들의 진의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문제가 기다리고있긴 해도 말이다. 어쩌면 그때의 풋풋하기만 했던 그 설익은 절실함을 다신 꿈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토록 반가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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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순박하다 못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지금보다는 그 시절의 내가 더 멋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진솔한 감정을 가졌고, 관대한 품성을 지니고자 노력했던 청년 대신 내 안에 자리잡은 것은 회의와 불신에 찬 음모가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는 지금의 난 꿈을 가졌던 맑은 표정의 그와 마주치기 두렵다.

정채봉의 『느낌표를 찾아서』를 좋아하던 소년은 새로운 필기구를 살 때마다 친구에게, 혹은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이에게 편지를 쓰곤 했는데 지금의 난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펜을 쓰지만 정작 그 펜으로 쓰는 문장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아니 더 이상 편지를 쓸 곳이 없다. 서늘한 표정의 피곤하기만 한 친구들에게 다정다감한 편지를 쓰는 일은 어쩐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내키지 않고, 몇 자 적어보았자 몸이 멀어진 만큼 감정의 진폭과 주기조차 달라져 진부한 인사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음, 흠모하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P.S.

다가오는 생일에는 윤후명의 『둔황의 사랑』를 갖고 싶다 졸라봐야겠다.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다시 읽고 있노라면 단단해진 껍질이 스무 살 소년처럼 말랑말랑해질지도 모를테니까.

2008/08/19 00:31 2008/08/19 00:31

메모 위의 상념

Posted 2008/05/31 02:14,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로디아 메모지에 쌓인 상념들. 상념이 상념인 이유는 그것이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벗 삼아 변하는 마음이란 것의 그 비난받아 마땅한 성실함을 탓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탓해 봤자 변하는 것은 없고, 변할 것도 없다.

1. 낯선 남자에게서 온 편지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생각이 이내 손이 멈춘다. 지금껏 보고 읽은 수많은 형상으로부터 닮은꼴을 찾아내려는 습관은 종적이 묘연하고, 영리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에 반사된 이채를 두 손으로 힘껏 잡고 싶은 욕망만이 남아 꿈틀거린다. 소년처럼 수줍게 입맞춤하고 싶고 그녀의 쾌활한 웃음을 미운 일곱 살 아이처럼 나 홀로 독점하고 싶다. 그녀가 연인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내 무릎에 앉아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의 작은 목소리를 상상하고, 그녀와 함께 보는 심야영화나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 따위를 떠올려 본다. 연인으로서의 그녀를 상상해보는 일은 너무나 즐거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없다. 해맑게 웃고, 온전하게 생각하고, 명랑하게 말하는 그녀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다른 꿈을 꿀 여유가 없다. 때로는 암사자처럼 당당하고 대범하게, 때로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고혹적으로 내 앞에 선 그녀를 꿈꾸고 있노라면 호흡이 가빠지고 마음이 몽롱해져 내가 어디쯤을 범주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즐겁기에 입술을 떠나 눈꼬리까지 파도 치는 그 미소가 나의 것이라면 내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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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밀일기

우유빛 젖가슴을 가진 하렘의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들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에 마냥 고통스럽기만 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어느 환관의 이야기를 읽다가 그가 흘려 버린 열정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별로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일치감이 존재한다. 아니 우리는 세월의 힘에 색이 흐릿해져 가는 흑백인화지 위의 사진처럼 열정으로 괴로웠던 그때를 그리워하며 그 순간을 직시하고자 노력하는 의지를 어깨에 나누어 매고 있다. 이제는 그 고통스러웠던 열정이 식었기에 되려 더더욱 그립고 안타깝기만 하는 그 정조를 소설 속의 환관과 나는 비밀스럽게 공유한 셈이다.

3. 사전에 없는 말

책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만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입가에 올려야 하는 웃음이라든지, 적절한 축하말 같은 것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그녀의 전언을 들었을 때 '결혼 축하해'라는 말이 왠지 진부하고 부족하게만 느껴졌지만, 그 상황에 적절한 말은 아쉽게도 내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기꺼이 '내 삶의 축제기간'이라고 불렀던 그 시간을 함께 해주었고, 우정을 나누어주었던 그녀에게 느끼는 것은 비단 아쉬움만이 아니다.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청금석처럼 늘 한결같이 푸르기를 바랐던 우정은 빛이 바래고, 인연의 고리들은 헐거워졌으며, 서로에게 무덤덤해지고, 종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마저 불완전해졌다는 깨달음이 마음속을 흔들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사진첩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후회하는 것들에 대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아름다운 햇살을 함께 걸었던 친구들에 대해, 웃음과 울음이 다시 웃음과 울음이 교차했던 그 시간과 역사에 대하여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남긴 말은 억지스럽고 상투적이었으며, 난 당혹해 하고 있었고 냉담했다. 세상에는 많은 말이 있지만 어느 사전에도 내 마음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순수한 즐거움만을 담아 사랑했었고, 사심 없이 내 마음의 너그러움을 풀어놨으며, 불편함 없이 나를 꺼낼 수 있었던 그녀에게 했어야만 했던 '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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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친구의 결혼에 대처하는 자세

다음날 나는 JY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똑같은 전언을 내게 고한다면 이번에는 한 삼십 분쯤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귀머거리 장님 흉내를 내리라. 헤아릴 길 없는 거센 마음의 풍랑이 끝날 때까지, 추억을 충분히 정리해 조리 있게 꺼낼 수 있게 될 때까지 벙어리 흉내를 내리라. 그리고 절름발이가 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 마음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 여행을 떠나리라. 여행에서 찾은 그 말을 건네고는 나다운 가면과 분장을 모두 벗어버리고 마음이 따스한 벗들의 어깨를 빌려 새벽이 올 때까지, 더는 마음이 먹먹하지 않을 때까지 취해보리라 다짐했다.

5. 다시 시작되는 것들

그 병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 일요일 저녁에 재발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악마처럼 내 귓가에 오래된 서언 같은 것은 치워버 리라고 종용하기 시작했고, 바람 소리는 여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5년 동안 참아왔던 보람도 없이 맹세는 헌신짝처럼 버려질 위기에 처했다. 내가 했던 수많은 헛된 맹세의 행렬에 새로운 서언을 하나 더하는 것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사실 그 병의 시작은 낯선 이불 밑에서 깨어나 덥수룩한 수염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은 분방한 차림으로 길을 걷다가 든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진한 에스프레소를 도피오로 마시고 싶다는 생각. 그전에는 마치 내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듯 진한 커피에 대한 갈증은 커져갔다. 보헤미안의 진한 커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풀려고 결국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가 아니다. 좋은 브랜딩의 홍차가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편안함을 선사하는 것과 달리, 향이 풍부한 커피가 상대에게 따스한 추억을 연상시키는 것과 다르게 에스프레소는 철저하게 혼자만을 위한 차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그해 겨울 에스프레소를 버리고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이리시 커피를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소리 없는 불청객이 되어 과거의 습관은 다시금 내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주문하는 나 자신을 위한 수많은 변명과 함께.

2008/05/31 02:14 2008/05/31 02:14

소소하게 불평하다

Posted 2008/03/27 23:47,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1.
좋아하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마다 내 마음에는 기이한 파문이 인다. 사람들의 관심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노파심과 사람들과 감동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이 속 좁은 내 마음에 일으킨 짜증스러움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영화가 소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을 때 감독과 극본가를 맹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Kite runner>가 개봉했다. 내가 상상한 아미르와 하산의 어린 시절이. 소라브를 구하기 위한 아미르와 아세프의 결투가, 정감있는 바바의 눈매가 영화를 통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소년 시절부터 비역질을 즐겼으며 유아성도착증까지 두루 갖춘 탈레반 아세프는 내가 읽은 수많은 책 가운데 수위를 다투는 악역이었는데 그는 또 어찌 묘사될까?

몇 달 전 어톤먼트를 보며 두 소설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한 적이 있다. 브로니는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속죄로 그들을 위해 가장 행복한 허구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아미르는 그의 이복형이 하산이 그에게 건넨 'for you. a thousand times over' 말을 그의 양아들이자 조카인 소라브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화면으로 만나는 일은 필경 기쁘기 한량없는 일일 테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보물을 강탈당한 기분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이언 매큐언에 관해서 갑자기 떠오른 사실인데 그는 맨 오브 부커의 수상자가 되고, 두 차례나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다음에야 입양된 형을 만났다고 한다. 미장이로 살아가는 대가의 형은 그의 부모가 결혼하기 전 불륜 관계일 당시에 얻은 자식인데, 이언의 어머니는 당시 전쟁터로 징집된 남편을 가진 유부녀였고,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더 연대의 장교였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남편이 전사한 이후, 그의 어머니는 정식으로 이언의 아버지와 결혼을 했고, 그 후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소설가와 그의 형은 서로 다른 운명을 살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소설가에게는 가끔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삶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하는 것은, 그날 날씨와 바람, 꽃냄새와 배슬배슬 이어진 사소한 일상사마저 기억하는 이유는 사람 좋은 뵈는 여유나 유난히 좋은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내 삶에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마저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을 정도로 소중하기에 갈무리해야하는 대상은 꼭 연인만이 아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믿어주시는 아버지 등, 고집 세고 별난 아들 탓에 늘 마음 졸이는 어머니의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표정에만 언뜻 나타나는 걱정. 밉살맞지만 가끔 정곡을 찌르는 큰누이, 최근 관리의 대상이 된 둘째 누이,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막내 누이. 항상 내 유치함과 비겁함, 실수를 되돌아 보게 하는 오래된 친구들. 그들 모두는 내 과거고, 현재이며, 미래다. 그렇기에 사진첩에 아무렇게나 넣어두며 가끔 우연히 펼쳐보게 되는 낡고 색이 바랜 사진첩 속에 그들을 놓아두고 싶지가 않다. 그렇기에 난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반추하며 또 반추한다.

3.
내 개인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는 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과거 따위는 지워버리고 누구에게나 낯선 타인이 되어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난 좋은 기억 속의 나이던, 나쁜 기억 속의 나이던, 어느 것 하나 부정하거나 지워버릴 수가 없다. 비록 졸렬하고 불편한 과거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역사이고, 그 역사가 없다면 오늘 내가 만난 그 사람은 단지 흐릿한 음영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난 결코 내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 과거를 과거로 남겨두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말이다. 오랜만에 '나'에 관하여 설명하거나, 변명할 필요없이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시간에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는 술자리를 가졌다. 경망스럽게 웃고, 사용법을 잊어버린 얼굴 근육이 바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동안 다채로운 이야기가 공간을 수놓았다. 그리고 맥주와 함께 펼쳐진 이야기 속에서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이유가 과거를 존중하는 그녀의 태도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기억해낼 수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기억해 냈더라면 지금처럼 무디고, 성겨져, 돌처럼 단단해진 심장과 마주하는 일 따위는 없지 않았을까?
2008/03/27 23:47 2008/03/27 23:47

falling in memory

Posted 2008/03/06 23:11,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1.
두 해 전쯤 내 절친한 친구인 모는 짧은 문자 메시지 하나로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나약한 사내의 낙인을 받고 블라인드 데이트에서 물을 먹은 적이 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기실 나도 그 곡을 듣고 있노라면 비슷한 감정에 휩쓸린다. 오늘 지하철에서 파티셔플로 음악을 듣다가 François Samson의 연주와 조우하게 되었다. 내 짧은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을 매만지고 지나갔다. 오월의 아침처럼 싱그러운 추억이, 나 홀로 삭힐 수밖에 없었던 삐뚤어진 상처가, 조용하게 불타오르는 염원이, 끔찍하고 잔혹한 복수심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지나갔다. 혹자는 이 곡이 지닌 설명할 수 없는 마력 탓으로 모든 책임을 돌리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속 편하게 그 의견에 동조하긴 아직 어렵다.

2.
<Skins>의 'Cassie'라는 에피소드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의 홍수에 빠져 버렸다. 거기에 이전 에피소드에서 토니라는 캐릭터가 합창단 앞에서 부른 'on the street where you live'를 듣고 있자니 술 한잔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어린 시절 <My fair lady>에 삽입된 이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갑작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기에 출처조차 기억나지 않는 노래가 되어버린 것은 나만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잊어서는 안 될 노래를 잊어버린 것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about a boy>의 그 아름답던 눈을 가진 아역배우가 어느새 자라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보면 그저 시간의 힘에 모든 것이 무색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2008/03/06 23:11 2008/03/06 23:11

심야잡상

Posted 2008/01/24 09:19, Filed under: About_A_boy/Only the things!

때때로 늦은 밤 향이 진한 커피를 마시며 비틀즈를 들으며 책을 읽고 싶은 밤이 있다. 또렷한 눈망울로 창밖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쌓이는 눈을 구경하고 싶은 밤. 다음날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보내고 싶은 저녁. 꼭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정갈하면서도 담백한 문체로 쓰인 70년대 수필이나 대가들의 짧은 연애 소설. 너무 어둡지 않은 조명과 따스한 담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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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아직 턱수염이 나지 않았던 열 다섯 무렵에는 이런 밤 비틀즈 대신 스팅을 들었고 좁은 문과 달과 6펜스를 즐겨 읽었던 것 같다. 십대 후반에는 아이작 스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와 이름 모를 연주자의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들으며 츠바이크의 단편들을 읽어 나갔고, 스물 초반에는 별 의미 없는 메세지를 보내고는 밤새 답신을 기다리며 무심한 척 핸드폰과 창문을 바라보며 멍하게 보냈던 때도 있었다. 스무 살 넘은 사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고 애써 믿어버렸기에 이제는 별다른 애잔함조차 남지 않은 나의 사랑.

그때는 너무 괴로워서 어서 잊을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기억들도 시간 속에 흩어지고 바래 더는 조각을 이어 맞출 수가 없다. 나에게도 사랑에 들떠 있는 청년 시대가 있었던 것을. 안부 인사를 묻는 점잖은 편지인양 써내려갔지만 행간에는 간절한 소망과 들뜬 흥분을 담고 있었던 서간들로 채워졌던 시기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건강한 친구들과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맑고 뽀얀 얼굴의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때로는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덧없는 한 조각 감정의 먼지에 불과하지만 아주 가끔은 나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노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어느 누구도 그런 외침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마음속에 품은 단호한 결심 때문에 얼굴마저 서늘해진 지인들과 지친 일상에 표정마저 헐거워진 사람들 틈에서 나까지 메마르고 건조해졌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산들바람처럼 경쾌한 문장을 쓸 수도,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애정을 듬뿍 담아 안부 인사를 건넬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삶이고 쓰고 싶지 않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늦은 밤의 지껄임이 아닐까?

2008/01/24 09:19 2008/01/24 09:19

스물일곱

Posted 2007/12/31 07:11,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1.
스물일곱 가을은 위기의 계절이고 망실의 시기이며 불운으로 말문마저 막혀버린 시간이다. 그런데 쓰고 보니 어느새 첫눈마저 내린 겨울이 와 버렸다. 어깨너머로 흘려버린 어제의 작은 생채기들이 남기고 간 잔금들이 이제는 본격적인 붕괴를 알리는 전령이 된 이때에 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에서 보내는 무의미한 시간이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깊게 과거로 침잠해 있곤 한다.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인지도 모른 채 기억 속 어딘가로 바쁘게 여행을 떠난 나는 사람들의 눈에 어찌 보일까?

사실 지금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향한 끊임없는 열정.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사실이 주던 그 총천연한 즐거움. 짧아지는 연필이 가져다주는 뿌듯함. 그 감정의 끝자락을 다시금 붙잡고 싶은 것이 지금의 내 심정이다. 고루하고 또, 고루한 삶이라 불평했지만 기실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음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은 없었다.  

애석하게도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는 않는다. 지금껏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가장 좋은 해법이 무엇인지 몰라서 당황했던 순간은 없었다. 입으로 뱉어내는 말에 거짓이 섞였을지언정 그 말로 스스로를 속여본 적도 없다. 하지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무언가를 행하는 내 마음가짐이었다. 내 마음에 흡족한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싶다는 소박한 소망은 왜 이리 현현되기 어려운 것일까.

열아홉 겨울 같은 심란한 마음에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그런데 몇 주 째 전화가 꺼져 있다. 살아는 있는지 혹은, 무언가 중대한 결심으로 은둔을 선택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그래서 서글픔을 지울 수 없는 스물일곱 가을 혹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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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필깎이 기능이 달린 연필 깍지는 연필 애호가에게 있어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항목이다. X-file에 열광했던 십대 중반에는 언제인가  연필 고무가 달린 노란색 Staedtler를 두 다스쯤 벌여놓고 쓰고 싶었는데 어느 사이에 변해버린 취향은 사춘기 소년의 소박한 소망 따위로는 만족할 줄 모른다. 혹자는 초등학교 앞 문구점을 중심으로 판매되는 요란한 장식의 연필 깍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깍지는 금속 메탈 소재에 A/S까지 가능한 물건이다. 어찌 되었건 지난 봄 잃어버린 연필 깍지를 새로 들였다. 지금껏 몽당연필 상태로 울고 있던 Faber Castell 참나무 연필들이 간만에 멋을 되찾고 책장 사이를 굴려 다니기 시작했다. 며칠 사이에 이 녀석은 그라폰의 파인라이너를 장착한 단풍나무 수성펜과 더불어 요즘 내가 즐겨 쓰는 펜이 되었다. 떠나보낸 크로스의 빈 자리가 여전하긴 하지만 이제 슬슬 이 녀석들과 정을 붙여봐야겠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펜을 바꾼 이후에 사라졌던 열정이 슬슬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새로운 펜은 이 나이를 먹도록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기이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3.
며칠 전 정년을 한 달 남긴 교수님 한 분이 크로스 볼펜과 300원짜리 30센티미터 자로 그래프를 도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마치 프린트한 것처럼 깔끔하고 아름다워 잠시 넋을 잃은 적이 있다. 크로스 펜의 선을 그리기에는 약간 둔중한 펜 끝으로 어떻게 저렇게 섬세한 커브를 그려낼 수 있는지 의아하던 난 결국 호기심을 못 참고 질문을 드렸는데 대답인즉슨 펜과 노트의 마찰을 최대한 줄인 채 펜을 지면과 90도를 유지하면서 팔꿈치를 축으로 캠퍼스를 사용하듯이 팔을 1/3 파이만큼 회전하면 된다는 것이 요체였다. 참!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다. 한 40년쯤 그리다 보면 초밥의 달인이 밥알을 100개씩 정확하게 분배하는 것처럼 하얀 노트 위에 선과 공간을 분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나. 결론은 요체를 알아도 머리에 피도 덜 마른 나로서는 따라 그릴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란 말씀.

4.
스물일곱의 크리스마스는 비몽사몽 간에 지나가 버렸다. 시골집에 내려온 나는 이브 날에는 와인 한 잔을 마시자마자 잠자리로 직행했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난데없는 눈칫밥을 먹다가 체해 버렸다. 체한 김에 십 년 만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으며 밤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명색이 연인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라는데 현관을 나갈 때마다 애교를 떠는 강아지만이 반기는 크리스마스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5.
한해의 끝자락에서 교훈 하나를 얻게 되었다. 아무래도 '누구나 자신의 상황을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라는 교훈과 함께 일생동안 마음에 품고 다녀도 지나치지 않을 교훈이다. 요약하자면 '다른 의견이 있으면 경청하고, 대범하게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로 멋진 사람이다.'라는 내용인데 기실 자신감이라는 견고한 기단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참을성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것 같다. 이 얼마나 졸렬하고 유치하며, 비겁한 행동인가? 벼랑 끝에 선 사람처럼 단 하나도 양보하지 못하고, 단 하나도 수용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처연한 것인가? 어느 것 하나 빼앗겨서는 안 되고, 틀려서는 안 되며, 포기해서도 안 되는 사형대 위의 인간으로 사는 것이 동정받아 마땅할 삶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잊었을까? 미운 일곱 살처럼 울며, 큰 목소리만 내면 모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와 그것이 무엇 크게 다를까?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 신뢰할만한 믿음이 없다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단지 목소리가 큰 사람이 되고자 지금껏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용한도가 좁은 것은 반드시 타결되어야만 하는 협상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얼마나 우울하고 몰염치한 혜택인가? 그런 혜택에 빌붙어 사는 삶은 또 얼마나 헐벗은 것일까? 이것은 타인의 관대한 도량에 기대 자신의 궁핍한 의견을 인정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감이 부족해 목소리가 큰 사람으로 평생을 사는 일은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괴롭다. 이제는 이 못된 손님과 반가운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Thanks for your advice.

6.
정말 울고 싶었던 스물일곱의 마지막 날이다. 끝내 울지는 못했지만 먼 훗날 이 시기를 생각하며 선한 눈웃음과 섬세한 애정으로 이 시기를 묘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닌 것이라고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믿음으로 나를 신뢰해주는 몇몇의 애정밖에 없는 마개 잃은 유리병, 피처럼 촛농을 떨어뜨리는 양초 같은 시기였지만 곧 '즐거운 날'이 왔다고 말이다.

2007/12/31 07:11 2007/12/31 07:11

Good bye Cross!

Posted 2007/11/22 14:44,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21살 봄부터 지난주까지 온갖 풍상을 함께 겪어온 크로스 볼펜을 버로워즈에게 앗겼다. 앗긴 충격이 어느 정도냐면 '너복설과'에 해당하여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크고 작은 시험을 함께 치렀고, 진심을 담은 수많은 말들을 함께 써내려갔으며, 수많은 커피집과 여행지에서 벗이 되어주었던 친구는 이제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기차에 앉아 혹은 비행기에서, 차창 너머를 보며 어깨너머로 흘러가버린 사건과 사람들을 묘사하던 녀석의 마지막이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다. 누구보다 내 속마음을 잘 알던 녀석이었는데, 쓰기는 했지만 보내지 못한 채 사그라진 그 불꽃을 기억하는 유일한 녀석이었는데.

만약 알았다면 그 흔한 각인 한 번 해주지 못하고, 쓰는 말이라고는 고작 '이런 까닭으로' 밖에 쓰지 않는 펜들 사이에 너를 무심히 놔두는 일은 없었을 텐데. 사람들은 고작 볼펜 하나에 치졸할 정도로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나를 비웃겠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떠난 들 이렇게 헛헛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에게 새로운 리필심을 선물 할 때 짓던 표정 없는 그 미소를 본 사람은 나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명예로운 은퇴를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난 네가 지닌 행운을 포기할 여유가 되지 않았단다. 부디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새로운 이름을 얻기를.
2007/11/22 14:44 2007/11/22 14:44

愛貰冊論

Posted 2007/08/30 22:58,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어린 시절부터 나를 보아온 친구들은 지금의 모든 노력이 먼 훗날 연애소설을 즐길 줄 아는 곱게 늙은 노인으로써의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란 사실을 인정한다. 이것은 그들이 잘 내려진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재미난 소설 한 권에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지금 막 달콤한 입술을 훔친 사람처럼 만족감에 빠진 내 표정을 기억하고 있으며, 입으로는 '서시 같은 미녀'를 입술에 달고 살아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탐독증에 걸린 사람마냥 책을 먹어치우는 삶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심이랄지 야망이랄지 것들이 남보다 부족하지는 않지만 기나긴 삶 동안 야망 하나만을 지주로 삼기란 무리다. 신내림을 받아 작두에 올라탄 이의 무아지경처럼 책을 읽는 동안의 나 역시 그런 몰아에 빠진다. 문장이 지니는 독특한 호흡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그때의 평화로움과 행복감을 알기에 되려 난 감정이 폭포수처럼 흐르는 진짜배기 사랑에 서투른지도 모르겠다. 진짜 사람사이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복잡한 수사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라든지, 세상 여자 모두가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독심술의 대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자주 잊곤 한다. 게다가 진짜 사람사이에서는 세상이 얼어버린 듯 멈추어버린 시간의 공백이 없다. 오 맙소사! 

친구들에게는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든지, 정치적 성향이 유사한 사람과 결혼하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상 내가 빠져보고 싶은 사람은 훌륭한 서가를 소유한 사람이다. 읽기는 했으되 주머니 사정으로 사지 못한 특정 시기의 유산들을 보물처럼 품고 있는 서가도 좋고, 읽으려 마음 먹었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린 책들로 꽉 찬 서가도, 나와 비슷한 취향으로 가득 채워진 서가도 좋다. 굳이 많은 장서를 자랑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질이지 양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안목이 기호를 말하는 시대가 아닌가? 게다가 운이 좋다면 『Ex Libris』의 저자처럼 서재를 결혼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근래 들어 입에 올리기 시작한 새말 가운데 하나가 서점증후군이다. 자발적 독신증후군에 이어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대화의 새로운 소재인데 요약하자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기 보다는 되려 아름답다는 이야기이다. 둥그런 허벅지와 부풀어 오른 가슴을 지닌 립밤으로 윤을 낸 입술의 여자보다는 에밀 아자르를 읽는 여자가 더 눈에 띄는 법이다. 키엘 립밤을 쓰냐고 말을 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의 이야기로 말문을 여는 것은 쉽다. 굳이 대문자로 쓰인 폴리오가 무엇인지 인큐내뷸러가 무엇인지 몰라도 된다. 그저 드라마보다 소설을 소설보다 나를 조금 더 좋아해주면 그만이다.

P.S.
장난 반, 투정 반. 나머지는 하릴 없이 내리는 지겨운 비때문에
2007/08/30 22:58 2007/08/30 22:58

출사표

Posted 2007/08/03 23:02,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 뭣하면 나한테 오면 되는 것 아니겠어’라고 말하곤 했던 친구가 있다. 그 말을 던질 때마다 농담을 가장하긴 했지만 기실 마음마저 허튼 농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겠지만 그런 농담은 순천연한 농담이라기 보다는 슬쩍 마음을 떠보는 치사한 수작에 가깝다. ‘안녕’이란 인사와 ‘다음에 보자’라는 인사를 구분하는 나쁜 버릇을 지닌 나로서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서른쯤 되면 우아하지는 못해도 거짓말 같지는 않은 말을 던지게 될 줄 알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조차 없는데 녀석의 마음이 단호해지기 전에 내가 먼저 확신을 가지게 될거라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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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마음 한구석으로는 드라마나 소설에나 어울릴 상황 전개를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서서히 나이란 것을 먹고, 그러다 보니 쌓인 신뢰와 시간이라는 덫에 물리는 상황 연출을 말이다. 그렇기에 ‘좋긴 하지만 이제와 새삼스럽게’란 말로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자 했던 친구들의 시선을 속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후회할 것이라는 친구들의 협박에 ‘나중에 술 한잔 마시면서 털어버리면 되는 것 아니겠어’ 하고 대거리를 했던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불순물이라고는 섞여 있지 않은 녀석의 단호함과 마주하고 나니 이래저래 입맛이 쓰다. 연인이 아니라 머슴을 찾는 것이 아니냐고 쏘아줬지만 녀석에게 비춰진 난 ‘Love is the only thing I wonder’이라고는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고 거기에 더해 고집쟁이에 헌신 따위는 모르는 사내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이 글을 읽고 ‘나 같은 미인을 좋아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미안한걸’ 이라며 웃음을 터트릴 것이 뻔한데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모호함을 버리고 ‘I hope to write on your empty page’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출사표를 쓰는 셈이라고 위안해보지만 변명치고는 참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2007/08/03 23:02 2007/08/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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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7/07/07 11:53,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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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는 이를 위하여!

2007/07/07 11:53 2007/07/07 11:53

헛헛한 이별

Posted 2007/06/04 10:07, Filed under: About_A_boy/Letter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난 어떤 사람일까? 사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나 사이의 차이는 뒷머리를 따끔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어쩌면 어이없을 정도로 맹목적인 호의를 베풀었던 내 행동에 대한 후회일지도 모르고, 때로는 깜짝 놀랄만한 상대의 호의에서 비롯되어 피어나는 웃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며칠 전 책장을 배회하다가 짧은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영원히 자기편이 되어 줄 수 있겠냐는 사춘기 소녀에게나 어울릴 법한 친구의 문장이 포스트잇을 채우고 있었다. 메모를 읽다보니 그 부탁에 대한 내 대답 역시 떠올랐다. 지금의 나라면 '영원'을 믿지 않기에 확답을 피했을 그 물음에 난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답을 했을까? 분명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삶에는 수많은 분기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모든 분기점을 지나 평생을 함께 걸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길은 본질적으로 혼자 걸을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한 구간을, 어쩌면 서너 구간을 함께 할 사람은 있겠지만 그 누구와도 삶 전체를 함께할 수는 없다. 아니 사람들 모두가 잠재적인 이별의 가능성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마음은 별개다. 왜 마음은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지, 그 불가능함을 추구하다가 상처 받는 마음이 아파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우아하게 냉혹한 척' 굴어대는 나는 또 무엇인지. 어째서 솔직하게 다음 구간까지, 혹은 다음 구간까지만 함께 걷자고 말하지 못하는지, 영원이란 거짓말로 상대를 현혹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상대를 외면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꾸밈 없이 솔직해지기' 일 것이다. 마음과 표정을 뒤덮고 있는 피갑은 벗으려야 벗을 수 없다. 그렇기에 사실을 말해도, 마음 속 깊이 감추어진 두려움을 말해도 그 누구도 진실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결국 나에게 남겨진 일은 저 멀리 제 갈 길로 바쁘게 걸어가는 뒷모습들을 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작게 행운을 빌어주는 것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부지불식간의 일이기에 '안녕'이란 인사말조차 남기지 못한 헤어짐 속에서 말이다. 아무리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2007/06/04 10:07 2007/06/04 10:07

미인품평

Posted 2007/05/17 11:07,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사람마다 제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천성에 가까운 고약한 버릇이 하나씩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천성에 가까운 버릇이 거친 말버릇이 되기도 하고, 고약한 술버릇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 경우에는 무엇일까? 사실 열거해 보자면 내 고약한 버릇이 한두 개로 끝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제약이 가해진다면 까까머리 중학생 시기부터 지금까지 친구들과 길을 함께 할 때면 단 한번도 빼먹지 않은 그 일을 골라야 할 것 같다.

장황한 서두에도 불구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일은 이른바 ‘미인품평’이다. 좋게 말하면 서로의 미적 감각을 뽐내는 치열한 경연의 장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겁 많은 사내 녀석들의 시답잖은 입담에 불과한 이 버릇이 내가 혐오해 마지 않으면서도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된 까닭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아는 사실이라고는 언제부터인가 ‘품평회’에 끼어들어 말하는 나를 저주하고 욕하는 자성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을 거둘 수는 없다. 한 번 끼어든 노름판에서는 쉬이 빠져나올 수 없듯이 내가 빠진 수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게 나를 빨아들인다. 설령 그것이 스스로를 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해도 말이다.

물론 아주 가끔은 ‘의견 거절’이라는 표현으로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의견 거절’ 뒤에 숨겨진 말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저렇게 보여도 민낯은 아마 다를 꺼야’ ‘저 몽롱한 안개 눈썹 덕분에 눈에 총명함이 없네’ ‘간장 녹이는 살품!’ ‘가선 진 목 때문에 실격’ ‘잠이 사이를 진지하게 탐구해 볼만 하다’ 때로 아주 가끔은 나 스스로에게 ‘넌 지금 여신의 개입 이전에 갈라테아를 바라보는 피그말리온일 뿐이야’하고 세뇌를 걸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이 못된 버릇을 내 몸에서 지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하는 행동이 본질적으로는 익명이란 그림자 속에 숨어 거칠고 치졸한 말을 쏟아내는 쏟아 내는 무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같은 진지한 깨달음 때문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발견한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며 내쉬는 어떤 이의 한숨 때문이다. 며칠 전 학교를 배회하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획 돌린 채 친구에게 밑도 끝도 없는 말을 쏟아낸 적이 있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쏟아 부었으면 그 미색이 저렇게 된 거야? 그 놈팡이는 제 놈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나 알까?’ ‘뭐가 누군데 그래’ ‘3시. 작년 봄 내가 열광했던’

차를 사러 들어간 매점에서 다시 그녀와 마주친 나는 표정 없는 눈으로 무심한 듯 한데를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을 때 커다란 전신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사슴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내쉬는 한숨을 목격했다. 그 순간에나 그녀가 우리의 대화를 전부 들었음을 내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처음 본 사람처럼 모른 척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부지불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이 흔들리지 않는 진리로 다가왔다. 지독하게 운이 없는 하루라고 웃어 넘기기에는 그 한숨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그 날 이후였던 것 같다. ‘미인품평회’에서 쏟아냈던 수많은 말들이 형틀이 되어 내 주리를 틀어대기 시작한 즈음은. 실상 형틀이 자극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마음의 짐이다. 무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누구한테도 책망 받지 않는 상태야말로 극악하지도, 그렇다고 지선하지도 않은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형벌이다.

'미인 품평' 없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산책은 어딘지 허전하다. '미인 품평' 마저 할 수 없다면 갑갑하게 막힌 내 삶은 소소한 일탈 마저 허락되지 않는 극도로 무미 건조한 것이 되고 만다. '미인 품평' 이 없다면 무슨 핑계로 귀에서 이어피스를 뽑고,  책에서 눈을 떼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때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믿어보는 것을 빼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채로 말이다.

2007/05/17 11:07 2007/05/17 11:07

혼잣말!

Posted 2007/03/25 17:49,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대학에서의 마지막 하루들을 보내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가운데 하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같은 수업을 듣게 된 아직은 어린 친구들에게 빠져들어 보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제는 '새신랑'에서 '헌신랑'으로 전락하고 있는 형님들이 그렇게 말하던 복학생의 반사이익 같은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흘러간 과거가 다르기에 어쩔 수 없이 발견되는 그 삶의 간격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향수'를 보러 가겠노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네들 옆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 감각을 되살려 생선더미에서 태어난 그루누이를, 그리고 그 작은 코를 상상하며 이야기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고 있는 내가 참으로 낯설다. 결론적으로 그네들이 열광하는 것들에 나는 무지하고, 그네들 역시 내가 열광하는 것들에 무지하다. 이런 간격을 매울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한다면 그 놈 참 대단한 녀석이다!

 쏟아지는 두툼한 Case materials들 틈바구니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일주일이 훌쩍 흐른다. 하루라도 게으름을 부리면 어느 사이에 감당하지 못할 만큼 쌓이는 짐들이 만들어 내는 암초사이로 표류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하루쯤 암초사이로 배를 몰아대는 편벽한 내 습성은 여전히 그대로다. 하루쯤 난파선이 되어 황망한 표정으로 유령처럼 교정을 배회하는 그 습성에서 언제쯤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요즘 들어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Am I Falstaff?"와 'Where is my G. Taro?'라는 질문이다. 작년에 떠났던 여로에서 스트랫포드도 아닌 파리의 바스띠유 광장에서 Falstaff란 이름의 술집을 발견한 적이 있다. 자리에 앉아 삼페인 잔에 제공되는 맥주를 홀짝이려는 찰나 머릿속으로 그리던 Falstaff와 너무나 닮은 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발견이란 듯 왼손 검지로 삼페인 잔을 만지작거리려는 찰나 그들에게서 미래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15년 쯤 후에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입구에 설치된 조잡한 Falstaff의 모형처럼 내 존재를 웅변적으로 대변해주는 인물이 어디 또 있을까?

 아무리 침묵과 겸손, 그리고 평화로움 지배하는 세계로 편입되어 고요한 삶을 살고자해도 세상은, 삶은 나에게 그런 것들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은 시끄러운 Falstaff가 되어 내 삶을 촛농처럼 낭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Falstaff의 삶이 즐거운 것이라 해도 난 그런 삶을 참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Falstaff의 삶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줄 어떤 계기인지도 모르겠다.

 언제인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 옛날 앙드레 말로의 짧은 전기에서 게르다 타로의 사진을 조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언급된 짧은 단락을 읽으며 로버트 카파와 그녀가 만들어 냈던 모종의 광휘를 발견하게 되었다. 훗날 그것이 매우 현실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농담 같은 사기극이고, 그 소품 같은 사기극이 종국에는 아름다운 로망이 되었으며, 다섯 개의 전쟁을 누빈 종군기자가 첫 번째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심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 순간 이후 난 마음속으로 게르다 타로 같은 사람이 내 삶에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건달에 가까웠던 아마추어 사진기자의 서투른 삶 속에서 운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끌어 낼 줄 알았던 동시에 짙은 사랑에 결코 질식되지 않았던 그녀 같은 존재가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나 이 지독한 수렁에서 건져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우렁각시 반 평강공주 반이 섞인 그런 이상적인 존재를 꿈꾸는 내가 어리석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음을 수없이 반복하며 어리석게 사는 것은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의 공통 생활양식이다.
2007/03/25 17:49 2007/03/25 17:49

봄, 또 다시

Posted 2007/03/02 18:08,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보니 어느새 봄이다. 들숨마다 꽃내음이 가득 찬 봄은 아니지만 제법 따뜻해진 햇살이 아침을 반기는 그런 봄. 그리고 그런 봄을 맞이해서 이런 저런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무사히 넘겼다. 3월이 시작되기 전에 복학생 친구 녀석들과 '소주 한 병'짜리 모임도 가졌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던 복잡한 일도 거의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인터넷 서비스를 연결하고, 편지쓰기나, 주소록 정리 등의 소소한 봄맞이 연례행사만 끝내면 된다.

 매 끼니처럼 반복되는 야근에 지친 친구들은 아직도 학생이란 신분을 보유한 나에게 부럽다는 말을 던지고는 한다. 하지만 작년 봄과 올해 봄은 느낌이 너무 다르다. 올해 봄은 작년 봄에 군필자로써 느꼈던 홀가분함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대신하고 있는 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정을 가득 매운 신입생들의 활력과 비교해보자면 내 모습은 참으로 '늙수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숨기려고 해보았자 숨길 수 없는 세월이 준 선물이라고 자위해보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모습이 참 부러운 것이다.

 원형극장을 담은 백주년기념관의 지하층의 앉아 독특한 블랜딩의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학교 당황해 있으려는 찰나 크리스천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물건이 옆자리에 앉는다. 어여쁜 처자라도 반갑지 않은 그 상황에 나못지 않은 늙수레한 인물이기에 정중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참 만만한 인물로 변했나보다. 아니면 그런 축객령이 레기오투스의 스페인 단검처럼 그의 신앙심에 불을 지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자기 말을 꺼내놓기 시작한 태도가 역린을 건들었다. "제가 자리를 피해드릴까요? 아니면 그쪽에서 피해주실래요?" '꺼져버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수많은 말 가운데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그 말이 입술에 걸렸다. 쳐진 어깨로 걸어가는 그 물건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난 정말 지옥에 떨어져 마땅할 그런 나쁜 사람이 맞는가 보다.

 해마다 봄이 주변에 내려앉을 무렵이면 무언가 색다른, 인상 깊은 한 해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색다른 인상' 대신 내 삶에 고명으로 얹히는 것은 낮은 농도의 우울과 몽상이다. 등을 침상에 뉘이자 말자 잠에 빠져드는 일상이 오기 전까지 나를 점령하고 있는 그 기분 말이다.
2007/03/02 18:08 2007/03/02 18:08

On my own

Posted 2007/02/12 22:53,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억지로 띄운 굳센 표정 같은 것 따위로는 오랜 지기에게 속마음을, 걸음걸이만 보아도 들어나는 심리를 부모님께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로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또 다시 만나게 된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나지만 화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자아에 생긴 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 때는 차라리 아예 부셔버리는 편이 낫다. 자신감의 기초가 실력이 아닌 기대 혹은 꿈에 밑바탕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위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아를 포기하는 일은 어렵지만 헛된 자아를 지키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보다는 뭐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더 낫다. 그것만이 새로운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라틴 격언 가운데 'Fidem qui perdit, nihil pote ultra perdere.'라는 문장이 있다. '명예를 잃으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라는 문장이다. 나 자신의 부적절함과 소소한 운명의 농간 덕분에 이 격언이 의미하는 상황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나태함과 운명의 냉혹함에 백기 항복하고 무장해제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목까지 내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등골에서 느껴지는 싸리한 서늘함을 느끼며 하루를 사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제 시간이 주는 유용함을 모두 써버렸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시기는 항상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기로에서였다.
2007/02/12 22:53 2007/02/12 22:53

日常 小考

Posted 2007/02/05 00:03,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봄처럼 포근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멀리서는 따사로운 햇살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강아지는 창문 아래에서 호기롭게 낮잠에 빠진다. 그런 강아지를 보며 초쿄파이 1/4조각으로 잠을 방해하는 것이 요즘의 내 일과이다. 바쁜 식구들을 대신해 집안 청소며,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착한 아들 노릇도 해보고, 외출할 의도가 없음에도 착실하게 면도를 해본다. 열흘 가까이 사람 구경조차 못했음에도, 매력적인 향으로 꼬일 사람이 없음에도 샤워 후에는 스킨과 로션으로 스스로를 꾸민다. 게다가 마무리로는 향수까지 뿌려본다. 덕분에 서재에서는 늘 은은한 사과향이 맴돈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붙잡고 있노라면 손목을 타고 오르는 연한 향에 마냥 행복하다. 봄 분위기가 나는 푸른색 스프라이트 셔츠를 입고, A8을 타고 흐르는 Rita Calypso의 목소리를 친구 삼아 책장에 빠져든다.

왼손은 무의식적으로 찻잔을 찾아 책상을 헤맨다. 몇 해만에야 화해한 Earl Grey는 서서히 나를 중독 시키고 있다. 햇수로 따져보니 만으로 4년을 꽉 채운 냉전 기간이었다. 가끔은 12시가 넘도록 깨어있는 밤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음악을 친구 삼아 창밖을 바라보며 겨울밤의 별자리를 감상하는 일 대신 예전처럼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기도 하다. 낮에도 제대로 전화를 챙겨 받는 일은 좀처럼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통화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3년하고 몇 개월만의 일이다.

화해는 그것만 아니다. 에드몽 당테스가 메르세데스에게 말했던 '스물 넘은 사내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있은 지 4년 만에 다음에 만날 진짜 약속을 했다. 다음에 만날 약속이 뭐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일까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 만날 약속이란 나에게 그 어디에도 견줄 바 없는 귀한 선물이나 진배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자, 나를 안도하게 만드는 말. '까다로운 기호 덕에 만족을 모른다' 라는 편견을 사긴 해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은 단순하다.

'다음번에는 커피 한 잔'. '다음번에는 영화 한 편', '다음번에는 뭐'. 오늘이 끝이 아니라 다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맺고 끊는 것이 불분명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잃고 싶지 않은, 잃게 되면 너무나 큰 박탈감을 감수하게 될 인연들이 나에게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 것들이 바로 나란 인간의 '살아 있는 갈대들'이다. 그 '살아 있는 갈대'가 있기에 난 기록상의 존재가 아닌 순간의 마음과 기분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P.S.
『보헤미안 스캔들』을 다시 읽다 주석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In his eyes, she(the woman) eclipses & predominates the whole of her sex' 잠시 마음을 맡길 수 있는 나무 그늘 혹은 의탁처가 되진 못하더라도 지금껏 내가 받은 느낌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문구는 없을 듯하다. 아울러 이번 주는 정말 바쁜 한 주가 될 듯하다.

그리고 상경 일자를 되묻는 친구들에게 대답하자면 설 이후에나 지금 만끽하고 있는 고요한 평화에서 벗어나 인세로 돌아갈 예정이다. 몸이나 마음이나. 자신감이나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상태다. 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시는 것이 탈이긴 하지만, 음지를 이용해 보는 영화 속의 거리들을 내가 걸어보았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이 곳이 탈속한 곳이긴 하지만 말이다.
2007/02/05 00:03 2007/02/05 00:03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아하게 냉혹해지기’와 같은 뜻이 되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논리 검증 같은 것은 모른 척 잠시 제자리에 놓아 두자.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된다’ 와 ‘우아하게 냉혹해지기’의 상관관계이지 이것이 보편성을 지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우아하게 냉혹해지기’는 역설적이지만  ‘촌스럽게 순진하기’ 단계에서 비롯된다. 한껏 고양되다 못해 과잉에 가까운 감정 상태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촛농처럼 삶을 낭비하던 A는 좌절과 배신 등 복수극에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소소한 사건들을 다 겪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게 된다.

A는 그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아니 정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촌스럽게 순진하기’가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 방식이며,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보다는 비웃음을 얻기에 딱 좋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A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꿔 놓는다.

열렬하게 타오르던 감정은 삭막해지고, 끝을 모른 채 이어지던 말은 잠잠해지며, 기분 따라 움직이던 하루는 꽉 짜인 스케쥴에 관리되는 하루로 변한다. 웃음이 줄어드는 대신 비웃음은 늘어가며, 칭찬보다는 논쟁과 비판에 익숙해진다. 아니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든다. 무관심과 무신경함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름답거나, 멋진 존재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귀찮다라는 말이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지금 ‘촌스럽게 순진하기’ 단계를 지나 우아하면서도 쿨함을 지향하는 단계에 접어 들었다. 냉정하게 잇속을 챙기고, 알뜰하게 삶을 보살핀다. 예전에는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이 열정과 진솔함이었는데(가끔은 무모함이기도 했다) 이제는 유용성을 토대로 가치를 판단한다. 시간과 돈이 중요해진다. 혼자 보는 영화에 익숙해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만큼 통화량도 줄어든다. 자기에 대한 투자는 불어나는데 자기 밖의 모든 이들에게는 점점 인색해진다. 과연 이런 것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일까?

가끔은 예전의 ‘촌스럽게 순진하던’ 그때가 그립다. 사랑한다는 말을 손쉽게 입에 담을 수 있던 그때가 말이다. 지금은 사랑조차 과거처럼 명료하지 않으며, 미움도 강렬하지 않다. 더이상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끈적하게 사랑한다 말하고, 집요하게 손을 붙잡고 싶다. 전화를 들었다가 왠지 모를 어색함에 다시 집어 넣는 것은 컬러링만 듣다 전화를 내려놓는 것보다 더 촌스럽다. 과연 ‘우아하게 냉혹해지기’가 정말 우아한 것일까? 치촐함과 상처를 두려워 하기 때문에 피하고 숨는 것을 그렇듯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28th, Jun, 2005
P.S.
스물 다섯 6월에 작성한 글. 이 글을 이제서야 발견한 이유는 폴더 정리의 허술함 탓이 크다. 아니 조금 더 냉정하게 따져 보면 당시에 '우아하게 냉혹해지기'란 문제는 내 삶을 압박하던 진짜 두통거리였기에 결론이 나지 않은 화제로 삶을 더우 복잡하게 만들 의향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것과 화해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머리속을 맴도는 문장은 '내 삶도 꽤 재미난 것이었군'이란 한 마디뿐이다.
2007/02/02 00:41 2007/02/02 00:41

십원 예찬

Posted 2007/01/29 20:33, Filed under: About_A_boy/Chronicle 'My name is Falstaff'
 지기와 나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대표적인 '십원'짜리들이다. 가지기에는 모양이 나지 않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평소에는 거의 용도가 없으나 아주 가끔은 그것의 부재가 아쉬운 존재. 냉정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믿는 우리로서는 '십원'짜리 이론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한다. '십원'짜리에서 벗어나 고액권이 되고 싶지 않으냐고 스스로를 꼬드기기도 하고 어째서 우리가 '십원'짜리에 불과한지 심도 있게 고찰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고찰의 결과는 항상 같다. Pros, Cons가 뚜렷하게 들어나는 사람들은 신비감이 없다. 신비감이 없다면 내재가치가 과대평가되는 법이고, 낮은 평가가치는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차대조표처럼 Pros와 Cons의 차변과 대변이 딱 맞아 떨어진다면 더 이상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십원'짜리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도 나쁘지 않다. '십원'짜리들에게는 adventuress가 따라 붙는 법도 없고, 웬만한 실수 정도는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다. 홀로 즐겁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기만 한다면 제법 괜찮은 외관을 유지할 수도 있다. 가끔씩 까닭 모를 우울함의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마의 시간대가 짧게 존재하긴 하지만 고액권이 되어 진폭이 큰 희비의 쌍곡선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그 여유를 스스로의 삶을 돌보는데 사용할 수 있다. 이야기를 사랑하고, 차를 좋아하며,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열렬하고 극적인 그 무언가를 누릴 수는 없지만 소소하지만 따사로운 그 무엇을 즐길 수는 있다.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운데 하나가 사랑이 아니라면 '십원'짜리 매력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끔 '십원'짜리에게도 참을 수 없는 순간은 찾아온다. 이른바 情理解固의 시간인데 이것은 '십원'짜리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시간과도 같다. 고액권에 투자 결정을 내린 누군가가 과감하게 '십원'짜리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순간이다.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엉켜있던 인연의 매듭은 어느 순간 헐렁해지고 예의바르면서도 감각적인 문구로 포장된 최후통첩이 도착한다. 안녕이란 말을 뜻하는 문장이 얼마나 많을 수 있는 지 셈하는 일은 흥미롭지만 그 셈의 대상이 되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다. 그렇게 시간은 슬픈 노래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아직 절망하기는 이르다. 아니 절망할 필요조차 없다. '십원'짜리로서의 경험은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과 포기해도 되는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하며, 헛된 맹세의 공허함을 포착하는 능력과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는 신기한 재주를 제공한다. '십원'짜리로서의 삶은 집중력이 필요한 관찰과 인내심이 필요한 기다림, 협상의 윈셋을 넓히는 포기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얻는 진짜 수확은 바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이다. 뭐 그러니 '십원'짜리 매력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P.S.
지기에게. 앞으로 다시는 소위 '십 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것이 오늘 결정한 내 두번째 정책이야. 그러니 자네도 프렌즈를 접게나. 그리고 고마워. 김군에 말에 의하면 '그 녀석도 누군가가 필요할 때'가 있을텐데 마침 그때가 요 며칠이었나봐. 새해가 되면 정말 어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께. 내 이름으로 약속할께. 그리고 만약 어제와 같은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면 지체없이 말해주어야 해!    
2007/01/29 20:33 2007/01/29 20:33

책에 관하여
한국을 비운 틈에 출간된 책들을 서가에 채워 넣었다. 신뢰하는 리뷰어들의 침묵(개중에 두 곳은 링크 자체를 잃었다)을 증거 삼아 2006년 하반기의 도서 시장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서점에는 절판과 반값 세일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놓치고 싶지 않은 책들이 몇 권이나 쌓여 있었다. 결국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재방의 거대한 뱃속에 일단 던져두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참 지난여름에 서재에 던져두고 갔던 책들의 대부분은 연말을 이용해서 먹어 치웠다. 제대로 된 리뷰를 쓰기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짧은 코멘트로 된 긴 리스트로 작성중인데 그마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지난봄에 빼놓은 리스트와 뒤섞여 1종 프로그램 오류를 토해내고 있는 참이다.       

배우에 관하여
배우에 관한 내 사고 방식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불건전하기 짝이 없다. 남자 배우들은 애당초 인지의 영역에 포섭되지 않으며 여자 배우의 경우 극중의 캐릭터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현대의 최신 문법에 맞춰 그녀가 지닌 이미지와 순간순간의 매력에 매료될지는 몰라도 희노애락을 모두 아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삭막하지만 다소 애매한 애늙은이로 십대를 보낸 나로서는 당연할 수 밖에 없는 반응이다. 그런 것에 열광하기에는 내 십대는 꽤 바빴고, 스스로가 유치하다고 정의내린 행동들을 실행에 옮길 만큼 용감하지도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난 사람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견지해오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극중 캐릭터에 대한 호감으로 무심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매력적이지만 좌절을 두려워하는, 도도하지만 유리처럼 쉽게 부셔지는 인간을 발견했다. 아니 극중 캐릭터란 분장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 것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이런 성격에 저항력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 어떤 발언으로-아마 친구들이 믿고 있거나 알고 있는 나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일 것이다-친구들에게 당혹감을 선사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오지에서의 일상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햇살이 따스한 하루였다. 꽤나 쌀쌀하던 지난 한 주를 짧은 반바지차림으로 지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던 식구들은 긴바지와 함께 꺼내 입은 분홍색과 하얀색이 반복되는 화사한 스프라이트 셔츠에 한마디씩 한다.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인 녀석이 공부한답시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란 어머니의 말씀이 뒤통수에 와 닿는다.

오지에서의 삶은 이렇다. 지난 2주 동안 누이를 제외한다면 젊은 처자라고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고, 택배 배달 청년들을 제외한다면 아버지이외의 성인 남자 역시 보지 못했다. 거실 소파에 앉으면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고, 부엌 창문으로는 이름 모를 7부 능선에 쌓인 눈이 보인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길에 들리는 바닥이 들어난 작은 저수지에서는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서재방에 앉아 커피와 홍차, 녹차로 이어지는 차의 대향연을 즐기기 여념 없다.

사실 그럴듯한 꾸밈 뒤에 숨겨진 진실은 이렇다. 시간은 많은 것들과 화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화해는 미움과 증오를 버리게 만들었고 그것은 다시 모든 감정이 비롯되는 어떤 시작점을 앗아가 버렸다. 화해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화해는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해 끝에 내가 얻은 평화는 조용한 것인 동시에 공허한 것이 되었으며 이제는 어디에 마음을 투묘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람이 노크하고 지나갈 때마다 유리창에 비친 건장한 사내의 등을 획인하게 되지만 그 등으로 덥혀줄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방안을 산책하듯 맴돌며 낯선 거리를 걷던 순간이며 대담한 포옹과 긴장감 넘치던 한밤중의 산책 같은 것을 비를 맞으며 세상이 무너진 듯 방황하던 오래전의 못난 내 모습에 겹쳐보는 것이 아닐까?

Post Scriptum
Happy birthday to you!
2007/01/16 00:05 2007/01/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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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눈뜬 자들의 도시 The note of Legendr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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